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17화
한 대, 두 대, 세 대….
태현은 집요하게 약점을 노리고 노렸다.
한 손으로는 검을 잡고 약점을 찔러댔고, 다른 손으로는 폭탄을 꺼내 계속 터뜨렸다.
회피력을 믿고 오로지 공격에 올인!
[검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장비가 죽음의 기운으로 부식됩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크게…]
장비 중 몇 개가 파손될지도 모른다는 메시지창이 있었지만, 태현은 끝까지 집중을 잃지 않았다.
‘스킬 레벨아 올라라!’
결국 먼저 무너진 건 느부캇네살이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 이 내가! 이 내가!!
느부캇네살의 몸이 천천히 산산조각이 나며 주변으로 검은 기운이 미친 듯이 콸콸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피해! 일단 피해!!”
상황도 잊고 태현과 느부캇네살의 혈투를 구경하던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파아아아앗!
느부캇네살은 먼지가 되어 흩어져 내렸다.
[죽음의 반신, 느부캇네살을 쓰러뜨렸습니다!]
[느부캇네살의 권능을 얻었습니다.]
[대륙에 남은 신 중 하나를 쓰러뜨렸습니다. 이는 아키서스의 이름을 알린 위대한 업적입니다!]
[아키서스의 권능을 얻었습니다!]
[스킬 <아키서스의 영혼관>을 얻었습니다.]
1+1!
느부캇네살의 권능에 아키서스의 권능까지.
진짜 이렇게 개고생을 한 보람이 있었다. 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퀘스트는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느부캇네살을 잡는 데에 공헌도가 낮습니다.]
[얻는 경험치가 매우 줄어듭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레벨 업x8!
우이포아틀과 마찬가지로, 태현의 공헌도가 평소보다 훨씬 낮은 편인데도 어마어마한 경험치가 흘러 들어왔다.
아마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20, 30씩 레벨 업 한 사람들도 흔할 것이다.
‘레벨 176!’
어느새 레벨이 200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 올리는 데 드는 경험치를 생각해 보면 그건 바라보는 게 아니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시끄러….’
메시지창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대륙을 위협할 최악의 위기에서 대륙을 구해냈습니다! 아탈리 왕국에 1년 동안 추가 효과가 들어갑니다.]
[아탈리 왕국은 <영웅의 왕국>으로 알려집니다.]
[대륙의 각 교단들이 가진 원한이 초기화됩니다.]
‘오오…!’
태현은 감탄했다.
이런 좋은 시스템이 있나!
다른 교단에 가서 아키서스하고→느부캇네살 소환하고 잡아서 초기화하고→무한반복하면?
[…카르바노그가 제발 미친 짓 하지 말라고 설득합니다.]
운 좋게 초기화됐으면 앞으로 설득해서 잘 해나갈 생각을 해야지 또 원한을 쌓을 생각을 하고 있냐!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검술 스킬이…]
[기계공학 스킬이…]
[마법 스킬이…]
‘윽. 최고급은 실패군.’
그렇게 때렸는데도 검술 스킬을 최고급 찍는 데에는 실패했다. 어쩔 수 없었다.
태현의 직업은 검사 쪽 직업이 아니었고, 검술 스킬을 익히는데 보너스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검사 직업이 아닌데 최고급 직전을 바라보는 태현이 이상한 것이었다.
남들은 검술 스킬을 올려주는 직업 스킬들을 열 몇 개씩 달고도 최고급을 못 찍고 있는데….
[느부캇네살의 권능을 얻은 것으로 인해 <고급 마법> 스킬이 <고급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으로 변합니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은 고대 제국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흑마법의 원류입니다. 이 흑마법을 사용할 경우 흑마법사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존의 마법 스킬들이 전부 사라집니다.]
“어????”
태현은 무심코 소리를 냈다.
이게 무슨….
아키서스의 화신으로 강제 전직 당했을 때만큼이나 충격적!
‘잠깐. 생각해 보니 그렇게 손해는 아니네.’
언령 스킬은 화술 스킬에 들어가 있었고.
마법 스킬들은 의외로 별로 없었다.
<언데드(망령) 소환>, <혈마법>, <악마 소환>, <어둠의 화살> 등등.
이 정도가 전부!
솔직히 이 정도면 잃어도 눈물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느부캇네살의 흑마법이 더 궁금했다.
고대 제국에서부터 알아주는 마법사였으니 분명 대단하겠지?
<고대 제국의 언데드(랜덤) 소환>
<고대 제국의 저주(랜덤)>
“…??”
태현은 눈을 깜박였다.
어? 이게 다야?
[카르바노그가 사기당한 거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아, 아니야. 뭔가 다르겠지. 봐! 언데드(망령)인데 언데드(랜덤)으로 늘어났잖아!’
[…….]
카르바노그가 안타깝게 쳐다봤지만 태현은 포기하지 않았다.
뭔가 다를 거야!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
‘근데 느부캇네살 완전히 맨몸이었던 거 같은데 의미가 있나?’
우이포아틀과 달리 느부캇네살은 크게 기대가 되진 않았다.
부활할 때부터 맨몸이었던 것이다.
잡아봤자 얻을 수 있는 게….
‘흠. 우이포아틀이나 느부캇네살의 뼈가 있겠군.’
카르바노그도 오싹해할 만한 아이디어!
‘뼈를 잘 고아서 곰탕이라도 끓이면 완전 보양식이겠는걸.’
다행히 그런 아이템은 아니었다.
<죽음의 반신의 낡은 지팡이>와 <죽음의 반신의 낡은 반지>!
‘내구도도 그렇고 성능도 딱히 좋아 보이진 않는데? 뭐지? 숨겨진 옵션이 있나?’
태현 정도 대장장이한테 안 보이는 옵션이라면 마법사 쪽 옵션일까?
아니, 태현은 마법도 고급을 넘었다. 다른 조건일 가능성이 컸다.
[느부캇네살 교단의 성물을 얻었습니다.]
[느부캇네살 교단 건물을 영지에 설치 가능합니다.]
[느부캇네살 교단 대주교가 성물을 착용할 경우 교단의 힘이 늘어납니다.]
‘이건 나중에 다시 확인해 봐야겠군.’
[에랑스 왕국 내 평판이 크게 오릅니다.]
[이번 원정대에 참가한 NPC들의 명성이…]
[에랑스 왕국 4왕자 캐인의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헉. 깜짝이야.’
봐도 봐도 적응 안 되는 이름!
[이 주변에 죽음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맴돌고 있습니다. 정화 퀘스트를 열 수 있습니다.]
[이 주변의 모래를 사용하면 흑마법에 추가 보너스를…]
[이 땅에서 느부캇네살 교단이 추가 버프를…]
‘나쁘지 않군.’
사실 느부캇네살을 소환하고 잡은 다음 다시 느부캇네살 교단을 세우는 게 좀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많이 이상한 짓이라고 정정합니다.]
뭐 어떠냐!
승자의 권리지!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태현이 메시지창을 보고 있는 사이, 요새에 있던 플레이어들까지 모두 몰려나와 태현을 둘러싸고 환호했다.
모두가 ‘정말 할 수 있을까?’하고 의심했던 퀘스트의 대성공!
심지어 생각치도 않았던 아스비안 제국의 황제까지 잡은 퀘스트였다.
“김태현! 김태현!”
“…저거 약 올리는 거 아냐?”
이세연이 외치는 걸 보고 태현은 울컥했다.
이세연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아무리 봐도 ‘황제가 되게 해줘서 고마워!’의 미소였다.
울컥하려는 태현을 다른 일행이 붙잡아 말렸다.
지금 보는 눈이 수십만인데 얌전히 연설하자!
“여러분. 느부캇네살을 잡고 우이포아틀까지 잡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태현의 말에 모두 뭉클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그건 그거고, 언데드들 너무 많으니 언데드들이나 마저 잡죠.”
“?”
“응?”
“아, 아니. 방금 그렇게 싸웠는데?”
“이제 퀘스트 완료를 기념하면서 아이템 같은 거 챙기는 시간 아냐?”
보통 퀘스트 하나 끝내면 휴식을 가지면서 성공에 대해 떠들지 않나?
그러나 태현은 단호했다.
“이 주변은 싹 치우고 해도 늦지 않아! 자, 파티장들 다시 모여!”
태현의 카리스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요새로 가서 쉬려던 파티장들은 얼떨결에 다시 불려왔다.
“파티장님 저 쉬고 싶은….”
“나도 쉬고 싶거든?”
느부캇네살이 소환했다 남긴 언데드들이 드넓은 사막 곳곳에 보였다.
저걸 다 잡아야 하나?
플레이어들은 태현의 눈치를 봤다. 직장 상사가 먼저 퇴근해 주기를 바라는 부하가 된 기분이었다.
* * *
느부캇네살 원정 퀘스트는 대성공이었다.
투기장 리그 시작 전의 화제를 독점해 버린 일등공신!
게시판에서 퀘스트 실패를 예측했던 사람들은 닥치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느부캇네살 레이드 성공하면 게임 접는다는 놈 어딨냐? 나와!
-앞으로 김태현이 퀘스트 한다고 하면 얌전히 ‘예! 따르겠습니다! 충성충성충성!’이라고 하란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진짜 영화 한 편 본 기분이다. 혼자서 느부캇네살 잡는 거 봤지?
우이포아틀이 많이 도와줬지만 이미 죽은 NPC 따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화염 회오리 미리 깔아놓고 성기사들하고 같이 돌격하는데….
-김태현 스킬 진짜 적게 쓰던데, 내가 제대로 본 거 맞나? 우이포아틀 상대할 때도 그렇던데.
-김태현은 스킬 쓸 시간에 한 번 더 팬다!
-근데 우이포아틀 잡은 거, 이세연을 위해서 맞나? 벌써 화제던데.
-그렇겠지? 이세연하고 이야기가 끝난 거겠지.
우이포아틀이 죽고 이세연이 황제 자리를 덥석 받았다는 건 이미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와. 황제 자리를 양보하네. 난 배 아파서 못 할듯.
-김태현이랑 너랑 같냐? 그릇이 달라. 그릇이!
-이제 곧 투기장 리그일 텐데 둘의 대결 기대된다.
-그냥 둘이 같은 팀 하면 안 되나?
-안 됨. 그럼 리그 노잼됨.
-하긴 맞는 말인 듯.
-지금도 해외 사람들이 ‘판온 대회는 전 세계 랭커들이 참가해 한국 팀이 이기는 경기다’라고 말하잖아.
-꼬우면 한국 선수를 더 영입하란 말입니다.
-근데 지금 한국 선수들 솔직히 거품 좀 껴있는 거 같지 않음? 김태현-이세연 때문에 다른 선수들까지 거품 낀 기분인데.
-무슨 소리야 그게?
-혹시 언빌리‘버블’을 말하는 건가?
-아냐. 맞는 말이야. 지금 눈에 띄는 랭커들이나 저번 던전 공략 대회 상위권 선수들 보면… 김태현이나 이세연 같은 선수들 말고 나머지는 다 해외 선수들임. 냉정하게 둘 빼면 선수 없음.
-케인 있잖아 케인.
-케인… 케인도 솔직히 거품 아닌가?
-너 미쳤냐? 케인을 까네. 네가 케인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
-케인이 뭐가 대단한데. 걔 원래는 랭커 축에도 못 끼던 놈이었어!
-아. 누가 더 센지는 나중에 이야기하고. 국내 선수들이 밀리는 건 사실이야. 미국이나 중국 봤음? 그쪽 게임단들 돈 진짜 미친 듯이 퍼붓더라. 그걸 어떻게 따라 가냐? 뭐든 간에 현질이 답이야. 답.
E스포츠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러울 정도로, 미국과 중국은 어마어마한 투자로 한국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었다.
팬들 사이에서도 이미 그 돈X랄은 유명!
-국내에서 투자 많이 하는 게임단 없나?
-유성 게임단 말고는 없지.
-와, 대체 누가 유성 게임단이 한국의 희망이 될 거라고 예상했을까? 십년 전에 유성 게임단이 한국 희망이라고 말했으면 미친 놈 취급 받았겠지?
-유성 게임단 진짜 신기함. 유성 그룹이 원래 게임단 투자 진짜 개같이 안 했거든? 돈도 많으면서 투자 안 하기로 유명했는데 갑자기….
-회장님이 미쳤다는 소문이….
-회장님이 좀 더 미치셔서 스미스 같은 선수 사주셨으면 좋겠다 헤헤.
-말이 되냐. 그냥 판온이 돈이 된다고 판단한 거겠지. 실제로 인기도 최고고.
-국내에서 유성 게임단 말고는… 딱히 없지. 예전보다 훨씬 투자 많이 하긴 하는데 미국이나 중국이랑은 비교할 수가 없고. <상하이 팬더즈> 봤냐? 거긴 아예 거리 하나를 통째로 게임단이 쓰고 있음. 2군, 3군 후보 선수만 수십 명이고. 영상 봐라.
-와… 미친. 진짜 대단하네.
-근데 그러고도 대회에서 성적을 못 낸 거임?
-그건 더 대단한데?
-야. 투기장 리그 시작도 안 했어. 괜히 설레발 떨지 마.
-한국인들은 왜 중국 선수를 얕보는 것입니까? 중국 선수는 세계 제일입니다.
-…얘 말투가 뭔가 이상한데?
-설마….
-맞다. 김태현이 <뉴욕 라이온즈>에 천억 넘게 제안 받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건 진짜 오바 아니냐? 아무리 봐도 헛소문인데.
-아냐. 기사 보니까 꽤 그럴듯하더라.
-와. 천억을 거절해??
-동료들과 같이 뛰고 싶어서 천억을 거절한다고? 그게 말이 됨?
-놀랍게도 그게 말이 됩니다. 그게 김태현이란 말입니다.
-다들 앉아봐라. 내가 이제부터 개쩌는 판온 1때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까.
플레이어들이 감동하는 사이 추가적으로 리플이 달렸다.
-말도 안 됩니다. 돈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중국에서 천오백억 줍니다. 김태현 곧 중국 옵니다.
-야. 누가 얘 좀 차단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