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11화
‘1회용일 줄 알았는데.’
태현은 이 요새를 한 번 쓰고 다시 안 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의외로 이 요새가 오래 갈 것 같았다.
이 주변에 쉴 수 있는 마을은 여기밖에 없다!
사냥하다가 쌓인 잡템 처리도, 잠깐 와서 회복도, 다 어디 가서 하겠는가.
[세금! 세금!]
‘아니. 그건 너무 먼 이야기고.’
태현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세금은 걷지 않더라도 여러 방법으로 돈을 뽑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야! 야!”
“?”
이세연이 태현을 붙잡고 앞뒤로 흔들었다.
“뭐야. 왜. 세금 내게?”
“무슨 소리야? 저기 멀리서 오고 있잖아.”
이세연은 저 멀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 끝에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누군가가 오고 있었다.
우이포아틀이었다.
-김태현! 네놈을 좋게 봐줬는데!
“그렇군. 환영인사 발사!”
태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키서스 포병대는 장전을 마치고 발사했다.
콰콰콰쾅!
아키서스 포병대 중에서는 사막 부족 출신들이 많았다.
황제 우이포아틀을 싫어하는 이들도 꽤 있었던 것!
-건방진 것들이!
우이포아틀은 전차 위에서 거대한 창을 휘둘렀다. 금강저처럼 생긴 창이 휘둘러지자 사방에 벼락과 폭풍이 몰아치며 폭탄이 튕겨나갔다.
“오오…!”
태현은 그걸 보고 감탄했다.
저 아이템, 꽤 괜찮아 보인다!
-나와라, 이 사기꾼 놈! 내 손수 네놈을 찢어발겨 주겠다!
[우이포아틀이 <황제의 외침>을 사용합니다!]
[아스비안 제국 귀족군의 사기가 크게 오릅니다!]
[아스비안 제국…]
[……]
[만신전의 요새가 사기 저하를 막습니다!]
[만신전의 요새가…]
만신전의 요새는 만만찮게 사기적이었다.
느부캇네살의 언데드 군세를 그냥 녹여 버렸듯이, 우이포아틀의 외침도 그냥 무시해 버렸다.
아무 효과도 없자 우이포아틀은 더더욱 발끈했다.
-귀족 전사대! 김태현 놈의 목을 잘라라!!
물론 아무 효과도 없었다.
이럴 줄 알고 귀족 전사대를 저 멀리 보내놨던 태현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걸 모르는 우이포아틀은 당황했다.
왜 귀족 전사대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지?
“우이포아틀! 귀족 전사대가 아직도 네 편일 거 같냐!”
태현은 이 때다 싶어서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귀족 전사대는 내가 너무 존경스러워서 편을 갈아타기로 했다! 너처럼 제대로 부활도 못한 놈은 황제로 모시기 싫단다!”
-헛소리 하지 마라, 네놈!
“왕관도 못 찾아서 빌빌대는 놈이 뭐가 좋다고!”
[우이포아틀을 도발합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아스비안 제국 내에서 현상금이 최대치로 오릅니다!]
[아스비안 제국의 드래곤 관련 단체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죽은 용 알렉세오스가 당신의 의기에 감동합니다!]
[……]
“네가 보낸 귀족 놈들이 왜 소식이 없겠냐. 다 널 배신한 거다!”
자기가 던전에 가둬놓고 뻔뻔하게 외치는 태현.
우이포아틀 입장에서는 흔들리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두두두두-
“응?”
태현은 당황했다. 왜 말발굽 소리가 요새 앞에서 나지?
그 답은 금방 나왔다.
몇몇 플레이어들이 기세가 올라서 뛰쳐나간 것이다. 태현은 외쳤다.
“그냥 돌아오는 게 나을 텐데?”
“헉. 김태현이 부른다.”
“못 들은 척해. 못 들은 척해!”
‘랭커들이잖아?’
태현은 나간 플레이어들의 장비를 보고 대충 레벨을 짐작했다. 고렙은 넘는 장비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플레이어들이면 모를까 랭커들이 나갔다는 건, 이미 계산이 끝났다는 이야기였다.
‘욕심부리는군.’
“멍청하긴….”
이세연도 중얼거렸다.
그녀도 랭커들이 나가는 걸 보고 속셈을 깨달은 것이다.
느부캇네살이 안 쳐들어오고 싸움이 대충 마무리된 것 같자 욕심을 부리는 것!
느부캇네살 상대로 가장 먼저 데미지 좀 주고, 유리하면 요새에서 지원받으면서 계속 싸우고, 불리하면 요새로 도망치면 된다.
그런 계산을 한 게 분명했다.
“그런 게 통할 거면 내가 우이포아틀을 먼저 잡았겠지.”
이세연의 말에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 성격에 그냥 두고 볼 리 없지.”
“…맞는 말이긴 한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쁠까? 응?”
우이포아틀과 휘하 친위대는 달려 나오는 랭커들을 보고 눈을 번쩍 떴다.
-밟아버려라!
전차를 몰고 돌진하는 우이포아틀!
거기에 맞서는 랭커들!
“시청자 숫자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가자!”
랭커들은 물러서지 않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퍽!
[HP가 0이 되어…]
[……]
“…….”
“…….”
태현과 이세연, 그리고 요새에 있던 다른 플레이어들도 잠잠해졌다.
[1:1 대결에서 요새의 플레이어가 패배했습니다. 요새 사기가…]
[……]
아니 어떻게 한 번에 죽냐?
우이포아틀이 용도 때려잡던 대단한 놈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창 한 번에 저렇게 훅 갈 줄이야.
[괜히 시비 건 거 아니냐고 카르바노그가 묻습니다.]
‘이제 와서 그러면 늦었지….’
이제 와서 화해하기에는 서로 너무 먼 길을 간 둘?
“미, 미친! 뭐야 저거!”
“괴물이잖아…!”
랭커들은 경악했다. 우이포아틀이 강한 보스 몬스터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뼈만 남은 해골이지만, 우이포아틀은 정말 압도적인 전사였던 것이다.
-어딜 도망치느냐!
우이포아틀의 팔이 휘둘러지자 주변에서 모래 폭풍이 일어나 랭커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콰드득! 콰득!
“김태현! 도와줘!”
“살려줘!”
랭커들은 태현을 불렀다.
뻔뻔하지만 원래 좀 뻔뻔한 게 랭커들의 기본 종특!
아까 암살자들을 구해줬듯이, 우이포아틀 공격에 실패하면 태현이 구해줄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아까 그건 사실 태현이 구해주려고 한 게 아니라 스킬 실험하려고 한 거라는 걸!
“흠. 우이포아틀 스킬이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리는군.”
“그러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잘 안 들린다. 그치?”
태현과 이세연은 서로 뻔뻔하게 대화를 나눴다.
랭커들은 한 가지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과 이세연도 뻔뻔하기로는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최상위권 랭커들!
“야! 김태현! 사람들이 이렇게 보고 있는데 안 도와주냐!!”
우이포아틀한테 속수무책으로 찢겨나가자 랭커들은 발악하듯이 태현을 불렀다.
물론 태현은 사람들이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반응도 랭커들이 생각하는 것과 반대였다.
-아니 저 미친놈들은 왜 요새 밖으로 뛰쳐나가서 죽는 거지? 케인한 건가?
-케인도 저러진 않는다. ㅉㅉ.
-…여기 케인 팬 게시판 아닌가요?
-맞는데요?
-???
-이게 다 애정이란 말입니다.
우이포아틀은 도망치는 랭커들을 쫓아 손수 하나씩 사냥했다.
하도 왕관, 왕관거리길래 우이포아틀을 네크로맨서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우이포아틀은 완벽한 전사 직업이었다.
전사 직업의 최종진화형!
빠르게 움직여서 묵직한 데미지를 미친 듯이 꽂아 넣는다. 이 단순한 과정을 어마어마한 레벨로 하자 아무도 막지 못하고 갈려 나갔다.
결국 한두 명 남은 랭커들.
그들을 구해준 건 다름 아닌 느부캇네살이었다.
쿠르르르-
“김태현! 도와주러 왔구나!”
“아니. 난 여기 있는데.”
“야! 그러면 들리잖아.”
이세연은 태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상대방의 말 못 듣는 척하고 있는데 왜 이래?
요새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던 느부캇네살의 언데드 군대가 드디어 우이포아틀을 둘러싸기 시작한 것이다.
사막에서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느부캇네살이 모를 리 없다!
-이건 또 뭐하는 개잡놈이냐!!
느부캇네살의 분노는 하늘을 뚫고 천계까지 닿기 직전!
자기 제국에서 웬 리치 놈이 오염을 풀풀 뿌리고 있는데 좋아할 황제는 없었다.
* * *
“길마님. 리치와 친한 건 알겠지만 여기 땅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마법사 랭커, 폴레는 김태산과 길드원들에게 조언했다.
잡혀서 일퀘를 해주고 있긴 했지만 이건 진심이었다.
[현재 요새 위에 있는 리치로 인해 땅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언데드 출몰이…]
“뭐 어때.”
“예?? 아니, 치안이… 안 좋아지고… 그러면 나라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폴레는 당황해서 설명하려 들었다.
아니 오염이 나쁘면 나쁜 거지 그걸 왜 이유까지 들어줘야 하지?
“폴레. 네가 하나 모르는 게 있다.”
“…?”
“여긴 원래 치안이 개판이야.”
“?!?!”
왕국에 언데드가 출몰하면 보통 군사, 외교, 경제, 기술, 주민, 민심, 신성, 치안, 문화, 발전도 같은 영지 스탯들 중에 <주민>, <민심>, <신성>, <치안> 같은 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 우르크는 조금 달랐다.
민심?
오크들은 언데드 좀 나온다고 불평할 정도로 말랑말랑한 종족이 아니었다.
신성?
아키서스 교단은 언데드 좀 있다고 해서 신경 쓰는 교단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키서스 교단이 언데드보다 더 오염도가 높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아키서스 교단이 오염도가 높다니….”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넘어가자고. 어쨌든 치안 정도만 영향을 주는데, 내가 다른 것부터 먼저 투자하느라 치안 스탯이 별로거든. 그래서 언데드 많아진다고 해도 치안 스탯 내려갈 것도 없지.”
“그렇습니까.”
폴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합리적이었다.
탁-
“우리의 멋진 길드 운영 방식에 반한 건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가입을….”
“안 합니다.”
“솔직히 말해보자고. 다른 애들은 우리한테 별 관심 없는데 그쪽만 계속 물어보잖아.”
“…안 합니다!”
폴레는 호다닥 도망갔다.
“우린 포기 안 한다! 폴레!”
“너는 <최강지존무쌍>의 자격이 있는 놈이야!”
* * *
우이포아틀은 언데드들을 말 그대로 갈아버리며 전진했다.
호쾌한 전투였다.
데스 나이트든, 구울이든 우이포아틀의 레벨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부럽군. 나도 좀 저렇게 싸워보고 싶은데.”
“…???”
이세연은 ‘뭔 개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의 전투법은 우이포아틀과 상당히 비슷했던 것이다.
압도적인 딜링으로 상대방을 쓸어버리며 돌진하는 스타일!
물론 우이포아틀은 워낙 레벨이 높아서 회피도 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하고, 태현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면서 맞아도 되는 공격까지 다 피하는 성격이었지만….
“우이포아틀! 파이팅! 우이포아틀! 파이팅!”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우이포아틀이 당신을 저주합니다.]
-크아아악! 이 개잡놈아! 내 저주는 또 어떻게 푼 것이냐!
우이포아틀은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저주는 분명 저 멀리 어딘가에 느껴지는데, 어떻게 놓고 온 거지?
쿠르르릉-
우이포아틀은 전차의 방향을 바꿨다. 하도 언데드 군대가 많자, 이걸 불러낸 본체를 먼저 치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차.”
이세연은 재빨리 몸을 숙였다.
“왜 그래?”
“안 들켜야지 나중에 실패해도 문제없지.”
“…이세연! 왜 그래! 일어서!”
“야! 나쁜 놈아!”
목숨을 걸 거면 같이 걸어야지 친구야!
그러는 사이 우이포아틀은 언데드들을 뚫고 느부캇네살 앞까지 전진했다.
“드디어… 자존심 강한 두 괴물들의 전투…!”
“…그런데 둘 다 페널티 하나씩은 달고 있을 텐데.”
느부캇네살은 허기의 저주.
우이포아틀은 불완전한 부활.
과연 누가 유리할까?
첫타는 우이포아틀이 시작했다. 들고 있던 창을 던지자 느부캇네살을 감싼 거대한 흑색 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뚫린다!”
아까는 반응도 없던 구체가 흔들리자 태현은 눈빛을 빛냈다.
“성기사단! 전부 전투 준비! 바로 나갈 수 있게 준비해라!”
“예! …아니. 잠깐만 왜 당신이 명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