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28화
저지른 죄가 많아서 악마의 대장간에 교섭하려고 올 때도 조심조심 온 길드 동맹이었다.
사람 많은 광장을 대놓고 돌아다닐 이유는 없다!
물론 미다스 길드원들은 방금 본 길드 동맹 길드원이 첩자라는 걸 알지 못했다.
사실은 파워 워리어 길드원!
* * *
펠마스.
갈락파드.
그리고 새로 찾아온 마탑의 화염학파 마스터 플레밍!
이 셋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었다.
“끄으응… 어떻게… 안 되는데. 아무리 봐도 무리인데.”
“네놈이 숨겨놓은 돈을 털어내는 게 좋을 거다.”
“그런 거 없다 이 자식아! 누구를 뭘로 보는 거냐!”
“뭐라?”
“아, 아니. 없습니다. 정말 없단 말입니다! 갈락파드 님!”
갈락파드가 노려보자 펠마스는 꼬리를 내렸다.
갈락파드가 작정하고 덤벼들면 펠마스는 두들겨 맞거나 저 밑의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말려줄 태현도 없고, 갈락파드는 눈 한번 뒤집히면 정말 끝까지 갈 미친놈이었으니까.
지금 이들이 고민하는 이유.
그건 바로 마탑 건설 때문이었다.
느부캇네살 레이드 이후, 화염학파의 마스터 플레밍은 태현과 태현의 교단에 반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디크의 권능!
태현은 마탑 건설이 비현실적이라 빠르게 포기했지만, 플레밍은 영지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오오… 뭘 할 수 있습니까?
-으음… 마법사들을 모아서 마탑을 만들 수도… 물론 다른 학파 마법사들을 더 모으긴 해야 하겠지만….
-!!!
플레밍의 말을 들은 펠마스의 귀가 솔깃했다.
마탑이라니!
그 정말 잘나가는 왕국의 도시에만 있다는 귀하고 귀한 건물이 이 골짜기에?!
게다가 플레밍의 신분은 말에 엄청난 무게를 실어주었다.
마탑 마스터 중 한 명!
갈락파드가 필사꾼인 걸 생각해 보면 마탑 마스터는 정말 어마어마한 직위였다.
사실 아키서스 교단 NPC들이 다 떨거지들 출신인 거지만….
펠마스는 재빨리 NPC들을 불러 모아 회의에 들어갔다.
-마탑을 지어보자!
-예? 우리가요?
-예산이 됩니까?
-지금 간신히 흑자로 전환됐는데 어떻게 마탑을 짓습니까?
-지금 짓는 신전들이나 마무리 짓고….
-솔직히 마탑 말고 지을 거 너무 많은데.
-대장간에 투자나 더 해줘.
-시끄럽다! 지금 폐하가 계시지 않는 동안 영지의 관리는 내 책임이잖나! 내 말을 좀 들어줘야지!
-갈락파드도 공동 관리였잖아.
-그리고 폐하가 너 안 믿는 거 뻔히 안다. 네가 무슨 짓 하면 잡아다 가두라고 했다고.
-…….
무한불신!
그러나 펠마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마탑을 가질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우리가 돈이 없지 사람이 없냐! 사람을 모아보자. 돈 대신 사람을 퍼붓는 거다!
-와. 저 양심 없는 쓰레기 봐. 사람을 부려먹었으면 돈을 줘야 하지 않나?
-저거저거 내가 권력 잡았을 때부터 알아봤다. 폐하에게 연락해서 저놈 끌어내려야 하는 거 아냐?
-펠마스 놈이 슬슬 본색을….
골짜기는 매우 민주적으로 돌아갔다.
나름 최고 권력자인 펠마스 앞에서도 욕설과 폭언을 퍼부을 수 있는 다른 NPC들!
-…내가 나만 좋으라고 그러는 거냐?? 마탑이 지어지면 다들 좋잖아!
-변명하는 것도 판에 박혔어! 저 쓰레기 같은 놈!
-아 좀 들어봐 좀! 모험가들도 불만 가지지 않게 할 테니까!
-또 또 사기 치려고 그런다. 이 사기꾼 놈! 네가 모험가들을 등쳐먹는 게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나,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아키서스 교단의 흉악한 아이디어는 절반은 펠마스의 머릿속에서 나오고 절반은 파워 워리어한테서 나왔다.
누가 도박꾼 출신 아니랄까 봐 사람들을 도박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데에는 따라갈 수가 없는 펠마스!
-고블린 제작기 1번씩 지르는 것보다 10번씩 지르는 게 훨씬 더 쌉니다! 보너스까지 드려요!
-재산을 다 잃었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100번 지르면 무조건 확정적으로 원하는 축복 하나를!
제작기에서 원하는 걸 뽑은 사람이 나오면, 아키서스 교단 사제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축복을 걸어주고 사방에 광고를 했다.
“이분이 바로 그분입니다!”
“여러분! 이분이 오늘 대박을…!”
“아키서스의 힘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플레이어들을 경쟁하게 만들었다.
펠마스는 억울했다.
난 그저 선의의 경쟁을 시켰을 뿐인데!
-모험가들을 최대한 동원해도 일단 마탑을 지으려면 마법사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맞아. 저 플레밍이란 마스터야 도와준다지만 다른 마탑의 마법사들이 뭐하러 도와주겠나.
-젠장! 내가 구해오고 말겠다! 지켜보고 있으라고!
쾅!
펠마스가 떠나자 다른 NPC들은 바로 갈락파드에게 연락했다.
-갈락파드 님! 펠마스가 사고 칩니다!
* * *
그리고 지금.
갈락파드는 펠마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키서스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마탑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동의한다고 없는 예산이 하늘에서 떨어지진 않았다.
그 결과….
“돈 내놔라!”
“없다고! 진짜로!”
둘의 추한 싸움에 플레밍이 당황해서 외쳤다.
“마, 마법사들은 제가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래주시겠습니까?”
“예. 영지에 있는 모험가들 중 마법사들을 최대한 모아서 퀘스트에 고용해 보겠습니다.”
“음….”
“으음….”
둘은 앓는 소리를 냈다.
영지에 쓸 만한 마법사들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하지만 외부에서 도우러 온 플레밍이 저렇게 열심히 하겠다는데 어떻게 말리겠는가.
둘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믿, 믿고 있겠습니다!”
“아키서스 님의 가호가 있기를…!”
* * *
“잠깐, 저기 화염학파 마스터 플레밍 아냐?”
“너 오늘 자꾸 헛소리 할래??”
“아니… 진짜라고!”
헛소리 취급을 받은 길드원은 매우 억울했다.
저건 정말로 플레밍 같은데!
화염학파의 마스터인 플레밍은 마법사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했다.
화염 마법을 전문으로 하면 더더욱!
NPC 중 화염 마법 등급을 전설로 찍고, 비전 화염 마법도 몇 개 갖고 있는 대단한 NPC 아닌가.
플레밍한테 마법 하나 배우기 위해 온갖 퀘스트를 깨는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그런데 그 플레밍이 여기 왜 있겠는가.
“아오. 따라와봐. 진짜라니까.”
“쟤 괜히 데려온 거 같지 않냐?”
“얘가 맛이 좀 간 것 같… 허어억!”
“헉!!”
길드원들은 멈칫했다.
정말 플레밍이잖아!
화염학파 마스터, 플레밍은 그 특유의 붉은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입고 대로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표정이 뭔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느낌인데 착각이겠지?
“앗. 자네들. 마법사인가?”
“예? 예!!!”
마탑에서는 얼굴 보려면 줄 서서 며칠은 기다려야 하는 플레밍한테 직접 말이 걸려오다니!
“내 일을 도와줄 수 있겠나?”
“물… 물… 물… 물론입니다!!! 무엇이든지!!!”
<플레밍의 부탁–마탑 제작 퀘스트>
화염학파의 마스터, 플레밍은….
-수락! 수락! 수락!
길드원들은 읽어보지도 않고 일단 수락부터 했다.
괜히 시간 끌었다가 놓치기라도 하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플레밍이 부탁하고, 심지어 마탑 퀘스트였다.
“응?”
“왜?”
“아니… 마탑 퀘스트가 아니라 마탑 제작 퀘스트…인데?”
“…그러게?”
잘 보니까 마탑 퀘스트가 아니라 마탑 제작 퀘스트잖아?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어… 마탑에서 하는 제작을 도와드리는 거 아닐까?”
“그럴 수도….”
“플레밍 님!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마탑을 제작하는 데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네.”
“…….”
“…….”
“…네??”
* * *
설명을 듣고 나서야 길드원들은 자신이 잘못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미친 퀘스트에 참가를 외치다니!
‘마탑을 어떻게 지어!’
플레이어들 수준으로는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미 제안은 받아들였고, 여기서 거절하면 플레밍한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건 포기해야 했다.
[퀘스트를 포기할 경우 플레밍이 실망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를 포기할 경우 마탑 내 평판이…]
[마탑 내 공적치 포인트가…]
‘크흐흑흑!’
맨날 나오는 초보자들한테 하는 판온 팁 중 하나.
-초보자 여러분! 퀘스트 설명은 끝까지 읽고 받아들이세요! 귀찮다고 대충 받아들였다가는 정말 큰일 날 수가 있어요!
…이 일을 지금 그들이 겪게 될 줄이야!
남은 방법은 플레밍을 설득하는 것밖에 없었다.
“플, 플레밍 님. 마탑은 정말… 무리일 겁니다. 어떻게 그 재료를 구합니까?”
“으음… 차근차근 하나씩 지어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네만….”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할….”
“뭐, 최선을 다해봐야지. 일단 화염학파의 공간부터 만들어 볼 생각일세.”
허허 웃는 플레밍.
평소라면 그 웃음에 감탄했을 길드원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진짜 하려고 하잖아!
‘아냐. 솔직히 좀만 있으면 알아서 포기할지도 몰라.’
‘현실적으로 불가능….’
‘지을 사람들도 없잖아.’
그러나 길드원들은 아직 이 영지의 진짜 힘을 잘 모르고 있었다.
우르르르-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아오!!! 이 영지에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판온에서 할 일 없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영지!
각종 도박을 즐기다가 뭔가 퀘스트 생기면 ‘어? 퀘스트야? 잘 됐다! 돈 좀 벌어야지’ 하고 달려오는 사람들로 우글우글!
길드원들은 1분도 되지 않아 구름처럼 몰린 플레이어들의 모습에 한탄했다.
다들 삽질 좀 해봤는지 각종 건설 장비들을 손에 들고 있었다.
“으흑흑… 흑흑….”
“길드로 돌려 보내줘…!”
“어. 근데 이거 김태현 도와주는 거 아닌가?”
-잘 됐군. 그거 도와주면서 김태현하고 화해하고 오도록.
-아니 그게… 이건 좀 아닌데…! 다른 걸로 화해하면 안 되냐?
-파이팅!
-우린 너희를 믿어!
뚝-
‘…이 개자식들이!’
지들이 하는 거 아니라고 귀찮은 걸 떠넘기는 다른 랭커들!
괜히 연합이 아니었다. 원래 이런 건 떠맡은 놈이 손해 보는 법이었다.
“크윽… 두고 보자…!”
“이 원한은 절대 잊지 않겠다!”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비켜. 공사 들어가야 하니까.”
“너, 너는…! 길드 동맹 맞잖아!!”
아까 본, 길드 동맹에서 본 길드원(사실은 파워 워리어인)의 모습에 미다스 마법사는 깜짝 놀랐다.
물론 파워 워리어 길드원, 나작세도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새끼. 왜 이렇게 기억력이 좋지?’
“너 뭐야? 너 무슨 속셈이야?”
나작세는 당황해서 머리를 굴렸다.
설마 길드 동맹 출신인 놈과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것!
다행히 상대는 길드 동맹을 나온 것 같았지만….
“길드 동맹이 여기는 대체 무슨 속셈으로… 앗. 잠깐. 너 파워 워리어 소속이잖아?”
“!”
“너 설마…!”
“…….”
“파워 워리어로 갈아탄 거냐!”
‘…그냥 멍청한 놈이네.’
나작세는 안심했다.
괜히 첩자질 한 거 들킬까 봐 걱정했잖아!
“후. 그래. 숨길 이유도 없긴 하군. 길드 동맹이 쪼개지고 나서 나도 길드를 나왔다.”
“아니, 왜 파워 워리어를?”
미다스 길드원은 순수하게 물었다.
순수한 의문!
왜 많고 많은 길드 중 ‘그’ 길드를?
물론 여기서 던질 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뒤에 있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노려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아니… 파워 워리어 길드가 안 좋다는 게 아니라! 그, 그냥 물어본 거야! 너 정도면 대형 길드가 다 불러줬을 텐데!”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늘어놓는 미다스 길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