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19화
-취이익, 네놈!
“…누구였더라?”
[…….]
-…….
창살 안에 갇혀 있던 오크도, 카르바노그도 당황스러워했다.
설마 기억을 못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니, 진짜 누구였지? 혹시 우리 아버진 아니지?”
-취익, 이 죽일 인간 놈! 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
“휴. 날 보고 화내길래 혹시나 했네. 그러면 누구냐?”
태현이 잡은 오크가 한둘이 아니라서 다 일일이 기억할 수가 없었다.
-취익, 난 정당한 오크 대족장의 후계자, 카자크다!
“카자크? 어… 음… 잠깐만. 누구더라 걔가?”
태현은 이다비한테 귓속말을 보냈다. 이다비가 금방 답을 보냈다.
-태현님이 케인 씨가 잡았다고 떠넘긴 그 오크 대족장 아들 아니었나요?
-아! 맞다! 그런 일도 있었지!
판온 초반에 있었던 추억의 일!
태현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시비를 걸어오던 PK 플레이어 케인에게 오크 대족장의 원한을 떠넘겼던, 즐겁고 유쾌했던 일이었다.
물론 태현한테만!
케인은 그것 때문에 길드가 박살 나고 게임 생활이 박살 났었다.
태현은 미안한 표정으로 카자크를 위로했다.
“미안하게 됐군. 네가 너무 미미해서 잊고 있었어.”
-취… 취익! 죽여 버린다! 내 아버지가 네놈에게 피의 복수를 할 것이다!
“어… 음… 그게….”
태현은 말을 더듬었다.
오크 대족장 카라그도 잡았다는 말을 하면 더 화를 내려나?
-취익! 듣고 있나! 아키서스의 쓰레기 놈!
“음. 그래 그래.”
태현은 못 들은 척 하고 다음 감옥으로 건너갔다.
대충 눈치를 챘는데, 여기는 태현이 잡았던 보스 몬스터들이 있는 공간 같았다.
<아키서스의 영혼관>
아키서스는 자신의 왕국에 쓰러뜨린 적들의 영혼을 가둬놨습니다. 진정한 화신이라면 이 영혼의 힘을 빌릴 수 있을 것입니다.
‘빌리는 게 아니라 뺏는 거잖아….’
[그게 바로 아키서스식 화법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렇게 말한다고 의미가 달라지진 않거든?’
물론 뺏어서라도 쓸 거지만!
하지만 뺏더라도 카자크의 능력을 뺏진 않을 것이다.
솔직히 이제까지 쓰러뜨린 보스 몬스터 중 카자크는….
‘제일 약한 편이지. 음음.’
카자크는 지금 나와도 1:1로 잡을 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아키서스의 권능 스킬들은 대체로 쿨타임이 엄청나게 길었는데, 그런 걸 감수하고 쓰기에는 카자크는 너무 약했다.
쓸 거면 좀 강한 놈이 좋다!
-쿠오오오….
“앗! 넌…!”
태현은 감옥 안에 있는 놈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의 괴수!
얘가 누구더라?
[…하나라도 좀 기억해달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아. 사디크 교단이 키우던 불의 마수구나!”
태현은 무릎을 치며 외쳤다. 불의 마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척 올렸다.
-쿠오오!
“녀석. 내가 넌 기억하고 있지.”
태현이 영지를 갖게 된 계기!
골짜기에 숨어 있던 사디크 교단이 국왕 암살에 실패하자 정체를 드러내고, 왕국군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카드가 바로 이 <불의 마수>였다.
물론 계획은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태현 때문에 불의 마수는 폭주해서 사디크 교단을 날려 버렸던 것이다.
엄지를 올리던 불의 마수는 문득 태현이 자길 잡았다는 걸 깨달았는지 화를 냈다.
-쿠어어!
“아니. 진정하라고.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지금 사디크 교단의 주인은 나니까 화해하자.”
-쿠어! 쿠어!
“음. 나중에 다시 와야겠군!”
불의 마수가 설득될 거 같지 않자 태현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앗… 넌…!”
-오랜만이군.
품위 있어 보이는 귀족이 감옥 안에 있었다.
“마르덴 후자ㅇ… 아니, 후작!”
-…….
“근데 넌 별 가치 없잖아.”
태현은 마르덴 후작은 그냥 넘어갔다.
솔직히 불의 마수랑 달리 마르덴 후작은 힘 빌릴 가치도 없다!
뱀파이어의 능력?
핏빛 군도의 뱀파이어들이나 살라비안 교단, 토왕이의 힘을 빌리면 빌렸지, 뭐하러 마르덴 후작의 힘을 빌리겠는가.
-이… 이 건방진 놈! 당장 돌아오지 못할까!
마르덴 후작은 자기가 무시당했다는 충격에 고함을 질렀지만 태현은 이미 넘어간 뒤였다.
마르덴 후작의 가치는 솔직히 차고 있던 가면이 전부!
그 가면은 아마 게임 접을 때까지 쓸 것 같았다.
휙-
-!
태현이 문득 생각난 게 있어 갑자기 돌아오자 마르덴 후작은 깜짝 놀랐다.
진짜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역시 내 힘이 필요한….
“그런 건 아니고, 혹시 후작. 숨겨놓은 재산 같은 건 없나? 나한테 기부 좀 해주면 내가 대륙을 위해 잘 쓰도록 하지.”
-꺼져!!!
“쯧. 쪼잔하긴.”
태현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고 넘어갔다.
그 다음은….
“에다오르!? 아니, 넌 마계에 있어야 하지 않냐?!”
태현은 에다오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이다비를 만난 것도 에다오르가 있던 아발랍 시였었다.
거기 투기장에서 있었던 일이 만남의 시작!
‘흠. 거기 뭔가 좀 다른 놈들도 있었던 거 같은데… 길드 동맹이랑… 길드 동맹 부하랑… 변태 같은 길드명을 가진 성기사 애들이랑… 뭐, 별로 안 중요하지.’
-나는 네가 붙잡은 에다오르의 일부다.
[에다오르의 영혼은 완전히 가둬지지 않았습니다.]
[에다오르의 힘은 완전히 사용할 수 없습니다!]
“오. 마계 가서 나머지 잡으면 여기 채워지나?”
마치 포X몬 하는 것처럼 가볍게 물어보는 태현!
에다오르는 이를 갈며 외쳤다.
-마계로 와봐라, 아키서스의 어린 화신 놈! 네놈을 찢어발긴 다음 마계의 가장 어두운 바닥에 못박아놓을 테니까!
“말이 너무 심하군. 다음.”
-말도 안 돼! 내가! 내가 이런 하찮은 화신의 감옥에!
“어… 넌 진짜 누구냐?”
태현은 처음 보는 얼굴에 당황했다.
뭔가 괴수 같이 생겼는데 너무 낯설었던 것이다.
-날 잊었다니! 내가 바로 모든 화신의 절망! 모든 교단의 죽음! 신 잡아먹는 괴물이다!
“아…! 그랬었지!”
신 잡아먹는 괴물!
모든 교단들이 잡기 위해 원정대를 꾸렸지만, 사실 임팩트는 별로 없었다.
태현이 상대가 변신하기도 전에 오리하르콘 화살을 머리에 쏴버린 것이다.
“음. 근데 너 강한 거 맞냐?”
-…!!!!
“네가 있던 던전이야 쏠쏠했지만 정작 너하고 붙어보진 않아서… 일단 너도 보류다.”
다음은 사디크 교단의 대주교와 성기사단장이었다. 둘은 사이 좋게 같은 감옥에 있었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나?”
-무슨 개소리를…!
-저 주둥아리를 확!
“아니면 말고. 어쨌든 너희 능력은 대충 아니, 잘됐다. 나중에 필요하면 부를게.”
-네놈한테 영원한 화염의 저주가 있으리라!
둘 다 무난하게 능력 좋은 놈들이라, 언젠가 화염이 많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저 둘의 능력을 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아. 넌 기억하지. 갈르두. 오랜만이야.”
-네놈을 바다 밑에 처박았어야 했는데!
대해적 갈르두.
태현을 만만한 부하 해적으로 보고 쫓아다니다가, 역습을 받아 죽은 비운의 대해적이었다.
참고로 갈르두가 갖고 있던 사기적인 체력 회복 목걸이는 케인이 쓰고 있었다.
“네 목걸이는 내가 안 쓰고 있으니까 나한테 화내지 말고 케인한테 화내는 게 어때?”
갈르두는 대답 대신 세상에서 가장 모욕적인 손짓을 보냈다. 태현은 살짝 상처받았다.
“다음은… 아. 살라비안 교단의 떨거지들이네. 넘어가야지.”
-개 같은 놈아!!!
살라비안 교단 대주교와 도미닉은 분노해서 저주를 퍼부었다.
그냥 넘어가는 게 더 굴욕적이었다.
“너희들도 사디크 교단 비슷한 놈들이라… 나중에 필요하면 부를게.”
다음은 카라그였다.
생전에 악마의 피에 오염된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멀쩡한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카라그는 만나자마자 화끈하게 무기를 집어 던졌다.
쾅쾅쾅쾅쾅!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나갔다.
아, 사람들은 왜 과거를 떨쳐 보내지 못하는 걸까?
[…….]
그 다음의 감옥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거대한 감옥.
그 안에서 뱀 같은 눈동자를 뒤룩거리고 있는 것은 블랙 드래곤 학카리아스였다.
[현재 학카리아스의 힘을 빌리기에는 힘이 너무 약합니다!]
[억지로 빌렸다가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음. 뭔지 몰라도 미친듯이 무섭군!’
학카리아스가 몸을 뺏기라도 하나?
생각만 해도 좀 섬뜩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현재 우이포아틀의 힘을 빌리기에는…]
[현재 느부캇네살의 힘을 빌리기에는…]
남은 감옥의 자리는 둘.
가장 최근에 들어온 우이포아틀과 느부캇네살을 위한 자리였다.
물론 학카리아스처럼 경고 메시지창이 떴다.
무시하고 빌리면 X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창!
‘불의 마수, 에다오르, 사디크 교단 NPC, 살라비안 교단 NPC, 갈르두, 카라그. 신 잡아먹는 괴물. 이 정도군.’
태현은 쓸 수 있는 카드를 정리했다.
물론 이 NPC들의 힘을 전부 사용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만 사용해도 충분히 이득!
‘신 잡아먹는 괴물이나 에다오르를 많이 써야 할지도.’
교단 퀘스트나 마계 퀘스트.
이 두 개는 태현이 하고 싶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올 부류의 퀘스트였다.
태현이 벌린 일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 두 가지 퀘스트를 생각해 보면 저 둘이 꽤 요긴할 것 같았다.
‘문제는 <신 잡아먹는 괴물> 스펙을 내가 잘 모르는데… 신성력 상대로 뭐 보너스라도 있나?’
도박도 자기 전력을 파악하고 해야 할 만한 도박이지, 뭔 능력인지도 모르고 쓰는 건 도박이 아니라 자폭이었다.
-스킬 취소.
그러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1초도 지나지 않은 상태!
‘어쨌든 생각보다 좋은 스킬을 얻었어.’
태현은 영혼관에 만족했다.
이제까지 태현이 해온 것들이, 태현의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모두가 내 등을 밀어주고 있다!
[그렇게 감동적인 이야기로 정리할 게 아닌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약탈이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음 계획을 고민했다.
‘에다오르를… 완전히 가둬버리면 좋겠는데….’
강한 보스 몬스터를 잡을수록 영혼관이 풍성해진다!
의욕을 솟구치게 만드는 스킬이었다.
* * *
“태, 태현 님. 저 상인인데….”
“괜찮아. 요즘 트렌드는 하이브리드 직업이야. 마법도 하고 검술도 하고 요리도 하고 기계공학도 하는 직업처럼.”
“…….”
이다비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느부캇네살의 장비를 받았다.
느부캇네살이 잡히고 나자 [느부캇네살이 패퇴했습니다! 죽음의 황금상인으로서 느부캇네살을 섬길 필요 없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잘 먹고 잘사십시오!]란 메시지창이 나왔다.
그래서 다 잘 풀린 줄 알았는데, 태현이 갑자기 ‘이다비! 넌 느부캇네살 교단을 이끄는 거야!’라며 제안을 해온 것이다.
이다비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아니….
평생 상인 직업이었는데 사제를 하라니…!
“확실히 균형이 맞긴 하겠는데.”
최상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케인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뭔 균형?”
“우리 파티는 사제가 없었잖아.”
태현이 신성 가득한 직업이긴 했지만, 사제한테 기대하는 힐러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다.
파티원을 보호하긴 해주는데….
적을 먼저 죽여서 파티원을 보호해 주는 사제!
케인 같은 경우는 회복력이 좋고, 정수혁과 유지수는 아예 후방에, 이다비와 최상윤은 각자 방어 수단이 있어서 그나마 굴러가는 거였지 원래는 이런 파티 구성을 취하지 않았다.
보통 사제 한 명은 있는 게 정상!
케인은 그 설명을 듣고 떨떠름하게 물었다.
“…느부캇네살 교단 사제는 사제보다는… 흑마법사에 가깝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