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52화
랭커들은 조용해졌다.
민망한 침묵!
-애들아. 뭐하냐? 왜 대답이 없어?
-아… 아니. 그게….
-지금 어, 99%는 다 됐는데 1%가 남아서 이게 발목이 묶이네.
-맞, 맞아. 나도 사실 다 했어. 문만 열고 들어가면 되는데 문이 안 열려서 그래.
-…….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랭커들의 목소리에서 상황이 느껴졌던 것이다.
‘조졌군….’
어떻게 된 게 성공한 놈들이 없냐!
-후. 솔직하게 말해라. 지금 뭐 어디든 간에 괜찮은 장소 찾은 놈?
-나!
-나도 찾았다.
-저도….
대부분의 랭커들이 목표를 찾는 데에는 성공한 상태.
사실 그것도 못하면 나가 죽어야 했다.
-아니, 찾은 놈들은 이렇게 많은데 지금… 설마 다 입구도 못 뚫고 있냐? 아니지? 뭐 다른 이유가 있는 거지?
-…….
-…….
정답!
태현은 경악했다.
이 자식들 랭커 맞아?!
-김… 김태현. 쪽팔리긴 한데 냉기 저주가 너무 강력했어. 악마 공작이 직접 건 저주다 보니까 우리가 뭘 할 수가 없더라고.
-진짜 가능한 방법 다 써봤는데 막혔다.
-넌 어떻게 뚫은 거야?
랭커들은 쪽팔려 하면서도 물었다.
대체 김태현은 이걸 어떻게 뚫은 걸까?
‘분명 무슨 사기 장비가 있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손도 못 쓴 저주를 손쉽게 뚫고 들어가다니… 어디서 구한 퀘스트 아이템이겠지!’
‘말해라, 김태현! 운 좋게 얻은 퀘스트 아이템으로 깼다고 말해!’
모든 랭커들이 태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가 정신 승리하게 도와줘!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정반대의 대답이었다.
-그냥 스킬로 버티고 들어왔는데.
-…….
-…….
-너희 화염 속성 스킬도 없냐?
-불 붙인다고 될 냉기가 아니던데…?
-화염이 그대로 얼어버리던데.
-세게 켰어야지. 쯧쯧.
-…???
저게 뭔 개소리!?
그게 불 좀 세게 붙인다고 해결될 일이었으면 랭커들이 이러고 있겠는가.
-후. 어쨌든 알겠다. 쓸모없는 너희들이 막혔다면 어쩔 수 없지… 쓸모없는 너희들은 그냥 알아서 목숨이나 챙기고 있어라. 내가 할 테니까.
작게 말하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쓸모없다는 말!
랭커들은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용용이가 입을 열었다.
-주인이여.
“?”
-흑흑이를 보내면 이 냉기를 돌파할 수 있지 않겠나?
“아. 그렇겠군.”
-아니 왜… 이러기냐?!
흑흑이는 기겁해서 용용이를 쳐다보았다.
태현은 몰라도 저런 허술해 보이는 랭커들과 같이 다니고 싶진 않았다.
요즘 사이가 좀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역시 아키서스의 신수!
-아키서스의 신수를 믿는 게 아니었어!
“…….”
-…….
-…아차.
흑흑이는 아차 싶었다.
아키서스의 화신과 신수 앞에서 너무 솔직하게 말한 것이다.
“사디크의 마수야.”
-주, 주인님. 제 이름은 흑흑이인데….
“그래. 가서 도와주고 와.”
-흑흑흑!
흑흑이는 울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태현이는 용용이에게 감탄했다.
“녀석. 제대로 복수를 하는군.”
-아니… 주인이여. 난 정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말한 거다….
“뭐? 흑흑이한테 복수하려고 말한 게 아니었어?!”
-…….
용용이는 생각했다.
골드 드래곤들이 그립다고!
아키서스의 화신과 블랙 드래곤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새하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용용이였다.
* * *
랭커들만 고생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태현만 믿고 마계로 온 플레이어들도 그에 못지않게 고생했다.
“김… 김태현 코인만 타면 된다던 길마 놈 어디 갔어….”
“아까 죽어서 로그아웃당함.”
“…….”
대부분의 길드 분위기가 초상집 분위기였다.
운이 나쁜 길드들은 고위 악마들이 있는 곳에 떨어져서 시작하자마자 즉사!
그나마 운이 좋은 길드들은 근처에 고위 악마들이 없는 곳에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일이 쉬워지지는 않았다.
사방에서 덤벼드는 몬스터들과 악마들을 상대하며 버텨야 했던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싸우고 잘 버텨도 한두 명씩 로그아웃당하니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젠장… 순간이동 스크롤도 안 써져!”
[마계의 지옥 마력으로 인해 순간이동 스크롤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진, 진짜 여기서 다 죽는 건가?”
“나 지금 페널티 쌓여 있어서 죽으면 안 된다고!”
“김태현 파티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대형 길드들은 김태현 파티만을 찾아 헤맸다.
딱히 찾는다고 목숨이 보장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태현이 봤다면 ‘내가 언제 목숨 보장해 준다고 했었나?’ 하며 당황했을 것이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기대하고 열심히 삽질 중이라니.
“앗, 저기 저 길드… <매드 이글즈>인데 어떻게 할까요? 공격할까요?”
“미쳤냐? 이 상황에서? 쟤네도 지금 너덜너덜한 거 같은데 같이 다니자고 해봐.”
평소 라이벌로 투닥거리던 길드들도 지금은 싸우지 못하고 서로 손을 잡았다.
여기서 싸우다가는 그냥 같이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협력을 해도 사이가 좋아지진 않았다.
머리를 맞댄 두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시작부터 으르렁거렸다.
“우리 길드에는 오차 적은 마계 지도가 있다.”
“흐, 흥. 우리 길드는 랭커 탐험가도 있다고.”
“그러면 그 탐험가한테 김태현 파티 좀 찾아달라고 해봐.”
“…그러는 너희는 김태현 파티 주변 지형도 다 방송으로 나왔으니까 거기 위치 좀 찾아봐.”
두 길드 다 서로 말도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이미 떠났겠지!
탐험가 랭커가 아니라 탐험가 랭커 할아버지여도 아무 정보 없는 곳에서 길을 찾을 순 없었다.
대륙이면 마을을 찾아 퀘스트라도 깼지, 마계는 마을을 찾아 들어가면 악마한테 공격부터 받는 곳.
지도도 마찬가지였다. 오차가 좀 적더라도 그거 가지고 어떻게 찾겠는가.
그렇게 모두가 절망하고 있을 무렵.
믿기 힘든 소식 하나가 게시판을 강타했다.
-지금 마계 원정 간 <성기사이즈킹> 길드가 길 찾았다!!
-뭐?! 어떻게 찾은 거야?!
-뭔 방법을 쓴 거지?
-몰라! 지금 생방송 중이야!
원정에 참가한 길드 중 하나가 놀랍게도 김태현 파티를 찾는 방법을 발표한 것이다.
* * *
성기사이즈킹 길드.
판온에서 흔히 보이는 적당한 길드 중 하나였다.
이름을 떨칠 정도의 대형 길드는 아니지만, 나름 인원이 많고 탄탄한 구성을 갖춘 길드.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 이름 정도.
많은 길드원들이 ‘제발 길마님 이름 좀 바꿔요!’라고 했지만 길마는 ‘지금 바꾸면 우리가 떳떳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거잖아!’ 하면서 버텼다.
이 길드는 이름답게 성기사들이 주축이 된 길드였고, 자연스럽게 파이토스 교단이 인기가 높았다.
성기사들의 신 파이토스!
성기사라면 파이토스!
이런 공식이 있었던 것이다. 데메르 교단이나 타이란 교단 성기사도 있었지만 별로 많진 않았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들도 은근히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탈리 왕국을 지배한 교단이 바로 아키서스 교단!
게다가 최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컸다.
성기사이즈킹 길드는 아탈리 왕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길드였으니 물들 수밖에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파이토스 교단이 훨씬 좋았지만 원래 사람은 이성적으로만 생각하는 생물이 아니었다.
유행에 휩쓸리는 것도 사람!
그리고 그 유행이 성기사이즈킹 길드를 구했다.
“우리 망한 거 아닙니까?”
“쉿. 아직 안 망했어. 길마님 울지도 모르니까 조용히 하자.”
“우리도 울고 싶은데… 저, 저기 악마다!”
“또 악마야?!”
“게다가 다섯 마리가 넘어…! 큰일 났다.”
“일단 전투준비부터 해! 버프 걸어!”
성기사인 만큼 전투 능력은 뛰어났지만, 마계는 차원이 다른 곳.
필드에서 만나는 악마와 싸울 때도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으면 위험한 곳이었다.
성기사들은 각자 스킬들을 걸기 시작했다.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급 아키서스를 위한 기도.
<하급 아키서스를 위한 기도>
아키서스를 위한 작은 기도를 올립니다. 가끔 예상치 못한 효과가 일어납니다.
성기사들의 기도 스킬로, 전체적인 능력을 올려주는 평범한 버프 스킬이었다.
가끔 랜덤으로 추가 효과가 들어갈 때가 있었지만 그걸 노리는 사람은 적었다.
[<하급 아키서스를 위한 기도>로 인해 전체 능력이 증가합니다.]
[<하급 아키서스를 위한 기도>가 추가 효과를 일으킵니다. 마계에 잠든 아키서스의 힘이 깨어납니다.]
“????”
[아키서스가 <악으로부터 은신> 스킬을 걸어줍니다.]
[아키서스가 <신의 예지> 스킬을 걸어줍니다.]
순식간에 파티는 은신이 걸렸다.
필드를 지나가는 악마들도 눈치 못 챌 정도로 완벽한 은신!
그리고 아키서스 성기사들 앞에는 빛으로 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마님! 길이 보입니다! 이 길만 따라가면 될 거예요!”
“내… 내가….”
“??”
“김태현 코인 뜬다고 했냐 안 했냐!!”
“…이 상황에서 그건 좀….”
* * *
-이게 말이 돼??
-다른 교단들은 뭐 없나? 왜 아키서스 교단만 그런 거지?
-흠. 이십 년 동안 교단만 공부해 온 제가 보기에 아키서스가 마계를 습격한 적이 있어서 그런 거 같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다른 교단 기도는 통한 적 없나?
-통한 적 없나 본데. 들리는 게 하나도 없으니.
게시판은 시끄러웠다.
지금 대형 길드들이 다 정예를 보낸 이상,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각 길드의 간부들은 지금 정보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반드시 살려서 데리고 와야 한다!
-진짜 아키서스 교단 말고 없나? 저런 기도 먹힌 게?
-아 없다니까. 이 사람 자꾸 도배하는데 차단 좀.
-도배 ㄴㄴ.
-아키서스 교단 말고 제발! 다른 교단이 분명 하나쯤 있을 텐….
[사용자가 신고 누적으로 인해 차단되었습니다.]
* * *
그 결과 마계에는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태현이 봤다면 ‘세상이 망할 징조인가?’ 하며 놀랐을 광경!
-아키서스 성기사, 아키서스 사제 급구!! 전리품 최우선권! 경험치 독점! 골드 독점! 파티 내 최고 VIP 보장!!!
-아키서스 교단 직업 갖고 있는 길드 구함. 최소 1만 골드 보장.
-판온에 명성이 자자한 대형 길드 <아이온>과 연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마계에 와 있는 길드들은 바로 연락 주십시오! 아키서스 교단 직업 필수.
모두가 게시판에서 아키서스 직업을 찾는 미친 현상!
운 좋게 아키서스 교단 직업을 갖고 있는 파티는 계속 기도를 난사해 길을 찾았다.
아키서스 교단 직업이 없는 파티들은 어떻게든 있는 파티에게 빌붙거나 뒤를 쫓으려고 애썼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요새에 남아 있던 태현 일행은 게시판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배 아파서 죽으려고 하는데?”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중에서는 아키서스 사제나 성기사로 전직한 길드원들이 꽤 많았던 것이다.
마계에 왔으면 장사 엄청나게 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치다니!
잠을 자도 못 잘 정도로 분할 게 분명했다.
“얘네들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거 맞지?”
“그런 거 같은데??”
방송을 보니, 운 좋게 길을 찾은 파티들이 오는 방향은 이 버려진 땅이 분명했다.
케인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여기 온다고 딱히 안전한 건 아니지 않나?”
“…그러게?”
여기가 안전하다는 이야기는 대체 어디서 퍼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