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50화
뭐 모르는 악마여도 상관없었다.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지.
[카르바노그가 상대 악마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세상일이란 게 원래 싫어하는 사람도 만나야 하는 법이야.’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움직였다.
[서늘한 지옥의 냉기가 퍼져나갑니다. 이동 속도가 내려갑니다.]
[얼음 속성 공격에 취약해집니다.]
[마법 방어력이…]
[신성 권능으로 저항에 성공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순식간에 심해지는 냉기!
눈보라 같은 건 치지 않았지만 섬뜩한 수준의 냉기였다.
중앙 대륙의 프로즈란드를 떠올리게 하는 추위였지만, 훨씬 더 고요하고 섬뜩하다는 게 달랐다.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다는 게 사람을 더 무섭게 만들었다.
‘으음. 아쉽군.’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태현한테 궁합이 잘 맞는 건 멍청한 악마, 혹은 에다오르, 아니면 불의 속성을 다루는 악마였다.
사디크의 화염 권능을 가진 태현은 어지간한 화염 공격들은 다 면역을 받거나 흡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음 속성은 그럴 수 없었다.
‘하여간 사디크 놈은 능력도 없어요. 얼음 속성도 면역이 되어야 하지 않나?’
[카르바노그가 맞다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불쌍한 사디크!
아낌없이 베풀어줘도 욕을 먹는 신은 사디크밖에 없을 것이다.
‘얼음 속성이라면… 서로 위험하겠군.’
서로가 서로에게 상극.
조심하면서 싸워야 했다.
‘적 발견.’
[냉기 악마 정령이 길을 바꿉니다.]
파드드득-
정령과 악마가 섞인, 얼음으로 된 몸체를 가진 정령이 손을 휘두르자 근처에 난 푸른 광석들이 솟구치며 길이 바뀌었다.
‘악마들이 길을 매번 바꾸는 거군!’
어쩐지 길이 복잡하고 변화가 심해지는 기분이 든다 싶었는데, 계속 살아 움직이는 길이었다.
‘나는 괜찮아도 다른 랭커들이 걱정인데.’
태현은 이런 부분에서는 사기적인 스킬을 갖고 있었다.
어지간한 미로, 미궁 맵에는 면역인 스킬!
그러나 다른 랭커들 중에서는 이런 맵에 약한 사람들이 많았다.
길 찾는 건 보통 탐험가 직업이나 도적 직업이 해주는 거지, 전투 직업이 길까지 다 찾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혼자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는 태현이 이상한 놈!
‘하긴 뭐 이제 와서 어쩌겠어. 걔네들한테 맡겨야지.’
태현은 몸을 낮추고 은신한 상태로 움직였다. 굳이 여기 있는 악마들과 다 싸우면서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최대한 커다랗고… 악마가 많을 것 같은 성….’
뭐 터뜨렸을 때 가장 경험치 많이 오를 것 같은 곳!
곳곳에 보이는 푸른 수정 탑들을 지나 태현은 드디어 그럴듯한 성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얼음성>을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빙결공 푸르네우스가 뭐하는 악마지?”
-푸르네우스? 아. 그 차가운 놈인가. 다행이군.
“뭐가 다행이란 거냐?”
-에다오르나 아다드, 에슬라보다는 한 수 아래의 악마 공작이니까.
“흠. 그래?”
갑자기 매우 만만하게 느껴지는 빙결공 푸르네우스!
[카르바노그가 정신 차리라며 당신을 흔듭니다!]
‘아차. 순간 정신줄을 놓을 뻔했어.’
마계에서 악마 공작을 우습게 보는 건 미친 짓이었다.
에다오르나 아다드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그들이 대륙으로 소환되고, 또 함정에 빠뜨릴 수 있어서였다.
마계에서 쌩쌩한 악마 공작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평가는 됐고, 푸르네우스가 뭐하는 악마인지나 말해봐. 약점 위주로. 어디를 터뜨려야 가장 눈물을 흘릴까?”
-…그건 모르겠다. 푸르네우스는 그렇게 유명한 악마 공작이 아니란 말이다. 알려진 건… 특이하게 정령 계열 악마들을 부리는 것하고….
“아. 그건 아까 봤지.”
-적들을 얼음 속에 가둬서 영구히 박제한다는 소문이 있었던 거 같기도?
“…그건 좀 소름 돋는군. 뭐, 됐다. 나머지는 들어가서 알아보지 뭐.”
성 안에 들어갔다가 붙잡히면 박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태현이 그런 거에 겁먹기에는 이제까지 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타다다닥-
태현과 포갈로는 빠르게 달려 얼음성의 벽을 넘어 성문으로 들어갔다.
어슬렁거리는 악마 정령들은 둘을 눈치채지 못했다.
태현의 은신 스킬과, <신의 예지> 스킬도 강력했지만….
일단 경계가 너무 없었다.
‘…경계가 너무 없어서 오히려 불안한데.’
성을 지키는 병사가 없다는 건 무슨 의미겠는가.
성에 들어올 테면 들어와 봐라!
이런 의미 아니겠는가.
태현은 긴장한 얼굴로 안으로 향했다.
* * *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얼음성>의 힘이 당신을 묶습니다!]
[푸르네우스의 냉기가 침입자들을 파고듭니다!]
[신성 권능으로 저항합니다.]
[완전히 저항하는 데 실패합니다!]
-허, 허어, 허어억, 크허어억….
‘이거였군!’
안에 들어서자마자 맞이하는 어마어마한 냉기!
밖도 나름 추운 곳이었는데 안은 상상을 초월했다.
태현의 신성 권능까지 뚫어버리는 강력한 힘. 과연 마계에서 악마 공작의 힘은 차원이 달랐다.
[HP가 지속적으로 감소합니다!]
[이동 속도가…]
[마법 방어력이…]
[냉기에 취약…]
오랜만에 보는 상태 이상 메시지창.
태현은 옆을 쳐다보았다. 포갈로는 벌써 얼어붙어가고 있었다.
화신인 태현보다 훨씬 더 저항력이 약한 것이다.
어쨌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태현은 할 수 있는 걸 해보기로 했다.
‘이걸로 될지 모르겠군.’
-사디크의 화염 룬!
화르륵!
태현은 자신 몸에 화염 룬을 새겼다.
원래라면 미친 짓이었지만, 태현은 사디크의 화염에 데미지를 입지 않고 오히려 HP를 회복했다.
[사디크의 화염이 몸을 감쌉니다!]
[푸르네우스의 냉기가 한결 약해집니다!]
[신성 권능으로 저항에 성공합니다!]
‘!!’
태현은 놀랐다.
사디크…!
개똥도 쓸모가 있다더니!
[카르바노그가 개똥, 아니 사디크도 쓸 곳이 있다고 감탄합니다!]
-이, 이 힘은 대체?
포갈로는 깜짝 놀랐다. 아키서스가 이런 화염의 권능도 쓸 수 있었나?
“아키서스의 화염이지.”
-????
한결 여유를 찾은 태현은 성의 1층을 확인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홀에, 곳곳에 자리 잡은 수정 기둥. 그리고 양 옆에 붙어 있는 문들.
원래라면 바로 달려서 2층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을 찾아야 하겠지만….
-뭐하는 거냐?
“빈집털이.”
-겁, 겁이 없는 거냐!?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소리 내기 전에 잡으면 그만이지.”
태현은 간단하게 대답하고 문을 열기 시작했다.
초토화시키는 것도 초토화시키는 거지만, 그 전에 최대한 챙겨갈 건 챙겨가야지!
벌컥-
벌컥-
벌컥-
태현은 숙련된 도둑의 동작으로 문을 열고 확인하고 나왔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절도 있는 동작!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이 화신 놈은 대체 화신이 맞나? 하긴 아키서스 화신이니까….’
포갈로는 속으로 태현을 욕했다. 아무리 봐도 하는 짓이 화신이 아니었다.
촤르르륵-
태현은 닥치는 대로 아이템을 쓸어 넣었다.
‘토왕이를 빌려올 거 그랬나?’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
악마 공작의 성답게, 성에는 비싸고 값나가는 것들이 많았다.
‘가볍고 비싼 것 위주로 챙겨야지.’
수정과 얼음으로 된 조각상들도 갖고 나가면 비싸게 팔릴 테지만 태현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작고 비싸고 반짝이는 것들 먼저 챙긴다!
‘영지 운영비 몇 달은 되겠군.’
각종 옵션이 달린 보석 목걸이들과 그림들.
목걸이들은 태현이 차고 다니기에는 부족했지만 경매장에 올리면 몇백, 몇천 골드는 가뿐하게 채워줄 것이다.
그림들과 작은 조각상들은 영지에 놓거나 팔면 될 것이고….
빙결공 푸르네우스는 너무 자신의 힘을 과신하고 있었다.
가끔 사디크의 화염을 몸에 두르고 이 성 안을 돌아다닐 수 있는 침입자도 있게 마련!
“!!”
침착하고 정확하게 털던 태현이 발걸음을 멈췄다.
[봉인된 영웅들의 얼음상을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뭐야?’
한창 잘 털고 있던 와중 나타난 방!
방 안에는 보물 대신 얼음 기둥에 갇힌 사람들이 있었다.
“악마 공작이 가둔 놈들인가?”
-아마 그렇겠지.
[카르바노그가 저들이 누군지 모르겠냐고 묻습니다.]
‘?’
[대륙의 교단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어? 모르는 복장인데.’
[그건 옛날 복장이라 그렇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대륙 유명 교단들의 영웅들!
그 영웅들이 지금 여기 얼음 기둥에 갇혀 있었다.
교단 복장도 유행이 있어, 지금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들과 몇백 년 전 파이토스 교단 성기사들이 입는 장비가 달랐다.
덕분에 태현이 장비들을 못 알아본 것이다.
‘대체 언제 때 영웅이길래….’
<정체불명의 영웅들-대륙 교단 퀘스트>
대륙의 선한 교단들은 언제나 대륙을 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영웅들을 배출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영웅도 있지만,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죽은 영웅도 있는 법.
빙결공 푸르네우스는 자신에게 적대한 교단의 영웅들을 얼음 안에 가둬 전시해놓았다.
봉인된 영웅들을 풀어내고 이 천인공노할 악행을 갚아줘라!
보상: ?, ???, ????
‘거 참 마음에 드는 퀘스트군.’
안 그래도 갚아주려고 했다!
딱히 빚진 게 없어도 상대한테 갚아주는 것이 아키서스 스타일!
-돈이 안 되겠군. 이동하나?
포갈로가 옆에서 물었다. 악마인 포갈로가 보기에 저 얼음 기둥 안에 갇힌 사람들은 별로 돈이 안 될 것 같았던 것이다.
“무슨 소리. 구해줘야지!”
-…뭐 잘못 먹은 건가, 아키서스의 화신?
“네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난 원래 이런 걸 구해주는 사람이거든.”
-????
포갈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군. 풀어줘서 인질 삼아 다른 교단들에게서 돈을 뜯어낼 생각인가?
“그것도 좋… 아니, 그냥 구출할 생각이니까 조용히 해.”
악마답게 태현을 유혹하는 포갈로!
물론 포갈로는 딱히 유혹하려는 게 아니었다.
아키서스의 화신이 저렇게 친절하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갈 뿐!
인질 삼아서 교단에게 돈을 뜯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지만 태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럴 때는 친절을 베푸는 게 더 좋은 일이었다.
‘저 영웅들이 어떤 영웅들인지는 몰라도 악마한테 붙잡힐 정도니 꽤 대단한 영웅들이었겠지.’
꽤 옛날 영웅들일 테니, 그들이 교단으로 돌아가면 교단 쪽에서는 ‘아이고! 선배님들!’ 하며 감격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아이고, 폐하! 저희가 폐하를 몰라봤습니다! 여기 공적치 포인트를 드릴 테니 교단 보물 창고에서 마음껏 쇼핑하십쇼!
이렇게 되겠지!
[카르바노그가 너무 과한 망상 아니냐며 당황해합니다.]
‘자기네들 선배 구해줬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문제는 어떻게 구하느냐!
태현은 <고대의 망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카르바노그가 기겁하며 말렸다.
[그건 봉인 깨다가 같이 죽는다고 말립니다!]
‘으음. 확실히 맞는 말이야.’
푸르네우스의 얼음 봉인도 잘 깨부수겠지만, 그 안에 갇힌 영웅들도 잘 깨부술 거 같다!
태현은 망치를 포기하고 고민했다.
[사디크의 화염은 어떠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에이. 카르바노그. 정도가 있지, 사디크를 너무 믿지 마. 솔직히 지금 이렇게 화염으로 저항하는 것만 해도 평소 사디크한테 기대했던 거 이상이라고.’
지금 이 성을 뒤덮는 강력한 저주에 버티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만약 다른 랭커들이었다면 바로 나가거나, 나가기 전에 얼어붙었을 것!
간단해 보이지만 이 사디크의 권능이 어마어마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은 그렇게 말을 했지만 일단 화염을 꺼냈다.
해서 손해 볼 거 없었으니까.
[사디크의 화염이 빙결공 푸르네우스의 얼음 봉인을 녹이기 시작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