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25화
[카르바노그가 정신 차리라고 합니다.]
‘큭. 그렇긴 하지.’
저 움직이는 성을 만들었다가는 진짜 아탈리 왕국은 파산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태현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물었다.
“이 위대하고 대단하고 멋지고 아름답고 화려한… 성을 어떻게 만든 거지?”
[지하 연합 고블린들이 칭찬에 매우 기뻐합니다!]
[친밀도가 크게…]
[평판이…]
고블린 상대로는 뭘 해도 인기인 남자!
태현의 매력은 고블린 상대로 몇 배의 효과를 발휘했다.
고블린들은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하하! 폐하. 이 대단한 성을 만드는 건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무리 저희의 숫자가 많고 기술이 뛰어났어도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러면 어떻게?”
“훔쳤습니다!”
“…????”
지하 연합 고블린들의 설명은 매우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단 이 움직이는 성은, 원래는 멀쩡히 밖에 서 있던 성이었다.
그것도 우이포아틀이 직접 명령을 내려서 만든 <우이포아틀 성>이었던 것!
황제가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들 정도였으니 얼마나 비싸게 지었을지 이해가 갔다.
“저희는 그 비참한 곳에서 계속 일하면서 계획을 세웠습니다. 큭큭큭.”
“바로 그 성을 몰래 개조한 것이지요. 큭큭큭.”
“…!!!!”
[이런 아키서스 같은 놈들! 하고 카르바노그가 놀랍니다!]
세상에 살다 살다 성을 먹튀하는 놈들이 있다니!
우이포아틀 밑에서 비참하게 부려먹히던 고블린들은, 몰래 성을 기계공학 스킬을 사용해 개조한 것이었다.
그리고 결전의 날.
-성이 완공되었다! 이제 폐하만 부르면 돼! 크하하!
-어, 근데 저 성이 왜 움직이는 거 같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성이 어떻게 움직… 어어어??
철커덩, 철커덩-
고블린들은 부스터를 켰고….
성은 기지개를 켜더니 저 멀리 사막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
-…….
-폐하 불러올 사람?
“크흑!”
태현은 그 이야기를 듣고 진한 감동을 받았다.
어렸을 때 들었던 동화들보다 100배는 더한 감동이었다.
“왜, 왜 그러세요?”
“너무… 너무 감동적이야…!”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태현!
“????”
‘저게 감동적이라고?’
‘연기인가?’
“폐하!!”
[당신의 눈물에 고블린들이…]
[친밀도가 최대로…]
[떠돌이 고블린 부족들이 당신의 영지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고블린 부족들은 영지의 지하를 개척할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음. 참고가 되면서도 참고가 안 되는군.’
어떻게 만들었나 했더니, 진짜 제국 기둥뿌리를 뽑아서 만들었다!
이건 태현이 참고할 수 없었다. 전성기 아스비안 제국 때 능력을 어떻게 태현이 따라한단 말인가.
하지만 다른 건 참고할 수가 있었다.
‘…다른 놈의 성을 뺏어서 튀는 거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카르바노그가 기겁합니다.]
* * *
“오스턴 왕국 수도? 아니야. 거기는 너무 평범하지. 나쁘지는 않지만 좀 더 커다랗고 대단한 성이 필요해. 에랑스 왕국은 위험하고. 에스파 왕국은 산악 지역이 많아서 성들이 다 작고….”
“저기, 김태현이 원래 이상하긴 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해진 거 같은데….”
케인이 주저하며 말했다.
지금 출입구로 들어와서 고블린식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고 있는 일행.
그 와중에 태현은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서워!!
“만약에 말이야.”
태현은 지하 연합 고블린들을 보며 물었다.
“내가 성을 하나 개조하고 싶으면 날 도와줄 수 있나?”
[불가능한 부탁입니다.]
[현재 공적치 포인트가 0입니다.]
[……]
[지하 연합 고블린들의 친밀도가 최대치입니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의 평판이 최대치입니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이 불가능한 부탁을 들어줍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카르바노그가 쟤네 최면 걸었냐며 기겁합니다!]
고블린들이 머리에 화살 맞은 게 아니라면 저런 부탁을 들어줄 이유가 없는데!?
그러나 고블린들은 빛나는 눈빛을 보내며 대답했다.
“어디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폐하를 위해서라면…!”
* * *
[<지하 연합 고블린들의 움직이는 성> 안에 들어왔습니다.]
[아직 어떤 플레이어도 들어오지 않은 곳에 처음으로 들어왔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
성 안은 어두컴컴하고 드넓은 공장 같았다. 각 구역마다 고블린들이 뭔가 이것저것 만져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지하 연합 고블린 요격 골렘>의 제작법을…]
[기계공학 스킬이…]
[<지하 연합 고블린 맹독 폭발창 발사기>의 제작법을…]
[기계공학 스킬이…]
숨만 쉬어도 오르는 스킬.
이곳은 천국이었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천국!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데리고 오면 숨 넘어가겠군.’
무엇보다 더 좋은 건 제작법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태현은 눈에 불을 켜고 좋은 거 없나 찾아보았다.
가능하면 영지전에 쓰기 좋은 제작법으로!
쉬이익!
지나갈 때마다 정체 불명의 기계 장치들이 증기를 뿜어냈다. 몇몇 장치들은 태현이 봐도 <기계공학 스킬이 부족합니다>라고 뜨면서 정체가 안 나올 정도였다.
여기 고블린들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기계공학 대장장이인지 알 수 있는 증거였다.
‘하긴 이러니까 우이포아틀하고 싸우면서 버텼겠지.’
여기 대사막이 매우 뜨겁고 괴로운 곳이지만, 우이포아틀이나 부하들이 못 올 정도로 힘든 곳은 아니었다.
우이포아틀 정도 수준이면 솔직히 마계도 뚫고 갈 수 있었다.
이 지형을 이용해서 제국의 공격을 막아낸 건 순전히 고블린들의 실력!
이 고블린들은 검술도, 마법도 쓰지 않았다. 오로지 기계공학 스킬로 싸워온 것이다.
“장로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장로들이 이끄는 곳이었다. 고블린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이들!
“잠깐 재봉사 좀 만나고 가면 안 되나? 황제 옷을 만졌던….”
“아. 장로님 중 한 분이 그 재봉사이십니다. 들어가시면 바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근데 무시한 거냐??
아까 재봉 판다고 이상한 고블린 늙은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여기 고블린들은 생각보다 더 무서운 놈들이었다.
* * *
에랑스 왕국.
4왕자 캐인.
캐인은 위풍당당하게 성기사들과 함께 귀국했다.
“더 크게 들어! 더 크게!”
“아, 저거 귀찮아 죽겠네.”
“참아. 왕자잖아.”
플레이어들은 투덜거리면서 깃발을 들었다.
<느부캇네살의 사악한 음모를 막은 위대한 왕자 캐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원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다. 퀘스트 때문에 하는 거였다.
<4왕자의 진상을 참아내라–에랑스 왕국 왕실 퀘스트>
에랑스 왕국 4왕자 캐인은 무능력한 겁쟁이지만 운 좋게 느부캇네살 토벌에 참가해 공을 세웠다.
매우 신랄한 퀘스트 설명!
보통 이렇게 신랄한 퀘스트 설명은 드물었다.
4왕자 캐인은 이 공을 크게 자랑하고 싶어한다! 그를 도와 에랑스 왕국에 공을 자랑하라!
보상: ?, ???, ????
재수는 없었지만, 왕자라는 자리는 가만히 있어도 황금이 줄줄 새어나오는 직위였다.
플레이어들은 공적치 포인트와 골드를 위해 왕자의 퀘스트에 참가했다.
퀘스트 난이도가 워낙 낮고 쉬웠던 것이다.
왕자 칭찬하는 깃발 만든 다음 들고 다니면서 ‘4왕자 만세! 4왕자 만세!’이러면 바로 퀘스트 공적치가 쭉쭉 올랐다.
이렇게 날로 먹는 퀘스트도 드물 것!
“4왕자 만세! 4왕자 만세!”
“와! 정말 대단해~”
“찬양해! 4왕자 찬양해!”
슬슬 외치다 보니 칭찬할 것도 없어진 플레이어들.
솔직히 4왕자가 뭐 한지도 몰랐으니 당연했다. 4왕자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야. 이제 뭐 하지?’
‘글쎄?’
‘대충 좋은 거, 멋진 거 붙이면 되잖아.’
“대륙의 위기는 4왕자한테 맡겨라!”
“악마들아 두려워해라! 여기 4왕자가 간다!”
“악마, 악 교단, 악 붙은 놈들은 대충 다 두려워해라!”
“아, 아니… 잠깐??”
앞에서 성기사들과 같이 위풍당당하게 가던 4왕자가 뒤에서 들리는 외침에 기겁했다.
그렇게까지 바라진 않았는데?!
“쿨럭, 쿨럭… 대단하구나. 아들아.”
에랑스 왕국 국왕도 감탄했다는 듯이 4왕자를 쳐다보았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구나!’하는 눈빛이었다.
다른 형제들은 질투하는 눈빛으로 4왕자를 노려보았다.
“밤길 조심해라. 애송이.”
“어디서 운 좋게 건방을….”
그러나 4왕자는 코웃음치며 무시했다.
“꼬우면 형님들도 하시던가!”
“이 자식이??”
“어디서 건방지게…!”
“그만! 이번 일은 캐인의 공이 컸다. 왕실의 명예를 드높였으니 치하해야 할 일이다.”
“폐하!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번 마계 토벌의 선공을 저 기특한 캐인한테 맡겨보는 게 어떻습니까?”
“뭔 토벌??”
4왕자는 기겁했다.
방금 마계 토벌이라고 하지 않았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하하. 네가 없는 사이 나온 이야기다. 폐하가 중태에 빠진 것은 전부 다 악마들이 흉계를 꾸민 탓! 이 악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황실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랬다.
4왕자가 느부캇네살을 따라 간 사이, 몸을 회복한 국왕은 통치를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히 가장 먼저 할 일은 복수!
원래라면 마계 토벌 같은 건 갈 방법이 없어 망설였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주 잘 자란 세계수가 있지 않은가!
오스턴 왕국은 지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허락 받을 필요도 없었고….
지금 에랑스 왕국은 귀족들과 기사들을 불러, 감히 왕국을 위협한 악마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줄 계획이었다.
악마들이 알면 깜짝 놀랄 역습!
물론 4왕자도 깜짝 놀랐다!
“못하겠지? 못하겠다고 말해라.”
“그… 그건 못하겠….”
4왕자는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비웃고 있는 형제들!
그 모습이 분노를 건드린 것이다.
“…는 건 형들이나 그렇지 저는 다릅니다!”
마음과 혀가 따로 노는 현상.
“폐하! 제게 맡겨만 주십시오. 선봉대를 이끌고 마계로 먼저 가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선봉대의 역할은 마계에 적당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고 본대가 올 때까지 버티는 역할.
물론 매우 매우 매우 위험했다.
국왕도 그걸 알았기에 말리려고 했다.
“네가 그럴 능력이….”
“제게는 매우 뛰어난 기사가 있습니다!”
“아. 그 기사….”
“확실히 업적은 대단하다고 들었지만….”
* * *
“어우. 왜 갑자기 춥지?”
케인은 이상하게 오한이 들었다.
이렇게 더운 땅 밑에 있는데도 오한이 들다니.
“공장에 냉방이 쾌적하게 돌아서 그런 걸수도 있습니다.”
“냉방까지 있다니… 정말 대단한데?”
태현은 감탄했다.
여기 고블린들 정말 대단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뭔가 좀 다른… 으음… 뭐지?”
케인은 이 감각을 설명하기 힘들어서 망설였다.
아! 그래!
‘김태현이 나 써서 뭔가 미친 짓거리 벌일 때 그 느낌이야!’
“…김, 김태현. 지금 계획하고 있는 거 없지?”
“??”
태현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있으면 지금 말해! 그냥 할 테니까 알고나 있게!”
케인은 이제 태현이 명령하면 일단 하고 볼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미리 알려주기라도 해!
“뭔 소리야?”
“저기 장로들의 방에 들어가서 뭔가 하려는 거잖아!”
“아니거든? 얘 왜 이래? 더위를 먹었나?”
태현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모두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