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967화 (967/1,826)

§ 나는 될놈이다 967화

한 번 놓친 퀘스트는 돌아오지 않는다!

판온의 유명한 격언이었다.

퀘스트는 타이밍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 1초 차이만으로도 퀘스트를 받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저렇게 뻥뻥 차버리다니!

“가능성이 0은 아닌 거 같은데….”

“진… 진짜?”

“애초에 그렇게 날로 먹을 수 있었다는 거 자체가….”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의외로 케인은 4왕자한테서 평가가 좋은 것 같았다.

대체 왜?

‘아무리 봐도 귀족들한테 먹힐 놈은 아닌데?’

일단 화술 스킬이 낮았다.

명성이야 태현 따라다니면서 꽤 높게 쌓은 편이었지만, 그만큼 악명도 꽤 쌓인 편이었다.

아키서스의 노예라는 직업도 별로 호감 가는 직업은 아니었고….

귀족들 상대하기 좋은 칭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귀족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게 케인!

그런데도 저렇게 4왕자와 사이가 좋다니.

가끔 이런 경우가 있었다.

플레이어의 스탯, 직업, 칭호, 기타 등등 모든 게 NPC와 잘 맞는 것이다.

이른바 짚신도 짝이 있다!

‘확실해. 케인 녀석. 이런 부분에서는 운이 좋군.’

남들은 귀족 눈에 들기 위해 온갖 퀘스트를 해다 바치고 각종 희귀 아이템을 구해 올려도 친해지기 힘들어하고 있는데, 거의 날로 먹는 수준으로 빠르게 친해진 케인!

그렇다면 한 번 놓친 퀘스트도 다시 받을 수 있을지 몰랐다.

“4왕자가 생각보다 좀 만만하다는 거지.”

“?!”

에랑스 왕국의 왕자들이 많은데도 왜 4왕자 혼자 마계 선봉 퀘스트에 참가했겠는가.

원래라면 절대 참가하지 않을 위험할 퀘스트!

그만큼 4왕자의 처지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위의 다른 왕자들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호위해 주는 기사도 적고 말이지.’

“만만하다는 게 무슨 소리야?”

“4왕자 상황이 별로 안 좋은데 도움받을 곳도 별로 없잖아. 그러니까 너한테 영지 제안도 했겠지.”

“오… 그러면 앞으로도…?”

“또 문제가 생기면 영지고 뭐고 제안하면서 매달리지 않을까?”

“!”

케인은 매우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고 태현은 어이없어했다.

‘이 자식은 그 정도 퀘스트면 난이도가 얼마나 높을지 예상을 못 하는 건가?’

보상이 높을수록 퀘스트의 난이도가 올라간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즉 방금 케인이 발로 찬 기회는 정말 어마어마한 기회였다는 것!

그냥 요새에 남는 것만으로 영지 하나 받을 수 있는 퀘스트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말하지 말아야지.’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또 말해줬다가는 시무룩해질 테니까!

태현은 케인이 좋아하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 게다가 영지를 발로 차고 여기까지 온 것도 꽤나 감동적이었고….

‘아니 그래도 그걸 차냐?’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밖의 상황이 어떻디?”

“어우, 장난 아니더라. 랭커들은 숨죽이고 있고….”

푸르네우스와 아다드는 박 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둘 다 악마 공작이니만큼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애꿎은 주변만 박살 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추운 수정 영역.

푸르네우스가 권능을 발휘한 곳들은 더욱더 얼어붙어 아예 접근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아다드도 질 수 없다는 듯이 거칠게 맞섰다.

망치를 휘둘러 닥치는 대로 박살을 내니, 끝도 보이지 않는 절벽이 몇 개는 생겨났다.

둘이 맞붙은 곳은 한동안 악마들도 꺼릴 장소가 될 것이다.

“푸르네우스가 밀리더라.”

“흠. 그 정도는 예상했지.”

아다드는 쌩쌩한 데다가 부하들까지 데리고 온 상태였다.

그에 비해 푸르네우스는 기습을 당한 데다가 부하까지 전부 잃어버린 상태.

여기가 푸르네우스의 영역이고, 정령들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잘 싸우고 있다는 게 더 대단하군. 아다드가 직접 푸르네우스를 치려고 데리고 온 부하들까지 상대해야 할 텐데. 푸르네우스가 아다드보다 강한가?”

“어? 아니야. 아다드 부하들은 안 싸우고 있어.”

“왜?”

“역병이랑 독에 걸렸던데.”

“…….”

그랬다.

영역에 퍼진 역병과 독!

푸르네우스나 아다드는 레벨로 씹어 먹는다지만 다른 악마들은 아니었다. 오자마자 역병과 독에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이다.

랄그갈의 사악한 맹독은 정말로 사악해, 아다드의 다른 부하들도 중독시킬 정도였다.

아다드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랄그갈이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해독을 바로 할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역병까지!

결국 부하들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아까 계속 스킬이 오르더라….’

추가로 역병과 독에 걸려대니 당연히 오르는 스킬 경험치!

“그러면 랭커들도 다 불러오자. 슬슬 다 끝나가니까.”

어쨌든 아다드한테는 고마울 뿐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어주다니.

아다드가 아니었다면 푸르네우스의 성을 개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마우니까 나중에 감사 인사라도 전하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럴까?’

아다드가 들었다면 눈물을 흘렸을 대화였다.

* * *

“그런데 고블린들.”

“예! 폐하!”

성의 상황을 점검하던 태현은 고블린들을 불렀다. 개조가 막바지에 도달했기에 고블린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현재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성>의 개조가 90% 이상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발사시킬 경우 폭발 확률이…]

[냉기 정령들을 성의 정령으로 두고 있습니다! 각종 운영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

[……]

“내가 지금 든 생각인데… 원래 계획은 이 성을 띄워서 가져가려고 했던 거잖나?”

“예! 맞습니다.”

성 옆에 다리를 달아서 걷는 식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너무 느렸다.

성 도둑질에는 스피드가 생명!

그렇기에 고블린들은 성 옆에 거대한 부스터들을 다닥다닥 붙여 성 자체를 공중에 띄울 생각이었다.

개조가 끝나면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성>은 <아키서스의 하늘성>이 될 것!

“…그런데 여기는 마계잖아. 공중에 띄운다고 해도 갈 곳이 마땅치 않지 않나?”

다른 공작의 영역으로 도망치면 ‘아, 예 어서 오십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아키서스 새끼야!’ 같은 반응이 돌아올 것이고.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영역으로 도망치면 푸르네우스가 미치지 않는 한 계속 쫓아올 것이고….

중앙 대륙으로 도망치지 않는 한 답이 없어 보였다.

“후후. 폐하. 저희가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봤는지 아십니까?”

“한 번 해봤잖아.”

“다 방법이 있습니다.”

고블린들은 태현의 말은 무시하고 재빨리 자기 할 말들을 했다.

“뭐길래?”

쿵-

고블린들은 짐에서 갖고 온 거대한 장치를 꺼냈다. 덜덜거리면서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는 장치였다.

[카르바노그가 저거 뭔가 불길하다고 질색합니다.]

‘나도 그래.’

[<전설의 고블린 특제 이송 장치>를 발견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현재 기계공학 스킬이 부족합니다. 장치 이용에 페널티를 받습니다.]

[……]

“!!!”

최고급 기계공학 스킬이 페널티를 받을 정도라면, 저 장치는 정말 어마어마한 유물이었다.

괜히 이름에 ‘전설’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던 것!

‘솔직히 고블린 놈들이 그냥 폼나라고 전설 붙인 줄 알았는데!’

[카르바노그도 사실 그렇게 생각했다고 동의합니다!]

다른 아이템에 ‘전설’, ‘고대의’ 같은 키워드가 들어가 있으면 무조건 대박이었지만, 고블린 관련 아이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무슨 이름이 들어갔든 간에 성능을 봐야 한다!

하지만 지금 메시지창을 보니 정말 대단한 아이템이긴 한 모양이었다.

“이건 저희 고블린들 사이에 대대로 내려온 장치입니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위대한 아이템이지요.”

“그런 걸 나를 위해서… 아니, 잠깐.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건 좀….”

그런 걸 날 위해서 쓰다니 감동이야→(X).

그런 위험한 걸 나한테 쓴다고?→(O).

“왜 써본 적이 없지? 탈출할 때 쓴 거 아냐?”

“저희는 그냥 사막을 가로질러 탈출한 다음 지하로 숨으니까 못 찾아오던데요?”

“…….”

마계와 사막을 비교하면 마계가 훨씬 탈출 난이도가 힘든 것!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 이 아이템은 정말 대단하고 믿음직스러운 아이템이니 말입니다.”

“기계공학 하면서 그런 말 해봤자….”

<전설의 고블린 특제 이송 장치>는 심플하게 텔레포트 효과가 있는 아이템이었다.

심지어 성 같은 거대한 규모도 커버 가능한 강력함!

보통 텔레포트 마법이나 차원문 마법은 거리가 좁고 범위도 한두 명 정도가 대부분인 걸 생각해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아이템이긴 했다.

‘…고블린 놈들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차라리 대마법사가 만든 차원문이라고 하면 마음이 좀 나았을 텐데….

전설의 고블린 특제 이송 장치:

내구력 10/100.

기계공학의 정수를 담아 만들어진 공간 이동 장치다. 사용할 경우 사용자가 원하는 대륙의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다만 장치가 불안정한 탓에 오작동이 일어날 수 있다.

‘설명도 예상대로고.’

[‘다만 장치가 불안정한 탓에 오작동이 일어날 수 있다=오작동이 분명히 일어난다’라고 카르바노그가 설명해 줍니다.]

‘말 안 해줘도 알거든.’

태현도 기계공학 익힌 시간이 얼마 만인데 이 정도는 당연히 이해했다.

‘오작동이면 최악이라고 해도 대륙의 어딘가겠지. 솔직히… 마계 탈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태현에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지금 아다드와 푸르네우스가 싸우는 틈을 타 성을 개조 완성하고 몰래 튀는 것.

이건 이 장치를 쓰지 않아도 되고, 훨씬 더 안전했다.

푸르네우스가 쫓아올 수야 있겠지만 그만큼 시간을 벌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당당하게 ‘충격과 공포다 악마 놈들아! 나 아키서스가 돌아왔다!’ 하고 선언한 다음 튀는 것.

선언하는 순간 악마들의 어그로란 어그로는 전부 다 쏠릴 테니 미친 듯이 위험하겠지만….

권능 퀘스트를 깰 수 있다는 보상이 있었다.

‘선언하는 순간 날아서 도망치는 건 무리겠지….’

태현도 마음 같아서는 날아서 도망치고 싶긴 했는데, 악마들이 그걸 그냥 두고 보고 있을 정도로 만만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러기에는 태현이 쌓은 원한이 너무 많았던 것!

‘퀘스트를 안 깰 수는 없다. 이번 기회에 무조건 깨야 해.’

안 그러면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었다.

태현은 힐끗 고블린들을 쳐다보았다. 고블린들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름 자기 부족들의 가보를 태현을 돕기 위해서 갖고 나온 고블린들!

‘…여기서 더 좋은 걸 갖고 왔어야 했다고 말하는 건 너무 양심 없는 짓이겠지.’

이렇게 탈출 방법을 구해준 게 어디냐!

좀 못 미덥고 걱정되긴 했지만 방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었다.

“고맙다. 써보도록 할게.”

“오오오…!”

“역시 폐하…!”

“믿고 있었습니다!”

[지하 연합 고블린 내 평판이 더 이상 오를 수가 없습니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의 충성심이…]

[……]

“드디어 써보는구나!”

“크흑. 한 번 써보고 싶었는데 다른 어르신들이 말려서 그때 쓰지 못했던 게 한이었는데 말이야!”

“후후. 폐하께서 납득해 주신 덕분에 이걸 쓸 수 있게 됐군그래. 앞으로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겠어!”

“어르신들은 이 좋은 장치를 왜 쓰지 못하게 하신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나이가 들면 겁이 많아져서 그래. 흥. 하지만 난 어르신들과 다르지. 큭큭큭. 이 장치를 그냥….”

고블린들의 대화를 듣던 태현은 매우 불길해졌다.

[카르바노그가 그냥 태현 혼자 <신이 만든 잊혀진 차원의 거울>로 튀면 안 되냐고 묻습니다.]

‘…장치 망가져서 작동 안 하면 그것도 고민해 볼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