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59화
냉기 정령은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고블린들의 열정적인 설명과….
“그러니까 이건 우리가 아스비안 제국에서 일할 때의 일인데 말이다….”
“내가 말할 테니까 저리 가줄래?”
“아니, 폐하. 정령도 이건 알아야 합니다!”
“알겠으니까 가서 작업이나 해.”
…태현의 설명에 이해를 한 모양이었다.
냉기 정령은 기겁을 했다.
-위험한 짓입니다, 화신님!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악마 공작이 절대로 쫓아올… 아. 생각해 보니 괜찮겠네요.
아키서스의 화신이면 뭐 해도 괜찮지 않나?
그걸로 쫓아올 적이라면 이미 쫓아왔을 것이고, 설사 쫓아온다 하더라도 아키서스의 화신이 그런 것에 떨겠는가?
“…납득해 줘서 고맙군.”
태현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납득해 준 건 좋은데 좀 이상한 방향으로 납득한 기분이었다.
[<악마의 마력으로 오염된 냉기 정령>이 당신의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냉기 정령들 사이에서 평판이 오릅니다!]
[정령계에서 당신의 평판이 오릅니다. 정령계에서 평판이 오를 경우 정령이 당신을 찾아올 수 있습니다.]
[현재 냉기 정령들에게서 평판이 좋은 상태입니다.]
-아, 아키서스의 화신과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위험한 짓이야!
-그러다가 너 정령계로 못 돌아가면 어쩌려고 그래!
동료가 태현과 이야기를 나누자, 다른 냉기 정령들은 자기 일인 것처럼 걱정해 줬다.
정령들은 기본적으로 순수하고 선량한 성격!
-아키서스의 화신은 우리를 공격하려고 온 게 아니래!
-그러면?
-악마들을 공격하려고 온 거래!
-아. 그건 말이 되는구나!
바로 납득하는 정령들!
생각해 보니 아키서스가 주로 팼던 건 악마와 천사들이었지 정령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는 그 푸르네우스의 영역인데….
-바보 같기는! 여기는 아키서스의 화신이라고!
-아앗! 그렇구나!
정령들은 바로 납득했다.
상대가 악마 공작 푸르네우스라고 해도, 여기에는 아키서스의 화신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싸움이 매우 할 만하게 느껴지고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화신님! 파이팅!
-사악한 악마 공작을 쓰러뜨리고 저희의 속박을 풀어주세요!
-혹시 지더라도 저희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말하지 마시고요!
“…….”
생각지도 못한 냉기 정령들의 응원!
떨떠름한 응원이긴 했지만, 태현은 그래도 혹시나 싶어 정령들을 보며 물었다.
“풀어줄 테니까 도와줄 수 있냐?”
-앗.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왜?”
-저희는 계약에 묶여 있어서 풀려날 경우 무조건 침입자를 막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지금 신성 스킬에 단단히 묶여 있어서 그렇지, 원래 정령들은 계약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
몸이 자유롭게 풀려 있다면 무조건 침입자를 막아야 하는 것!
결국 정령들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입으로 응원하기!
-거기 계단 밑에 비밀 창고 있습니다!
-그쪽에는 함정 있습니다!
“저 정령 놈들 조용히 시키면 안 됩니까?”
고블린들도 짜증을 낼 정도!
돕지도 않는 놈들이 묶인 채로 ‘아 작업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아 여기 처음 와 보셨나’ 같은 말을 해대니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만 참자. 정령들과 사이좋아서 나쁠 거 없으니까.”
하지만 태현은 고블린들을 달랬다.
지금은 푸르네우스의 계약에 묶여 있지만, 만약 풀려난다면 태현의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줄 이들!
게다가 판온에서 저렇게 순수하고 착한 종족들은 기본적으로 쓸모가 많았다.
펠마스나 아키서스 교단 NPC들처럼 음흉하고 욕심 많은 놈들과는 정반대!
게다가 냉기 정령들은 푸르네우스 밑에서 일하면서 주워들은 게 있을 테니, 마계에 관해서는 더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내친김에 태현은 정령들에게 다가갔다.
“혹시 푸르네우스와 한 계약을 파기시킬 방법은 없나?”
-화… 화신님…!
“?”
-혹시 푸르네우스에게 혹사당하고 있는 저희들이 걱정되어서 말씀해 주신 겁니까?
“…물론!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어디 있겠어?”
[화술 스킬이…]
[명성이 매우 높…]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냉기 정령들 사이에서 평판이 오릅니다!]
[……]
갑자기 표정이(얼굴은 없었지만) 환해지는 정령들!
-이렇게 선량하고 친절하실 줄이야…!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 아닐까?
-생각해 보니 정령계에 떠돌던 건 소문이었고, 아키서스의 화신을 욕하던 건 악마 공작이었잖아.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 같아!
[카르바노그가 아마 그 소문 정확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카르바노그의 외침은 정령들에게 닿지 않았다.
냉기 정령들에게 태현은 이미 그들을 구출해 주러 온 구원자로 보일 뿐!
-계약을 끊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오오. 그게 뭐지?”
쉽다길래 태현은 살짝 기대했다.
혹시 뭐 성에 있는 계약서 같은 걸 태운다거나?
그런 방법이면 좋겠다!
-푸르네우스를 죽이는 겁니다!
“…음!”
태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풀었다. 상대가 아키서스 교단 NPC나 악마였다면 바로 멱살부터 잡았을 것이다.
레벨 천 정도 되는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게 쉬운 방법이면 어려운 방법은 대체 뭐냐?
“그 방법이 정말 쉽다고 생각하나?”
-화, 화신님에게는 쉬운 방법 아닙니까…?
“…그거 말고는?”
-아! 푸르네우스에게 커다란 타격을 줘서 정령과의 연결을 끊게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푸르네우스는 강제로 불안정한 계약을 한 상태라 커다란 타격을 입으면 정령들과의 계약이 모두 깨져나갈 겁니다!
“으음!”
이것도 어렵잖아!
죽이는 것보다는 훨씬 쉽긴 했지만….
‘방심시킨 다음 한 대 세게 때리면 되려나? 폭딜이야 못 넣을 게 없긴 한데….’
태현만큼 ‘강한 한 방’에 어울리는 플레이어도 드물었다.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 악마 공작도 타격을 입을 만한 한 방을 준비할 수 있는 플레이어!
[카르바노그가 정령들이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정령들은 소문과 악마 공작에게서 들은 이야기만으로 태현을 판단하고 있었다.
소문만 들어보면 아키서스의 화신은 아침으로는 악마를 삼켜먹고 점심으로는 악마 공작을 먹은 뒤 저녁은 가볍게 드래곤을 삼켜먹는 자!
물론 태현은 아직 아키서스의 힘을 다 찾지도 못한 불완전한 화신이었다.
당연히 힘의 차이가 컸고, 악마 공작과의 정면 대결은 꿈에도 못 꾸는 상황이었다.
그게 심지어 마계라면 더더욱!
<정령들의 수호자-냉기 정령 종족 퀘스트>
정령계에 사는 정령들은 그 강력한 힘과 온순한 성격으로 수많은 존재들이 탐을 내는 존재였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소환해내는 소환사도 있다면, 비열한 방식으로 정령을 속이고 감금하는 소환사도 있는 법.
빙결공 푸르네우스는 정령을 소환한 다음 지옥 마력으로 정령을 오염시켜 굴복시켰다.
심지어 역병과 독이 돌아다니는 영역에 정령들을 돌아다니게 하기까지!
‘앗.’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못 본 척했다.
이건 푸르네우스 잘못이라고 하자!
…정령들의 불만은 한계에 달했다. 빙결공 푸르네우스와 정령의 계약을 파기시켜라! 그렇게 한다면 냉기 정령들은 당신의 충실한 종이 될 것이다.
보상: 냉기 정령들과의 계약. ?, ???, ????
‘역시 그랬나!’
냉기 정령들이 저렇게 부탁을 해올 때부터 짐작해 왔지만, 역시였다.
냉기 정령들과의 계약!
이건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합니다.]
‘나도 그런 기분이다.’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왜 악마들을 안 부리고 정령들만 부렸겠는가?
그만큼 편했기 때문이었다.
악마를 고용한다?
→매달 월급을 지불하고 4대 보험과 각종 복리후생을 챙겨줘야 하며 이런데도 가끔씩 반란을 일으키고 배신을 한다!
정령을 고용한다?
→아무것도 안 줘도 열심히 한다!
그만큼 정령은 계약 한 번 하고 나면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다.
‘사실 이 성을 꼭 성공적으로 가지고 갈 생각만 있는 건 아니었다.’
태현은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가 아니었다. 당연히 계획이 실패할 때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만약 성을 띄워서 먹튀하는 게 실패하면?
‘…성을 폭파시킬 생각이었지.’
푸르네우스가 들으면 심장마비 걸릴 생각!
자기가 못 가지면 남도 못 가지게 하는 게 바로 아키서스식이었다.
하지만 만약, 성을 성공적으로 갖고 튀는 데 성공한다면….
‘그다음부터는 관리를 고민해야 해.’
저 성을 계속 마계에 두는 건 미친 짓이었고, 어떻게든 대륙에 끌고 나온 다음 왕국 위에 띄워놓을 것이다.
‘아마 골짜기겠지.’
가장 방비가 튼튼하니까.
그러나 악마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계속 성을 되찾으려고 덤벼들 것이고, 성을 지킬 전력이 필요했다.
여기 냉기 정령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경비병으로는 완벽한 수준…!’
악마들이 쳐들어오더라도 어지간하면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공중에 있는 것부터가 1차 방벽인데 그 안에는 냉기 정령들까지!
거기에 고블린들을 시켜서 추가 방어까지 하고….
“후. 랭커들과 같이… 한 대 넣을 수밖에 없겠군.”
태현은 갖고 있던 밑천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만약 들키게 되더라도 한 대 때려 넣을 생각이었다.
‘<아키서스의 영혼관>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군. 새로 얻은 장비 <용의 파멸>도 껴야겠고, <드래곤 폭탄>도 만들어서 가야겠다. 랭커 중 한 명을 <살아 움직이는 폭탄>으로 만들고….’
푸르네우스는 이렇게 밑천을 퍼붓지 않고서는 태현도 승산이 희박했다.
-태현 님. 지금 괜찮나요?
-왜?
이다비에게 온 귓속말에 태현은 멈칫했다.
설마 요새가 공격받고 있나?
분명히 정체는 제대로 숨겼을 텐데?
-지금 여기 온 길드들이 푸르네우스 영역 가서 좀… 이상한 짓 하고 있는데 이거 괜찮은 거 맞나요?
-???
태현은 당황해서 방송을 켰다.
랭커들만 있을 때와 달리, 길드들은 다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망신 좀 당하더라도 길드 이름으로 하는 방송을 안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망신은 순간이고 조회수는 영원하다!
그리고 상황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으악! 으악! 으아아아악!
-푸… 푸르네우스가 온다!
[하찮은 필멸자들아. 감히 내 영역에 들어온 대가. 영혼으로 갚아라!]
[푸르네우스의 냉기 저주가 펼쳐집니다.]
[그대로 얼어붙습니다!]
분노한 푸르네우스는 무서웠다. 크기는 평범했지만, 푸른 수정으로 된 것 같은 몸에서는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아이스 드래곤을 타고 빠르게 영역을 돌며 얼음의 세례를 퍼붓는 빙결공!
불만을 가졌던 정령들도 두려워서 무릎을 꿇었다.
다른 영역에 있던 악마들도 푸르네우스가 직접 나섰다는 소문에 부리나케 도망쳤다.
랭커들을 돕던 쉐도우 엘프들도 재빨리 물러서서 도망칠 정도!
남은 건?
랭커들과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길드들!
“흩어져!”
“아, 아니. 왜 자꾸 흩어지기만 하는 거야?”
“그래야 같이 안 죽지!”
“싸워야지! 도망만 치면 어떻게 하려고!”
아직 악마 공작의 견적을 파악하지 못한 길마가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물론 랭커들 입장에서는 그 길마가 답답할 뿐이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건 너희들이야.”
“…뭐?”
“너희들보다 빠르기만 하면 되거든!”
말과 함께 랭커들은 사방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목숨을 건 술래잡기!
다른 놈보다 느리면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스릴이 넘쳤다.
“어, 어, 어….”
-거기 있었느냐!
푸르네우스가 손을 들어 올리자 그 끝에 얼음으로 된 창이 생겨났다.
그 창이 벼락처럼 날아오더니 폭발했다.
-빙결공의 얼음창!
콰지지지지직!
[로그아웃…]
[로그아웃…]
[……]
공격 한 번에 파티 하나를 쓸어버리는 위력!
푸르네우스는 아이스 드래곤 위에서 거만하게 내려다보았다.
-아다드에게 전해라! 감히 날 건드리고 싶었다면 직접 와야 할 거라고!
“?”
“그게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