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61화
-놈이 탐낼 만한 게 있다!
“놈이?”
아키서스의 목 같은 거?
[카르바노그가 그거 정말 인기가 많겠다고 감탄합니다.]
-바로…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다!
이름만 들어도 솔깃한 아이템!
보통 아이템에 들어가는 이름은 그 아이템의 성능을 결정했다.
거인의 조잡한 장식품→쓰레기.
사디크의 불타는 갑옷→뭐 못 써줄 정도는 아닌 아이템.
아키서스의 검→쓸모는 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한 아이템.
악마왕의 지팡이→무려 악마왕이 들어간 아이템!
“그게 뭐지?”
솔깃한 태현은 바로 덥석 물었다. 그 모습에 포갈로는 순간 멈칫했다.
지금 내가 내 목숨 하나 살자고 너무 위험한 짓을 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푸르네우스는 악마이기라도 하지,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아키서스의 화신인데?
그런 놈한테 이걸 말해줘도 되나?
…포갈로는 그렇게 3초 고민하고 결론을 내렸다.
‘뭐 어때!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지!’
카르바노그도 감탄할 마음가짐!
악마들이 괜히 아키서스한테 맨날 당하는 게 아니었다.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는 아주 강력한 유물이다. 악마 공작들 중 가끔 자신의 영역에 만족하지 않고 마계 전체를 정복하려는 놈들이 있지.”
마계도 사람, 아니 악마 사는 곳이었다.
중앙 대륙도 왕국들끼리 땅을 늘리기 위해 싸운다면, 가끔 악마 공작들끼리도 영역을 늘리기 위해 싸웠다.
그런 악마 공작들 중 정말 ‘어? 이러다가 마계 통일하겠다?’ 싶을 정도로 간 공작을 부르는 칭호가 바로 <악마왕>이었다.
물론 성공한 악마 공작은 없었다. 보통 그렇게까지 잘나가는 악마 공작이 있으면 다른 악마들이 전부 똘똘 뭉쳐 엿을 먹여주는 것이다.
잘나가는 한 놈 밟기는 마계의 전통이었다.
“아. 에슬라처럼?”
태현은 중앙 대륙의 미궁에 갇혀 있던 대악마 에슬라를 떠올렸다.
그러자 포갈로가 벌컥 화를 냈다.
-그 미친 악마 놈은 이야기하지 말라니까!
“지금 어디서 성질이냐? 분노 조절 안 하지?”
-앗. 죄, 죄송합니다. 그… 에슬라는 좀 많이 미친놈이니까… 이야기에서 제외해 주셨으면… 괜히 재수 없게 떠들다가 놈이 풀려나기라도 하면 어쩝니까.
에슬라의 별명이 괜히 <광기의 대악마>가 아니었다.
모든 악마들이 질색하는 이름!
사실 에슬라도 악마왕에 도전한 악마 공작이긴 했다.
여기까지는 놀라울 게 없었다.
힘 강해지면 그러는 게 악마였으니까.
하지만 그 방식이 문제였다.
-나 말고 전부 다 죽여 버리면 내가 악마왕이겠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초토화!
악마왕에 도전한 공작 중 가장 난폭한 도전자가 바로 에슬라였던 것이다.
‘허. 미궁에서 만났을 때는 멀쩡해 보였는데.’
태현의 이미지에서 에슬라는 좀 다른 이미지였다.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대악마!
만난 악마들 중 유일하게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게 에슬라였으니 당연했다.
[미궁에서 만 년 넘게 갇혀 있으면 분노 조절이 되는 거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하긴. 미쳐 있다가도 그렇게 오래 있으면 제정신이 돌아오겠군. 요즘 에슬라는 뭐하려나….’
포갈로는 아직도 에슬라가 갇혀 있다고 굳게 믿는 모양이었다.
가끔 진실은 모르는 게 좋은 법!
태현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지팡이는 에슬라의 지팡이인가?”
-아니다. 훨씬 더 이전에 악마왕에 도전했던 공작의 지팡이겠지. 마계에서도 너무 예전의 일이라 이름이 잊혀졌을 정도의.
“진짜 까마득하게 예전 일인데… 그게 그렇게 좋나?”
-물론이지! 다른 악마왕의 아이템과는 차원이 다른 아이템이다. 쥐는 순간 악마왕에 도전하게 만들어주는….
다른 악마왕의 장비로 알려진 것들과 달리,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자랑했다.
이전 악마왕의 힘과 권능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것이다.
쥐기만 하면 마계를 지배할 수 있다!
가끔 마계의 밑바닥에 있는 하급 악마가 그 지팡이를 들고 나타나 피바람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전설은 더더욱 부풀어졌다.
“그래서 쥔 놈은 어떻게 됐나?”
-행방불명이다.
“별로 끝이 좋은 아이템은 아닌가보군….”
[카르바노그가 대가 없이 힘을 주는 건 세상에 없다고 말합니다. 카르바노그를 제외하면 말입니다!]
‘그래그래. 고마워.’
하지만 확실히 카르바노그의 말이 맞았다. 그 지팡이가 얼마나 좋은 아이템인가는 별개로, 자격 없는 놈이 그걸 들고서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템 얻어도 장착은 좀 조심해야겠군. 괜히 한 번 죽을라.’
“어쨌든 푸르네우스가 그걸 탐낸다고? 진짜 맞아? 악마 공작쯤 되면 관심 없을지도 모르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악마 공작들이면 오히려 더 그걸 탐내지. 드는 순간 다른 놈들을 아작낼 수 있는데!
“그래. 뭐 그거까진 그렇다 쳐도… 놈이 지팡이를 원한다는 건 알겠는데 그걸 어떻게 할 생각이지?”
태현의 말에 포갈로는 주섬주섬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지팡이였다.
“설마…?”
-이건 가짜다.
“…하긴 그렇겠지.”
기대 안 했어!
[카르바노그는 살짝 기대한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 공을 들여서 만든 가짜지.
“이걸 왜 갖고 있… 잠깐.”
아키서스는 사기꾼을 알아본다고, 태현은 바로 깨달았다.
포갈로 이놈…!
이 지팡이로 사기 치고 다녔구나!
포갈로는 멋쩍은 듯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악마들이 이 지팡이에 관심이 좀 있어서… 가끔 쓸 데가 있단 말이지….
‘그렇군. 좋은 걸 배웠다.’
태현은 한 가지를 더 배웠다.
앞으로 악마한테 사기 칠 일이 생긴다면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를 들먹이면 되겠군!
-이 가짜 지팡이는 겉으로 보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든 물건이지. 이걸 들고 가면 푸르네우스도 멈칫할 수밖에 없을 거다.
포갈로의 계획은 간단했다.
악마왕의 지팡이를 들고 푸르네우스에게 다가간다→솔깃한 푸르네우스가 가까이 다가오라고 한다→방심한 그때 한 방 먹인다!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면 분명 강력한 공격이 있겠지?
포갈로도 아키서스의 화신에 대해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 완전히 부활한 거 아닌데!
물론 태현은 여기서 ‘아니? 없는데?’라고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물론이지.”
-그러면 됐다!
[카르바노그가 과연 잘될까 하고 의문을 가집니다.]
단단히 빡친 푸르네우스가 저 지팡이 본다고 분노를 조절하고 ‘음. 다가와봐라!’라고 말할까?
일단 창부터 던지면 어떡하지?
‘걱정 마. 카르바노그.’
[자신이 있는 거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아니. 어차피 포갈로가 할 거니까.’
[아…]
“그러면 포갈로. 가자.”
-응?
“네가 바쳐야지.”
-어, 난, 공격 수단이….
“걱정 마. 난 근처에서 은신하고 있을 테니까. 적당히 속여서 방심하게만 만들어.”
-…….
혹 떼려다 혹 붙인 꼴!
포갈로는 자기가 이걸 직접 들고 가서 푸르네우스를 속여야 한다는 말에 기겁했다.
‘아니지. 가다가 도망치거나 배신해도 되지 않나? 푸르네우스 앞에서 놈이 날 쫓아오지도 않을 테고….’
철컥-
-?
“아. 이거 별거 아니야. 내가 나랑 친한 악마들한테 주는 선물.”
<악마를 위한 봉인 폭탄 목걸이>!
중앙 대륙의 악마들도 자주 차고 다니는, 올해의 유행 아이템이었다.
-…….
“자. 포갈로. 할 수 있지?”
-할… 할 수 있다…!
* * *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얼음성> 개조가 50% 이상 완료되었습니다.]
[현재 추진 장치가 전부 완성된 상태입니다.]
[현재 밸런스 조절 장치가…]
[……]
고블린들은 점점 완성되어가는 성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름답다!
이게 공중으로 떠오르면 더더욱 아름답겠지?
“저번에는 황제, 이번에는 악마 공작… 다음에는 신의 성을 개조해서 튀어보자!”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걸?”
고블린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키서스의 키메라들과 함께 작업에 몰두했다.
종종 교단의 영웅들을 말리는 일도 같이 했다.
-허허… 내가 도와주겠네. 이 나사를 조이면 되나? 어? 부러지는데? 너무 약한 거 아닌가?
-인간! 제발 가만히 있어줘라! 부탁이다!!
성을 개조해서 공중에 띄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성의 지하와 하층, 외벽 정도였다.
상층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고블린들은 거기에 발도 디디지 않았었다.
성의 위층은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거처!
물론 지금은 자리를 비웠다지만, 혹시라도 거기 발을 디뎠다가 경보라도 울리면 일이 틀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고블린 중 하나가 궁금해져서 붙잡힌 냉기 정령한테 물었다.
“그런데 저기 위층에는 뭐가 있지? 혹시 폭탄이나 기계공학 아이템 없나?”
-그런 건 없습니다만… 푸르네우스는 마법의 달인이라 마법 관련 아이템만 있습니다.
“에이. 시시하기는.”
다른 플레이어들, 특히 마법사들이 들었다면 눈이 뒤집혔을 소리!
악마 공작의 마법 관련 아이템이라니. 만약 냉기 마법을 파는 법사였다면 목숨을 걸고 올라갔을 것이다.
비전 냉기 마법을 하나라도 건지면 대박!
그러나 고블린들에게 마법은 기계공학을 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요술일 뿐.
고블린들이 마법을 무시하자 냉기 정령들은 억울해져서 설명을 늘어놓았다.
-마법은 안 시시한데….
“시시해. 그 시간에 폭탄 하나 만들겠다.”
“마법서 만들 돈이면 골렘이 몇 개냐?”
-진짜 강한 마법 아이템인 <냉기의 핵>도 있다고요!
“그래. 그래. 우리도 진짜 강한 <푸른 금속> 있다. 아, 이제 <아키라늄>인가?”
냉기 정령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해!
* * *
-나와라! 잡놈들아!
“숨 쉬지 마! 숨 참아!”
“흡!”
랭커들은 푸른 수정들 사이에 흩어져 숨어 숨을 죽이고 있었다.
푸르네우스가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파티들을 학살하고 나자 이제 다른 랭커들에게도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필멸자의 기운이 느껴진다. 평생 숨을 수 있을 줄 아느냐?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지옥의 눈보라>를 시전합니다!]
[기온이 내려갑니다!]
‘헉.’
‘미친….’
주변에 미친 듯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푸르네우스가 영역에 걸었던 저주와 비슷한 계열의 광역 마법!
움직여서 도망치지 않으면 그대로 얼어 죽고, 그렇다고 움직이면 푸르네우스한테 들키고….
화르르륵!
-흑… 흑흑이 님…!
-흑흑이 님밖에 없습니다!
그들을 구해준 건 흑흑이였다.
쉐도우 엘프의 망토를 입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랭커들에게 불을 붙여주는 흑흑이!
-아, 아뜨! 아뜨거!
비록 뜨겁고 아프긴 했지만….
그러는 사이 삐죽삐죽 솟은 수정들 사이로 난 길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악마, 포갈로였다.
-?
푸르네우스가 그걸 발견하지 못할 리 없었다. 공중에서 아이스 드래곤을 정지시킨 다음 내려다보았다.
-아다드가 아주 별놈들을 다 데리고 왔구나. 오냐. 어디 한번….
-난 아다드가 보낸 악마가 아니다!
포갈로는 황급히 외쳤다.
-아니라고?
-그렇다! 난 네게 거래를 요청하러 왔다, 푸르네우스!
-어디서 별거 아닌 악마 놈이 나한테 거래를 요청하느냐? 정신이 나간 것이냐?
푸르네우스는 콧방귀를 끼며 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얼음으로 된 창이 생겨났다.
꿀꺽-
그 모습에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아 무서웠지만 포갈로는 용기를 냈다.
뒤에는 아키서스의 화신이 있다!
둘 중 누가 더 무서운가 하면….
아키서스가 조금 더 무서우니까!
-푸르네우스! 날 쏘면 이 <잊혀진 악마왕의 지팡이>는 잿더미가 될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