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35화
일행은 잠깐 침묵했다.
“음… 그래. 케인은 그럼 잠시 우리 곁을 떨어져 있겠구나.”
“안 돼에에에!”
케인은 재빨리 태현의 발목을 붙잡고 몸을 던졌다.
불리한 상황에서 몸을 던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탱커!
물론 케인의 모습에서 그런 멋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이 가줘! 같이!”
“아니. 마계는 좀… 솔직히 다른 놈들은 몰라도 내가 마계 가면 마계 토벌 난이도가 몇 배로 뛸걸.”
태현도 언젠가 마계로 갈 생각이 있긴 했다.
마계에 아키서스 관련 퀘스트가 있었으니까.
<내가 돌아왔다!–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위대한 선신 아키서스는 세상의 질서와 균형을 위해 헌신한 신입니다.
그런 아키서스에게 많이 속… 아니, 많이 정화당한 악마들은 아키서스의 이름을 두려워하고 증오합니다.
아키서스는 악을 두려워하고 숨지 않습니다! 악을 향해 나아가고 악을 이용하는 신입니다!
마계로 나아가 당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리십시오!
보상: ?, ???, 아키서스의 권능.
하도 마계에 악명과 공포 스탯이 높아지고 신성 스탯도 강해지니, 마계로 가서 ‘아키서스가 돌아왔다!’라고 선언하라는 퀘스트까지 나온 것이다.
퀘스트 내용만 보면 되게 간단해 보였지만 태현은 속지 않았다.
보상이 <아키서스의 권능>인데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퀘스트 내용이 쉽고 보상이 좋을 때면 의심을 해야 했다.
‘가는 순간 내 목을 노리고 모든 악마가 덤벼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 정도는 예상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 태현이니, 마계로 가는 걸 쉽게 결정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세계수를 타고 가면 갈 수 있었지만 태현은 한동안 미뤄두고 다른 권능 퀘스트부터 깨온 것이다.
‘생각해 보니 세계수 없었으면 이런 퀘스트 자체가 안 생겼겠군….’
별생각 없이 만든 세계수가 이렇게 나비효과로 퀘스트를 불러오다니.
“토벌대가 모여서 마계 토벌하러 가면 그 층의 악마들만 신경을 쓰겠지만, 내가 가면 다른 층 악마들까지 원한 풀겠다고 올 거라고. 알간?”
“크흑… 그렇지만 혼자 가는 건 무섭다구.”
마계 토벌 퀘스트 같은 전설 급 퀘스트에 혼자 가는 건 무서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퀘스트가 실패할 것 같은 불안함!
태현의 역할을 누가 대신해 준단 말인가?
“에이, 마법사들도 그렇게 모으고 성기사들도 그렇게 모은다는데….”
“느부캇네살도 그렇게 모았는데 너 없었으면 실패했을 거 아냐.”
“그랬지.”
“우이포아틀도 그랬을 거고.”
“그랬지.”
“그럼 마계 토벌 퀘스트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냐?”
“…!”
아니, 케인이 삼단논법을?!
“뭐, 더 쉬울 수도 있고… 그리고 들어보니까 네가 죽이는 게 아니라 가서 확인만 하고 버티는 거잖아. 보스 몬스터 같은 건 상대 안 해도 된다고.”
“아니야! 난 느낌이 와.”
“무슨 느낌이?”
“내가 선봉으로 가면 어쩌다가 본대는 늦게 오고 나하고 남은 놈들하고 보스 몬스터를 상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
묘하게 구체적이지만 부정할 수가 없었다.
케인은 이런 면에서 확실히 재수가 없었으니까.
“그냥 거절하면 안 되나?”
“4왕자가 호구 같고 만만해 보여도 진상짓하면 귀찮아질걸. 일단 에랑스 왕국에서 쌓은 명성은 날아갈 거고, 공적치 포인트도 날아갈 거고… 에랑스 왕국에서 뭘 하려면 다 귀찮아질 거야. 아탈리 왕국에서도 악명이 좀 높아지긴 하겠지.”
기사 맹세를 해놓고 불렀는데 무시하면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태현의 왕국인 아탈리 왕국에서도 ‘저 사람이 그 맹세 파괴자인 케인이래 소곤소곤’ 하면서 지나갈 것이 분명!
이래서 어지간하면 보증은 서는 것이 아니고 맹세도 함부로 하는 게 아닌 것이다.
“으아아… 아니 그 왕자…! 나랑 이름 비슷하고 좀 친근해서 맹세해 줬더니 이렇게 내 뒤통수를 쳐!?”
딱 들어도 위험한 임무!
에랑스 왕실 소문을 들어보니, 4왕자가 선봉을 맡아 자살에 가까운 정찰 임무를 나간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저만 믿으십시오! 제게는 충실한 기사가 있습니다!
그 기사가 누구겠나!
딱 봐도 케인이었다.
다른 일행은 수군거리며 이야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케인이 바람 넣은 거 아닐까?”
“저도 거기에 한 표 던집니다.”
“애초에 능력도 없는 왕자가 뭘 믿고 저랬겠어요. 케인 믿고 그랬겠죠.”
“으음… 진짜 케인 혼자 던져두는 건 좀 불안하긴 한데.”
태현은 고민했다.
케인이 상위권 랭커였지만, 그렇다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실수를 할 것 같은 불안함!
그리고 지금 퀘스트는 상위권 랭커도 위험하게 보였다.
본대 없이 소수로 마계에 선봉대 역할!
거기에 케인은 아키서스와 관련이 많아서, 그게 알려지면 악마들이 줄을 설 것이다.
-아키서스의 노예 놈을 찢어 죽일 기회가 왔습니다! 줄을 서십시오!
-나 에다오르! 내가 가장 앞이다!
-저리 비켜! 난 부하 두 놈을 저놈에게 잃었다!
-모두 저리 꺼지지 못해?! 난 내 아들이 놈에게 개처럼 부려 먹히고 있다!
정말 골고루 차곡차곡 쌓은 원한.
“후. 그래. 안 들키면 되겠지.”
“진, 진짜?!”
선언 퀘스트를 하는 순간 최대한 빨리 튀어야 할 테니, 선언 퀘스트는 최대한 미뤄둘 생각이었다.
선량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기사들처럼 조용히 마계에 가서 조용히 버티자!
* * *
“…내가 떠난 게 무례했나??”
“아니에요, 언니! 언니 정도 위치라면 그래도 돼요! 그 수상쩍은 사람이 만든 검의 이름을 봐요! 무려 <황제 살해자>라고요!”
“생각해 보니까 시간상으로 우이포아틀 노린 거 같은데… 그런 검을 바로 만들 수는 없었을 거 아니야.”
이세연의 말은 논리적이었다. 다른 길드원들도 동의했다.
“확실히 그걸 길마님 노렸다고 보는 건 좀 그렇긴 하죠.”
“하지만 김태현은 좀 수상쩍잖습니까.”
“맞아. 왠지 모르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웬 놈이 와서 ‘나는 24시간 후에 너희 길드 하우스를 습격해 길드 창고를 다 털어버리고 길마를 로그아웃시켜버릴 거야’라고 말하면 ‘개소리하고 있네’ 하고 무시할 것이다.
그러나 김태현이 와서 그러면?
…진짜 할지도 모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무게감을 실어주는 게 태현의 힘이었다.
이제까지 해온, 수많은 불가능한 퀘스트들. 남들이 ‘이걸 어떻게 해!’라고 말해온 퀘스트들.
그런 퀘스트들을 해온 사람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게 생기는 것일까?
‘아. 김태현 놈 진짜. 판온 1 때 들어만 왔어도 우리가 세계정복했다.’
‘진짜 왜 거절해 가지고….’
‘길마님이 솔직히 운빨로 이겨서 아닐까? 길마님이 거기서 그냥 졌다고 했어야 했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냐. 이긴 건 이긴 거지. 누가 운 없으래?’
이세연의 길드원들이 하는 생각.
김태현이 판온 1에서 제안받고, 2에서 같이 시작했으면 이미 이세연 길드가 판온 정복했다!
숫자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 화려한 라인업이라면….
이세연은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김태현의 도움을 받아 이 개판인 아스비안 제국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는데, 저번 일 때문에 서로 어색하게 갈라진 것이다.
다시 도움을 요청해? 말아?
하지만 지금 요청하면 내가 굽히고 들어가는 것 같은데….
아니, 얘는 왜 먼저 연락을 안 하지? 아스비안 제국에서는 얘가 굽히고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이세연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길드원 한 명이 신음을 내뱉었다.
“헉.”
“…왜?”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길드원은 급하게 껐지만 이세연이 모를 리 없었다. 이세연은 바로 판온 게시판을 확인했다.
-팀 KL! 마계 토벌 퀘스트에 참가!
-마계 토벌 퀘스트 성공 확률 급격히 증가… 전문가들, ‘60% 넘는다’고….
-김태현은 에랑스 왕국 영주를 노리나?
“얘는 또 그사이 언제 중앙 대륙으로 간 거야!!!!”
* * *
“김태현이 참가하다니!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전설 퀘스트면 무조건 참가하고 보는 건가? 이제까지 참가 안 한 전설 퀘스트가 한 개인가 두 개밖에 없지 않아?”
“김태현이 참가했다면 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느부캇네살 때도 그랬지.”
참가를 망설이던 대형 길드들은 태현의 소식에 참가를 결정했다.
얼마 전의 느부캇네살 퀘스트를 보고서도 망설인다면 그건 바보였다.
-김태현이 한다면 이유가 있다!
요즘 판온에서 도는 말!
예전에는 김태현이 전설급 퀘스트에 도전하면 ‘에이,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무리지~’란 반응이 주류 반응이었다.
얼마 전에는 김태현이 전설급 퀘스트에 도전하면 ‘아니…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이건 아니지… 혹시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좀… 반반쯤 아닐까’ 하는 반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솔직히 합시다! 저번에도 느부캇네살 퀘스트 놓쳐서 얼마나 배가 아팠습니까. 게다가 이건 김태현이 주도하는 퀘스트도 아니고, 어마어마한 대규모 퀘스트입니다. 얼마든지 우리가 주목받을 수 있단 말입니다.”
“맞는 말이야!”
손익 계산을 하던 길드들도 바로 참가를 결정했다.
일단 김태현이 참가하는 거 보니, 대실패하진 않을 것이라 확신한 것이다.
서로 치고받던 길드 동맹과 미다스 길드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영지전을 벌여도 이 토벌 퀘스트가 시작하면 묻히지 않을까?”
“영지전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입니다.”
“으음… 미다스 길드 놈들. 약삭빠르게 자기들 혼자 느부캇네살 퀘스트에 참가한 거 보고 어이가 없었지. 자존심도 없나?”
“하지만 그놈들만 이득을 봤잖습니까. 또 그 꼴을 두고 볼 순 없습니다.”
길드 동맹 내부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다.
물론 미다스 길드는 퀘스트를 꿀꺽하려다가 실패하고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돕게 된 거지만, 길드 동맹은 거기까지 몰랐다.
겉에서 보기에는 자존심을 버리고 김태현과 친하게 지내려고 꼬리 내린 모습!
“그래서 김태현하고 화해하라고?”
쑤닝은 인상을 썼다.
그건 죽어도 못 하겠다!
지금은 휴전하고 있는 상태지만, 쑤닝은 힘을 회복하면 언제든지 다시 싸울 생각이었다.
그 원한을 어떻게 다 잊겠는가.
“아니요. 퀘스트에 참가하자는 겁니다. 어차피 김태현이 주도하는 퀘스트도 아닌데 뭐 어떻습니까? 게다가 쑤닝 님은 오스턴 왕국 국왕이잖습니까. 저 미다스 길드 놈들과는 달리 퀘스트에서 훨씬 더 대접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오호…!”
쑤닝은 눈을 반짝였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에랑스 왕국 토벌 퀘스트에 참가하면, 보상과 명성, 시청률까지 보장이 됐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퀘스트 내 위치!
작위는 이럴 때 좋았다. 남들은 밑바닥에서 시작할 때 국왕 자리가 있으면 훨씬 더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실패하면 안 하는 것보다 못할 텐데.”
“걱정 마십시오. 길마님. 김태현이 끼어들었잖습니까. 솔직히 김태현이 재수 없고 싸가지 없고 세상에서 제일 성격이 더럽고….”
“…인성이 파탄 났고 눈에 뵈는 게 없고….”
길드원들은 서로 바통을 넘겨가며 태현의 욕을 했다.
“…지만 퀘스트 보는 눈은 확실하잖습니까. 실패한 게 있었습니까?”
“맞는 말이다! 참가 준비하자. 이번에는 우리 길드 동맹이 주역이 되는 거다!”
* * *
“아. 근데 이번에는 진짜 좀… 애들아. 만약 상태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튀는 거다. 알겠지?”
태현은 이제까지 했던 퀘스트들 중 가장 확신이 없는 상태였다.
태현의 속마음을 모두가 안다면 다 뒤집어질 것!
태현만 믿고 ‘와! 김태현 코인이다! 모두 탑승해!’ 하며 토벌대에 뛰어들었는데….
저 멀리 4왕자와 4왕자의 호위 병사들이 보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숫자가… 너무 적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