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66화
[카르바노그가 꼭 남 엿 먹이는 데에만 쓸 필요는 없지 않냐고 말합니다.]
‘네가 그런 소리를 하니 좀….’
이제까지 같이 아키서스 해놓고 왜 이래?
[카르바노그가 시선을 피합니다.]
‘하지만 맞는 말이긴 하지.’
냉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건 공격용보다 다른 용도가 더 많았다.
영지의 날씨를 조절할 수 있다는 뜻!
쓸데없이 연교차가 커서 여름에는 사람을 찌고 겨울에는 얼리는 어느 나라와는 달리 매년 매 계절마다 쾌적한 삶 가능!
의외로 이런 게 판온에서 중요했다.
키울 수 있는 농작물과 희귀한 약초들도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농부들에게 영지 날씨는 상당히 중요한 것!
다행히 골짜기는 지형만 이상하지 날씨 자체는 좋은 편이었다. 버려진 땅도 많았고.
안 그러면 농부들이 와서 농사를 지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농부들만 날씨를 따지는 게 아니었다. 플레이어들도 날씨를 따졌다.
플레이어들도 사람인데 따뜻하거나 서늘한 곳을 좋아하지 굳이 푹푹 찌거나 으슬으슬하게 추운 곳에 자리 잡는 플레이어는 드물었던 것이다.
그리고 보통 그런 땅은 좀 여러모로 위험한 땅!
대륙 북쪽의 프로즈란드에서 영지 개척하는 플레이어는 없듯이, 사람들은 날씨 좋은 곳에 몰리게 되어 있었다.
‘예전에 대륙에 냉기가 휘몰아쳤을 때 이런 성 하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케인이 프로즈란드에 권능 찾으러 갔다가 뭘 잘못 건드린 덕분에 대륙에 몰아친 냉기!
그때 대륙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역병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심각한 문제였던 것이다.
뭘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얼어 죽었습니다! 얼어 죽었습니다!’만 뜨니….
그때 농부 플레이어들이 오죽 궁했으면 골짜기까지 왔겠는가.
아키서스 힘이라도 빌리려고!
[카르바노그가 자기가 도와준 것도 잊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고마워. 고마워. 그런데 아쉽긴 하네.’
대륙에 냉기가 휘몰아쳤을 때 이 성을 갖고 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보다 몇 배의 이득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카르바노그가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 그런 위기가 찾아오면 되지 않냐고 말합니다.]
‘고맙… 응?’
대답하던 태현은 멈칫했다.
훈훈한 말이었지만 잘 생각해 보니 섬뜩한 이야기였잖아?!
[냉기가 더욱더 심해집니다.]
[사디크의 권능이 사그라듭니다.]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디크 권능으로도 안 되나? 사디크 놈 쓸모없군.’
[사디크 놈 쓸모없다고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사디크가 들었다면 뒷목 잡을 소리!
이제까지 푸르네우스 영역에서 태현이 활약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다 사디크의 권능 덕분이었지만, 이 두 화신과 신은 양심 따윈 없었다.
“으음…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사디크 권능을 좀 더 얻으려 노력해 볼 걸 그랬나. 별 도움 안 돼서 관심 끄고 있었는데.”
[사디크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이 딱 맞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진짜 그런 속담이 있어?’
태현은 사디크가 살짝 불쌍해졌다.
‘그보다 카르바노그. 내가 <냉기의 핵>에 접근하면 다룰 수 있을까?’
[푸르네우스만큼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다룰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하긴. 나도 나름 마법 스킬은 고급 찍었고 각종 권능도 있긴 하니까….’
문제는 접근하는 것.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아키서스의 영혼관>!
사디크의 권능이 부족하다면 영혼관에서 빌려오면 됐다.
당장 <불의 마수>나 사디크 교단 성기사단장, 대주교는 태현보다 더 강력한 사디크의 권능을 갖고 있으리라!
‘불의 마수가 좋아 보이는데.’
딱 봐도 냉기 저항하기 좋아 보이는 모습!
계산을 마친 태현은 물러섰다.
지금 냉기의 핵을 무리해서 쓸 필요는 없었다. 저 아이템이 뭔지 파악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내가 갖고 튈 테니까 기회는 있겠지.’
태현은 요새에 있을 일행들을 불렀다.
이제 완성되는 대로 튈 시간!
* * *
“어….”
“그러니까 지금 저기를 뚫고 가야 하나?”
태현 일행들은 태현의 말을 듣고 기겁했다.
지금 자존심 강한 두 악마 공작들이 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있는데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아. 그렇겠네. 그럼 내가 성을 끌고… 아니다. 성을 그쪽으로 끌고 가는 건 위험하겠군.
태현은 멈칫했다. 푸르네우스가 괜히 보면 열심히 지은 요새가 날아가는 수가 있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그러면?
-조심해서 와야지. 케인. 믿는다.
-…….
케인은 태현의 귓속말을 받고 빠져나가려는 어이를 꽉 붙잡아야 했다.
정신줄 놓으면 안 돼!
“끄응… 끄응… 끄으응….”
신음하며 괴로워하는 케인. 그 모습에 요새의 플레이어들은 술렁거렸다.
“에랑스 왕국의 저주받은 흑기사 맞지? 왜 저러고 있는 걸까?”
“혹시 왕국 관련 퀘스트라도 진행되나? 가서 참가할 수 있냐고 물어볼까?”
“그거 좋은 생각이다. 공적치 포인트 쌓으면 비전 검술 스킬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정체불명의 흑기사, 케인의 거품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부푼 상태였다.
한번 퍼진 소문이 눈덩이처럼 굴러간 것!
그러거나 말거나 케인은 꾸역꾸역 계획을 짰다.
“쉐도우 엘프들 망토 빌리고… 랭커 놈들이 어디서 죽었더라….”
궁시렁대면서 성실하게 계획을 짜는 모습에 나머지 일행들은 감탄했다.
많이 컸구나, 케인!
사실 일행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악마들 사이를 뚫고 성으로 향할 수 있었다.
쉐도우 엘프들이 도와주는 데다가, 사디크의 권능을 가진 블랙 드래곤 흑흑이가 도와주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 두 개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벌써 요새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불길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악마 공작이 여기로 오면 어떡하냐??”
“여기서 빨리 튀어야 하는 거 아냐?? 여기서 멀지도 않은 것 같은데.”
“김태현이 잡아줄 줄 알았는데….”
“김태현이 만든 요새니까 무슨 생각이 있지 않을까?”
“그, 그렇겠지??”
물론 일행들은 그런 거 없다는 거 잘 알고 있었다.
태현도 사람인데 마계의 상황을 어떻게 다 하나하나 컨트롤할 수 있단 말인가.
상황이 꼬이면 그냥 튀어야 했다.
“후. 대충 다 준비한 것 같….”
“안 된다!”
케인의 발목을 붙잡은 건 4왕자였다.
안 그래도 마계에 와서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데 케인이 가버린다면 그는 누가 지켜준단 말인가.
“아니, 저기 왕국 기사들 있잖아!”
숫자가 적긴 했지만 왕국 기사들은 개개인이 고렙에 각종 비싼 장비로 무장한 강력한 NPC들이었다.
게다가 충성심까지!
케인보다 훨씬 나은 경호원이었다.
그러나 4왕자의 눈에는 케인이 훨씬 더 나아 보였다.
“저런 약한 놈들을 어떻게 믿으라고!”
“…….”
“…….”
뒤에 있던 기사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케인을 노려보았다.
[4왕자의 호위기사들의 친밀도가 떨어집니다.]
‘내가 뭘 했다고!?’
케인은 울컥했다.
야 4왕자가 잘못했지 내가 잘못했냐?!
그러나 이미 떨어진 친밀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케인은 기사들이 노려보는 걸 느끼며 4왕자를 설득했다.
“아니 이건 꼭 가야 한다니까.”
“안 된다니까! 다른 놈들만 보내라! 내 기사면 날 지켜야지!”
“넌 내 주군이란 놈이 날 이런 마계로 끌고 와놓고 뭐라는 거야!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이 자식아!”
케인은 4왕자의 멱살을 붙잡았다.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저, 저…!”
“저런 무도하고 포악하고 나쁜 놈!”
기사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4왕자는 케인한테 떨어지질 않았다.
거의 물귀신 수준!
“만약 없는 사이 악마들이 쳐들어오면 어떡할 거냐!”
“여기 있는 놈들하고 같이 싸우면 막을 수 있어!”
“퍽이나 그렇겠다!”
“큭….”
케인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은 전부 다 최정예에 가까운 플레이어들이었다.
마계에 올 정도면 최소 고렙 이상에 랭커들도 다수 포함!
각 길드들이 보낸 정예 파티들이 이렇게 있었는데도….
‘진짜 하나도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마계에서는 아무리 경험 많은 플레이어고 파티고 의미가 없었다.
전부 다 처음 겪는 일이었고 나타나는 시련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정예 파티가 무슨 초보자 파티처럼 쓸려나가는 곳이 여기!
“영지! 영지 줄 테니까 가지 말게!”
[에랑스 왕국 4왕자가 에랑스 왕국 영지를 제안합니다!]
[에랑스 왕국 영지를 받을 경우 에랑스 왕국 정식 귀족 작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주 자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지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할 경우 다른 귀족들의…]
[왕국의…]
[……]
[이는 어마어마한 영광이며 보상입니다!]
“어, 어, 어…??”
케인은 눈을 깜박였다.
영지가 이렇게 얻기 쉬운 거였나?
사디크의 마수나 국왕 암살 정도는 해줘야 간신히 얻을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너무 날로 먹는 보상이라 오히려 당황스럽다!
케인은 냉큼 ‘예! 감사히 받겠습니다!’라고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지금 영지 받겠다고 여기서 안 데리고 뻘짓하면 김태현이 날 죽이려고 하겠지…?’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
케인은 눈물을 삼키고 말했다.
“안… 안 돼!”
“어째서?!”
[4왕자가 커다란 충격을 받습니다!]
“나… 나는 그런 보상 때문에 결심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고!”
“!”
[4왕자의 호위기사들의 친밀도가 올라갑니다.]
[4왕자의 호위기사들 사이에서 평판이 올라갑니다.]
[에랑스 왕국 내 평판이…]
[4왕자의 친밀도가 올라갑…]
케인은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계속해서 말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멋지게 가자!
“내가 지금 가려는 건 악마 놈들을 막기 위해서 가는 거다. 4왕자! 내가 해야 할 임무 앞에서 영지 같은 보상은 중요하지 않아!”
“오오오…!”
[4왕자의 호위기사들의 친밀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4왕자의 호위기사들 사이에서 평판이 크게 올라갑니다!]
기사들의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을 골라 한 케인!
메시지창을 보고 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던진 말이었는데 기사들은 감동을 먹은 모양이었다.
심지어 4왕자까지 살짝 감동한 눈치였다.
세상에 영지를 마다하고 자기 일을 하러 가는 기사가 있다니!
기사도가 사라진 세상에 이런 훈훈한 이야기가 있을 줄이야.
“전하. 이렇게 된 이상 저 괴물… 아니, 저 기사를 보내주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기사에게는 기사의 일이 있습니다! 전하의 호위기사이니 전하께서 믿어주셔야 합니다.”
“크흑…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꼭 돌아와야 하네.”
“믿고 있으라고.”
그렇게 대답한 케인은 멈칫했다.
잠깐….
이대로 떠난 다음 다시 이 요새로 돌아와야 하나?
‘…다, 다들 같이 가주겠지?’
* * *
“아니, 이런 미련한 놈이 진짜!”
태현은 뒷목을 잡았다.
악마 공작들이 서로 세상을 불태우면서 싸우는 걸 피해 기껏 성에 도착한 태현 일행.
케인은 있었던 일을 설명했고….
태현은 뒷목을 잡았다.
“야! 그럴 땐 영지를 받아야지!!!”
“아, 아니. 지금은 영지보다 네가 맡긴 일을 열심히 한 걸 칭찬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케인은 매우 억울했다.
칭찬 받는 시간인 줄 알았는데?!
“미친놈아! 물어보기라도 해야지!”
“물어보면 욕먹을까 봐….”
“크으으윽…!”
태현은 이마를 짚었다.
판온에서 가장 쉬운 방법으로 영지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걸 제 발로 차다니!
“영지 얻을 수 있는 기회면 그걸 그냥 받아야지… 아이고….”
“나, 나중에 다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태현이 저렇게 끙끙 앓자 케인도 자기가 날린 기회가 얼마나 대단한 기회인지 느낌이 오는 모양이었다.
“…그러길 빌자.”
“받을 수 있다고 해줘!”
“몰라, 인마. 이미 떠난 기회인데 나보고 어떡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