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69화
카르바노그의 훈훈한 위로에 태현은 다시 기운을 냈다.
그래!
마계에 좀 더 역병 풀고 성을 뺏고 악마를 터뜨리면 되지 않겠나!
메시지창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계속 추가로 나왔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마계는 기회의 땅.
태현은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레벨 업 하기 너무 좋은 곳…!’
[카르바노그가 아예 여기서 살지 않겠냐고 물어봅니다.]
‘음. 나도 여기 왕이란 놈들이 다 나를 죽이려고 하지만 않았으면 여기 살았을 텐데 말이야.’
마계의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
그건… 모든 악마들이 태현을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흠. 그나저나 레벨 182까지 어떻게든 올렸군. 투기장 리그 전까지 200은 무리겠지만 이 정도만 돼도 감지덕지인데?’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투기장 리그.
판온에서 직접 주최하고, 전 세계에서 거르고 거른 팀들만 겨루는 랭커들의 리그였다.
한국의 방송사가 진행했던 투기장 대회는 한국에서만 진행된 것치고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었었다.
그때 주최한 방송사 쪽 인물들이 대거 승진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판온의 힘 덕분이었다.
어쨌든 이 첫 투기장 대회 때문에, 판온 측은 투기장 리그를 준비할 때 이런저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투기장 리그는 세부 규칙은 꽤 많이 달라져 있었다.
* * *
“일단 투기장 리그에 참가하는 선수들, 로스터에 들어가 있는 후보 선수들한테까지 전부 다 투기장 이동 스크롤을 줘야 합니다.”
“맞습니다. 안 그러면 피해를 입는 랭커들이 너무 많아서, 아예 대회를 빠지려는 랭커들도 생겨날 겁니다.”
“로그아웃 페널티 규칙은 어떻게 할까요?”
“그건 고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판온 기본 규칙이라.”
한 번 로그아웃 당하면 며칠 동안 접속이 불가능.
판온은 제작자들이 하나하나 만든 게임이 아닌, 그들이 구축한 AI가 만든 게임이었다.
판온 내의 무언가를 수정하려면 AI한테 ‘이게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식으로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했다.
제작자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는 것!
저런 로그아웃 관련 규칙은 AI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규칙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출전을 못 하면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그건 현실에 있는 스포츠 대회에서도 있는 위험 아닙니까. 그럴 때를 대비해서 후보 선수가 있는 거고요. 자기 관리도 선수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만약 선수가 한 명 빠질 때마다 대회를 연기한다면 대회 일정이 엉망이 될 겁니다.”
“참가한 선수들끼리 PK를 금지하면 어떨까요?”
“그건 너무 현실성 없는 이야기입니다. 당장 판온의 랭커들이 몇 명인데 그들이 다 안 부딪히려면….”
“으음, 하지만 한국에서 있었던 투기장 대회처럼 하는 건 좀….”
직원들은 그 기상천외했던 경기를 떠올렸다.
경기 직전에 상대 팀 선수를 공격해서 아웃시켜버린 태현!
“…….”
“뭐… 자기 관리도 선수 책임이니까요!”
“하긴 그렇지요! 하하하!”
방법을 찾지 못한 직원들은 그냥 넘겼다. 이건 어쩔 수가 없었다.
랭커쯤 됐으면 자기 목숨은 알아서 자기가 간수해야지!
“후보 선수들 있고… 팀은 다 정해졌고… 이거 기대가 많이 됩니다.”
“팀장님은 팀 KL 팬이시지요?”
“흠흠. 팬이긴 한데 사심은 없습니다.”
“무슨 소리를. 저도 팀 KL 팬인데요.”
같은 팀 팬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훈훈한 눈빛이 서로 오갔다.
“하하하. 전 상하이 팬더즈 팬입니다.”
“…….”
“…….”
약팀 팬에게만 주어지는 안쓰러운 눈빛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울컥한 팀장이 말했다.
“아니, 상하이 팬더즈도 강한 팀입니다!”
“저희는 아무 소리도 안 했….”
“고위 성기사 곤잘레즈도 영입했고! 이름값은 좀 부족해도 강한 팀이란 말입니다!”
“그래요, 그래요. 상하이 팬더즈도 좋은 팀이에요.”
“그, 기사도 있더라구요. 상하이 팬더즈는 어떻게 강팀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보니까 좋은 팀 같은데….”
팀장들이 토닥토닥 달래자 상하이 팬더즈 팬인 팀장은 더 슬퍼졌다.
동정하지 마…!
더 슬프잖아!
“그, 그래도 까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 아닙니까.”
“견적이 잡히긴 하지만….”
“아. 좀 닥치고 있어요. 울면 어쩌려고 그래.”
까보기 전에는 모른다. 맞는 말이었다.
아직 리그는 시작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언론들과 팬들은 강팀과 약팀을 예상하고 있었고, 이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태현의 팀 KL이야 ‘연습 경기? 그게 뭐지? 먹는 건가?’ 하고서 퀘스트에 몰빵하고 있었지만, 다른 게임단들은 리그 시작 전에 서로 교류하면서 연습 경기들을 했다.
게임단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광고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올 수 있는 기회였으니, 연습 경기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연습이 되는 건 덤!
문제는 이 연습 경기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나뉜다는 점이었다.
원래 리그가 시작하기 전에는 모두 다 ‘후후 우리 게임단이 잘나가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리그가 시작하고 나면 갈리게 마련.
그리고 <상하이 팬더즈>는….
연습경기 전패!
전승도 어려웠지만 전패도 정말 어려운 기록이긴 했다.
게다가 <상하이 팬더즈>는 중국 쪽 자본이 어마어마하게 흘러간 덕분에, 게임단 중에서 손꼽히는 지원을 받는 게임단.
모기업 상층부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을 정도였으니 그 충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소문에 따르면 간부 몇 명이 모조리 잘려 나갔다고….
“그래도 다들 <상하이 팬더즈>는 알잖아요!”
“맞습니다! 인지도가 얼마나 중요한데!”
‘…그냥 위로하지 마…!’
상하이 팬더즈 팬인 팀장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앞으로는 그냥 다른 팀 팬인 척해야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원래 한두 판 하는 연습경기와 리그는 또 다르니까요.”
나이 많은 팀장이 위로하자 상하이 팬더즈 팬인 팀장은 솔깃했다.
“그, 그렇겠죠?”
“맞습니다. 제가 야구 팬인데, 연습경기 성적으로 결정되면 저희 팀은 벌써 우승했습니다.”
“…앗, 네.”
묘한 박진감이 있는 팀장의 말!
“그리고 저희가 열심히 투기장 규칙을 정한 이유가 뭐겠습니까? 한 팀의 일방적인 독주를 막고, 리그가 팽팽하게 진행되게 하기 위해서 아니었습니까?”
한 팀이 독주하면 그 팀 팬이야 즐겁겠지만, 다른 팀 입장에서는 좋을 리 없었다.
가을에 시작해서 겨울에 끝나는 시즌 마지막까지 유지되는 팽팽함!
판온 측은 그런 걸 원했다.
그리고 이런 팽팽함을 위해 가장 견제를 많이 당해야 했던 팀은 바로 팀 KL이었다.
판온 측은 이미 팀 KL을 따로 놓고 분석하고 있을 정도!
-이 규칙대로 가면 팀 KL이 너무 독주를 할지도 모르니까….
-그냥 퍼주면 안 됩니까?
-…미스터 최. 밖에 나가 계시겠습니까?
-후. 조용히 하겠습니다.
그 결과, 대충 다음과 같은 규칙들이 만들어졌다.
-다양한 맵과 다양한 승리조건. 어떤 맵에서는 점령, 어떤 맵에서는 탈취 등등.
-죽어도 부활 가능.
-죽일 때마다 보너스 버프.
-레벨 100으로 고정한 뒤 강제로 스탯도 맞춰버리는 규칙 취소. 평균 레벨 비율에 맞춰서 조절.
-장비 제한 해제.
한국에서 있었던 대회는 강제로 100을 만들어버리고, 스탯 총량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했다.
모두가 똑같은 스탯을 갖고, 똑같은 아이템을 갖고 싸운다!
판온 측은 이 방식이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1. 태현 같은 미친 컨트롤을 가진 플레이어가 너무 활약한다. 컨트롤 승부가 되니 견제 방법이 거의 없다.
2. 플레이어들 간의 개성이 많이 죽는다. 장비도 그 플레이어의 개성 중 하나이고, 스탯이 워낙 줄어드니 스킬도 제한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판온 측은 장비 제한을 풀었다.
장비 좋은 쪽이 무조건 이기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랭커쯤 되면 장비 정도는 전부 다 상향평준화 된 상태였다.
오히려 이런 게 팀 KL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물리 방어력 전문 장비나, 폭탄 방어 전문 장비를 끼는 것으로 견제가 가능해질 테니까.
다양한 전략을 통한 견제!
판온 측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태현도 자기 장비 들고나올 수 있다는 것!
무심코 태현이 다른 랭커들처럼 평범하게 좋은 장비를 들고나올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후. 규칙 정말 잘 만든 거 같습니다.”
“특히 레벨링이 아주 좋은 거 같아요.”
레벨 100 고정도 바뀌었다.
경기 참가하는 선수들의 평균 레벨을 정한 다음, 거기에 맞춰서 버프나 디버프를 가하는 식으로.
레벨 200이 평균이면 레벨 180인 플레이어는 약간 버프를 받고, 레벨 220인 플레이어는 약간 디버프를 받는 것이다.
이걸로 랭커들은 평소 자기 하던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수준의 스킬 공방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김태현 같은 컨트롤 수준 높은 플레이어를 견제할 방법도 다양해지겠지!
“오늘은 이 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마무리 지을까요?”
“투기장 리그를 위하여!”
“투기장 리그를 위하여!”
“우리 어느 팀이 1위할지 내기할까요? 주말 출근 걸고?”
누군가 농담 삼아 말하자, 상하이 팬더즈 팬인 팀장이 제일 먼저 말했다.
“전 팀 KL로 부탁드립니다.”
“…….”
“…….”
“왕 팀장님….”
“아니, 내기는 냉정하게 해야 하지 않습니까. 가슴은 상하이 팬더즈 팬 맞습니다!”
* * *
‘저렙보다는 고렙이 유리한 규칙인데 말이지.’
투기장 리그 규칙을 본 태현은 그렇게 판단했다.
평균 레벨에 맞춰 저렙은 버프를 받고 고렙은 너프를 받는다지만 기본적으로 랭커들은 레벨 1마다 스탯 5만 딱딱 올릴 정도로 호락호락한 플레이어들이 아니었다.
스탯을 올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하는 게 그들!
당연히 레벨이 높아질수록 스탯 올리는 양도 많아질 테니, 평균 레벨에 맞춰 너프를 좀 받는다 하더라도 이득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계산해 봐도 레벨 1인 플레이어 스탯 총합이 5고, 레벨 3인 플레이어 스탯 총합이 15라면….
레벨 2로 평균 맞추면 7.5 대 10.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하지는 않겠지만, 레벨 높으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규칙에 불만은 없었다. 애초에 레벨이 높다는 건 그만큼 잘 키웠다는 거니까.
잘 키운 놈이 강한 건 당연하지 않나?
문제는 그런 놈들과 어떻게 싸우느냐였다.
‘케인이나 최상윤은 어지간한 랭커들과 비교해도 레벨이나 스탯이 밀리지는 않을 테지만, 이다비가 걱정이군. 스킬과 직업으로 상쇄가 가능했으면 좋겠는데….’
태현은 무심코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자기 스탯!
다른 랭커들 스탯이 높을 것만 걱정하다 보니, 자기가 이 게임에서 버프를 받는 입장이라는 걸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도 레벨 차이를 <아키서스의 변덕> 스킬과 다른 퀘스트로 올린 스탯들로 커버하는 태현이었다.
힘, 민첩, 체력, 지혜를 전부 천 넘긴 괴물!
현재 레벨 182에, 힘 스탯 1090, 민첩 스탯 1100, 체력 1230, 지혜 1185, 행운이 6890!
보통 스탯 1개나 2개를 중점적으로 키우는 랭커들은 중점 스탯이 2천을 넘어가니 각각 비교하면 밀리긴 했지만, 총합을 보면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언제나 레벨업을 방해하는 압도적인 행운 스탯까지.
태현이 다른 랭커들이 만전의 상태로 나온다고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다른 랭커들이 태현을 걱정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