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22화
태현도 매우 당황했다.
지금 이세연과 과거를 잊고 서로 좋은 거래를 하려고 하는데 이게 무슨 훼방이란 말인가.
“난 쟤네들 몰라!”
“…….”
태현이 말했지만 이세연의 눈빛은 이미 반쯤 의심으로 변해 있었다.
슬쩍 뒷걸음질 치는 이세연!
“폐하! 저희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저희는 폐하의 명성을 흠모해서 찾아왔습니다. 폐하만큼 위대한 고블린 영웅도 없으신데!”
[기계공학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고블린들의 호감을…]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 스킬을 갖고 있…]
[……]
[황제 살해…]
[귀족 살해…]
[왕족 살해…]
[하여간 고블린들이 당신을 더럽게 좋아합니다!]
판온 종족들 중, 태현을 가장 좋아하는 종족은 사실 고블린이었다.
기계공학 스킬도 높겠다, 악명도 높겠다, 거기에 마음에 안 들면 매번 터뜨리고 날려 버리는 성질머리!
모든 고블린들의 롤모델이자, 고블린들의 슈퍼스타였다.
‘별로 기쁘지 않아!’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드워프나 엘프와 달리 고블린들이 좋아해 주니 뭔가 찜찜했다.
스스로 살아온 방식에 의문을 갖게 됐던 것이다.
어쨌든 오해는 풀어야 했다.
그래야 이세연을 호구잡… 아니, 이세연과 서로 좋은 거래를 하지 않겠는가.
“난 너희들과 만난 적이 없을 텐데? 그렇지 않나?”
태현은 말하면서 이세연을 힐끗 봤다.
‘봤지? 난 얘네들과 모르는 사이야!’
이세연은 그 모습에 더욱 수상쩍어졌다.
‘저 자식 진짜 알고 있던 사이 아냐?’
이세연의 눈빛을 본 태현은 다급히 말했다.
“이세연, 잘 생각해 봐! 내가 이걸 미리 준비했다는 게 말이 되냐? 네가 황제 될지도 모른다는 걸 예측해서 고블린들을 설득해서 준비한다는 게?”
이세연은 설득을 듣고 넘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잠깐. 너라면 할 거 같은데.”
태현이라면 할 것 같다!
‘젠장!’
태현도 반박할 수 없었다.
솔직히 할 법한 짓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아닌데!
“다음에 이야기하자!”
팟!
이세연은 혹시 기습이라도 당할까 봐 재빨리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상황을 잘 모를 때는 일단 도망치는 게 제일!
“안 돼…!”
혼자 남은 태현은 비통한 표정으로 슬퍼했다.
호구 잡을 수 있었는데!!
“폐하. 방해꾼도 사라졌으니 이제 저희와 이야기를… 컥!”
태현은 고블린의 멱살을 잡고 성벽 가장자리로 밀어붙였다.
확 떨어뜨려 버릴라!
“이 자식들… 내가 지금 무슨 거래를 하려고 했는데 감히…!”
“켁, 켁! 폐, 폐하! 왜 이러시는….”
“몰라서 묻냐!? 너희 아키서스 교단 소속이지? 아키서스 교단 소속 같아!”
태현한테 호감 있고, 일에 훼방 놓는 게 딱 아키서스 교단 NPC 느낌!
“그런 신 모릅니다, 컥컥! 저희는 폐하에게 부탁을 드리려….”
이러다가 진짜 말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고블린들은 벌벌 떨며 설명을 시작했다.
지하 연합 고블린!
드넓은 아스비안 제국의 외곽 사막에 머무르는 세력이었다.
원래는 아스비안 제국의 노예들이었지만, 귀족 주인들을 공격하고 반란을 일으켜 탈출한 고블린들!
그래서 그런지 아스비안 제국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몰라 두려워했고, 아스비안 제국을 매우 경계했다.
우이포아틀 부활 소식에 가장 기겁한 것도 그들!
태현이 잡지 않았다면 자기들끼리라도 암살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웬 영웅이 나타나 우이포아틀을 잡아버린 것!
고블린들은 매우 매우 기뻤다.
그러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우이포아틀의 뒤를 이은 새 황제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 지하 연합의 고블린들은 결심했다.
그 영웅을 도와 황제의 목을 따자!
“…렇게 된 거였습니다. 켁켁 제발 목 좀 놔주시면….”
<황제 살해자의 주인–지하 연합 고블린 세력 퀘스트>
아스비안 제국의 횡포에서 탈출한 지하 연합 고블린들은 언제나 제국의 습격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 고블린들에게 우이포아틀의 부활은 공포 그 자체!
고블린들은 우이포아틀도 죽일 수 있는 마검 <황제 살해자>를 만들어 황제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고블린들은 <황제 살해자>의 진정한 주인을 찾아냈으니,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지하 연합 고블린들을 도와 <황제 살해자>를 손에 넣어라!
퀘스트 등급: 전설
“!!!”
태현은 순간 망설였다.
사실, 퀘스트 자체는 아주 좋은 축에 속했다.
원래 저런 퀘스트는 태현이 직접 찾아가서, 저들의 시험을 통과하고, 공적치 포인트를 쌓아가야 나오는 매우 희귀한 퀘스트였다.
게다가 전설 등급 퀘스트라니.
마검 <황제 살해자>가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벌써부터 느낌이 왔다.
‘마검이란 게 좀 거슬리긴 하지만, 적당히 잘 쓰면 되겠지.’
[매우 긍정적인 발상이라고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만약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런 퀘스트를 받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원래 새로 발견된 세력에서 좋은 퀘스트를 받으려면, 귀찮은 잡퀘 수십 개를 해가며 친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태현은 그냥 상대 쪽에서 왔다.
제발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좋은 퀘스트에 지원까지 있는 좋은 기회.
‘후… 이세연 없을 때 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세연 없었을 때 왔으면 서로 행복하게 대화를 끝냈을 것 아닌가!
태현은 아쉬워서 입맛을 다셨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폐, 폐하… 아스비안 제국의 황제들은 전부 다 폭군이었습니다. 새 황제가 올랐으니 주변이 위험합니다! 대륙의 평화를 위해…!”
“하긴, 새 황제도 만만찮게 폭군이지.”
이세연이 사라졌다고 안심하고 뒷담을 까는 태현!
고블린들과는 대화가 통할 것 같았다.
“…우리 근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냐?”
“성벽 밑으로 떨어지면 눈치 못 채지 않을까?”
미다스 길드원들은 수군거리면서 눈치를 봤다.
태현이 그들을 잊어버린 것 같은데 혹시 튀어도 될까?
‘근데 걸리면….’
‘걸리면 아작 날 거 같은데 진짜….’
결국 길드원들은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었다.
물론 태현은 그들에 대해 잊은 지 오래였다.
두고서 다른 퀘스트 하러 떠나버린 것!
* * *
“아니! 으흑흑. 이렇게 떠나게 되다니. 내 마음이 너무 아프군!”
[명성으로 보너스를…]
[화술 스킬로 인해 보너스를…]
[설득이 매우 힘든 상태입니다.]
[설득에 실패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돌아가야 합니다. 폐하.”
파이토스 교단의 성기사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랬다.
느부캇네살 레이드가 끝났으니, 각 교단의 성기사단들은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근처의 언데드들은 여전히 많았지만 이건 요새의 플레이어들만으로도 충분했다.
레벨 400, 500을 넘기는 고위 성기사들이 할 만한 일이 아닌 것!
어서 한시라도 빨리 중앙 대륙으로 돌아가 다른 음모를 막아야 했다. 대륙은 넓고 성기사들이 막아야 할 사악한 악당들은 많았다.
그러나 태현은 성기사단이 너무너무 아까웠다.
느부캇네살이나 우이포아틀한테는 밀렸지만 그건 둘이 너무 괴물이라 그런 거고, 솔직히 성기사단 하나만 있어도 지금 어지간한 랭커들은 그냥 짓밟아버렸다.
호랑이 없는 곳에는 여우가 왕!
이세연도 성기사단 2개만 붙이면 무조건 도망칠 것이다. 게다가 상성도 최악이었으니….
“앗. 폐하. 그러면 빚진 걸 갚는 걸로 이 요새에 한동안 머무를 수는 있….”
“잘 가게!”
“…….”
“…….”
성기사들이 명예를 걸고 한 맹세.
이런 곳에 쓰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태현은 곧바로 태도를 바꿔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자 성기사단장과 대주교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파이토스 교단의 성기사단장이 매우 안달 나는 표정으로 말했다.
“폐하. 대체 뭘 시키시려고….”
적당히 좀 하고 끝내자!
솔직히 파이토스 교단의 성물 중 하나를 달라고 해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디서 감히 교단의 성물을!’이라고 반응했겠지만….
태현이라면 ‘어? 저 간웅 상대로 교단의 성물이라니 싸게 먹힌 거 아닐까?’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겠네.”
“폐하, 저희 교단 성물 중 좋은 게 나왔는데 좀….”
“하하. 남의 교단 성물을 어떻게 받겠나. 마음만 받지.”
“…….”
성기사단들은 시무룩해져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요새… 어차피 플레이어들이 엄청 많아서 괜찮긴 한데.’
지금 모래의 심장 사막 앞에 설치된 <만신전의 요새>는 판온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장소 중 하나였다.
새로 생긴 사냥터는 원래 인기가 폭발적이게 마련.
거기에 <만신전의 요새>는 이번 느부캇네살 레이드로 인해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졌다.
꼭 사냥하러 오지 않아도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많을 정도!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제작 직업 플레이어들이 몰려오고, 그 효과로 플레이어들이 더 몰려오고….
이런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사막 근처의 요새에 이렇게 사람이 몰릴 줄이야.
‘잠깐. 이거 생각해 보니까 이세연한테도 좋은 일이잖아?’
물론 태현도 요새로 인해 짭짤하게 벌고 있었지만, 이렇게 요새가 인기 많아지면→근처 마을도 사람 많아지고, 길도 좋아지고→아스비안 제국의 상태도 좋아진다!
‘후. 세상일이란 게 참 마음대로 되는 게 없군.’
[카르바노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100을 얻어도 1을 이세연에게 주기 싫어하는 저 옹졸한 마음!
진짜 화신 맞아?
“선배. 그런데 너무 왕국을 오래 비우는 거 아닌가요?”
유지수가 괜찮냐는 듯이 물었다.
다른 랭커는 자기 캐릭만 올리면 됐지만, 태현은 직업 퀘스트를 하면서 영지까지 신경 써야 했다.
근처에 적이 너무 많았던 것!
그러나 태현은 자신 있었다.
“한동안은 괜찮아.”
위쪽 오스턴 왕국의 길드 동맹은 쪼개지더니 미다스 길드랑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아탈리 왕국의 귀족들은 남부 빼고는 전부 다 충성충성충성을 맹세한 상태.
즉 한동안 위험할 상황은 없는 것!
그나마 변수가 있다면 세계수로 타고 내려올 악마겠지만, 악마들도 하도 당했으니 한동안은 오지 않을 것이다.
‘어라? 그런데 이런 건 보통 이다비가 묻지 않았나?’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주의사항 같은 건 언제나 이다비가 체크해 주고 있었다.
“이다비는?”
“언니는… 음… 고민할 게 많으신 듯….”
“파워 워리어 길드에 문제 있나? 하긴. 거긴 문제없으면 이상하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누명!
물론 평소에 맨날 문제만 일으켜서 이다비의 속을 썩이긴 했지만…!
“그, 그렇죠. 언제나 파워 워리어가 문제네요!”
유지수는 당황해서 화제를 돌렸다.
미안 파워 워리어!
* * *
“우리가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 어! 학습 능력이 없냐! 아이고!”
“…….”
“우리한테 뭐라고 했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겁쟁이라고 했었나? 김태현한테 쫄았다고 했었나? 응?”
길드 동맹 출신 미다스 길드원들은 매우 신이 났다.
원래 세상에서 제일 신이 날 때 중 하나가 바로 ‘내가 뭐라고 그랬어!’라고 말할 때!
분명히 김태현하고 엮이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느부캇네살 퀘스트에 따라가서 뭐라도 챙겨보겠다고 하다가 망신만 당하고 온 것이다.
“그만해.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정의를 구현하는 중이지. 우리의 경험과 연륜을 무시했겠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망신당하고 온 랭커들은 이를 갈았다.
김태현보다 저 깐족거리는 놈들이 더 밉다!
“이렇게 망신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길드 차원에서 대응을!”
망신당한 랭커들은 외쳤다.
체면을 되찾기 위해서는 다 같이 복수하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길드 동맹 출신 길드원들은 극렬히 반대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그건 안 된다!”
“우리가 말릴 때 그렇게 무시하더니, 또 또 사고 치려고!”
누가 보면 태현이 심어 놓은 스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