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30화
그런 케인의 속마음도 모르는 채 태현은 검을 바꿔가면서 열중했다.
-꿰에엑….
“안 돼! 죽지 마!”
태현은 비통하게 외쳤다.
매우 기괴한 장면이었다.
지가 검으로 미친 듯이 패놓고 죽지 말래!!
케인은 질색했다.
“흠. 생각해 보니 죽어도 시체 해체해서 강화를….”
촤아아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연변이 몬스터의 시체는 형체를 잃고 녹아내렸다.
“…….”
“…….”
태현은 케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케인은 태현의 시선을 피했다.
“케인.”
“안 돼…!”
“어쩔 수 없다. 푸른 금속 전에 사냥부터 먼저 하자.”
탁-
태현은 케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든든한 손이었지만 지금은 더럽게 무서웠다.
“오랜만에 본격적으로 던전 사냥 해볼까?”
“!!!”
던전 사냥.
보스 몬스터를 노리고 던전을 뚫고 내려가는 게 아닌, 적당한 장소에서 멈춰 다른 몬스터들을 계속 사냥하는 것.
사실 많이들 하는 방식이었다.
매번 새 퀘스트를 찾아 깨는 것보다는 훨씬 더 안정적인 방식!
대형 길드들이 왜 좋은 던전을 독점하겠는가. 사냥하기 좋은 몬스터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였다.
잡기 쉽고, 경험치가 높고!
시간과 끈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태현도 판온 1 때는 종종 했었던 방법.
‘2에서는 경험치가 턱없이 올라서 안 했었지만….’
“아니, 꼭 이런 흉흉한 곳에서 사냥을 해야 해?”
케인은 투덜거렸다.
이런 곳엔 한 시간도 있기 싫었다. 그런데 몰이 사냥을 계속하자니.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갖고 있는 대만불강검들을 꺼내 개수를 확인하고, 화살들도 꺼내 오염시킬 수 없나 찾아보고 있었다.
“으음. 전부 오염시키는 건 혹시 모르니까 한두 개 정도는 빼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너 내 말 일부러 안 듣는 거지?”
* * *
“온다! 막아!”
“크윽!”
광산 깊숙이 내려갈수록 몬스터들의 숫자는 늘어났다.
앞뒤에서 괴상망측한 돌연변이들이 튀어나오는 일도 늘어났다.
한 마리 나왔을 때는 손쉽게 상대했던 태현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몬스터들의 강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 자식들 속성이 완전 랜덤이야!’
[<불가사의한 돌연변이>가 화염 저항으로 사디크의 화염을 막아냅니다!]
[<불가사의한 돌연변이>가 화염 공격에 추가 데미지를 받습니다!]
어떤 놈은 화염에 더 데미지를 입고 어떤 놈은 화염 저항이 있다.
-꿰엑! 얼음 고드름 난사!
파파파팍!
어떤 놈은 얼음 마법을 쓰고, 어떤 놈은 도적 스킬을 쓰고….
더 짜증 나는 건….
[대지에서 솟아나온 모래 창이 당신의 등을 강타합니다!]
“아니 얼음 마법이었잖아?!”
케인은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분명 스킬 시전은 <얼음 고드름 난사>였는데 왜 모래 창이 나와?
이런 치사하고 더러운 짓은 김태현이나 하는 짓!
[푸른 금속 광산의 깊숙한 곳에 발을 디뎠습니다.]
[오염이 점점 심해집니다.]
[신성 권능으로…]
사방에서 덤벼드는 와중에 메시지창이 나왔다. 오염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메시지창이었다.
[돌연변이 몬스터들이 더욱더 강해집니다!]
‘이런.’
태현은 손발이 부족하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둘이서만 싸우다 보니 귀찮은 면이 있었다.
돌연변이 몬스터들은 레벨이 300 중반 정도.
케인도 이제 상위권 랭커. 레벨이 200대 중반이니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온갖 랜덤 속성이라는 게 일을 까다롭게 만들었다.
각종 스킬을 넣어도 웬 이상한 놈이 한둘씩 살아남는 것!
그래도 둘은 어떻게든 잘 해나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케인이 달려드는 놈들을 막고 그사이 태현이 폭딜!
다른 건 몰라도 태현의 폭딜마저 다 막아내는 놈은 없었다.
“잠깐.”
“왜?”
“너 왜 공격을 안 받냐?”
태현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케인의 역할은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막아 발을 묶는 것.
물론 이제까지 잘 해내고 있었다. 나름 세계 제일의 탱커 중 하나로 뽑히는 케인 아닌가.
그렇지만 공격을 안 받는 건 아니었다. 몬스터들은 당연히 탱커를 때려눕히기 위해 맹렬하게 공격해야 했고, 그걸 막기 위해 갑옷과 방패를 드는 것 아닌가.
근데 케인은 공격을 받지 않고 있었다.
‘방금 싸움에서도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가 케인 앞에서 날뛰기만 했다.’
케인이 좁은 길을 막자 풀쩍풀쩍 뛰기만 하지 공격을 하지는 않는 돌연변이들!
케인이 맞은 건 돌연변이들이 태현을 공격하다가 빗나간 게 전부였다.
“내, 내 컨트롤이 늘어나서가 아니었어?”
케인은 깜짝 놀랐다.
힐도 없고 포션도 안 썼는데 HP가 멀쩡한 건, 자기 자신의 실력이 늘어서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긍정적이라 좋겠다. 그게 말이 되냐?”
“아니… 네 밑에서 혹사당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내 실력이 꽃을 피운 줄….”
“…….”
-…….
[…….]
“어쨌든 확인 좀 해보자.”
“확인? 어떻게?”
5분 후.
“김태현 XXX 김태현 XXX….”
-주인이여. 노예가 욕하는 거 같다.
“하하. 착각이야. 착각.”
케인은 혼자 통로 앞에서 중얼거리며 서 있었다.
때리나 안 때리나 확인해 보는 건 간단했다.
태현 없이 케인만 던져놓으면 됐다.
-퀘에엑! 화려한 칼날 폭풍!
“저, 저놈 스킬 쓰지도 않으면서 자꾸 사기 쳐!”
케인은 방패를 들고 각오했다.
오기만 해봐라! 한 대 먹여주마!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쟤네들이 왜 날 안 때려?’
“어….”
케인은 눈을 깜박였다.
통로에서 몰려오는 돌연변이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걸 본 태현은 멈칫했다.
“어. 이번 웨이브는 좀 많은데? 애들이 우연히 뭉쳤나 보다.”
“야, 야!”
“괜찮아. 통로 좁아서 너 때릴 수 있는 애는 얼마 없어.”
“그걸 말이라고….”
말하는 순간 첫 번째 돌연변이가 앞에 도착했다. 케인은 방패의 화염 출력을 올리고 무기를 들었다.
와라!
-퀘에엑?
-퀘에엑….
돌연변이들은 멈칫하다가 케인을 한 번 보더니 다시 한번 멈칫했다.
마치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서는 케인을 옆으로 밀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퀘엑.
-퀘에엑.
“어?? 어???”
[불가사의한 돌연변이들에게 동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공격 받지 않습니다.]
[명성이…]
[……]
“이 자식들아! 난 너희들이 아니야!”
무슨 좀비 영화에서 좀비인 척하면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케인은 울컥해서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자 돌연변이들은 당황해서 울부짖었다.
-퀘엑! 제정신! 제정신!
-퀘에엑! 행동!
뭔가 단어는 이상했지만, 돌연변이들이 ‘너 왜 이러냐 친구!’이러는 느낌이라 케인은 더 억울했다.
태현은 그 모습에 감탄했다.
“신기하긴 한데 쓰기는 좀 애매하다. 그치?”
어차피 태현과 같이 다니면 공격은 받을 텐데 케인 혼자 친하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돌연변이들 상대로 화술 설득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어라?’
태현은 멈칫했다.
왜 불가능하지?
생각해 보니 그것도 편견 아닌가?
‘한번 해볼까?’
원래 판온은 남들이 다 안 할 때 한번 시도해서 대박 나면 쏠쏠한 게임이었다.
[카르바노그가 어떻게 설득할 거냐고 묻습니다.]
‘그게 문제야.’
돌연변이들은 일단 보자마자 덤벼들었다.
그나마 지금 케인에게는 대화 비슷한 걸 시도하고 있었지만 태현에게는 그런 것도 없었다.
비명 지르면서 스킬 연사!
“으음….”
* * *
1차 시도.
“야! 이건 진짜 아니다! 이건 진짜 아니다!!!”
케인은 울부짖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절반쯤 깎인 기분!
지금 케인은 태현 앞에 엎드려서 개처럼 걷고 있었다.
“돌연변이들이 이걸 보면 나에 대해 흥미를 갖지 않을까?”
“미친 개소리지 그게!”
-퀘에엑!
-퀘… 퀘엑.
[돌연변이들이 당신의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빠집니다!]
[돌연변이들이 도망칩니다!]
“…….”
“…….”
효과는 있긴 했다.
돌연변이를 잡아서 노예처럼 부리는 모습에 겁을 먹고 도망가서 문제였지!
“그래도 성과가 있었어.”
“흑흑흑….”
“일단 통하긴 통한다는 거지. 좋아. 방법을 바꿔 보자.”
2차 시도.
태현은 케인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매우 매우 불길한 자세에 케인이 침을 꿀꺽 삼켰다.
“김, 김태현. 진짜 안 찌를 거지?”
“하하. 살짝 피는 낼지도….”
“그, 그냥 아까 개처럼 하던 거 하면 안 되냐?”
“그건 쟤네들이 겁먹어서 안 돼.”
-퀘에에엑!
다시 나타난 돌연변이들.
태현은 케인의 목에 검을 들이댄 채로 외쳤다.
“움직이지 마라! 너희들의 귀엽고 약한 동족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
-…….
케인과 용용이 모두 질색하는 협박 대사!
[화술 스킬이…]
[악명이…]
[공포 스탯이…]
화술 스킬, 악명 스탯, 공포 스탯 등등. 태현은 이미 협박만으로 상대의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 만큼 태현의 협박은 돌연변이들도 멈추게 하는 강렬함이 있었다.
[협박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퀘에엑! 적 붙잡다!
-퀘엑! 착하다!
“뭐라는 거야?”
[카르바노그가 반대로 말하는 거 아니냐고 추측합니다.]
“아. 나보고 착하다길래 케인 붙잡아서 그런가 했네.”
판온 하면서 착하다는 말은 거의 들어본 적 없는 태현!
“잘 들어라! 이 너희들의 동족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내 명령을 따라라!”
-꿰엥….
“광산의 심층부로 내려가는 길을 안내해! 허튼수작은 하지도 말고!”
“…….”
케인은 붙잡힌 채로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냥 나가고 싶다!
* * *
[<정체불명의 푸른 금속>을 발견했습니다!]
[플레이어 중에서 <정체불명의 푸른 금속>을 처음으로 발견했습니다. 금속에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어?’
태현은 놀랐다.
대장장이 플레이어들 중에 이 금속을 발견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대장장이 놈들 뭐하냐? 너무 나태한 거 아냐?’
판온 1 때 자기가 대장장이로 했던 걸 떠올려보니 다른 대장장이들이 너무 나태하게 느껴졌던 것!
물론 다른 대장장이들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미친놈아 거기 있는 금속을 우리가 어떻게 발견해!!
[처음으로 발견한 금속에 아키서스의 이름을 붙이면 추가 보너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명성에…]
[……]
‘공짜 보너스군.’
아키서스 이름을 붙이기만 하면 보너스가 온다니. 날로 먹는 퀘스트였다.
“좋아. 아키서스의 이름을 붙이겠다.”
[금속에 아키서스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정체불명의 푸른 금속>이 <아키라늄>으로 정해집니다.]
“아키라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느낌인데….”
[?]
“아냐. 별거 아니겠지.”
-퀘에엑. 멀다! 멀다!
-퀘엑. 더 가까이!
태현이 광산 벽에 있는 푸른 금속에 다가가자 돌연변이들은 난리를 쳤다.
광산에 사는 그들이었지만 저 푸른 금속 가까이에는 다가가지 않았다.
온갖 일이 일어나고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키라늄>이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신성 권능>으로 저항합니다!]
[<아키라늄>이 랜덤으로 마법을 시전합니다.]
아키라늄이 푸른빛을 쫙쫙 뿜어내더니 주변에 갑자기 마법을 일으켰다.
‘뭐야!?’
사방에 치는 번개 폭풍에 태현은 당황했다. 회피에 성공하긴 했지만 금속이 제멋대로 마법까지 걸다니.
과연 아키서스의 이름이 아깝지 않다!
‘캐내는 게 무서울 정도군.’
태현은 온몸을 긴장시킨 채 푸른 금속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안 떼질 정도로 단단하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