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07화
“대가 없습니다만?”
체시자가 들었는지 대꾸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맞아! 어디서 거짓말을!”
태현과 이세연은 사이좋게 체시자를 공격했다.
체시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둘을 쳐다보았다.
나름 영웅인 둘인데 속고만 살았나?
“폐하.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김태현. 저건 함정일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니까 그럴듯하게 들리는데….”
의심 많기로 따지면 판온에서 손꼽히는 둘.
체시자는 정말로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성격 더럽고 괴팍한 체시자였는데 태현 앞이라 숙이고 있던 참.
그런데 저렇게 핍박하다니!
‘그냥 확 부활시켜버릴까….’
“그러면 그냥 해보도록 하겠다!”
“어. 체시자. 지금 너 나한테 반말한 거냐?”
“…아닙니다.”
체시자는 태현이 예전 국왕이 아니던 때가 그리웠다.
그때는 관계가 반대였는데!
“그러면 진짜 화신 강림만 쓰면 된다고? 그게 그렇게 쉬워?”
“쉽지는 않고 한 가지 조건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느부캇네살의 신도가 되는 겁니다.”
“신도? 그것뿐?”
“느부캇네살은 알다시피 고대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였고….”
체시자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네가 왜 어깨를 으쓱거리냐?”
“아, 아니. 흑마법사가 가장 뛰어났다는 이야기여서 말입니다. 크흠. 어쨌든 가장 뛰어난 마법사였고, 그걸 뛰어넘어 신이 되려고 한 마법사였습니다. 세상 모든 걸 죽음으로 몰아넣어 새로이 죽음의 신이 되려고 한 대마법사였죠. 물론 실패했지만,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해 반신 비슷한 존재가 됐습니다.”
“그건 들어서 알고 있지.”
아무리 리치라도 육체가 부서지고 성물함이 부서졌는데 안 죽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죽지 않았다는 건 느부캇네살이 리치를 뛰어넘었다는 의미였다.
“느부캇네살은 생전 자기가 쓰던 장비들에 영혼을 쪼개 담았습니다. 이 장비로 자신을 믿는 신도들이 자신을 불러낼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러면 그 장비들이 필요하잖아?”
“제게 느부캇네살의 지팡이가 있고, 느부캇네살의 로브가 있으니, 이 두 가지 정도면 느부캇네살을 부르기 충분할 겁니다.”
“…잠깐. 그런 걸 갖고 있었으면 미리 말했어야지 이 자식아!”
태현은 체시자의 멱살을 잡았다.
“아, 아무런 효과도 없는 낡은 아이템일 뿐입니다! 느부캇네살이 오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도 없어요! 영혼이 있다고 무슨 강력한 힘이 있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런 물건이 있어야 하는 거면 굳이 부활시키지 말고 막을 수도 있었잖아!”
다른 방법으로 부활시킬 수 있으니 미리 부활시켜서 막으려고 하는 건데!
“아니… 느부캇네살의 다른 장비를 누군가 갖고 있을 수도 있잖습니까. 느부캇네살이 하나만 뿌린 게 아니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
태현은 진정하고 손을 내밀었다.
“장비 좀 줘봐라.”
“…가져가시면 안 됩니다. 폐하. 이게 흑마법사 학파의….”
“…너 진짜 느부캇네살 편 아니지?”
태현은 매우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느부캇네살이 소환된 다음 체시자가 ‘충성충성충성!’ 해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폐하. 믿어주십시오! 제가 왜 제 자리를 주겠습니까.”
“네 욕심을 믿어보마.”
느부캇네살의 지팡이:
내구력 5/5, 물리 공격력 1, 마법 공격력 1.
착용 시 <죽음의 반신 느부캇네살 강림> 마법을 사용 가능.
느부캇네살의 영혼 조각이 담겨 있는 지팡이다. 얼핏 보기에는 특이한 부분이 없지만, 귀를 기울여보면 아주 섬뜩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느부캇네살의 로브:
내구력 10/10, 물리 방어력 1, 마법 방어력 1.
착용 시 <죽음의 반신 느부캇네살 강림> 마법을 사용 가능.
느부캇네살의 영혼 조각이 담겨 있는 로브다. 얼핏 보기에는 특이한 부분이 없지만, 귀를 기울여보면 아주 섬뜩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진짜 별거 없네.’
태현은 살짝 실망한 얼굴로 설명을 껐다.
진짜 느부캇네살의 장비라면, 현재 존재하는 네크로맨서 세트 아이템 중 가장 강력하고 대단한 장비일 것이다.
이세연이라면 이걸 갖기 위해서 영혼을 팔 수도 있을 터!
그런데 느부캇네살이 죽은 상태라 그런지 아무 효과가 없었다.
‘아깝군.’
“…네 눈빛이 매우 수상쩍어.”
“왜 그래? 내가 뭘 했다고.”
“…….”
이세연은 매우 의심쩍은 눈빛을 보냈다.
[화신 강림 마법에 대한 지식이 늘었습니다!]
[<사디크의 불완전한 화신 소환>의 부작용이 약해집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스킬에 대한 지식이 늘어납니다.]
“!”
<아키서스의 화신>은 직업을 말하는 게 아닌, 스킬 이름이었다.
그리고 저 스킬은 이름 그대로 신을 강림시키는 것!
‘아키서스도 할 수 있는 건가?’
사디크나 다른 교단들처럼 아키서스도 강림시킬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스킬은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퀘스트도 안 뜰 정도로 미약한 정보지만….
언젠가 할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도 충분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얻을 수 있다!
“여기 있다. 체시자. 정말이군.”
“저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나도 그래. 역시 흑마법사 학파라 그런지 서로 정직하군.”
“…….”
이세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화내면 안 돼, 화내면 안 돼!
“그러면 진행하면 됩니까? 느부캇네살을 믿는다고 기도를 올리면서 마법을 쓰면 되는데….”
“잠깐. 느부캇네살 믿는다고 기도 올리면 뭐 묶이는 거 아냐? 나중에 느부캇네살의 명령에 들어야 한다거나.”
“아닙니다. 그냥 소환된 다음에는 안 믿는다고 하면 되잖습니까. 대륙의 다른 교단도 믿다가 안 믿는다고 하면 저주야 좀 받겠지만 막지는 않지 않습니까. 게다가 느부캇네살은 나오자마자 싸워야 할 텐데.”
바로 믿음을 버려도 상관없는 상대!
순간 태현과 이세연의 눈빛이 반짝였다. 무언가 눈치챈 것이다.
“혹시 믿으면 효과도 있나?”
“예. 흑마법사로서 버프….”
탁!
태현과 이세연이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김태현. 난 고대 제국의 흑마법사 계파를 잇는 정통 흑마법사야. 느부캇네살도 내가 믿어주면 기뻐할걸?”
“이세연. 난 마탑 흑마법사 후계자고 화술 스킬도 최고급을 찍었어. 의심하던 느부캇네살도 올 거야.”
“화술 스킬 최고급?! 아니, 잠깐만.”
이세연은 말하던 도중 당황했다. 그만큼 놀라웠던 것이다.
대체 뭘 했길래 화술 스킬을 최고급을 찍을 수 있었던 거지?
검술 스킬, 마법 스킬 같은 전투 스킬이나 다른 제작 스킬 같은 건 이해가 갔다.
할 일이 많고 쓸 일도 많으니까.
그렇지만 화술 스킬 같은 비주류 스킬들은 올리고 싶어도 올릴 방법이 별로 없었다.
혼자서 연습한다고 오르지도 않고, NPC 상대로 흥정할 때나 아주 조금 오르고….
대체 뭔 스킬트리를 탔길래!?
‘아차. 정신 차리자.’
이세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태현이 말할 때마다 너무 놀라운 이야기라 그녀의 페이스가 흔들렸다.
“애초에 넌 아키서스 교단 교황이잖아! 교황이 다른 신 믿어도 돼?”
“내가 아까 기도하면서 물어보니까 믿어도 된다더라.”
[…….]
카르바노그는 경악했다.
뭐 저런 말싸움을…!
한참을 치열하게 다투던 태현과 이세연은 깨달았다. 서로를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좋아. 승부다.”
“바라던 바야. 주사위… 아니. 아니!”
이세연은 말하다 멈칫했다. 평소 습관이 튀어나온 것이다.
‘아깝다.’
태현은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주사위였으면 날로 먹는 거였는데….
“가위바위보?”
“나쁘지 않지. 그러면 그걸로?”
“좋아. 다른 말 하기 없기다.”
태현과 이세연은 앞에 섰다. 그 모습에 카르바노그와 체시자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다투더니 꽤 귀엽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을 보잖아?
그러나 그건 둘의 착각이었다.
-죽음을 선사하는 기사의 민첩함! 삼중 시력 강화! 네크로노미콘의 이름! 자동 반응 마법!
미친 듯이 민첩 관련 마법을 난사하는 이세연!
그랬다.
둘은 처음부터 순수한 가위바위보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상대의 손 모양을 먼저 보고 알아차린 다음 바꾼다!
그것이 진정한 가위바위보!
그러기 위해서는 민첩 스탯이 필수적이었다. 이세연은 미친 듯이 민첩을 올리며 태현을 쳐다보았다.
-민첩 강화. 민첩 강화. 민첩 강화….
‘언령 마법!’
태현이 언령 마법을 쓴다는 건 저번 영상부터 봐서 알고 있었지만 다시 봐도 충격적이었다.
아니 마법사도 아닌 사람이 대체 어떻게 언령 마법 스킬을 배웠단 말인가?
언령 마법 가르쳐주는 NPC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NPC들이 아닌데….
이세연은 상상하지 못했다. 설마 화술 스킬을 엄청나게 찍으면 언령이 개방된다는 것을.
‘하지만 김태현. 난 순수 마법사고 넌 하이브리드야. 마법 효율로 날 따라올 수는 없어!’
언령 마법은 고위 마법이었지만 의외로 쓰는 사람이 드물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대처 가능한 마법이었지만, MP 소모가 너무 컸던 것이다.
언령으로 화염 화살을 불러내는 것보다는 그냥 파이어 애로우를 쓰는 게 몇 배는 빠르고 편했다.
태현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세연은 몰랐다.
-행운 전환!
갑자기 태현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발 민첩! 제발 민첩!’
힘 같은 스탯이 나오면 이세연을 후려갈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카르바노그가 정신 차리라고 합니다.]
[행운이 민첩으로…]
‘됐다!!’
이세연은 태현의 표정이 확신으로 변하는 걸 보고 발을 굴렀다.
페널티 있는 랜덤 스킬을 썼는데 잘 나온 게 분명했다.
“가위! 바위!”
“…보!”
이세연은 주먹을 먼저 냈다. 주먹이 가위나 보로 바꾸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태현은 보자기로 시작했다.
이세연의 동체시력도 만만치 않았다. 곧바로 손이 펴지며 가위로 바뀌기 시작했다.
‘안일했어, 김태현! 아무리 그래도 보자기에서 바위로 바로 바꾸는 건 느릴….’
탓!
태현은 보자기로 시작한 오른손을 뒤로 빼더니 왼손을 내밀었다. 왼손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
“…….”
“이겼다.”
와 이 철저한 자식!!
[어마어마하게 민첩한 상대와의 승부에서 민첩으로 이겼습니다!]
[민첩 스탯이 오릅니다.]
[……]
태현의 속도를 보니 민첩도 이세연보다 높아 보였는데, 거기서 혹시 몰라 추가로 함정을 판 것이다.
“졌어!”
“후. 이걸로 판온 1에서부터 이어져 오던 싸움이 끝났군. 이제 싸우지 말아야지.”
“…뭔 헛소리야. 잠깐만. 너 설마….”
이세연은 경악했다.
김태현이 전설의 ‘그 방법’을 쓸 생각이란 말인가?
판온 1에 결투로 유명한 플레이어가 있었다. 그 플레이어는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100번 싸워서 99번 져도 된다. 1번만 이기면 되니까.
1번만 이기면 그 때부터 싸우지 않고 철저하게 도망치면서 ‘너 그 때 나한테 졌잖아~’ 하는 걸로 악명이 높았던 놈!
오죽 열이 받았으면 그 플레이어한테 당한 사람들이 토벌대를 조직해서 밟아버렸을까.
“야! 가위바위보는 싸움이 아니지!”
“그렇게 가위바위보를 가볍게 보니까 진 거 아닐까?”
“…좋아. 가위바위보를 치더라도 1:1 아냐? 판온 1에서 누가 졌는데? 안 끝났어!”
이번에는 태현이 움찔했다.
“예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래? 난 날짜부터 시간까지 기억하니까 말해줄게.”
“안 들리는데? 여기가 시끄러워서….”
로브와 지팡이를 들고 있던 체시자가 둘을 빤히 쳐다보다가 로브와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느부캇네살 님. 제가 기도를 올리니….”
그냥 내가 해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