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34화
케인은 기사들과 대체로 사이가 좋은 적이 없었다.
레드존 길마 때는 현상금도 적으나마 걸려서 기사들이 지나가면 ‘쉿! 숨소리 줄여!’ 하면서 숨어 지내야 했었다.
그때 경험으로 생긴 습관!
기사들이 찾으면 ‘나 없다고 그래!’라고 대답부터 나오는 습관이었다.
-아니면 뭔데?
-그, 에랑스 왕국에서 나온 기사들인데, 케인 님이 4왕자의 기사 맹세를 했다고 하는데요.
-어… 어?
생각해 보니 느부캇네살 토벌 퀘스트 하면서 그런 일도 있었던 것 같았다.
케인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원래 높으신 분이 갑자기 찾을 때는 아쉬워서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4왕자가 왜 아쉽지?
-뭔데? 무슨 일로 부르는데?
-그건 저도 모르지만… 그거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마계 토벌 퀘스트요.
-마계 토벌 퀘스트!?
케인은 깜짝 놀라서 게시판을 켰다.
광산에서 키메라들이랑 노는 사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케인의 속마음도 모른 채, 파워 워리어 길드원은 계속 말했다.
-부럽습니다. 케인 님. 이번 퀘스트도 주역으로 활약하시겠네요.
모든 플레이어들의 꿈.
그건 대형 퀘스트에서 대활약하는 것!
한 번 대활약하면 전 세계 수십억의 사람들이 대형 퀘스트에서 활약하는 플레이어의 이름을 기억하게 마련.
한 번으로 뜨는 것이다.
그런데 케인은 그런 퀘스트를 한두 번이 아니라 몇 번이나 하고 있으니….
모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의 꿈, 케인!
물론 당사자는 매우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상해! 뭔가 이상해!’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케인은 위기 감지 능력이 매우 늘었다.
실전으로 훈련된 육감!
지금 그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4왕자가 널 왜 불렀을까?
‘그러게? 대체 왜 부른 거지?!’
* * *
“데이트 코스… 검색. 데이트하는 법… 검색….”
이다비는 인터넷을 검색하며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동생들은 수군거렸다.
“언니가 뭔가 사악한 계획을 꾸미는 거 같은데. 보통 파워 워리어 길드로 큰일 저지를 때 저러잖아.”
“확실히… 표정을 보니까 정말 중요한 일이 분명해.”
사람 한 명 정도는 죽일 것 같은 진지한 표정!
“으음… 앗. 위키에 정리되어 있네?”
이다비는 위키에서 연애와 데이트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는 항목들을 보며 생각했다.
“…뭔가 이상한데…??”
-상대방을 반하게 하기 위해서는 비싼 차를 타고 가서 ‘야, 타’라고 한 다음 태우고 나서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좌석을 잡은 채 멋지게….
“…??”
이다비는 다른 글을 클릭해 봤다. 물론 마찬가지로 영양가가 없었다.
이쯤 되자 이다비는 눈치를 챘다.
이건 사기야!
케인이라면 이런 글에 혹해서 따라 해봤겠지만 이다비는 케인이 아니었다. 이다비는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이거 쓴 사람들 연애 해본 적 없다!
이다비는 인터넷을 끄고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
* * *
“언니. 왜 에어컨을 켜? 여름 다 끝나가는데?”
“오늘 덥잖니.”
“아니… 안 더운데….”
“오늘 더워. 알겠지?”
“…응.”
이다비의 동생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오늘 언니 무서워!
평소 이다비는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화려한 집에 사는 건 집이고, 에어컨은 에어컨!
그런 사람이 왜 갑자기 에어컨을 저렇게 빵빵하게 틀지?
“나 왔어… 어? 오늘 날씨가 덥나?”
문을 열고 들어온 태현은 의아해했다.
날씨 선선한데?
“더우실까 봐 켜놨어요!”
“어… 그, 그래. 덥다면 켜야지.”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다비가 더위를 많이 탔나?
태현의 방문에 동생들은 ‘아~’ 하는 표정으로 납득했다.
그게 그렇게 된 거였구나!
어쩐지 며칠 전에 언니가 안X탕면 대신 무X마를 사더라니….
“그래서 어디 갈 생각인데?”
“네! 다 준비했어요!”
“아니… 대체 어디길래?”
서울에도 퀘스트 깰 던전이 있나?
왜 저렇게 철저하게 각오한 표정으로 말하는 거지?
태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이다비의 뒤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남은 동생들은 태현에게 들키지 않게 언니에게 외쳤다.
-파이팅!
-파이팅!!
-그런 거 아니거든??
이다비가 나가고 나자 둘은 서로 쳐다보았다.
우린 뭐하지?
“…오랜만에 무X마?”
“그럴까?”
* * *
사람은 잘 모를 때는 정석을 택해야 한다.
이다비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일에 있어서 이다비는 초보 중의 초보!
그런 사람이 괜히 인터넷 뒤져가며 상급자들이 하는 짓을 따라하면 역효과만 났다. 이다비는 겸손하게 가기로 했다.
‘점심식사 후 영화관 가고 카페 간 다음 저녁. 점심식사 후 영화관 가고 카페 간 다음 저녁. 점심식사 후 영화관 가고 카페 간 다음….’
무슨 스킬 콤보 넣을 때처럼 반복해서 되뇌는 이다비!
계속 중얼거리는 모습에 태현은 걱정된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다비 요즘 괜찮은 거 맞나? 무슨 문제 있나?’
아무리 봐도 평소와는 좀 다른데?
“어? 김태현이다.”
“진짜? 김태현이네? 옆은 이다비잖아?”
“와… 진짜 김태현이야? 나 처음 봐!”
“실물이 훨씬 더….”
“잘생겼다고?”
“아니. 더 무섭게 생긴 것 같은데.”
“그러게? 눈매가 훨씬 더 날카로운….”
“헉. 우리가 지금 떠들어서 그런 거 아냐?”
“아앗. 그런 거야!?”
그러는 사이 주변 사람들은 태현과 이다비의 얼굴을 알아보고 수군거렸다.
태현은 혀를 찼다.
‘아차. 이걸 신경 안 썼군.’
생각해 보니 예전과는 유명함의 수준이 달랐다.
게다가 태현은 숙소로 가기 전에는 집-체육관-순대국밥집만 반복하던 쳇바퀴형 인간!
유명해졌어도 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일이 별로 없었다.
숙소로 이사한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였고….
별생각 없이 나왔는데, 이렇게 번화가로 나오면 사람들 시선이 쏠리는 게 당연했다. 이제 태현과 이다비는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케인을 데리고 올 걸 그랬군.’
케인은 이럴 때 매우 쓸모 있는 탱커였다.
판온에서도 탱커였지만 현실에서도 탱커!
던져두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쏠리게 하는 어그로를 끄는 것이다.
예상외의 상황이 벌어지자, 이다비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이건 계획에 없었는데?!
“이다비. 왜 그래?”
“아, 아니요. 이대로 쭉 가면… 어… 그러니까….”
혼란스러워하는 이다비의 귀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데이트인가?”
“에이, 같은 팀이잖아.”
“같은 팀이라도 사귈 수 있잖아.”
“김태현은 이세연하고 사귀는 거 아니었어?”
“그거 아니라고 나온 지가 언젠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냐? 아무리 봐도 둘이 서로 쳐다보는 건 심상치가 않다니까. 얼마나 그윽하게 쳐다봐.”
서로 죽이려고 쳐다보는 걸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이다비. 진정하고… 뭐하려고 했는데?”
“밥 먹고, 영화 보고, 카페 가려고….”
“그러면 하나씩 하면 되잖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안 될 것 같은데요… 지금 벌써 다들 괜한 오해를….”
이다비는 당황한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태현을 즐겁게 해주려고 데리고 나온 거였는데, 이렇게 일이 귀찮아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오해하면 좀 어때. 어차피 시간 지나면 가라앉아. 이세연 봤지? 그런 끔찍한 소문도 있었는데 뭘.”
“…그, 그렇게 끔찍한 소문까진….”
이다비는 무심코 이세연을 변호했다.
“끔찍한 소문인데.”
“앗. 네.”
이런 면에서는 칼같이 단호한 태현!
이다비는 고민했다.
점심을 먹으려고 한 곳은 누가 봐도 오해하기 좋은 레스토랑!
사람들이 이렇게 보는데 그런 곳에 가도 되나?
그런 고민을 눈치챈 태현이 먼저 말했다.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기 그러면 다음에 다시 가자. 보는 사람 없을 때.”
“다, 다음에도 같이요?!”
“응? 응.”
태현은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는 듯이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이다비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네!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말하고 이다비는 신이 나서 돌아섰다.
너무 신이 난 탓에 태현과 같이 나온 걸 잊어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 것이다.
“이다비… 나 여기 있는데….”
“아앗!”
* * *
-팀 KL. 서비스 정신도 일등… 투기장 리그를 앞두고 여유로운 모습.
-팀 KL. 즉석 팬사인회.
-팬사인회 불참석한 케인. 불성실 논란….
“아니 왜!?”
케인은 울컥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갔는데!!
“그건 무시해.”
“이… 이 기자 놈… 이름 기억해 놨다!”
“기억하면 어떻게 할 건데? 고소라도 하게?”
“아니! 대회에서 공격할 때마다 얘 이름 외치면서 죽으라고 할 거다!”
“…….”
생각 외로 쪼잔한 방법에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뭐 이런….
“…그냥 고소를 해. 내가 변호사 소개시켜줄게.”
아버지 인맥을 물어봐도 되고, 정 안 되면 유 회장님 인맥을 물어봐도 됐다.
유성 그룹 법무팀!
변호사만 몇백 명이 넘는,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이라고 불리는 어마어마한 집단이었다.
유 회장의 아들인 유 사장이 세금 안 내려다 벌금 물어야 했을 때도 맹활약한 법계의 거물들!
물론 유 회장에게 들키고 싸대기 맞은 다음 벌금은 냈지만….
“에이. 나도 변호사는 고용할 수 있다 이제.”
케인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버는 돈이 얼마인데 변호사 고용 하나 못할까.
물론 케인은 태현이 무슨 변호사들을 이야기하는지 몰랐다. 들었으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내 힘으로 해결하겠어!”
“…….”
“…….”
일행들은 모두 ‘그건 해결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말을 하진 않았다.
뭐 케인이니까 알아서 하겠지!
“맞다. 너희 둘 왜 나만 빼놓고 놀러 나갔냐!?”
케인은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이 억울해했다.
왜 나만 빼고!
“헉! 선배님! 저기 창밖에 와이번이!”
“뭐?!”
모두의 시선이 쏠린 사이 정수혁과 최상윤은 케인의 양쪽 팔을 하나씩 붙잡고 명치를 쳤다.
“컥!”
“조용히 하십쇼. 죽기 싫으시면.”
“덕수야. 지금 방해하면 쟤는 진짜 평생 혼자 살 수도 있으니까 닥치고 있어.”
“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창밖을 쳐다보던 태현과 이다비는 문득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까 현실에 와이번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러게요?”
“후, 요즘 판온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착각을….”
* * *
“맞다. 김태현….”
탁-
최상윤과 정수혁이 다시 양팔을 잡으려고 하자 케인은 기겁해서 외쳤다.
“아냐! 이건 다른 거야! 이건 다른 거라고!”
“케인 씨 팔이 너무 많아서 잡기가 힘든데….”
“야, 팔 자르면 안 되냐? 좀 징그럽다.”
작은 배려 큰 상처!
케인이 노려보자 둘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뭐가 다른 건데?”
“나 그… 에랑스 왕국에서 토벌에 참가하라고 연락이 왔어. 어떡하지 이거?”
“네가? 네가 에랑스 왕국에서 뭐 한 것도 없는데 참가하라고 연락이 오진 않을 텐데?”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케인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4왕자랑 친해져서 기사 맹세 한 건 좀… 있긴 한데….”
“뭘 했다고?”
“보증 섰다는 것 같은데….”
“에이, 설마요. 아무리 케인 씨라도 그렇게 함부로….”
일행들은 수군거렸다. 설마 그렇게 맹세를 함부로 했을까!
“그냥 기사 한다고 말로 한 거지? 설마 맹세도 했냐?”
“…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