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48화
해독제까지 주고 나자 준비는 대충 마무리되었다.
다른 층에서 치고 빠지는 싸움을 준비하는데 무슨 정교한 계획이 필요하겠는가.
필요한 건 임기응변과 대응력!
그때그때 대응할 수 있는 실력이 가장 중요했다.
랭커들이라면 기본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어디든 던져놔도 자기 목숨 챙겨서 도망칠 수는 있는 놈들!
태현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왠지 무서워서 랭커들은 부르르 떨었다.
“설마 저거 ‘케인’ 하려는 거 아니지?”
“…김태현. ‘케인’ 하려는 거면 미리 말해라.”
“응? 케인하는 게 뭐지?”
태현은 의아해했다. 평소 태현이 쓰는 말과 다른 뜻 같은데?
보통 태현 팀에서 ‘케인하다’는 멍청한 짓을 하거나 자기 무덤을 파는 짓을 의미했는데….
“그, 자폭시키는 거….”
“아. 걱정 마. 뭐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
“휴. 다행이군.”
“거봐. 그건 케인이 특수한 거고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전력인데.”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응? 방금 뭐라고 하지 않았냐?”
랭커들은 방금 뭔가 들은 것 같았지만,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생존본능이 이해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대충 이야기를 끝낸 태현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계획이야 즉석에서 세워서 행동할 테니 없어도 된다지만, 장비는 좀 심하군. 너희 중 장비 없는 멍청이들이 좀 있으니까….”
태현의 눈빛은 ‘한심한 놈들 지들 장비도 잃어 버리냐’에 가까웠다.
물론 랭커들도 매우 부끄러웠다.
세계수에 기도 좀 잘못 했다가 무기나 장비를 뺏겨버린 이들!
‘아니 근데 그건 세계수가 이상한 거 아닌가?’
뭔 놈의 세계수가 장비를 뺏어간단 말인가.
아무리 오염됐어도 그렇지…!
“즉석에서 만들어야겠군.”
“!!!!”
랭커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태현이 장비를 만들어준다고 말은 했었는데 설마 그 기회가 지금 찾아올 줄이야!
“나… 나도! 나도 받을 거야!”
“이 자식. 비켜! 넌 장비도 멀쩡한 놈이!”
랭커들은 서로 멱살을 잡고 다투기 시작했다.
누가 더 먼저 받냐의 추한 싸움!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앞으로 걸어갔다.
“쉐도우 엘프 대장간을 빌려야겠군….”
요새에서는 시간과 여유가 되지 않았지만, 쉐도우 엘프 부족의 대장간을 빌릴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 * *
-안 된다.
“아니 왜?”
-죽을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다른 거 빌려달라는 게 아니라 대장간 빌려달라는 거거든?”
-우리 대장간은 비전문가가 쓰기에는 위험한 시설이다.
쉐도우 엘프 전사가 냉정하게 말했지만 태현은 코웃음쳤다.
누가 누구보고 비전문가래?
“걱정 마라. 난 전문가니까.”
-아닌 것 같은데…?
쉐도우 엘프는 미심쩍어하면서도 태현이 워낙 자신감을 보여주자 일단 대장간으로 안내했다.
대장간은 주변이 탁 트여 있고 넓은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특이하지도 않았다.
‘마계 금속은 보통 질이 더 좋지.’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었기에 대체로 성능이 더 좋게 마련.
“저기 있는 금속들은 공짜로 써도 되나?”
-마음대로 해라.
쉐도우 엘프들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이 써봤자 얼마나 쓰겠냐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큭큭큭… 바보 같은 쉐도우 엘프 놈들….’
[카르바노그가 너무 사악하게 웃지 말라고 말해줍니다.]
태현은 바로 풀무를 켜고 강철 주괴를 꺼내 녹이려고 했다.
그 순간 메시지창이 떴다.
[정령술 스킬이 극도로 부족합니다! 크게 페널티를 받습니다.]
[현재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보너스를 받습니다.]
[현재 사디크의 권능을…]
[……]
‘웬 정령술 스킬? 뭐지?’
태현은 메시지창을 보고 이 대장간이 정령술 스킬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장간 시설에 필요한 건 화력!
뜨겁고 뜨거운 불꽃을 만들 수 있는 대장간만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움직이는 성의 동력을 통째로 사용해서 불을 만들어냈고, 드워프들은 드워프들의 비전 마법을 사용해서 불을 만들어냈다.
태현 영지에 있는 악마의 대장간이나 천사의 대장간도 각각 종족 힘을 빌렸고….
그리고 쉐도우 엘프들의 비결은 정령술!
[극도로 분노한 최상급 화염 정령의 그림자가 나타나서 덤벼듭니다!]
-위험하다고 말했잖나!
쉐도우 엘프들이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강력하고 난폭한 불의 정령을 부리는 대장간이라, 한 번 폭주하면 이 주변이 뒤집힐 정도로 위험했다.
당장 제압해야 한다!
-마법사들 불….
퍽!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
“깜짝 놀랐네.”
태현은 망치를 들고 불의 정령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덤벼들길래 기겁해서 휘둘렀는데 제대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어라? 정령한테 데미지가 들어가나?’
고대의 망치는 생명 없는 것들한테만 데미지가 들어갈 텐데?
[카르바노그가 상대를 잘 보라고 말합니다. 정령이 아니라 정령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대장간 안에 봉인된 정령이 내보낸 그림자!
덕분에 고대의 망치로 한 방에 잡을 수 있었다.
[극도로 분노한 최상급 화염 정령의 분노가 진정됩니다!]
화염 정령의 분노도 급조절!
[카르바노그가 역시 아키서스는 분노조절잘해의 신이라고 감탄합니다!]
[대장간에서 화염 정령의 힘을 빌릴 수 있습니다!]
[<정령석 사용> 스킬을 얻었습니다!]
<정령석 사용>은 말 그대로 정령을 가둔 돌을 사용해 대장간의 화력을 올리는 스킬이었다.
악마의 대장간이든 천사의 대장간이든 고블린의 대장간이든 다 잘 어우러지는 스킬!
‘정령석을 구해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정령이 갇힌 돌, 정령석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약한 하급 정령석은 써봤자 효과도 약할 거고….
‘일단 마저 만들고 생각해야지.’
태현은 대만불강검부터 몇 개 제작했다. 마계의 지옥강철을 사용한 데다가 화염 정령의 힘을 빌려 추가 효과가 들어갔다.
‘신성력 상대로 취약한 거 말고는 데미지나 옵션이 조금씩 더 올라갔군.’
<지옥산 대만불강검>은 기본적으로 대만불강검보다 조금씩 더 좋았다.
약점이 있긴 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
자기 장비와 폭탄 몇 개를 즉석에서 제조한 태현은 랭커들의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흠. 어렵군.’
[카르바노그가 뭐가 어렵냐고 묻습니다.]
‘성능 올리겠다고 내구도를 낮추면 나중에 문제 생길 거 같아서.’
태현이야 미친 컨트롤에 미친 행운이 있어서 내구도가 5/5인 아이템도 1년은 쓸 테지만, 다른 랭커들은 아니었다.
괜히 장비 옵션 중 내구도가 중요한 옵션이 아닌 것!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빨리 망가지고 무뎌지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좀 균형을 맞춰줘야겠지?’
온갖 고오급 재료를 써서 몇 날 며칠을 투자해 만드는 아티팩트 수준의 장비는 아니었지만, 태현은 장인이었다.
10분 만에 만드는 장비도 최선을 다해서 만든다!
[카르바노그가 뭘 그런 당연한 걸 신경 쓰냐고 말합니다.]
‘역시 그렇겠지.’
[당신이 쓰는 것도 아닌데 내구도 최대한 하락시키자고 합니다. 뽕을 뽑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그런가?’
태현은 순간 흔들렸다.
랭커들의 능력이 높을수록 좋긴 한데….
일단 태현이 따라다니면서 수리해 줄 수 있긴 하지만…!
‘하긴 그래! 애들 능력도 부족한데 최대한 뽕을 뽑아야지!’
지금 악마들 상대하는데 느긋하게 내구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좀 더 폭발적인 힘이 필요해!
‘장비x3개씩 만들어서 뿌리면 되겠지.’
태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바로 양산형 장비 제작에 들어갔다.
* * *
가장 먼저 장비를 받은 랭커는 요한손이었다.
의외로 랭커들이 양보를 해준 것이다.
-요한손이라면 인정한다.
-불쌍하니까 가장 먼저 받게 해주자.
이유는 간단했다.
세계수한테 모든 장비를 뺏긴 랭커는 요한손 하나!
다른 랭커들이 장비 하나 뺏길 때 전부 잃은 요한손은 독보적이었다.
<악마참수자의 대검>이라는 이름이 붙은 양손 대검. 요한손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받았다.
“허어어어어억!”
이 미친 옵션!
요한손은 눈을 몇 번이고 깜박였다. 랭커들은 주변에서 신경 쓰인다는 듯이 힐끗힐끗 쳐다봤다.
‘너만 보냐?’
‘받았으면 빨리 스펙을 까란 말이야!’
대체 얼마나 좋길래 저렇게 눈을 까뒤집는 거냐?
요한손은 흥분한 상태로 스탯을 다시 확인했다. 물론 다시 본다고 변하지 않았다.
미친 공격력에 치명타. 거기에 덕지덕지 달린 추가옵션들!
보통 대장장이들이 만드는 작품에는 그 대장장이의 개성이 드러났다.
마법 부여 위주로 판 대장장이들이 만든 장비에는 각종 마법 스킬들이 걸려 있고, 치명타 위주로 판 대장장이들이 만든 장비에는 치명타 옵션들이 걸려 있는 느낌.
그런데 태현의 장비는….
좋은 옵션이란 옵션은 억지로 다 쑤셔 넣은 것 같은 느낌!
옵션들의 종합선물상자가 바로 태현의 스타일이었다.
요한손은 확신했다.
태현은 지금 그냥 대장장이 랭커로 전직해도 충분히 먹힐 거라고.
유명한 대장장이 랭커들이 만드는 작품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
‘힘 제한이 살짝 높지만….’
랭커쯤 되면 페널티 받고 억지로 장비 차는 스킬들이 한두 개 정도는 있었으니 상관없었다.
요한손은 <야만의 혈통> 스킬이 있어서 힘 제한이 부족해도 억지로 착용할 수 있었다.
문제 없음!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충성충성충성!”
요한손은 대검을 번쩍 들고 우렁차게 외쳤다.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너 제대로 본 거 맞냐?”
“…제대로 봤는데… 내가 잘못 본 거라도 있는 건가?”
요한손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왜 저러지?
내구도: 15/15
“…어… 숫자가 잘못 나온 거 같다. 김태현.”
“하하. 세상에 좋기만 한 게 어딨냐. 옛다. 2개씩 더 줄 테니까 아껴 써.”
“…일, 일회용 장비?!”
랭커들은 현실을 깨닫고 경악했다.
세상에 김태현 저놈이 대장장이의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구나!
일회용 인스턴트 장비라니!
대장장이들 사이에서 도는 농담이 있었다.
-야. 적당히 튼튼하게 만들어라. 너무 튼튼하게 만들면 장사 안 된다.
장비가 안 부서지면 누가 새로 사겠는가. 계속 쓰지.
그걸 비꼬는 농담이었다.
물론 저런다고 일부러 약하게 만드는 바보는 없었다. 자기 손해였으니까.
내구도 안 좋으면 누가 쓰겠는가?
정말 특별한 이유라도 없다면….
그런데 태현은 지금 내구도가 구려도 쓸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옵션에 성능이라면, 내구도가 구려도 참고 써야 한다!
내구도가 구려서 빨리 박살 날 테니 또 사야 할 것이고….
‘무섭다. 김태현! 아주 돈을 빨아들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아는 대장장이한테 말해야겠다. 이제 곧 일회용 장비 붐이 올 거라고.’
물론 그런 건 오지 않았다.
애초에 태현은 별생각이 없었으니까.
‘흠. 의외로 별 불만이 없네. 다른 성능이 괜찮아서 그런가?’
정확히 말하자면 괜찮은 수준이 아니라 사기적인 수준이었다.
* * *
-이걸 받아라.
쉐도우 엘프들이 망토를 건넸다. 쉐도우 엘프들의 힘이 담긴 망토로, 착용하면 투명 상태가 되는 망토였다.
도적에게는 사기 수준의 아이템!
그러나 역시 제한이 있었다.
시간제한이 있는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즉석에서 부여해서 만든 건가? 종특이 부럽군.’
쉐도우 엘프 종특은 보면 볼수록 부러웠다.
뭐 저런 좋은 특성이 있냐!
-그런데 저 악마를 꼭 데리고 가야 하나?
“아무래도 한 놈은 필요해.”
쉐도우 엘프들은 불만 섞인 눈빛을 보냈다.
왜냐하면….
일행에 악마, 포갈로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