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65화
아다드는 은은한 분노와 경멸을 담아서 말했다.
무슨 말을 하나 들어주려고 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정도의 헛소리!
‘역시 마법쟁이 놈이라 같잖은 수작을 부리는구나!’
뛰어난 전사인 아다드는 마법과 정령술에 몰두하는 푸르네우스를 경멸했다.
악마 공작이라면 무릇 수많은 악마들을 밑에 거느리고 거침없이 호령을 해야지, 배신당할까 봐 정령들만 부린다는 게 무슨 쪼잔한 짓거리란 말인가.
에다오르도 그랬다.
아무리 중앙 대륙을 점령하고 싶어도 그렇지 인간으로 위장해서 쪼잔한 짓거리를 하다니.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당당하게 힘으로…!’
불끈!
아다드가 무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걸 알아차린 푸르네우스가 긴장으로 몸을 굳혔다.
-아다드, 멍청한 놈아! 정신 차려라! 에다오르가 네놈을 이용한 거다!
-푸르네우스. 네놈은 몇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하나는 내 땅에 얼음 폭풍을 뿌린 것.
-그건 네놈이 먼저….
-헛소리하지 말고 닥쳐라!
아다드는 이해가 안 가는 말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자꾸 저놈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니 시간만 낭비되고 있었다.
-두 번째는 감히 에다오르 같은 놈과 내가 손을 잡았다고 한 것이다. 날 혼란에 빠뜨리려고 수작을 부린 모양인데 날 더 화나게 만들었을 뿐이다.
-아니 이런 멍청한 새끼가….
-세 번째가 가장 크다. 네놈은 감히 날….
쾅!
아다드는 망치를 휘둘렀다.
[아다드가 <종말의 망치>를 사용했습니다!]
[세상이 무너집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쾅!
그러자 주변의 수정으로 된 땅이 모조리 뒤집어지며 사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치 대마법사가 지진 마법을 연속으로 사용한 것 같은 위력!
아다드가 얼마나 분노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아키서스라고 모욕했다! 나와라, 푸르네우스! 네놈의 마법이 과연 네놈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을지 한번 보자!
그랬다.
아키서스 관련 모욕은 중대 문제!
안 그래도 횡설수설하던 놈이 아키서스까지 들먹이면서 모욕을 하자 아다드는 극도로 분노한 상태에 빠졌다.
사실, 아다드가 냉정하게 생각했다면 이상하게 여겼을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왜 푸르네우스가 하필이면 에다오르 이야기를 꺼냈을까? 에다오르와 아다드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된다는 걸 잘 알 텐데?
게다가 푸르네우스 근처에서 박살 나고 있는 악마들은 잘 살펴보면 에다오르의 군세에 소속된 악마들.
아다드가 냉정하게 생각해 봤으면 뭔가 좀 이상한 걸 눈치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푸르네우스는 말 한마디로 아다드를 빡치게 만들었다.
다른 욕은 참아도 아키서스 같다는 모욕은 참을 수 없다!
-들어라! 내 부하들아! 저 같잖은 마법사 놈을 찢어 죽여라!
-먼저 와서 역병과 독을 푼 놈이 내가 오냐오냐해주니까 아주 정신이 나갔구나! 그래, 어디 한번 덤벼봐라!
두 자존심 강한 악마 공작들의 대결!
푸르네우스는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바로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정령 흡수!
근처에서 폭주하고 있던 정령들이 푸르네우스에게 빨려 들어갔다.
정령사지만 정령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푸르네우스만이 할 수 있는 비술!
정령을 사용해 에너지를 회복하는 스킬이었다.
그걸 본 아다드가 사납게 외쳤다.
-놈을 막아!
그러나 여기는 푸르네우스의 땅. 아다드의 군세들은 움직임이 굼떴다.
그러는 사이 푸르네우스는 닥치는 대로 근처 정령들을 흡수해 힘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정령들의 분노가…]
[정령들의 분노가…]
이런 폭거는 정령들을 매우 빡치게 하는 짓거리였지만, 푸르네우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눈앞의 아다드!
-와라! 건방진 놈! 네놈을 얼려서 내 성에 박제해두겠다!
-내가 네 성을 한 조각 남기지도 않겠다!
* * *
[카르바노그가 구경하면 안 되냐고 묻습니다.]
‘미쳤니?’
그렇게 말했지만 태현도 솔직히 좀 궁금하긴 했다.
악마 공작들끼리 풀파워로 싸우면 어떻게 싸울까?
‘아. 싸움 끝났으니 방송 꺼야지.’
뚝-
-?????
-아니 김태현 님??? 김태현 님???
-형! 뭐하는 거야! 방송 꺼졌어!
-일부러 끈 거 같은데??
-김태현 님 폭탄 불매합니다 ㅡㅡ
-폭탄은 애초에 아무도 안 사!
-제발 방송 다시 켜줘! 제발!
태현은 별생각 없이 껐지만 잘 보고 있던 사람들은 단체로 절규했다.
한창 재밌게 보고 있는데!!
대체 그 뒤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다드와 푸르네우스는? 태현은? 퀘스트는??
지금 근처를 방송하는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대형 길드 파티들은 박살이 나서 다 도망갔고, 랭커들은 방송 켤 엄두도 못 내고 숨어 있었고….
방송을 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파워 워리어 길드 방송으로 몰려왔다.
평화롭게 <오늘의 괴식 요리>를 진행하고 있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왜?!”
“여기와도 태현 님 없는데??”
-김태현 방송 다시 키게 해줘!
-지금 김태현이 방송을 껐다고!
“그렇게 말해도 우리가 뭔….”
[화염검전문가 님이 골드를…]
[에릭 님이 골드를…]
[쑤닝 님이 골드를…]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후원!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었다.
“최….”
-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말에 다른 길드원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최선을 다해요?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 누가 언제 틀어준댔냐! 난 거짓말 안 했어!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
최선을 다하겠다!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다!
그것이 파워 워리어의 방식!
* * *
[아키서스의 영혼관 스킬이 끝납니다.]
[에다오르의 힘이 빠져나갑니다.]
‘시간 맞췄군.’
성에 돌아온 태현은 바로 작업부터 확인했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작업은 순조롭습니다, 폐하! 지금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괴력을 발휘했다.
아키서스의 키메라들이 도와준 덕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악마 공작의 성을 개조한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거기에다가 태현의 지휘와 기계공학 보너스까지 들어갔으니….
어마어마한 작업 속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속도로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전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칭호: 위대한 건축가를 얻었습니다.]
[대륙의 귀족들이 건설을 위해 당신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오오….’
[카르바노그가 설마 또 성을 먹튀하려는 생각은 아닐 거라며 걱정합니다.]
‘…조금 하긴 했어.’
물론 순수한 건설 퀘스트도 남는 거 많는 퀘스트였다.
귀족한테 받은 골드를 삥땅칠 수도 있었고 재료를 빼돌릴 수도 있었고….
하지만 한 번 성을 갖고 튈 계획을 세우자 멈출 수가 없었다.
다른 성들도 갖고 오고 싶다!
[대륙공적되고 싶냐고 카르바노그가 기겁합니다.]
‘알아. 참아야겠지.’
“그런데 정령들은 괜찮나?”
태현은 걱정되는 걸 물었다.
푸르네우스에게 타격을 입혀서 계약을 끊은 건 좋았지만, 그 탓에 근처 정령들이 폭주해서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성 안의 정령들이야 단단히 묶여 있고 영웅들이 감시하고 있었지만….
‘못 미더워!’
영웅들은 능력이 있는데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매우 드문 경우였다.
“예. 계약 풀렸다고 좋아하더군요. 폐하가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 진짜?”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정령들도 폭주할 줄 알았는데?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정령계에서의 평판이 크게 오릅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빙결공의 성에 묶인 냉기 정령들과 계약할 권한을 가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키서스에 대해 들었던 나쁜 소문들은 역시 악마들이 퍼뜨린 거였군요! 이 나쁜 악마들!
“…물론 그렇지!”
아키서스에 대한 모든 안 좋은 소문들은 다 악마들이 지어낸 거야!
[카르바노그가 어처구니없어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냉기 정령들은 극도로 기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키서스와 악마 공작을 비교해 보면 아키서스가 훨씬 나았던 것이다.
-저희와 계약해 주시면 저희가 이 성을 충성스럽게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너희 뭐 별문제 없었니?”
-무슨 문제죠?
“그, 계약을 끊으니까 다른 정령들은 폭주하던데….”
-그런…! 푸르네우스 이 나쁜 놈! 그놈 때문에…!
-저희는 성 안에 있어서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아키서스 님.
“성 안에?”
-예. 이 성은 강력한 힘으로 보호받고 있거든요. 최상층에 <냉기의 핵>이라는 강력한 마력원이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대마법이….
“…그걸 왜 지금 말하냐??”
-아, 아니. 저기 고블린들한테도 말했는데….
태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너희는 왜 아무 말도 안 했냐?”
“에이, 폐하. 마법 같은 쓰레기 스킬에 너무 관심 가지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기계공학 스킬이 있잖습니까.”
“…….”
[…….]
-…….
화신, 신, 정령 모두 입을 다물게 만드는 지하 연합 고블린들!
태현은 뒷목을 잡을 뻔했다.
“지금 당장 최상층으로 가자!”
괜히 푸르네우스를 건드릴까 봐 위는 얼씬도 안 했지만 저런 게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 성을 통째로 보호하고 있을 정도라면 어마어마한 마법 아이템!
‘<살라비안이 남긴 혼의 조각>이나 <흡혈성의 거대한 심장>처럼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마력을 뿜어내는 아이템이 분명하다!’
살라비안 교단은 저 혼의 조각으로 왕궁을 오염시켰고, 흡혈성은 저 심장으로 성을 통째로 굴러가게 만들었다.
강력한 마법성은 마법사 혼자서 굴리기 힘드니 이런 아이템이 필수적!
그런 아이템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태현은 호다닥 위로 향했다.
* * *
성의 최상층으로 가는 길은 놀랄 만큼 한산했다.
정령들을 다 데리고 나간 푸르네우스!
그걸 본 태현은 쯧쯧 혀를 찼다.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
아무리 자신만만해도 이렇게 방심하면 안 됐다. 태현이었다면 이 근처에 각종 함정과 경보 장치를 잔뜩 깔아놨을 것이다.
푸르네우스는 자신의 힘을 너무 믿었다.
설마 자기 영역에 몰래 들어와서, 저주와 정령들을 뚫고, 성 위로 올라가는 놈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건 예상하는 놈이 이상한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성의 최상층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고, 또 아무것도 없었다.
온갖 방들과 아이템들로 차 있던 아래층과는 정반대!
‘오히려 더 섬뜩한데.’
휘이이이이잉-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층.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냉기의 핵>이 있었다.
[<냉기의 핵>을 발견했습니다!]
[냉기의 근원을 응축한 이 결정체는 강력한 마력의 덩어리입니다.]
[마법 스킬이 부족해 <냉기의 핵>의 능력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마법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냉기의 핵-마탑 냉기 학파 퀘스트>
냉기의 핵은 모든 냉기 학파 마법사들에게 꿈과 같은 아이템….
‘미쳤냐?’
태현은 보지도 않고 퀘스트를 껐다. 냉기의 핵을 갖다 바치면 냉기 학파에서 아주 좋아해 줄 거라는 내용의 퀘스트였던 것이다.
이런 아이템을 그냥 퀘스트 깨려고 바친다고?
아까워서 피눈물이 날 짓이었다.
태현은 조심스럽게 냉기의 핵으로 다가갔다.
[<냉기의 핵>이 냉기를 내뿜습니다.]
[지독한 냉기가 당신의 몸을 휘감습니다.]
[신성 권능…]
[사디크의 화염…]
‘그랬군. 이 영역에 퍼진 냉기는 이 핵에서 나온 거였나.’
푸르네우스가 대체 뭔 마법으로 이 영역 전체에 냉기 저주를 퍼뜨렸나 했는데, 이런 비밀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걸 이용하면 냉기 저주를 강하게 만들수도, 약하게 만들수도 있다!
‘내가 조절 가능한가?’
만약 조절만 가능한다면 그것만큼 탐나는 것도 없었다.
성을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그 밑의 지역에 눈보라를 뿌린다면….
‘와. 정말 개짜증 나겠군.’
영지전이고 뭐고 남의 왕국 엿 먹이기에는 최적화된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