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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932화 (932/1,826)

§ 나는 될놈이다 932화

“빨리 친구라고 해!”

케인이 옆에서 다급하게 속삭였다. 방금 본 장면이 정말 무서웠던 것이다.

“에반젤린 속인 것처럼!”

갑자기 튀어나와서 얻어맞은 에반젤린!

태현은 에반젤린한테 살짝 미안해졌다.

“속인 거 아니거든?”

“뭐? 진짜?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빨리!!”

푸른 금속 인간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미친 듯이 무서웠다.

초점 없는 눈동자!

“대답하는 건 쉽지만 그 뒷일도 생각해야지.”

태현은 작게 대답했다.

그냥 대답한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방금 봤냐? 껴안는 거. 친구라고 하면 저거 당할 수도 있다고.”

“그, 그러면 싸워야 하나?”

“싸우는 것도 솔직히 좀 무시무시한데.”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케인 놈. 그러니까 좀 튀라니까 왜 헛짓을….’

케인이 없었으면 한 번 붙어보고 견적을 낸 다음 튀었을 텐데, 케인이 있어서 싸우기가 꺼려졌다.

만약 잘못 싸우면 케인이 수수께끼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여덟 발, 저녁에는 열두 발인 건 뭘까요?

-정답! 케인!

[카르바노그가 깔깔 웃습니다.]

태현은 상대를 좀 더 파악해 보기로 결정했다.

“근데 네가 말하는 친구가 뭐지?”

“어… 그러게?”

고민할 필요 없는 케인 놈이 옆에서 고민했다.

그러게 진짜 친구가 뭐지?

“야. 방해되니까 저리 비켜 좀.”

그러자 갑자기 불안해진 케인이 물어왔다.

“김태현. 우리 친구 맞지?”

-친구… 친구… 친구란 무엇인가….

“아니 뭔 귀찮은 놈들이 둘이 됐어?”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케인 저놈은 왜 도와주진 못할망정 저놈하고 비슷한 소리를 하고 있지?

-친구는… 나와 같이 놀아주는 거… 날 따뜻하게 대해줘야 한다….

“아니야! 친구는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케인은 푸른 금속 인간의 말에 반박했다.

그렇게 따지면 난 김태현 친구가 아니잖아!

-너 틀렸다… 나 옳다….

“따뜻하게 안 대해줘도 친구일 수도 있다고! …그렇지??”

케인이 슬쩍 시선을 보내자 태현은 한층 더 어이가 없어졌다.

“너 오늘 뭐 잘못 먹었냐?”

“아, 아니. 쟤가 자꾸 이상한 질문을 하니까… 갑자기 그… 친구 맞나 하는 생각이….”

“네가 십 대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뭔….”

-너 틀렸다.

“아냐! 네가 틀렸어!”

-네가 틀렸다!

느리고 어눌하게 말하던 금속 인간도 화를 내게 만드는 케인의 재능!

태현은 그 모습에 놀랐다.

‘녀석… 재능이 있어!’

케인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상대방을 빡치게 만드는 재능!

화술 스킬 중의 도발은 기가 막히게 잘 쓰겠구나!

“너 친구 몇 명인데? 어?”

-어… 어….

푸른 금속 인간은 재빨리 돌연변이들을 세기 시작했다. 그걸 눈치챈 케인은 외쳤다.

“그건 반칙이지!”

-내 친구다!

“얘네들은 내 친구기도 하니까 서로 공평하게 빼!”

-…0, 0명이다.

“뭐? 작아서 안 들리는데?”

-0명… 0명이다! 넌 몇 명이냐!

“난 친구가 많아! 몇백 명은 된다고!”

-지금 증명할 수 있는… 친구만 된다!

“억지를 부리다니!”

-억지는 네가 부리고 있다!

무기 들고 있던 태현은 한숨을 쉬며 옆에 몸을 기댔다.

저 대화 언제 끝나냐?

‘저놈 저러다가 도발만 하는 거 아냐?’

안 싸우고 물러서는 게 가장 좋았는데 지금 케인은 아예 도발을 하고 있었다.

상대를 파악할 수 있긴 했는데 적당히 해야지!

“저, 저기 내 친구 있잖아! 최소 한 명이다! 너보다 많아!”

-너 정말 친구 맞냐?

“어. 어. 맞아. 맞아.”

-진심이 안 느껴진다!

“맞다니까? 아, 이 귀찮은 것들.”

태현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귀찮았는지 말이 대충대충이었다.

어쨌든 이긴 케인은 신나서 외쳤다.

“1 대 0! 1 대 0! 봐라!”

-그… 그 별로 차이도 안 난다…! 1명 차이다!

“1명 차이라니. 0에 100 곱해봤자 0이거든? 난 1명이고!”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의 노예를 불쌍하게 여깁니다.]

친구 한 명 있다고 친구 한 명도 없는 놈한테 자랑하는 아키서스의 노예!

돌연변이들도 왠지 케인을 보는 눈빛이 짜게 식은 것 같았다.

“내가 이겼으니까 내가 옳아! 네가 말한 친구는 틀렸어!”

-…그러면 친구는 뭐냐?

“어… 음….”

-…뭐냐… 대답도 못 하면서 설마….

“아냐! 기다려봐. 친구란 건 그러니까… 평소에는 사람을 악마처럼 구박하고 굴리고 괴롭히고 놀지도 못하게 막고 훈련만 시키지만 가끔 위해주는 그런 거 아닐까?”

“…….”

-…….

[…….]

금속 인간은 할 말을 잃고 머뭇거렸다가 대답했다.

-그건… 노예 같은데….

* * *

케인은 금속 인간의 말에 분노했다.

감히 우정을 그렇게 말하다니!

“친구도 없는 게!”

-뭐… 뭐라. 말 조심해라….

“어쩔 건데, 덤빌 거냐?!”

-…으헝헝!

“어, 어?”

-으흑흑… 너무하다….

“아, 아니. 잠깐만.”

푸른 금속 인간이 울기 시작하자 케인은 당황했다.

어떻게 된 게 자기가 나쁜 놈이 된 기분이었다.

“왜, 왜 울어?”

-친구 없다고 놀리다니….

돌연변이들도 수군거리면서 케인을 흘겨보았다.

와 사람이 너무 쓰레기다 정말!

[푸른 금속 인간이 오염을 퍼뜨리기 시작합니다!!]

[주변의 오염도가 급격하게 높아집니다!]

[아키서스의 키메라들이 숨을 쉬지 못합니다.]

케인은 기겁해서 달래려고 들었다.

“아, 아니야. 친구 없을 수도 있지. 네가 이런 곳에 있어서 그래. 밖에 나가면 인기 폭발에 완전 인싸가 될 거야!”

-정말… 인가…?

“그래! 내가 친구를 소개시켜줄게!”

-어떤….

“우리 팀….”

“우리 팀 소개시켜주면 죽여 버린다.”

태현이 뒤에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케인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걔, 걔네들 제외하면 누구 소개시켜줘?”

“당연히 이럴 때는 평소 싫어하던 놈들이지.”

“아! 스미스!”

“…왜 스미스?”

“잘생기고 잘나가서?”

“…걔 말고 다른 애 해라. 왜 원한도 없는데 굳이 원한을….”

-왜… 수군거리는 거냐….

“아, 아니야. 내가 그 잘 아는 친구들이 있어. 오스턴 왕국에 있는데 소개시켜줄게.”

태현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녀석. 잘했다!

푸른 금속 인간은 솔깃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믿겠다….

“그래! 친구가 없어도 나쁜 게 아니야! 없어도 잘 산다고!”

-…그러면 너도 내 친구지?

“그럼! 그럼!”

-…안아… 줘… 친구….

“헉.”

케인은 자기가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태현이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에휴.”

그러니까 섣불리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화술 스킬은 아무나 잘 쓰는 게 아니었다. 태현의 화술 스킬은 간단해 보여도 그 순간순간에 상대를 읽고 말을 고르는 센스가 필요했던 것이다.

별생각 없이 뇌 비우고 화술 쓰다가는 자기가 만든 함정에 자기가 빠지는 일이 일어났다.

지금 케인처럼!!

-안아… 줘….

“아, 아니. 잠깐만.”

-?

“그게… 그게… 김태현 도와줘!”

“이 상황에서 나보고 어쩌라고? 잘 해봐.”

“아키서스의 노예는 포옹을 하면 안 된다는 교단 규칙 같은 거 있다고 하면 되잖아!”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지금 케인이 바로 그랬다.

“케인…!”

[오오… 하며 카르바노그가 놀랍니다.]

케인이 저런 핑계를 생각해낼 줄이야!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느는 걸까?

-아키… 서스…?

“…잠깐. 불길한데.”

태현은 매우 불길함을 느꼈다.

이제까지 ‘아키서스?’라고 알아듣는 NPC들 중에서 좋은 반응을 보여줬던 NPC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아키서스 죽어!’, ‘아키서스 개자식 때문에 내가!!’, ‘제발 악마라면 아키서스 마계 출입 금지 법안에 서명합시다!’ 같은 반응이 대부분!

이 푸른 금속 인간은 아키서스한테 또 어떻게 당했던 걸까?

-아키서스… 내 친구다….

“!!”

“?!?!?”

-친구! 안아줘!

“아니, 잠깐! 잠깐! 아키서스가 친구라니, 그게 무슨 소리?!”

케인은 뒷걸음질 치며 다급하게 말했다. 모범적인 질문이었지만 사실 살기 위해 한 질문이었다.

-아키서스… 찾아와서 내 금속 받아갔다… 날 친구라고 했다….

“…….”

“…….”

-…….

[…….]

먹튀!

푸른 금속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두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었다.

* * *

금속 인간의 말은 이랬다.

수천 년도 넘은 옛날 옛적부터 자기는 여기 있었는데, 어느 날 아키서스가 찾아오더니 힘을 빌려달라고 말한 것이다.

외로웠던 금속 인간은 우리 친구냐고 물었고 아키서스는 ‘그럼~ 물론이지~ 우리 친구야~’ 하면서 푸른 금속을 날름 받아갔다.

그리고 그걸로 <아키서스의 신성한 단검>을 만들었다.

“어?!?”

태현은 깜짝 놀랐다.

레벨 낮을 때 에다오르를 한 방에 보낸 <아키서스의 신성한 단검>.

그게 여기서 났던 거였나?!

‘어쩐지 즉사 옵션이 있더라….’

방심한 에다오르를 한 방에 보낼 정도였으니 평범한 단검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뒤에 이런 비밀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아키서스의 신성한 단검–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퀘스트>

아키서스의 신성한 단검은 정체불명의 푸른 금속으로 검날을 만들고 아키서스가 직접 신의 힘을 불어넣어 만든 단검이다.

방법을 알더라도 필멸자가 따라할 수는 없겠지만, 당신은 아키서스의 화신.

신이 한 일은 당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키서스의 신성한 단검을 다시 한번 만들어 권능을 불어넣어라.

이는 진정한 화신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보상: ?, ???

퀘스트창을 보고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황제 살해자>에 <아키서스의 신성한 단검>까지. 아키라늄은 양이 적은데 써야 할 곳은 너무 많았다.

‘아키서스가 왜 저놈을 꼬드겼는지 알겠군.’

푸른 금속이 있긴 한데 양이 너무 적다!

그런 와중에 저렇게 푸른 금속을 퍼주는 푸른 금속 인간은 매우 탐나는 인재였다.

아다만티움 거인을 설득했던 것처럼 푸른 금속 인간을 설득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아키서스… 약속 지킬 줄 알았다… 다시 와서 기쁘다!

“어, 음, 그게, 음.”

여기서 ‘아키서스가 널 속였어!’라고 진실을 말해봤자 별로 좋을 게 없겠지?

태현은 진실을 어둠 속에 묻어버리고 재빨리 대답했다.

“그래! 약속을 지키러 왔지!”

-그런데… 왜 처음에 모르는 척 한 건가…?

“네가 너무 달라져서 그랬지.”

-???

푸른 금속 인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잘 안 갔지만 뭐 그렇다니….

-그러면 넌….

“나, 나는 아키서스의 노예지.”

-잘 안 들린다.

“…노예라고! 됐냐!”

-아아! 노예!

푸른 금속 인간은 낄낄거리며 케인을 비웃었다.

-친구 아니다! 노예다!

“노, 노예면서 친구일 수도 있는 거야! 너 이 자식. 내가 친구 해준다고 했는데… 취소다.”

-아, 아니다… 친구다! 친구! 안아줘!

푸른 금속 인간은 호다닥 다가왔다.

태현은 재빨리 뒤로 거리를 벌렸다. 그렇지만 케인은 그렇게 민첩하지 못했다.

“잠, 잠깐…!”

꽉!

케인은 그대로 붙잡혔다. 태현은 재빨리 스킬을 사용했다.

-아키서스의 축복!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으니, 최대한 버프를 걸고 행운을 올려놔야 했다.

꿀꺽-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카르바노그가 우적우적하며 팝콘을 먹습니다.]

카르바노그도, 태현도 집중해서 케인을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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