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971화 (971/1,826)

§ 나는 될놈이다 971화

-대답이 없다니, 정말 죽었나보군.

-…….

물론 푸르네우스는 죽은 게 아니었다.

너무 황당해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아다드는 망설이다가 위로를 해주기로 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 아니겠냐. 다른 악마들도 당한 적 있으니 너무 마음 쓰지 마라.

-…….

-물론 난 안 당했지만 그건 내가 너무 대단하고 뛰어나서 그런 거고 너 같은 놈은 어쩔 수 없었던 거겠지.

위로만큼 악마들이 못하는 분야도 없을 것!

아다드의 뜨거운 위로는 푸르네우스를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이 아키서스 같은 놈이….’

-이제 좀 정신이 들었나보군. 푸르네우스. 오늘 널 죽이진 않겠다. 감사히 여겨라.

울컥!

아다드의 오만한 말에 푸르네우스는 분노했지만, 푸르네우스는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불리한 건 그였으니까!

지금 끝까지 싸우면 푸르네우스가 질 확률이 훨씬 높았다. 자존심을 조금 살려보려다가 죽는 건 사양이었다.

‘두고 보자. 아다드 이놈… 오늘 이 일은 네놈의 목으로도 갚아야 할 것이다!’

‘흥. 속으로 날 노리고 있겠지, 아키서스한테 당하기나 한 머저리 같은 놈이… 악마 공작으로서 자격이 없는 놈이다. 네놈을 살려주는 건 아키서스를 잡기 위해서다.’

아다드도 악마 공작인데 푸르네우스의 속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원래 못해주면 ‘감히 나한테 이런 대접을? 널 죽이겠다….’ 하고, 잘해주면 ‘멍청하게 나한테 잘해주다니 큭큭 널 죽이겠다….’ 하는 게 악마 종특!

푸르네우스를 살려준다고 해서 푸르네우스가 감사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굴욕이라고 생각하며 이번 일을 복수하려고 할 것!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다드는 푸르네우스를 믿었다.

푸르네우스가 악마라면 분명 아키서스부터 먼저 찾아서 죽이려고 할 테니까.

성 뺏기고 부하도 다 잃은 악마 공작이 참으면 그건 악마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네놈 같은 멍청한 악마가 아키서스를 제대로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지. 둘 다 같이 죽는 거다. 크하하하!’

아다드는 푸르네우스와 아키서스가 싸워 서로 크게 다치는 걸 원했다.

그래야 그가 쉽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푸르네우스. 관대한 내가 한 가지 도움을 주겠다.

빠드득.

-…무엇이냐?

-예전에 아키서스 놈을 잡기 위해 준비한 게 있었다.

-…!

푸르네우스는 솔깃했다. 확실히 지금 가장 먼저 조져야 할 건 아키서스였다.

아다드는 그다음!

‘아키서스 놈을 죽인 다음 놈의 힘을 뺏어 아다드 놈을 죽인다!’

-그게 뭐냐?

-대륙으로 가는 방법이다.

-그게 정말이냐?!

마계와 중앙 대륙은 분명 차원문들로 연결이 되어 있었지만, 악마들은 원한다고 대륙에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신들이 아직 대륙에 있을 무렵, 외계로부터 침입을 막기 위해 강력한 결계를 쳐놨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대륙은 마계의 악마들한테 지배당하고 있었을 것!

덕분에 마계의 악마들은 대륙으로 나가려면 어마어마한 페널티를 입고 나가야 했다.

하급 악마나 중급 악마쯤 되면 잃을 힘이 적으니 억지로라도 나가보지만, 상급 이상만 돼도 억지로 나가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았다.

잃을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상급 이상 악마들은 대륙에 어떻게 나가는가?

바로 소환이었다.

대륙의 흑마법사들과 악마술사들이 제물을 바쳐 불러내면 그 대가를 받고 대륙에 소환되는 것이다. 대륙의 종족들이 불러내는 건 결계가 막지 못했으니까.

물론 힘이 많이 제약되지만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

그리고 악마를 불러내서 계약하려고 한 마법사들은 보통 끝이 좋지 않았다.

악마를 통제하는데 실패하거나, 악마한테 당해서 죽거나.

보통 마계에서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은 악마 상대로 수작질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키서스가 이상한 것!

어쨌든 악마들도 대륙에 가려면 각오와 준비가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행운도.

한 번 소환된 악마들이 어떻게든 오래 있으려고 발악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다드가 준비를 해놨다니. 푸르네우스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놈의 근거지는 대륙에 있으니, 대륙으로 갈 수 있도록 인간 놈들을 꼬드겨 놨다.

악마를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악마 공작의 이름은, 어린 악마들에게 아키서스의 이름 같은 의미였다.

업계의 슈퍼스타!

아다드가 접촉해서 말을 걸자 악마술사들과 흑마법사들은 굽신거리며 ‘명에 따르겠습니다, 아다드 님!’이라고 하며 소환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악마 공작을 소환하려면 준비해야 할 제물과 의식도 만만치 않았기에 아직 다 끝나지 않았지만, 곧 완성될 것 같았다.

-그런 걸 나한테 양보한다고?

-아키서스 앞에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푸르네우스는 찜찜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찜찜하다고 거절하기에는 너무 좋은 기회였다.

-어떤 놈들이냐?

-아… 뭐였더라. 인간 놈들의 왕국이었는데… 아, 그래. 오스턴 왕국이었을 거다.

오스턴 왕국!

태현이 예전에 사기치고 나갔을 때 오스턴 왕국이라고 말한 탓에, 아다드가 찾은 곳도 오스턴 왕국의 흑마법사들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 이렇게 돌아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랄그갈 이놈, 대륙에 내려가서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고… 설마 배신을 한 건 아니겠지. 멍청이같이 독이나 뺏기고 말이야.’

물론 랄그갈은 쫄쫄 굶으며 허기의 던전에서 강제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지만, 아다드 입장에서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혹시 배신한 거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대륙에 내려갔으니 슬슬 딴 생각을 하며 에다오르한테 독을 지원해 줘도 이상할 게 없었다. 원래 악마들은 숨 쉬듯이 배신을 해댔으니까.

-랄그갈 놈을 찾으면 내가 널 도와주라고 했다고 전해라.

아다드는 본심을 숨기고 말했다.

-놈을 믿을 수 있는 거 맞나? 놈의 독이 내 영역에 풀렸다.

그러나 푸르네우스도 비슷한 의심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놈 에다오르랑 손잡은 거 아냐?

-놈은 배신할 놈이 아니다.

-퍽이나 그러겠군.

-만약 그러면 네가 처리해도 좋다.

-네가 명령 안 해도 내 일에 방해가 된다면 그렇게 할 거다. 빌어먹을 에다오르 놈. 그놈도 용서하지 않겠다.

자기 성에서 요양하고 있는 에다오르에게 튀는 불똥!

에다오르는 자기가 어느새 ‘아키서스한테 당한 주제에 아키서스와 붙어먹은 자존심도 없는 놈’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걸 몰랐다.

-그래. 다 좋으니 대륙으로 가서 분노를 폭발해라. 아키서스 놈은 꼭 죽여야 하니까.

-준비가 다 되면 말해라. 바로 내려갈 테니!

‘가서 아키서스 놈과 공멸해라, 멍청한 놈.’

‘아키서스 놈의 힘을 흡수해서 네놈의 목도 날려주마.’

두 악마 공작은 서로 쳐다보며 다른 꿍꿍이를 품었다.

* * *

콰르르르릉!

콰릉! 콰릉!

굉음과 함께 <아키서스의 하늘성>은 미친 듯이 흔들렸다.

[멀미 상태에…]

[이동 속도가…]

[균형 감각이…]

타고 있는 사람들을 페널티에 빠뜨릴 정도의 여행이었다.

태현은 흔들리는 상황에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고블린들에게 물었다.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겠지?”

“물론입니다, 폐하! 아직 살아 있잖습니까!”

“…….”

근거가 이상하지 않냐?

“소리도 크게 나고!”

“계속 움직이고 있고!”

“걱정하실 거 하나도 없습니다!”

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딘가 크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더 이상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키서스의 하늘성>이 충돌했습니다!]

[제3, 4, 7부스터와 균형 조절 장치가 손상되었습니다. 비행의 균형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추락한 거 같은데.”

“추락이라니요!”

“착지입니다! 착지!”

고블린들은 자기 선조들의 유물에 관해서는 엄격했다.

실패란 없다!

실패처럼 보여도 그건 실패가 아니야!

“망가져서 정지한 거면 추락이지….”

“아무리 양보해도 불시착 정도입니다!”

“됐고. 밖의 상황부터 확인해 봐야겠군.”

일단 태현은 안심했다. 마계는 벗어났고, 안전하게 착지, 아니 추락했으니까.

성이 박살 나지 않고 대륙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원래 이것만 바라지 않았던가!

[카르바노그가 너무 소박한 걸 바란다고 안쓰러워합니다.]

‘아키서스랑 엮이고 나서부터 사람이 좀 바라는 게 줄어든 것 같은 기분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마계에서의 아키서스가 돌아왔다고 선언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위업입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이제 대륙의 어떤 교단도 아키서스 교단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중앙 대륙의 모든 왕국에서 아키서스 교단이 대형 교단 취급을 받습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마계의 모든 악마들이 당신의 선언에 머리끝까지 분노합니다.]

[악마들의 대륙 침공 횟수가 증가합니다.]

대륙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퀘스트 결과!

악마들이 많이 쏟아져 내려오면 그만큼 대륙에는 안 좋은 일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괜히 부른 것 같은 찜찜함!

[카르바노그가 악마들이 나쁜 거지 아키서스가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그렇지?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권능 <아키서스의 제물>을 얻었습니다!]

‘…제물?’

[카르바노그가 뭔가 좀 느낌이…]

두 신과 화신이 불안해하는 사이 새 퀘스트창이 떴다.

<악마 공작 토벌-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아키서스의 이름을 마계에 외친 것은 시작일 뿐. 악마들은 너무 오랫동안 평화롭게 지내왔기에 진정한 아키서스의 두려움을 잊고 있다.

나태하고 게을러진 악마들에게 아키서스의 두려움을 일깨워줘라!

악마 공작의 목이라면 악마들도 다시 두려워할 업적이 되리라.

보상: ?, ???, ????, 아키서스의 권능.

‘…이건 무시하고.’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한 번 마계 퀘스트를 깼더니 그다음 퀘스트는 정말 양심이 없는 퀘스트가 나왔다.

애초에 태현이 고난이도 퀘스트를 깨서 그런 거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도가 있지 않은가!

‘그나마 해보려면 어떻게든 대륙으로 꼬셔내서… 아니, 이걸 내가 왜 고민하고 있지.’

프로게이머의 습관.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난제가 나와도 일단 어떻게 할 수 없나 고민부터 하는 것!

‘아키서스의 제물이나 확인해 봐야겠다.’

<아키서스의 제물>

파티원 중 한 명을 희생시킵니다. 파티 전체에 강력한 버프를 겁니다.

“…….”

[…….]

아키서스 진짜 악신 아냐?

* * *

사실, 희생해서 버프하는 스킬은 여러 교단에 있었다. 꼭 악신 교단에서만 쓰는 스킬은 아니었다. 선신 교단에서도 저런 희생 스킬들은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건 보통 자기가 희생했다.

태현의 기억에 파티원을 희생시키는 스킬 같은 건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가 다른 신의 권능을 보고 좋아 보여서 따라 만든 거 아니냐고 추측합니다.]

‘…좋아 보인다고 악신 권능 베낀다는 것부터가 좀….’

점점 이미지가 이상해지잖아!

하긴 아키서스 권능들을 종합해 보면 ‘이게 왜 아키서스 권능이지?’ 싶은 스킬들이 종종 있었다.

‘그보다 이 권능은 좀 강력한 스킬이긴 하군.’

태현은 이 스킬의 가치를 금세 알아봤다.

파티원 중 한 명을 희생한다는 게 어처구니없는 조건처럼 들렸지만, 태현은 플레이어였다.

랭커들이나 고렙쯤 되면 사망 페널티에 기겁을 하지만, 판온에는 사망 페널티를 신경 안 쓰는 저렙 플레이어들도 많고 많았다.

레벨이 낮을수록 사망 페널티가 별 것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 플레이어를 한 명 파티에 넣으면 그만!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한테 말하면 줄을 설 거 같은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