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09화
케인도 애가 타서 외쳤다. 지금 태현이 없으면 여기 지휘를 누가 한단 말인가.
“야! 너 그런 놈 아니잖아! 돌아와 자식아!”
“아니, 케인 씨. 말씀이 좀 심하신 거 아닙니까?”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지.”
“!?”
옆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정색하자 케인은 당황했다.
아니, 왜!?
“아, 아니. 평소에 이 정도는 하고 다니는데….”
“지금 김태현 씨는 사람들 구하려고 들어갔는데 자기는 뒤에 있으면서….”
“와, 케인.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나쁜 사람이네.”
“…….”
안절부절!
케인은 갑자기 안 좋아진 여론에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와줘!
-뭘 어떻게 도와줘?
최상윤이 시선을 피했다.
-저도 딱히….
정수혁도 마찬가지!
케인은 주먹을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
“김태현! 나도 간다!”
“!”
“역시…!”
“케인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
케인이 달려나가자 뒤에서 수군거리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김태현이 위험에 빠지니까 도우러 가는구나!
[희망 없는 돌격을 시도합니다!]
[힘 스탯이 오릅니다!]
[공포 스탯이 오릅니다!]
“…….”
케인은 울고 싶어졌다.
대체 얼마나 위험하길래 가기도 전에 저렇게 메시지 창이 뜨는 걸까?
* * *
[느부캇네살의 영역에 들어옵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페널티가 심해집니다.]
[HP가 지속적으로….]
[물리 방어….]
[마법 방어….]
[이동 속도….]
[<아키서스의 화신>입니다! <신성 권능>으로 느부캇네살의 기운을 막아냅니다!]
느부캇네살은 허공에 높게 떠서,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오만하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태도!
‘자기 중심으로 영역 깔고, 그걸로 언데드 강화시키고….’
리치나 다른 네크로맨서의 기본 전법이었다.
언데드를 소환하고, 바닥에 자기 영역을 펼쳐 강화시키고 방어한다.
그러나 느부캇네살 정도 되는 존재가 하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예 느부캇네살의 일정 거리 내에 접근 자체가 불가능!
‘카르바노그. 저거 어떻게 잡아야 하지?’
[계속 때려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흠집도 안 나는데. 어디부터 때려야 할지도 모르겠군.’
태현은 정말 오랜만에 막막함을 느꼈다.
느부캇네살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흑색 구체!
지금 사제들과 마법사들이 미친 듯이 마법을 쏘아대고, 아키서스 포병대가 닥치는 대로 포탄을 발사하고 있는데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저 결계의 방어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게 분명했다.
‘저래서야 <아키서스의 저주> 같은 것도 안 닿을 거 같고….’
그리고 느부캇네살 같은 마법사한테 어설프게 저주로 덤빈다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카르바노그가 어떻게든 기다려 보자고 합니다!]
‘어떻게든 버텨봐야 하나?’
시간을 끌면 느부캇네살의 마력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었다.
다행히 느부캇네살은 직접 움직이거나 싸우지 않았다. 너무 오만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계속 언데드만 불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
[아키서스의 신성 영역이 펼쳐집니다!]
[신성 스탯이 매우 높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대륙에 아키서스 교단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이름으로 만신전의 요새를 지었습니다! 다른 교단의 힘을 빌립니다.]
[다른 교단이 매우 불쾌해합니다!]
“?”
[?]
태현도, 카르바노그도 예상치 않았던 상황이었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는 누구 힘이라도 빌려야 했다.
“컥!”
“풀렸다!”
꽁꽁 묶인 채 내려오는 언데드들한테 죽기 직전이었던 암살자 플레이어들은 기겁하며 도망쳤다.
“뒤로 후퇴해라!”
태현이 외치자 플레이어들은 호다닥 움직였다.
“안 그래도 후퇴하고 있습니다!”
“진짜 진짜 감사합니다! 흑흑흑!”
“믿고 있었어요!”
“믿긴 뭘 믿어! 아까 우리 다 죽었다고 떠들던 놈이!”
암살자들이 도망치는 사이 태현은 접근에 검을 휘둘렀다.
각종 버프 스킬로 대미지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뒤 일격!
파지직!
-아키서스의 첫 번째 공격!
[행운이 소모됩니다.]
구체의 약점을 잡은 뒤 미친 듯이 찔러 넣는 공격.
그러나 흠집도 나지 않았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명타가….]
‘대체 대미지를 얼마나 줘야 뚫을 수 있는 거야?’
태현은 슬슬 불길해졌다.
이거 이러다가 정말….
태현을 태우고 날아다니고 있는 용용이가 비명을 질렀다.
-주인이여! 슬슬 빠져야 한다!
하늘에서 데스 나이트들이 눈에 불을 켜고 태현을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후퇴!”
-주인님의 명령을 거절해 놓고 도망칠 수 있을 줄 아느냐 필멸자여!
“흠. <치명타 폭발>!”
-크아아아악!
태현은 용용이를 타고 빠르게 한 바퀴 돈 후 가장 앞에 있는 데스 나이트의 급소를 찔렀다.
쌓인 치명타 스택이 전부 폭발!
그 결과 데스 나이트는 일격에 고꾸라졌다.
[전설 데스 나이트를 일격에 해치웠습니다!]
[1:1 공중의 결투에서 이겼습니다!]
[명성이….]
[…….]
-방금 데스 나이트 일격에 죽지 않았냐?
-하급… 아냐? 하급이면 나도 일격에….
-저게 어떻게 하급 데스 나이트냐! 겉모습을 봐라!
-지금 뭐 특별한 스킬 쓴 것도 아니잖아? 그냥 평타 아님??
방송으로 보고 있던 사람들은 공중에서 일어난 싸움에 경악했다.
잡힌 플레이어들을 풀어주고 혼자서 느부캇네살에게 덤벼든 것도 놀라웠지만, 전설 등급의 데스나이트를 일격에 잘라 버리다니.
“김태현! 도우러 왔다!”
그리고 그제야 케인이 도착했다.
“뭔 개소리야? 튀어!”
“…그, 그래!”
케인은 바로 방향을 틀었다.
-…….
-…….
-…….
그 추태에 시끄럽던 방송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 *
느부캇네살을 향한 1차 공격은 실패했지만, 토벌대는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요새는 단단했고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쌩쌩했던 것이다.
지금은 느부캇네살에게 대미지를 전혀 주지 못했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애초에 모든 보스 몬스터 레이드가 그러지 않았던가.
단숨에 확 때려잡는 태현 파티가 비정상이지, 원래 고렙 보스 몬스터는 잡는 데 오래 걸렸다.
어떤 파티는 1주일 넘게 먹지도, 쉬지도 않고 싸워서 잡았을 정도였다.
“언데드들이 온다! 막아!”
“어디 한번 와봐라!”
파파파파파파팍-
하늘을 가릴 정도로 수많은 화살이 요새에서 쏟아져 나갔다.
수많은 플레이어와 성기사, 병사들이 퍼붓는 화살이었다.
기본적으로 은이 도금된 데다가, 각 교단의 축복까지 실려 있으니….
어지간한 언데드라면 화살 한 방에 즉사!
느부캇네살이 직접 불러낸 정예가 아니었다면 화살 공격 한 번에 다 녹아내렸을 수도 있었다.
-크아아악! 이 비겁한 놈들이!
-이 더러운 신성력을!
-사디크, 이 비열한 놈이 감히 내 몸에 불을 지르다니!
날아들던 데스 나이트들은 집중 사격을 맞고 후퇴했다.
“…이거 큰일인데.”
이세연은 중얼거렸다.
데스 나이트들이 후퇴한 뒤 느부캇네살의 영역 가까이 들어가자 바로 회복하는 게 보였던 것이다.
사기 수준의 스킬!
그걸 본 태현도 중얼거렸다.
“음. 제안받을 거 그랬나.”
지금 생각해보니 언데드로 해도 나름 적응했을 것 같았다.
<아키서스의 리치 화신>!
느부캇네살 밑에서 중간관리직으로 뛰는 것도 적응되면 할 만하지 않겠는가.
“야!”
“농담이야. 일단 시간을 끌면서 버텨봐야지. 우리도 방법은 있으니까.”
“태현 님?”
“?”
뒤에서 이다비가 말을 걸어오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화살이나 폭탄 관련해서 재고가 부족한가?”
“아뇨, 그건 충분한데요…. 어… 음….”
“???”
“제가 지금 퀘스트가 떴는데요.”
“무슨 퀘스트?”
<느부캇네살의 부름-죽음의 황금 상인 직업 퀘스트>
죽음의 황금 상인은 느부캇네살을 섬기며 그를 지원하던 상인 길드였다.
느부캇네살이 죽고 남은 상인들은 기록을 지우고 믿는 신을 바꿨지만 과거에 한 맹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름에 건 맹세를 바칠 때가 되었다!
느부캇네살의 편에 합류해 대륙에 죽음을 퍼뜨려라!
“…….”
“…….”
“스, 스파이다!”
케인은 이다비를 가리키며 외쳤다가 한 대 맞았다.
퍽!
“시끄러워.”
“아, 아니…. 스파이 맞….”
‘어쩐지 스킬이 좀 특이하더라.’
<녹인 황금의 저주> 같은 스킬은 상인치고는 좀 특이한 스킬이었다.
비전투 스킬이긴 해도 되게 드문 부류의 스킬!
이다비는 울상이 되어 말했다.
“저 마이다스 교단 공적치 포인트 많이 쌓아놨는데….”
황금의 신 마이다스 교단.
상인 플레이어라면 대부분 믿는 무난한 교단이었다.
전투 능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지만 상인한테는 워낙 쏠쏠해 다들 믿는 교단!
“진정해. 이다비. 그냥 무시하면 되잖아.”
“그래도 될까요?”
“뭐 어때. 정 찜찜하면 끝나고 아키서스 관련 직업으로 전직시켜 줄게.”
“으읏….”
이다비는 고민된다는 듯이 망설였다.
지금까지 찍은 스킬들이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어쩔 수 없죠….”
“혹시 모르니까 뒤에 가 있어. 만약에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말하고.”
태현은 이다비를 요새 안쪽으로 보냈다. 이다비의 전투 능력은 없어도 승패에 크게 영향이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잘됐다고 합니다.]
‘미쳤냐? 너 공물 없다.’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고 카르바노그가 항변합니다!]
태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카르바노그를 쳐다보았다.
지금 이다비가 애써 키운 직업이 박살 나기 직전인데 이 토끼가 미쳐 가지고….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합니다. 만약 느부캇네살을 잡고 느부캇네살의 권능을 하나라도 뺏는다면, 아키서스 교단에 느부캇네살의 신전도 세울 수 있으니까….]
“……?!”
[그럴 경우 <죽음의 황금 상인> 같은 직업은 대주교 역할도 해낼 수 있지 않겠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어?”
태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말이 되나?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어?
[카르바노그가 그것 보라고 합니다. 사과하라고 합니다.]
‘진짜 되나?’
느부캇네살 교단은 대륙에 없다고 봐야 했고, 지금 느부캇네살 관련 직업은….
‘진짜 이다비가 날로 먹을 수 있나?’
교단에 아무도 없으면 누구라도 부활을 시켜야 하게 마련.
이다비 정도 직업이면 충분히 자격이 있었다.
나름 고대 제국 때부터 이어져 온 적통 아닌가!
-쿠어어어어어!
태현이 고민하는 사이, 땅에서 솟아난 언데드 대군이 요새에 접근했다.
느부캇네살이 하늘과 땅 양쪽에서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쓸어버려!”
“데스 나이트가 지휘관이다! 지휘관부터 노려!”
요새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외쳤다.
평소라면 잡을 수 없는 수준의 몬스터들을 잡는 탓에 경험치와 스킬 포인트가 쭉쭉 쌓였다.
전설 등급의 데스 나이트라고 해도,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그렇게 무섭지 않은 것이다.
몇 겹의 요새 벽과 해자가 버티고 있다!
원래라면 무서웠을 기계공학 대장장이들도 이럴 때는 정말 든든했다.
“던져!”
한 번 던지면 수십, 수백 마리 스켈레톤 전사들이 박살 났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신나게 싸웠을까.
플레이어들은 덤벼오는 언데드 군대가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 저건….”
“흑색 구울이잖아? 게다가… 전설 등급이야!”
스켈레톤 전사들의 뒤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전설 등급의 흑색 구울.
스켈레톤 전사들보다는 몇 배로 더 강해진 전력이, 비슷한 숫자로 뒤를 꽉 채우고 있었다.
게다가 구울들 사이에서는 이제 대형 언데드 몬스터들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데스 나이트들이 대형 몬스터 위에서 구울들을 호령하자, 구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꿀꺽-
“이, 이거 괜찮은 건가?”
누군가의 입에서 무심코 그런 소리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