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12화
요새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성기사들은 무심코 대답했다가 당황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예!’가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각 교단에서 뽑혀 나온 정예들.
아무리 태현이 이 요새의 주인이고 이번 원정대의 총지휘관이라지만, 그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는 교단의 주교가 직접 와야 했다.
“주교님께서 오셔서 명령을 내리셔야 합니다.”
“어허! 내가 너희 신이랑 인마! 어! 선택도 받고! 퀘스트도 받고! 권능도 받고! 할 거 다 했어! 너희 지금 너희 신에게 선택받은 날 무시하는 거냐?”
항의하는 파이토스 상급 성기사들을, 태현은 이제까지 해왔던 업적으로 찍어 눌렀다.
파이토스에게 선택 받고, 파이토스 관련 퀘스트도 받고, 파이토스 권능도 훔치고받고….
거짓말은 안 했다!
[파이토스 교단의 상급 성기사들이 당황합니다.]
[……]
[설득에 성공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결국 성기사들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태현의 권위가 너무 높았던 데다가 각종 퀘스트로 인해 받은 것도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이제 길 가다가 상급 이하 NPC는 어지간하면 다 명령 가능할 거 같군.’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중앙 대륙 왕국에 퍼진 교단들은 모두 다 뜯어먹을 수 있다는 자신감!
[파이토스 교단의 상급 성기사단, <천벌의 망치> 부대를 직접 지휘합니다!]
[전술 스킬이 오릅니다.]
[최고급 전술 스킬로 보너스를…]
태현은 돌면서 요새에 나와 있는 성기사단 부대들을 다 지휘 하에 넣었다.
[보너스를 받습니다!]
[명성이…]
‘준비는 끝났다.’
<아키서스의 축복>+<아키서스의 신성 영역>+<아키서스의 기도>.
기본 강화 3종 세트.
거기에 <살라비안의 폭주> 권능까지 쓸 생각이었다.
일정 시간 동안 HP와 HP 회복력,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을 매우 크게 증가시키는 권능!
[살라비안의 권능을 다른 성기사단한테도 써도 되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일단 쓰고 말하자고.’
말하고 쓰면 성기사단들이 반대할 테니 일단 쓰고 말할 생각이었다.
친밀도 좀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
‘성기사단에 이 4종 세트를 걸고 돌격한 뒤, <화염 용오름 소환>을 적진에 갈긴다.’
사디크와 아키서스의 힘이 담긴 화염 회오리는 통제가 힘들었지만 위력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걸 쏟아붓는 난전이 될 것이다.
뒤에 요새에서 강력한 지원이 오겠지만 결국 스스로 해결을 봐야 한다!
‘아키서스 검법부터 시작해서 가진 걸 다 쏟아부을 각오를 해야지.’
태현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앞을 노려보았다.
우이포아틀과 느부캇네살이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마치 신화 시대의 싸움 같았다.
* * *
-이 하찮은 리치 놈!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라!
우이포아틀은 닥치는 대로 창을 휘두르며 소환되는 언데드들을 쓸어내렸다.
느부캇네살의 바로 앞.
느부캇네살의 영역이 가장 강력한 곳이었고, 언데드들은 미친 듯이 쏟아져 내리고 부활했다.
언데드들의 숫자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1초마다 수십 수백 마리가 사방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것도 잡몹이 아닌 하나하나가 정예!
그러나 우이포아틀은 자신의 힘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조금의 데미지도 없이 계속 밀어붙였다.
우이포아틀의 친위대도 우렁차게 언데드들을 쓸어버렸다.
-나와라, 건방진 놈!
콰직!
다시 한번 들어간 공격. 느부캇네살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 구체가 또다시 크게 흔들렸다.
촤르륵!
“!”
“나왔다!”
“지금 갈 거냐? 지금 간다??”
케인이 묻자 태현이 고개를 저었다.
“더 지켜보자.”
느부캇네살이 몸을 드러내자 우이포아틀은 기세가 올랐다.
그러나 그건 느부캇네살을 너무 만만하게 본 착각이었다.
-죽음의 신 앞에 굴종하라!
-시체 놈! 너야말로 무릎을 꿇어라!
느부캇네살이 손가락으로 우이포아틀을 가리켰다.
그러자 흑색 저주가 꿈틀거리더니 사방으로 미친듯이 죽음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와. 오싹하군.’
태현은 그걸 보고 소름이 돋았다.
태현 같은 플레이어는 저런 공격이 꽤 위험했다.
범위 공격+회피 불가능 저주!
우이포아틀은 전설급 장신구 아이템을 사용해 저주를 막아내고 돌진하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부하들은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쐐애애액!
우이포아틀이 던진 창이 느부캇네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콱!
느부캇네살은 그 창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다시 우이포아틀에게 집어 던졌다.
-!!
우이포아틀은 기겁하며 몸을 틀었다. 우이포아틀이 타고 있던 전차가 박살 나고 파편이 튀었다. 우이포아틀은 훌쩍 뛰어 땅에 착지했다.
공격이 스쳤는지 뼈만 남은 왼쪽 옆구리가 박살이 나 있었다.
‘회복이 안 되는군.’
태현은 우이포아틀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했다.
불완전한 부활 상태!
그게 어떤 페널티인가 의아해했었는데, 지금 보니 답이 나왔다.
우이포아틀은 다쳐도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군…!’
다들 숨죽이고 관찰하는 사이 태현은 머릿속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언제 어떻게 치고 들어가느냐!
“그보다 느부캇네살은 왜 근접전도 하지?”
“느부캇네살님은 워낙 위대해셔서 근접전도 잘하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체시자야… 너 우리 편 맞지?”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체시자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 자식이….
그러나 체시자의 말이 맞긴 했다.
느부캇네살은 괜히 반신이 아니라는 듯이, 자신이 왜 강한지 보여주고 있었다.
몸 움직이지 못하는 페널티 정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
느부캇네살은 다시 폭격을 시작했다. 몸을 감싸고 있던 방어를 풀자 느부캇네살의 공격은 더욱더 사나워졌다.
끈적거리는 흑색 죽음의 기운이 사방을 뒤덮고 검은 번개가 내리치며 우이포아틀을 후려갈겼다.
우이포아틀은 차고 있던 장신구와 방어구의 힘으로 버텨내며 돌진하고 있었지만 밀리기 시작했다.
친위대들도 하나씩 쓰러진 것이다.
“좋다! 지금 가자!”
“예?!”
성기사들은 당황했다.
좀 더 기다릴 줄 알았던 것이다.
“이대로 가면 우이포아틀이 죽는다. <아키서스의 축복>!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아키서스의 기도>! <살라비안의 폭주>!”
태현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써버렸다.
“따라 나올 사람은 따라 나와! 목숨 보장은 안 해준다. 자기 목숨은 알아서 챙겨라!”
“…와아아아아아아!”
태현이 한 말은 설득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통 이런 대형 퀘스트 앞에서 리더가 하는 말은 ‘여러분! 저와 같이 가주십시오! 이거 진짜 안 위험합니다! 이거 진짜 날로 먹는 퀘스트입니다!’였다.
그러나 태현은 반대로 갔다.
난 책임 안 져준다!
따라오고 싶으면 알아서 해라!
“나, 나도 간다!”
“지금 안 끼면 평생 후회할 거야!”
그렇지만 요새에 모인 플레이어들에게는 그게 훨씬 더 잘 먹혔다.
요새에서 싸우는 동안 본 화려한 전투들에, 성기사들을 이끌며 준비를 마친 태현.
이 평생 가도 못 볼 대단한 모습에 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망 페널티?
필요 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은 몸 사리는 게 나을지도 몰랐겠지만, 원래 사람은 이성적인 생물이 아니었다.
가끔은 감성이 폭발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럴 때였다.
-무조건 간다!
-지금 안 끼면 사람도 아니다!
요새에 있는 랭커들도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태현의 뒤에 따라붙었다.
지금은 돌격할 때!
모든 방송들이 흥분으로 터져나갔다.
-진짜 돌격하는 건가? 저 상황에서?
-이게 김태현이지! 뉴비들은 모르겠지만 이게 판온 1에서 김태현이….
-할아버지 또 옛날이야기에요? 저리 가요 좀.
-이건 진짜 역대급 퀘스트가 될 거야…!
* * *
두두두두두-
-화염 용오름 소환!
<화염 용오름 소환>은 태현에게도 도박이었다.
일단 MP를 전부 다 써버리고 한동안 회복이 되지 않는 게 치명타였다.
-데메르의 시간 되돌리기!
태현은 아껴놨던 권능들을 닥치는 대로 사용했다.
눈앞의 보스 몬스터는 그럴 가치가 있다!
‘쿨타임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한 번 더 가능하다.’
아키서스 관련 버프들이 끝나는 즉시 한 번 더.
살라비안 버프는 중첩으로 한 번 더!
성기사단들도 기본 레벨이 500, 600은 되는 NPC들. 태현이 버프를 걸어준다면 느부캇네살의 앞에서도 버티면서 싸울 수 있는 강자들이었다.
콰르르르르르-
“저… 저게 뭐야!”
느부캇네살의 대군 가운데에 화염 회오리가 솟구치고 주변을 다 쓸어버리고 태워버리자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마법사 랭커들의 단체 마법도 뛰어넘는 강력한 대마법!
저걸 김태현이 불렀단 말인가?
-아니 김태현은 대체 저걸 어떻게 부른 거야?
-직업이 마법사도 아니잖아?! 아키서스가 화염의 신도 아니고….
-진짜 김태현 얼마나 숨기고 있는 게 많은 거지??
방송의 모든 플레이어들이 경악했다.
공격을 그냥 돌격이 아닌 대마법으로 시작할 줄이야!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마법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사디크의 권능 스킬들이 모두 더 강력해집니다.]
[아키서스의 권능…]
[에랑스 왕국 마탑의 화염학파 마스터, 플레밍이 이 광경을 보고 감격합니다!]
[플레밍이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을 결정합니다!]
[지금부터 아탈리 왕국에 마탑을 건설 가능합니다.]
마도의 탑:
건설 비용-최소 100만 골드
대륙의 마법사들을 길러내는 마도의 탑은 마법 기술의 결정체나 다름없다.
우뚝 솟은 탑은 마법의 위력을 올려줄뿐만 아니라 수많은 마법사 지망생들을….
…….
이 마도의 탑이 완전히 기능하기 위해서는 각 학파의 마스터 역할을 해줄 대마법사들이 필요하다.
현재 확보된 대마법사: 화염학파의 플레밍.
‘음. 좋다 말았네.’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는 건설 비용!
저걸 지으려면 태현은 김태산의 진짜 빌딩을 몰래 훔쳐서 팔아야 했다.
건설 비용을 줄이는 꼼수가 있긴 했지만 저건 조금 줄인다고 달라질 건 없어 보였고….
[카르바노그가 앞에 보라고 비명을 지릅니다!]
‘보고 있어. 걱정하지 마.’
-주인이여! 조심해라!
용용이가 태현을 태우고 날아가며 번개를 내뿜었다.
카르바노그나 용용이가 보기에 태현은 간이 배 밖에 나온 사람이었다.
지금 앞에 데스나이트들이 태현만 노리고 창을 찔러오는데 한눈을 팔고 있다니!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이미 버프는 잔뜩 걸어둔 상태.
마음껏 공격을 폭발시키면 됐다. 태현은 용용이 위에서 몸을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데스나이트의 창이 태현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고 태현의 검이 그대로 데스나이트의 투구를 찔러버렸다.
[연속 공격이 성공…]
[아키서스 검법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와아아아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가장 앞에서 파도 가르고 들어가는 태현의 모습에, 모든 플레이어들이 열광했다.
지금 우리는 판온의 최강 플레이어를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세연마저 홀린 듯 지켜볼 정도였다.
“언니! 언니! 제정신 차려요. 저거 언젠가는 적이에요!”
“아… 아직은 아니잖아.”
“판온 1에서 그렇게 호구짓 해놓고!”
김현아가 이세연의 뺨을 때리며 정신 차리게 할 정도!
태현과 성기사단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느부캇네살의 버프를 받은 언데드 군단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훨씬 앞에서는 화염 회오리가 휩쓰는 중이었다.
-근데 진짜 저 마법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잘 싸울 수가 있지?
-분명 숨겨둔 스킬이나 장비가 있을 거야.
-혹시 저 회오리 통제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런 불완전한 스킬을 쓰겠냐! 김태현 같은 완벽주의자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