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943화 (943/1,826)

§ 나는 될놈이다 943화

아키서스가 보낸 교단의 사자면 모를까 화신이라니.

어쩐지 유난히 인상이 사악하고 성질이 더럽고 포악하더라!

‘저놈 내 욕하고 있는 거 같은 기분인데.’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아키서스…!

“흠. 역시 받아들이는 건 무리였나.”

태현은 다시 무기를 잡았다.

마계에서 아키서스에게 당한 악마들은 기본적으로 원한이 매우 깊었다.

특히 나이 많은 대악마일수록 그 원한은 더더욱 깊었다.

-야~~~!!!,,,이,,,넘들아! 니들이 아키서스한테… 당해 봤느냐!!

-아, 저 악마 또 저러네. 인간 영혼만 마시면 취해서 저래.

-앞으로 영혼파티에는 저 악마 부르지 말자.

잘 믿기진 않았지만, 일단 포갈로도 대악마.

아키서스의 화신인 태현과는 죽어도 타협 못한다면서 발악할 수도 있었다.

‘솔직히 쟤가 뭐가 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발악하면 전력을 다해서 패야지.’

상대가 레벨 1짜리 슬라임이어도 전력을 다하는 남자!

그게 바로 태현이었다.

-이 포갈로에게, 아키서스 상대로 협력하란 거냐!

“…?”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큭! 협력하겠다!

포갈로는 당당하게 외쳤다. 순간 태현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내가 아키서스에게 죽을지언정 협력할 줄 아느냐!’ 같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누가 들으면 선전포고하는 줄 알겠다고 카르바노그가 어이없어합니다.]

항복하겠다는 말을 뭐 저리 비장하게 해?

“그, 그래. 협력한다니 고맙군. 그래서 이 주변에 위험한 악마는 없나?”

-큭! 내가 그런 걸 말해줄 것 같으냐! 하지만 여기 근처는 버려진 땅이라 탐내는 악마들이 별로 없다!

“…….”

[…….]

-…….

태현 일행의 시선이 매우 미묘하게 변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냐?

“그러면 안전한 건가?”

-그건 아니다. 여기가 버려진 땅인 건….

쿠르르릉!

“!”

[번개 폭풍이 몰아칩니다!]

[마계의 하늘에서 몰아치는 번개를 조심하십시오! 번개는 유난히 불운한 사람한테 찾아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행운이 미친 듯이 매우 높습니다!]

[근처로 번개가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 날씨 때문에?”

마계도 사람, 아니 악마 사는 곳이니 날씨가 적당해야 인기가 좋았다.

악마에 따라 좋아하는 곳이 각자 다양했지만, 이런 번개가 미친 듯이 날뛰는 곳을 좋아하는 악마는 별로 없으리라.

“대비! 대비해야 해!”

“뭘?”

“이 멍청아! 번개가 치잖아!”

급하니까 나오는 수아나의 본심!

메시지 창을 본 태현과 달리 수아나는 필사적이었다.

“지금 저게 누구보고 멍청이라고….”

“죽일까요?”

유지수의 말을 들은 수아나가 울컥했다. 김태현이나 케인이면 모를까 다른 일행들한테 무시당하다니.

그녀가 언제 이렇게까지 떨어졌단 말인가!

“너. 말조심해. PK 뜨고 싶지 않으면.”

“아. 네. 뜨고 싶으면 해보던가요.”

유지수는 손으로 달달한 전통과자를 표현해 보였다.

그걸 본 최상윤이 감탄했다.

‘이 녀석… 태현이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어!’

못된 것만 그대로 배웠다!

잘 모르는 플레이어한테 달달한 전통과자까지 먹자 수아나는 더더욱 혈압이 올랐다.

“저게 진짜….”

“야, 랭커인 네가 참아.”

“맞아. 그리고 김태현 일행인데 어쩔 거야.”

“이미지 관리해야지! 이미지!”

같이 있던 랭커들이 수아나를 말렸다.

평소에는 별로 친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로 경쟁하던 사이였지만, 세계수한테 같이 망하고 나서는 왠지 모르게 친해진 그들!

‘크게 싸우면 김태현이 낄 거 아냐!’

‘참아 좀!’

물론 그렇게 말하면 너무 부끄러우니 그들은 돌려서 말했다.

“이미지 관리! 이미지!”

“유성 게임단은 선수 인성도 검사한다더라!”

“지금 내 인성이 안 좋다는 소리야?”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물론 인성 좋지.”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잖아. 평소 관리를 해둬야 할 거 아니야.”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성 게임단 이야기는 왜 나오냐?”

요한손이 대답했다.

“유성 게임단에 입단 준비하고 있다던데.”

“근데 인성을 본다고?”

“유성 게임단은 인성이나 사고 친 것도 검사하잖나.”

‘흠. 그럼 주장을 잘라야 하지 않나.’

태현은 이세연이 들었으면 뒷목을 잡았을 생각을 했다.

유지수는 옆에서 수아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흠….”

“뭘 그렇게 쳐다봐? 눈 안 깔아?”

“아. 네.”

유지수는 싱긋 웃었다. 이상하게 그 웃음이 더 얄미웠다.

왠지 모르게 진 느낌!

수아나는 말을 돌렸다.

“…번개 대비해야 한다고! 저번에 길드 동맹에서도 크게 피해를 본 적 있어!”

“그럼 대비해.”

“뭐?”

“대비하라고. 안 말릴 테니까.”

태현의 말에 수아나의 표정이 이렇게 저렇게 변했다가 돌아왔다.

차마 태현한테는 무서워서 뭐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좋아! 준비하면 되잖아!”

“길드 동맹 놈들도 어지간히 호구군. 행운 높은 놈을 데리고 갔으면 바로 해결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태현이었다.

수아나는 씩씩대더니 유지수를 한 번 노려보고 가버렸다. 그 모습에 태현은 쯧쯧 혀를 찼다.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그게 무슨 소리냐?”

“아냐. 아무것도. 그래서 포갈로. 이 날씨 때문에 악마들이 안 오는 건가?”

-흥! 내가 질문에 대답할 것 같으냐! 여기가 버려진 땅은 이 근처의 몬스터들 때문이다!

마계에도 몬스터들이 있었다.

대륙보다 더 강하고 위험한 몬스터들이!

그러나 대륙과는 돌아가는 모양이 좀 달랐다.

대륙의 종족들은 강한 몬스터들이 있다면 그 주변을 피해갔지만, 마계는 그냥 잡았다.

악마들이 뭐가 아쉬워서 몬스터들을 피하겠는가. 대륙 종족들보다 몇 배는 강력한 종족인데.

즉 마계에서 남은 몬스터들은, 엄청나게 숫자가 많거나 엄청나게 강하다는 뜻!

“무슨 몬스터지?”

-우리는 놈들을 그림자에서 온 놈들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매우 높은 행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의 은신을 잡아냅니다!]

[행운의 은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신을 잡아내는데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의 은신을 추가로 잡아내는데 성공합니다!]

파아앗!

“기습이다!”

[<폭군의 지휘>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일행의 능력치가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최고급 전술 스킬로 인해 일행을 지휘하는데 보너스를 받습니다.]

“미친!”

“이, 이게 뭐야?!”

랭커들은 기습에 놀란 게 아니었다.

랭커쯤 됐으면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고 온 이들. 은신 몬스터가 기습하는 거에 놀라진 않았다.

그들이 놀란 건 메시지창!

뭔 놈의 전술 스킬로 이렇게 보너스를 많이 준단 말인가.

게다가 최고급?

‘대형 길드에서 전문적으로 키운 버프형 지휘관 플레이어가 간신히 고급 초반 찍지 않았냐?’

‘저 인간 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태현은 망설이지 않고 스킬을 사용했다.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을 사용했습니다! 아키서스의 이름으로 영역이 선포됩니다!]

파아앗!

상대가 누군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일단 강력한 은신을 가진 몬스터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같은 광역 장판 권능이 효과적이었다.

[상대의 은신이 풀립니다!]

[상대가 상태 이상 실명에 걸립…]

[상대가 마계의 벼락에 맞습니다!]

‘앗. 이건 기대 안했는데.’

밖에서 쏟아지는 번개까지!

-크하하! 놈들을 쓸어버려라!

-잘한다, 잘해!

악마들은 신이 났다.

재수 없던 모험가 놈들이 습격당한 것이다. 좋을 수밖에 없었다.

“방패 꺼내라!”

태현의 외침에 아키서스 포병대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예!”

악마들은 의아해했다.

방패 안 들고 다니는 것 같은데 방패가 있나?

그 답은 곧 나왔다.

-야!! 이 미친 드워프 놈들아!

악마들이 갇힌 우리 감옥을 방패처럼 앞에 세우는 드워프들!

1초의 망설임도 없는 신속한 동작이었다.

-우리의 힘이 필요하지 않냐!

-우리가 죽으면 너희도 곤란할 텐데!

“새로 구하면 된다!”

-악마 구하기가 쉬운 줄 아냐!

“흥. 우리 집에는 악마 공작 아들놈도 있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그냥 차라리 풀어줘라! 우리가 싸우겠다!

악마들이 아우성쳤지만 포병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서부시대 개척자들이 마차를 둥글게 모아서 임시 요새를 만든 것처럼, 악마들을 이용해 추가로 요새를 만든 것이다.

게다가 <아키서스의 봉인 감옥>은 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게 허언이 아니었는지, 미친 듯한 내구도를 자랑했다.

‘역시! 방패로도 쓸 수 있군.’

사실 태현은 악마보다는 그 악마를 가둔 우리 형태의 감옥을 더 눈여겨보고 있었다.

내구도가 범상치 않았는데 정말로 강력했다.

-큭! 아키서스 이놈! 놓지 않으면 내가 무릎을 꿇고 빌겠다!

“아차. 본능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포갈로를 앞에 세워서 방패 삼고 있었다.

사실 태현은 방패가 별로 필요 없었는데도!

‘강하긴 강하군.’

습격자들이 은신이 풀리자, 태현은 상황을 곧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엘프처럼 생긴 놈들이 늑대 몬스터들을 부리면서 습격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특이한 점은 부리는 놈부터 부려지는 몬스터들까지 전부 다 투명 스킬을 갖고 있다는 것!

저게 종족 특성이라면 사기적인 종족 특성이었다.

게다가 마계에서 사는 놈들답게 레벨도 낮지 않은 것 같았다. 은신이 풀렸는데도 꽤나 잘 싸웠다.

‘하지만 못 막을 정도는 아니다.’

각종 버프를 받은 랭커들. 거기에 태현 일행과 4왕자가 끌고 온 병사들과 기사들까지.

은신이 있으면 모를까 지금 여기는 신성 영역이 깔린 상태.

그들에게 매우 불리했다. 습격자들도 곧 깨달은 모양이었다.

-후퇴! 후퇴해라!

[쉐도우 엘프들의 습격을 격퇴했습니다!]

[버려진 땅의 세력도가 오릅니다.]

[현재 버려진 땅의 세력도는 4%입니다.]

[버려진 땅을 완전히 지배할 경우 아키서스의 땅으로 선언할 수 있습니다.]

‘오… 죽여 달라고 하는 수준인데.’

마계 각층 악마들에게 광역 어그로!

만 년 동안 자기 성에서 칩거하고 있던 악마 공작들도 빡치게 만들 선언!

하지만 태현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퀘스트도 결국 깨긴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키서스 귀환 선언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었다. 한 번은 해야 했다.

‘세력도를 최대한 올린 상태에서, 왕국 본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걔네가 오면 세력도를 마저 찍어서 아키서스 선언하고, 그대로 튈까?’

그럴 경우 본대는 말 그대로 지옥 난이도의 마계를 경험하게 될 것!

[……]

‘내 잘못은 아니지 않나? 뭐 열심히 점령한 땅을 잃는 건 마음 아프긴 하지만….’

태현은 당당했다.

지들이 선봉대로 보냈으면 책임을 져야지!

솔직히 선봉대로 보내면서 기사와 병사도 제대로 안 챙겨주는 모습에 이미 빈정이 상할 대로 상한 태현이었다.

너희들이 안 챙겨주면 나도 너희 신경 안 쓴다!

[생각해 보니 좋은 생각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동의합니다!]

카르바노그도 엄청 선량한 신은 아니었다.

왼뺨을 맞으면 앞발로 양싸대기를 갈겨주는 신!

* * *

“깜짝 놀랐네. 마계답게 별 놈들이 다 있어.”

“근데 우리 번개 한 방도 안 맞지 않았냐? 꼭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어?”

랭커들은 투덜거렸다.

안 그래도 요새 공사하느라 자기들이 랭커인지 잡일꾼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왔는데, 여기에 추가로 작업이라니.

“번개 맞고 싶으면 알아서 해!”

“근데 김태현이 저렇게 가만히 있잖아.”

“맞아. 뭔가 안 맞는 수단이 있는 거 아닌가?”

랭커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안일한 발상!

그러나 태현은 예외였다.

지금도 수많은 길드와 랭커들이 ‘마계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위험해 보이지만… 흠, 김태현이 갔으니까 뭔가 생각이 있겠지. 괜찮을 거야!’ 하면서 뛰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믿음과 신뢰의 상징!

그 말을 들으니 수아나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러게?

김태현이라면 분명 대비책을 세우기 위해 그들을 굴려야 할 텐데?

“…김태현 씨. 혹시 번개 막을 방법이 있으신가요?”

“어. 대비해놨는데.”

“그런데 왜 말을 안 해줬죠?”

“안 물어봤잖아.”

“…개… 개….”

이성과 본능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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