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51화
“말… 말도 안 돼!”
자기가 해놓고 더 놀라는 태현!
그 모습에 포갈로는 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이놈은 화신인데 왜 자기 권능을 저렇게 못 믿는 거지?’
보통 신의 화신이면 자기 권능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권능이라고 믿고 다녀야 하지 않나?
‘사디크… 생각보다 정말 괜찮은 신이었나?’
[카르바노그도 그러고 보니 사디크가 나름 강했던 신이었다고 말합니다.]
대륙에 신들이 있었을 무렵, 사디크는 악신들 중에서 나름 끗발 날리던 신이었다.
신들이 다 떠난 지금 남은 교단 NPC들이 말아먹어서 그렇지!
아니, 사실 사디크 교단 NPC들은 말아먹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나름 최선을 다했다.
아탈리 왕족을 사디크 교단으로 끌어들이고, 국왕 암살 계획을 펼치고, 불의 거인도 소환 준비하고, 골짜기에 이것저것 치밀하게 많이 차리고….
사디크 교단 입장에서는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수준!
만약 성공했다면 아탈리 왕국은 사디크 교단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암살부터 꼬이더니 토벌 퀘스트가 열려서 본거지가 날아가고….
그 뒤로는 눈물의 연속!
[카르바노그가 눈시울을 붉힙니다.]
‘?’
태현은 의아해했다. 카르바노그가 갑자기 왜 저러지? 눈에 뭐가 들어갔나?
[사디크의 화염이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얼음 봉인을 녹이기 시작합니다!]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얼음 봉인이 풀리는 것으로 힘이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주인이 눈치를 챌 경우 분노할 것입니다!]
“!”
[사디크의 화염이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힘을 태워버립니다.]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힘이 퍼져나가지 않습니다.]
‘사디크…!!’
[사디크! 사디크!]
감격의 연속인 태현과 카르바노그!
태현은 돌아가면 아키서스 신전 구석에 있는 조그만 사디크 신전에 뭐라도 좀 바치겠다고 마음먹었다.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얼음 봉인이 완전히 녹아내립니다!]
[갇혀진 영웅들을 구출해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퀘스트 <정체불명의 영웅들>을 완수했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헉.’
태현은 깜짝 놀랐다.
그냥 사디크의 화염으로 지지기만 했는데 레벨이 2가 오르다니.
세상에서 가장 쉬운 퀘스트!
그러나 생각해 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체불명의 영웅들> 퀘스트를 교단에서 받았으면 전설 등급이었겠군.’
몇백, 몇천 년 전에 실종된 영웅들을 찾아 마계에 가서 공작의 성 안으로 침투하라니.
랭커들도 퉷퉷하며 꺼릴 난이도의 퀘스트!
“으으… 이게 무슨….”
“풀려난 건가?”
봉인 안에 갇혀 있던 교단의 성기사들과 사제들. 그들은 아직 정신이 들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기대가 가득했다.
‘레벨이 500, 600은 되겠지?’
원래 교단 고위 NPC들은 믿음과 신뢰의 상징이었다.
성기사?
튼튼하고 공격력 강하고 힐도 해주고 버프도 걸어주는, NPC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존재!
고위 사제 같은 경우는 한 명이서 파티를 먹여 살리는 경우도 있었고….
플레이어들이 괜히 교단 고위 NPC들과 같이 퀘스트를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었다.
‘마계에 와서 공작한테 잡힐 정도라면, 레벨이 기본적으로 500은 넘길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교단의 NPC들이 착용하고 있는 장비도 엄청나게 강해 보였다.
[현재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낮아 장비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합…]
[현재 마법 스킬이 낮아 장비를…]
[교단 내 위치가 낮아 장비를…]
“!”
역시!
태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NPC들을 쳐다보았다. 성기사 중 한 명이 태현을 보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여러분들을 구하러 온,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자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인 김태현이라고 합니다.”
[짧은 시간 안에 요약하는 능력에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아탈리 왕국과 아키서스 교단 둘 다 말해 영웅들한테 한 몫 챙기려는 계획!
그걸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세우다니!
“오오… 고맙네.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
[???]
태현은 당황했지만 다시 한번 말했다.
“아탈리 왕국과 아키서스 교단에서 나온….”
“아… 그렇구만. 음. 그러면 난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인가?”
“…?!!!”
태현은 경악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설마 이 사람들…!
[최고급 화술 스킬로 상대방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성공합니다!]
[현재 교단의 영웅들은 저주 <기억 상실>에 빠져 있습니다.]
[현재 교단의 영웅들은 저주 <노쇠화>에 빠져 있습니다.]
[현재 교단의 영웅들은 저주 <관절염>에…]
어떤 영웅도 세월은 이겨갈 수 없는 법.
그건 푸르네우스의 봉인 안에 갇혀 있던 영웅들도 마찬가지였다.
“…….”
[카르바노그가 아무래도 잘못 뽑은 것 같다고 불안해합니다.]
기억은 잃고, 몸 상태는 별로고….
강한 적들로 우글거리는 마계에서는 별로 좋은 동료들은 아니었다.
태현은 오히려 납득했다.
‘하긴 이래야 보상이 그만큼 있겠지.’
공짜로 받으면 오히려 불안해하면서 의심하는 병에 걸린 태현!
“이보게. 청년.”
얼굴은 젊은 성기사가 다 늙어가는 말투로 말하니 위화감이 철철 넘쳤다.
“예?”
“난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인가?”
“어….”
다시 들어온 질문에 태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카르바노그가 설마 지금…]
“예!”
[!!!]
“그렇군. 난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였나!”
[네이바쿠 교단의 영웅을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그러면 나는? 나도 혹시 아키서스 교단 성기사였나?”
“예!”
[파이토스 교단의 영웅을…]
[……]
“나는….”
“예!”
타이란 교단, 파이토스 교단, 네이바쿠 교단 등 다양한 교단의 영웅들.
이들을 모조리 아키서스 교단으로 끌어들이는 태현!
[무시무시한 스카우트의 카르바노그가 경악합니다.]
대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카르바노그가 걱정하는 사이 태현은 모두 설득을 끝냈다.
“그랬구만. 우린 모두 아키서스 교단 출신이었구만.”
“그런데 왜 복장이 다르지?”
“아키서스 교단은 원래 좀 복장에 자유롭습니다.”
거지부터 도박꾼까지 다양한 복장을 추구하는 아키서스 교단!
“그렇군… 아키서스 교단… 흠… 이상하게 아키서스 교단이란 이름을 들으니 가슴이 뛰는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가 모시고 있던 신의 이름을 들어서 아니겠소? 껄껄껄!”
“하긴 그렇겠구만!”
[…….]
카르바노그는 못 봐주겠다는 듯이 얼굴을 가렸다.
‘일단 어디서 구할 수 없는 고급 인재들이라 저지르고 봤는데….’
[생각 안 하고 저지른 거냐고 카르바노그가 기겁합니다!]
‘일단 저지르고 후회해야지 뭐가 남는 법이야.’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 생각에 잠겼다.
원래 이 영웅들의 힘을 빌려 좀 더 수월하게 깽판을 치려고 했었다.
그런데….
‘솔직히 도움이 안 될 거 같은데.’
민첩하게 도망도 못 치고, 은신도 잘 못할 거 같고….
원래 성기사나 사제들이 은신 스킬과는 거리가 먼 법 아닌가.
‘차라리 나는 이 사람들 데리고 나가는 것에 집중하고 다른 랭커들한테 맡기는 게 나으려나?’
태현이 랭커들을 잘게 찢어서 움직이게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한 조가 묶이거나 실패하더라도 다른 조가 성공시키면 되니까!
지금 태현의 발이 묶였지만, 랭커들이 남아 있는 이상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랭커들이니까!
[카르바노그가 그들을 믿을 수 있냐며 의아해합니다.]
‘카르바노그. 일단 랭커들이거든? 좀 칠칠치 못해도 실력은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한두 팀 정도는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두세 팀은 성공하겠지.’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독 풀고 역병 폭탄 터뜨려서 난리 치기.
이것도 못하는 놈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태현은 잊고 있었다.
다른 랭커들은 사디크의 권능 같은 게 없었다는 것을.
사디크의 권능은 대체가 불가능한, 생각보다 사기적인 권능이었다.
원래 권능이란 게 다 그렇지만….
* * *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얼음성>의 힘이 당신을 묶습니다!]
[푸르네우스의 냉기가 침입자들을 파고듭니다!]
“미친! 뒤로 물러서!”
“냉기 보호 마법 쓴 거 맞아?!”
“스크롤 있는 거 다 찢었어!”
두 랭커는 탑의 입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악마 정령들을 피하는 것까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손쉽게 피한 다음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어마어마한 냉기가 그들을 덮친 것이다.
분명 냉기 관련 던전일 거라고 생각해서 각종 냉기 보호 마법과 스크롤, 포션까지 쓴 그들이었다.
[<상급 냉기 보호>가…]
[<뜨거운 피> 버프를…]
[화염의 가호…]
[……]
그런데도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냉기는 이 모든 버프와 스킬들을 찢어버리고 랭커들을 습격했다.
몬스터들이 막는 것도 아니고, 들어가는 길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단순히 발을 내딛는 순간 냉기가 덮쳐 HP를 깎아버리고 발을 묶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고 간단한 장애물이 이 정도로 극복하기 힘들 줄은…!’
처음에는 ‘우리가 누군데 이런 함정 같은 거에 발목 묶일 줄 아냐!’면서 각종 스킬과 아이템을 활용해 돌파해 보려고 한 랭커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기세가 꺾였다.
과연 마계는 마계구나!
대륙에 있을 때는 뭐든 간에 해결이 됐을 함정을 뚫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랭커들이 시도했을 때는 이동속도가 너무 느려져서 하마터면 그냥 죽을 뻔했다.
악마들은 마주치지도 않고 그냥 탑의 입구에서 동사라니!
<이번 주의 가장 웃긴 판온 순간들>에 나올 만한 치욕적인 죽음!
“헉헉헉!”
“야… 이, 이건 안 되겠다. 물러서자.”
“이 탑 안 들어가면 어떻게 하려고?”
“일단 물러선 다음 다른 놈들 하는 거 보자. 여긴 사람이 뚫을 만한 길이 아니다. 여기로 어떻게 들어가.”
다른 랭커들도 헤매고 있는 중이었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여기 엄청 중요한 탑 같은 거 아니냐?”
“솔직히 그건 아닌 듯.”
그들이 보기에도 수정 탑은 그냥 이 영역에 깔린 건축물 중 하나였다.
관측탑이나 경계용 정도겠지!
그런 하찮은 곳에 엄청난 방어가 되어 있을 리는 없었다.
즉….
이게 마계의 기본 방어라는 뜻이었다. 랭커들은 실력 차이를 실감했다.
대륙에 나온 악마들만 잡다 보니, 마계가 어느 정도의 땅인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마계!
“이런 탑도 이 정도 냉기로 보호되고 있으면… 어딜 노려야 하지? 노릴 곳이 없는데.”
“저기 얼음성 보이는데. 저기는 어때?”
“미쳤냐?! 탑도 돌파 못 하는데 저기 성은 어떻게 돌파하라고.”
“윽. 그건 그래.”
“저긴 김태현도 무리다. 아니, 김태현도 지금 탑 돌파 못 했을 거라고.”
랭커는 확신했다.
아무리 태현이라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었다.
이건 아직 플레이어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던전이다!
“에이… 김태현은 탑 돌파하지 않았을까? 저기 성은 무리더라도 탑 정도는….”
“무, 무리라니까.”
말을 꺼낸 랭커는 ‘듣고 보니 김태현이라면….’ 싶긴 했지만, 이미 말을 꺼냈기에 억지를 부렸다.
이런 건 자존심 싸움!
-야. 지금 탑 돌파한 놈 있냐?
-포기! 포기!
-냉기를 도저히 뚫을 수가 없어! 미친 거 아니냐?
-조용하고 악마들도 적어서 만만하게 봤는데, 완전 또라이 같은 곳이야!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그냥 다른 층을 치면 안 되냐? 이 층은 진짜 무리인 거 같은데.
한 번 싸우지도 않았는데 의욕을 잃게 만드는 무서운 곳!
-김태현. 넌 뭐하고 있냐? 역시 너도 발 묶였지?
-괜찮아. 우리도 다 그랬어!
태현이 말이 없자 랭커들은 잔뜩 기대에 차올랐다.
김태현! 너도 우리와 같이 실패했다고 해줘! 우리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해줘!
-성 안에 들어와서 너희들이 터뜨리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