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55화
[사디크의 화염이 몸을…]
[HP가 빠르게 감소합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지금 당장 불을 꺼야….”
-버티고 들어가라! 빨리!
흑흑이는 매섭게 명령했다. 랭커들은 그 명령에 기겁했다.
“불을 끄지 말라고!?”
-그 불을 끄면 냉기의 저주를 버티지 못한다!
“…!!!”
랭커들은 그제야 무슨 소리를 하는지 깨달았다.
독을 독으로 제압한다!
미친 소리 같지만 확실히 말은 됐다.
이 화염은 데미지가 강하고 장비를 손상시켰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는 있었으니까.
아예 몸을 멈추게 만들고 끝장내버리는 냉기 저주와는 달리 버틸 만한 저주였다.
그렇지만….
그 발상이 너무 무시무시하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자기 몸에 불 붙이고 던전을 깨려고 하냐!
-아, 빨리 들어가라고!
“저, 저놈의 펫이….”
“참아. 김태현 펫이잖아.”
흑흑이는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태현 일행에서는 맨날 궂은 일만 담당했었지만 밖에서는 나름 먹어주는 위치인 것이다.
랭커들은 치사하고 더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복 포션! 화염 내성 포션! 화상 치유 포션 다 꺼내! 들어간다!”
“크으윽… 이게 뭐야! 대체 이게 뭐냐고!”
불타는 두 랭커들이 탑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며, 흑흑이는 훈훈하게 미소 지었다.
-캬캬캬!
* * *
한 팀, 두 팀, 세 팀… 흑흑이는 차례대로 랭커들을 들여보냈다.
이미 귓속말로 소식을 들은 랭커들은 체념한 얼굴로 대기했다.
“붙여.”
-붙이지 말라고 해도 붙일 거다!
어느새 다가온 요한손-수아나 차례. 요한손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근데 그냥 횃불로 들고 가면 안 되나?”
“…!!!!”
-…!!!!
흑흑이는 깜짝 놀랐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
‘잠, 잠깐… 주인님이 화내실 텐데.’
기껏 열심히 불 붙이고 돌아다녔더니 돌아가서 ‘넌 머리가 없냐 이 사디크 같은 놈아!’란 말을 들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요한손의 말도 사실.
궁지에 몰린 흑흑이는 바로 변명을 생각해냈다.
-횃불에 붙이면 힘이 약해서 저주를 못 견딜수도 있다!
“그런가? 한번 실험해 보자.”
-…에잇!
화르륵!
“으아악! 횃불에 붙이라니까 대체 왜!”
* * *
[흑흑이의 경험치가 오릅니다.]
“?”
랭커들을 도와줘서 경험치가 오르나?
태현은 의아했지만 곧바로 다시 집중했다. 지금 이런 메시지창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미션 임파서블!
‘아. 이 인간들…!’
영웅들한테 스킬 받을 때는 좋았는데, 그 뒤로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젊은이. 아키서스 교단의 전사는 숨지 않는다!”
“아니 여기 공작 성인데 안 숨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냉기 정령을 피해 숨어 다녀야 하는데 ‘신의 전사는 숨지 않는다’면서 당당히 돌격하려는 성기사부터 시작해서….
“으윽. 오랫동안 쪼그려 있었더니 허리가… 더 이상 은신을 못 하겠….”
노화 저주로 인한 페널티에….
“어,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군.”
와장창!
기본적으로 은신 스킬과 거리가 멀어 자꾸 사고를 치는 영웅들!
괜히 공작한테 잡혀서 얼음 속에 갇힌 게 아니었다.
‘하긴 철두철미했다면 애초에 갇히질 않았겠지.’
[카르바노그가 동의합니다. 아키서스를 보고 좀 본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철두철미의 신, 아키서스!
행운의 신이 아니었다면 돌다리의 신이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덕분에 태현의 신경은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안쓰럽게 쳐다봅니다.]
“…선배님들!”
“왜 그런가, 젊은이들?”
“선배님들은 잠깐 여기서 쉬고 계시지요.”
“무슨 소리를! 교단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젊은 후배가 고생하는 동안 앉아 있을 수가 있겠나!”
‘아오. 한 대 치고 싶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난 태현이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영웅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최고급 화술 스킬을 찍은 태현에게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태현은 각종 논리를 펼쳐 영웅들을 공격했다.
여기는 적지고, 자기가 잘 알고, 혼자 다녀야 편하고, 위치를 파악한 다음 다시 돌아오겠다고 등등!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
화술 스킬이 이렇게 한 번에 크게 오를 줄이야!
얼마나 설득하기 힘든 상대였으면…!
“후. 혈압 올라서 쓰러지는 줄 알았네.”
태현은 중얼거리며 혼자 2층으로 올라갔다.
사람 열 받게 하는 게 케인보다 더 심하다!
-크오오오오오!
“!!”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들리는 섬뜩한 소리!
성의 위쪽으로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공기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소리였다.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뭐야!? 들켰나!?’
태현의 머릿속에 먼저 드는 건 밑의 층에 있는 교단의 영웅들!
그 인간들이라면 충분히 그사이에 사고를 칠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들어라… 내 노예들아! 수정탑에 침입자가 들어왔다! 감히 이 빙결공 푸르네우스를 얕보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영원히 얼음 속에 가둘 테니 놈들을 잡아 오도록 하여라!
그러자 1층과 2층에 있던 냉기 정령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사불란하게 성 밖으로 향하는 정령들!
태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드디어 랭커들이 밥값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랭커들은 태현 안에서 0.1 케인 정도로 평가가 올라갔다.
‘흑흑이가 해냈군.’
냉기 저주를 뚫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실제로 랭커들은 태현이 지시한 대로 톡톡하게 활약을 해주고 있었다.
* * *
“역병 폭탄 터뜨려!”
“이거 진짜 해독제 먹히는 거 맞겠지?”
빙결공의 성과 달리, 수정탑은 뚫기 쉬웠다.
푸르네우스는 자신의 힘을 너무 믿었다.
다른 악마 공작이 직접 오지 않는 한, 어떤 악마들도 이 냉기를 뚫고 침범하지 못하리라 자신한 것이다.
별다른 부하들 없이 정령들만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도 그 자신감의 표현!
악마 공작다운 자신감이었고, 실제로 그럴 만한 자신감이었다.
사디크의 화염이 아니었다면 태현 일행도 뚫지 못했을 테니까.
푸르네우스도 설마 사디크의 화염을 다룰 줄 아는 화신이 여기에 왔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몸에 불 붙이고 들어온 랭커들은 별다른 싸움 없이 탑의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랭커들은 불안해하면서도 역병 폭탄들을 터뜨리고 독을 풀었다.
“흡! 흡!(빨리 내려가자!)”
“흡흡흡!(알겠어!)”
콰콰쾅! 콰쾅!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영역의 높은 곳에서 역병 폭탄이 터지고 독이 뿌려졌다.
[기계공학 스킬이…]
[악명이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터뜨렸군!’
메시지창 덕분에 태현은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랭커들이 성공적으로 올라가서 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목적의 절반은 성공했다!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영역에 정체불명의 역병이 돌기 시작합니다.]
[마계의 악마 정령들이 푸르네우스에게 불만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그들은 계약을 끊고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영역에 <랄그갈의 사악한 맹독>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마계의 악마 정령들의 불만이 맹렬하게 타오릅니다!]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독의 정체를 깨닫고 극노합니다!]
-아다드! 네 이놈이 감히 나를 얕봐?!
악마 공작 아다드!
갈그랄과 랄그갈의 주인!
당연히 푸르네우스 입장에서는 랄그갈의 맹독이 풀린 이상 ‘아다드가 시켰구나!’라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푸르네우스의 진노로 인해 냉기의 저주가 점점 더 강해집니다!]
[사디크의 화염으로 저항하는 데 성공합니다.]
‘어. 이거 좀 위험한데.’
태현은 무사하겠지만 다른 랭커들은…?
* * *
“…….”
“여, 여기까진가?”
랭커들은 꽁꽁 굳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폭탄 터뜨리고 독 푼 다음 탑에서 탈출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푸르네우스가 빡쳤다는 메시지와 함께 냉기가 심해진 것이다.
몸에 붙은 화염도 꺼버릴 정도의 냉기!
피하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얼어붙어버렸다.
[냉기가 심해집니다…]
[HP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추위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라는 걸 랭커들은 여기서 처음 느꼈다.
대자연의 위력!
사실 대자연은 아니었지만….
-아니 진짜 이대로 끝이라고?
-…김태현 욕이나 하고 갈까?
솔깃한 제안!
랭커는 크게 외쳤다.
“김태현 개….”
-구해주러 왔다!
“…쩔어!”
-너 방금 주인님 욕하지 않았냐?
얼어죽기 직전의 랭커들을 도와준 건 흑흑이였다.
냉기가 심해지건 말건 사디크의 힘으로 폴폴 날아다니며 탑 곳곳에 갇힌 랭커들을 구출하기 시작!
태현이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의 활약을 펼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화르르르륵!
“으아아악! 살살 뿜어!”
-녹이려면 세게 뿜어야 녹는다! 멍청한 인간 놈들아!
흑흑이는 탑 꼭대기에서 얼어붙은 랭커들에게 불을 뿜고 뒤에 태웠다.
HP는 크게 깎였지만 목숨은 구한 랭커들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살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것이다.
“크흑! 우리 살았어!”
“이대로 죽는 줄 알았는데!”
-주인님 욕을 하면서 말이야.
“…….”
“저, 저기. 우리가 했던 건 비밀로….”
“뭐 원하는 거라도 있으시면 말해주시죠.”
공손해진 말투!
랭커들의 태도에 흑흑이는 흡족해졌다.
이래야지!
블랙 드래곤 앞에서는 이게 맞는 태도였다.
‘좀 더 엎드려라, 인간 놈들!’
* * *
정령들이 전부 밖으로 나가자 태현은 한결 더 움직이기 쉬워졌다.
이 정도면 영웅들도 데리고 다녀도 될 정도!
‘물론 데리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난이도를 몇 배로 올리는 존재들이었다.
성의 2층에는 정령들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얼어붙은 놈들이 더 있을지도 몰라.”
-푸르네우스는 적들을 전리품처럼 보관하는 악취미가 있으니 가능하다.
악마 포갈로도 동의했다.
“가능하면 악마들이면 좋겠군.”
-…….
그건 동의 못 하겠다!
포갈로는 속으로 아키서스를 욕했다. 인간이면 인간들을 구출할 생각을 해야지 이 와중에 악마 노예를 늘릴 생각을 하고 있나….
벌컥, 벌컥, 벌컥-
태현은 문을 열고 확인하고를 반복했다. 아무도 없는 성은 음산하고 조용한 느낌을 주었다.
괜히 긴장하게 되는 무언가!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비싼 예술품이나 보석은 얻었지만, 태현의 성에 차지는 않았다.
마계까지 와서 얻는 아이템은 좀 더 유니크하고 구하기 힘든 걸 원했던 것이다.
‘뭔가… 좀… 경매장에서 살 수 없는….’
[에너지를 잘 뿜어내는 악마 공작 아들 같은?]
‘바로 그거야, 카르바노그.’
벌컥-
[<신이 만든 잊혀진 차원의 거울>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해당 신의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처음 보는 거대한 거울!
그 거울 안에는 차원의 힘이 일렁이고 있었다. 어디로든 연결할 수 있는 힘이 느껴졌다.
‘근데….’
[?]
‘…어느 신이지?’
[…….]
하도 가진 신의 권능이 많아 어느 신의 거울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불가능!
‘혹시 아키서스인가?’
[카르바노그가 고개를 젓습니다. 푸르네우스가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아키서스의 권능이 담긴 보물을 이렇게 대놓고 보관할 리 없다고 말합니다.]
‘너무 말이 심한 거 아냐?’
요즘 자꾸 사실로 패려고 하는 카르바노그!
하지만 논리 자체는 맞았다.
아키서스의 권능이 담긴 보물이라면 절대 이렇게 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 깊숙한 곳에 놓고 ‘악마 출입 금지’ 같은 팻말을 붙여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