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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960화 (960/1,826)

§ 나는 될놈이다 960화

-하, 시치미를 떼다니. 하찮은 필멸자들답게 같잖은 짓거리를 하는구나!

“아니 진짜 누구….”

-더 이상 들어줄 가치가 없다! 죽어라!

빙결공 푸르네우스는 차가운 눈길로 플레이어들을 내려다보았다.

감히 아다드에게 고용된 더러운 필멸자들 주제에 그의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까지 늘어놓다니!

더 이상 살려둘 가치가 없는 놈들이었다.

“항… 항복! 항복합니다! 푸르네우스 님! 항복!”

[명성이 크게 내려갑니다!]

[악명이 올라갑니다.]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대륙의 교단들과의 친밀도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

머리가 좀 빠르게 돌아가는 플레이어들은 도망치는 걸 포기하고 항복했다.

영리한 선택이었다.

도망쳐봤자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항복하면 명성과 교단 관련으로 페널티를 좀 받기야 하겠지만, 일단 목숨은 건질 수 있었고….

무엇보다 푸르네우스 밑으로 들어가서 또 다른 퀘스트를 노릴 수도 있었다.

훌륭한 선택!

…이었지만 그건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른 법.

지금 푸르네우스는 매우 빡친 상태였다.

웬 침입자 놈들이 아다드와 손을 잡고 영역에 독과 역병을 풀어댔는데 안 빡칠 악마 공작이 어디 있겠는가.

원래라면 받아들여서 노예처럼 부렸을 필멸자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죽어라!

[푸르네우스가 극도로 분노한 상태입니다! 화술 스킬에 페널티를…]

[설득이 실패합니다!]

[항복이 거부당합니다!]

“어, 어, 어…!”

와장창!

그렇게 푸르네우스는 길드들을 차례대로 도륙해 나갔다.

-사이아의 방패! 위대한 가호!

“모두 방패 뒤로! 탱커가 버틴….”

-지옥 서리 폭풍!

콰콰콰콰콰콰!

레벨 천에 육박하는 악마 공작을 마계에서 상대하는 건 이런 것이었다.

천재지변!

뭐라도 좀 해보려고 버텼던 길드들이 싹 쓸려 나가자 그제야 대형 길드들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러다가 전멸한다!’

김태현이 마계에 온다고 욕심을 내서 쫓아왔던 그들이었다.

마계를 너무 우습게 봤다!

이제까지 만난 악마나 몬스터들도 다 강한 악마들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피해를 입으면서 잡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악마 공작은 그런 수준을 아득히 넘어 있었다.

“도망쳐…. 으헉!”

[로그아웃…]

그 날 마계에서는 대형 길드 길마 셋이 로그아웃당하고 주력 길드원들이 대거 박살 났다.

<황금사자>나 <자칼>, <선더스톰> 같은 에랑스 왕국의 대형 길드들의 세력이 절반 이상 날아간 것이다.

물론 며칠 지나면 다시 재접속할 수 있긴 했지만, 사망 페널티와 장비를 잃어버린 페널티는 매우 컸다.

한동안 길드 활동을 접고 회복에 전념해야 할 정도의 타격!

아이러니하게도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는 이 사태에서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야, 우리도 따라가야 하지 않나?

-…김태현하고 지금 괜히 싸움 만들지 말자. 괜히 퀘스트 끼어들었다가….

-조장님. 길드 동맹이 가만히 있는데요?

-…비겁한 녀석들! 김태현한테 아부를 하려는 속셈이군.

-앗, 그러면….

-우리도 가만히 있는다!

-…네….

서로 눈치를 보며 요새에 머물렀던 것!

길드 동맹은 이미 태현과 몇 차례 싸웠던 적이 있었고, 미다스 길드는 새로 태현한테 시비를 걸었던 적이 있었다.

둘 다 태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

안 그래도 오스턴 왕국에서 둘이 목숨 걸고 영지전을 벌이는 중인데 밑의 아탈리 왕국의 국왕인 태현과 시비를 붙고 싶진 않았다.

재수 없으면 그대로 양면에서 두들겨 맞는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눈치를 본 결과가 이렇게 돌아왔다.

* * *

“아… 안 돼! 안 돼에에에에!”

쑤닝은 비명을 질렀다.

현재 길드 동맹의 <마계 토벌 퀘스트> 참가 인원은 둘로 나뉜 상태였다.

하나는 에랑스 왕국.

쑤닝을 중심으로, 에랑스 국왕을 만나 ‘흠흠 제가 진짜 오스턴 왕국 국왕입니다. 둘로 나뉘지 않았냐고요? 아니, 제가 정통입니다!’라고 말한 다음 정식으로 퀘스트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일반 모험가 신분으로 참가하는 것과 국왕 신분으로 참가하는 건 그 위치가 달랐던 것이다.

쑤닝도 마음 같아서는 세계수 타고 마계로 가고 싶었다.

-김태현 코인은 언제나 성공한다!

-지금 마계에 가지 않는 고렙 이상 플레이어들이 바보인 이유 101가지.

-뭐? 아직도 중앙 대륙에서 놀고 있다고? 너 그러고도 네가 판온 플레이어야? 옆집 철수는 벌써 마계에서 퀘스트 깨고 있다더라!

…같은 글들이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었던 것이다.

마계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최면에 걸리게 만드는 분위기!

그러나 쑤닝은 국왕이어서 어쩔 수 없이 남아서 에랑스 국왕을 만나러 갔었다.

그게 쑤닝의 목숨을 구할 줄은 몰랐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쑤닝은 길드 동맹의 정예와 랭커들을 먼저 마계로 보냈다.

자기가 못 먹는다면 길드원이라도 먹어야 하니까!

악마들을 만나서 개고생을 했다지만 어떻게든 요새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보고를 받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지금 게시판에 올라오는 방송 수십 개가 쑤닝의 멘탈을 뒤흔들고 있었다.

<마계 대학살>

<대형 길드 개박살>

<대형 길드들 제삿날>

같은 선정적인 제목들!

악마 공작이 직접 나서서 대형 길드들을 갈아 마시고 있는 화끈한 영상들이었다.

한 번 창 휘두를 때마다 파티 하나가 쉭쉭 로그아웃되는 모습에 쑤닝은 절망했다.

“내가 미쳤었다! 절대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김태현 놈하고 엮이면 좋은 꼴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딱히 태현과 싸우는 게 아니라서 괜찮겠지 싶었는데 설마 이렇게 일이 흘러갈 줄이야!

“이 손해를 대체 어떻게… 당장 지금 마계에 간 놈들 빼면 미다스 길드하고 영지전을… 아니, 미다스 길도도 손해를 똑같이 봤으면….”

“길마님!”

“왜, 왜 그러냐?”

“…저희 길드원은 저기서 안 죽었습니다.”

“…뭐!?”

쑤닝은 깜짝 놀랐다. 안 죽었다니.

“설마 도망치는 데 성공한 거냐?”

“아뇨… 애초에 저기 안 갔습니다.”

“…왜…?”

“…김태현 눈치가 보여서 그냥 요새에서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

“…….”

묵직한 침묵!

쑤닝은 화를 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자식들…!’

길드 내에 김태현 공포증이 심각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쑤닝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에랑스 왕국 대형 길드들이 다 죽어 나가는 사이 길드 동맹은 버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안 그래도 에랑스 왕국 쪽 대형 길드들이 ‘요즘 길드 동맹 많이 약해졌다면서? 해볼 만할 거 같은데?’ 같은 느낌으로 견제해 오기 시작한 게 매우 거슬렸었는데….

“아. 미다스 길드도 죽었냐!?”

“아뇨. 걔네들도 그냥 요새에 있었다는데요.”

“…그래….”

* * *

[<조잡한 장식품>이 시간이 다 지나 부서집니다.]

“????”

“뭐여 시X?!”

-조잡한 장식품 판다! 오천 골드다!

-우리 너무 장사 잘한다! 우리 천재 거인이다!

아키서스 포병대 소속 거인들은 신이 나서 좌판을 들고 요새 안을 돌아다녔다.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상인의 즐거움!

이다비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게 ‘장사’라는 거죠.”

-아아! 이게 ‘장사’라는 건가!

[상인 스킬이…]

[명성이 오릅니다!]

[스킬 <아키서스의 골드 흡수>를 얻었습니다.]

장사는 장사.

이 거인들을 지도한 이다비에게 추가 보너스 경험치가 들어왔다.

거기에 추가 스킬까지!

‘…골드 흡수?!’

캐릭터를 키우면 키울수록 느끼는 놀라운 아키서스 교단의 스킬!

그러는 사이 요새 안 플레이어들은 기가 막혀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장식품 이거 망가지는 거였어?!”

-빨리 사라. 이용하고 싶으면. 한 시간 지나면 또 가격 올린다.

“크흑흑!”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 * *

[요새의 경제 상태가 증가합니다! 현재 경제 상태는 B-입니다.]

‘허. 진짜 신기하네.’

용용이를 타고 마계의 공중을 날아다니던 태현.

메시지창을 보고 놀라워했다.

대체 랭커나 고렙 놈들이 돈을 얼마나 물 쓰듯이 쓰는 거지?

-크흠! 아키서스의 화신이여.

“왜 부르냐, 포갈로?”

악마 포갈로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걸어왔다.

-이 드래곤이 마음껏 날아다니려면 나는 땅에 내려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던져달라고? 뭐 자살이 취미라면야….”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어떻게든 태현을 벗어나려 수를 쓰는 포갈로!

안 그래도 아키서스의 화신인 놈이, 악마 공작 상대로 뭔가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하니까 더 불안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태현은 당연히 포갈로 앞에서는 악마 공작 성을 개조해서 먹튀한다는 계획을 숨겼다.

굳이 악마 놈한테까지 알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포갈로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뚝딱거리던데… 고블린 놈들을 시켜서 함정을 만드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어이가 없었다.

악마 공작 상대로 함정 좀 만든다고 될 거 같냐? 심지어 자기 성인데?

-아키서스의 화신. 함정 같은 걸로는 안 된다. 멍청하기는.

“포갈로.”

-?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널 보면 어떻게 반응할 거 같냐?”

-…뭐… 별로 좋게 반응할 것 같지는 않다.

악마끼리 만나면 서로 친할 거 같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절대 아니었다.

이간질과 불화는 악마의 종특!

괜히 악마가 세계 지배를 못하겠는가. 서로 잘 될 거 같으면 발목 붙잡고 늘어지는 게 악마였다.

게다가 지금 푸르네우스는 상당히 열이 받아 있는 상태였으니 포갈로를 보면 ‘웬 같잖은 악마 놈이 내 땅에 있냐!’ 하면서 죽일 가능성이 99%였다.

‘화술 스킬 쓸 틈도 없겠지.’

“내가 지금 푸르네우스를 만나러 가는데….”

-?????????

포갈로는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네가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군.”

-미친놈아! 드래곤 돌려! 뭐하는 짓이야! 죽고 싶은 거냐!!

포갈로는 묶인 채로 발악했다. 아무리 아키서스의 화신이 무서워도 이건 아니었다.

이건 자살행위야!

“포갈로.”

-으아아악! 난 죽지 않아! 여기서 죽을 순 없단 말이다! 이 포갈로가….

“포갈로. 3초 안에 안 닥치면 널 폭탄으로 만들어서 푸르네우스한테 던져 버린다.”

[설득에 성공합니다!]

-아. 네. 무슨 일이십니까?

급격하게 분노 조절을 하고 공손해진 포갈로!

괜히 화술의 악마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서 도와보라고. 이렇게 된 이상 너도 살려면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냐?”

‘이런 아키서스 같은… 아니, 아키서스지 상대는. 이런 나쁜 놈!’

욕을 하려다가 포갈로는 다른 말로 바꿨다. 이미 상대에게는 욕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죽을 자리에 끌고 와놓고 ‘야 너도 살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봐라’라니.

지금 최선을 다하는 건 도망밖에 없어 보이는데??

-나… 나는 전투형 악마가 아니다.

“전투형 아니더라도 싸울 때는 싸워야지. 그냥 죽을래? 푸르네우스 약점을 토해내라고.”

[카르바노그가 뒤져서 안 나오면 뒤지게 만들자고 외칩니다!]

-아니 내가 모르는 걸 어떻게…!

이러다가 진짜 푸르네우스한테 바쳐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포갈로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3, 2, 1….”

-좋… 좋은 방법이 있다!

“널 폭탄으로 만드는 것보다 더?”

-…물론이다! 푸르네우스 놈도 솔깃해할 만한 이야기다!

포갈로는 진심을 담아 외쳤다. 진심 섞인 말에 태현도 한번 들어나 볼까 싶은 기분이 들었다.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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