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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903화 (903/1,826)

§ 나는 될놈이다 903화

판온을 하면서 케인은 딱히 NPC한테 호감을 산 적이 없었다.

일단 전투 직업이었고, 악명도 높았으니….

예전에는 마을을 가면 쫓겨났을 정도였다.

-도적 놈이 여길 어디라고 와! 경비병! 경비병!

-아,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나마 유일하게 케인에게 호감을 가졌던 NPC들은….

‘…아키서 부족이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아키서 부족!

같은 <아키서스의 노예>라고 친하게 지냈지만 그건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무려 에랑스 왕국의 4왕자가 케인에게 호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메시지창에 <아키서스의 노예> 보너스나, 겁 먹었다는 게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덥석!

케인은 4왕자의 손을 잡았다. 4왕자는 당황했다.

“왜,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친하게 지내자, 왕자!”

“그… 그래. 고맙다?”

4왕자는 이 호구 같아 보이는 사람이 친하게 대해주자 안도했다.

그래도 저 교황 놈 일행에서 사람다운 사람이 있긴 하구나!

‘그래! 저 호구 놈을 내 인품으로 꼬시면 되겠군!’

4왕자는 무릎을 쳤다.

타고난 왕족의 매력으로 이 호구를 감화시켜 자신의 부하로 만들겠다!

그렇다면 저 무시무시한 교황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왕자는 뭘 좋아하냐?”

“어… 나는 이 일행에서 벗어나는 걸 좋아하는데.”

1초 만에 튀어나온 본심!

“뭐?”

“아, 아무것도 아니다. 음. 나는 뭘 좋아하냐면, 고오급 와인이나 명화, 아름다운 조각상….”

“쿨쿨….”

케인은 말 위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걸 본 4왕자는 분노했다.

이 호구 놈이 감히 내 화려한 취향을 듣고 졸아?

“헉. 미안. 순간 졸아버렸다.”

명화의 ‘명’을 듣는 순간 졸기 시작한 케인!

“…네 이야기나 해봐라.”

4왕자는 자기 이야기를 해봤자 케인 같은 촌놈한테는 안 먹힌다는 걸 깨달았다.

차라리 저놈의 이야기를 듣고 맞장구를 쳐주자!

“네놈의 직업은 뭐냐?”

“어… 나는….”

“…?”

왜 머뭇거려?

“아키서스의… 노예….”

“뭔예? 노예?”

“…그래 인마!”

“아, 아니 나한테 화를 내다니…!”

“미, 미안.”

“사과하니 용서해 주겠다. 음. 신을 모시는 노예라니. 성실한 직업이군.”

“…!”

4왕자가 플레이어였다면 [케인의 친밀도가 크게 상승합니다!]가 떴을 것!

“훌륭한 직업이다.”

“더… 더 말해줘! 헉헉!”

‘호구가 아니라 미친놈인가?’

그냥 상대하기 싫은 마음을 꾹 참고, 4왕자는 케인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까지 어떤 모험을 해왔고 케인이 어떤 어떤 적들을 상대해 왔는지!

그 결과 4왕자는….

[4왕자의 공포가 최대치에 도달합니다!]

[4왕자가 극도로 겁에 질립니다!]

[4왕자의 모든 능력치가 50% 하락합니다!]

[화술 스킬이 조금 오릅니다!]

[……]

[……]

“!??”

케인은 깜짝 놀랐다.

아니, 이제까지 했던 업적들을 이야기하는데 왜 겁을 먹고 그래?

“내, 내가 그런 놈들을 상대하는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하는 건가!?”

“아냐! 안전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드래곤이나 악마를 상대하는데 안전한 곳이 어디 있냐!”

너무 맞는 말!

확실히 태현의 퀘스트는 누구라도 목숨이 위험한 퀘스트였다. 정말 재수 없을 경우에는 4왕자가 폭탄(4왕자였던 것)이 될지도 몰랐다.

‘그건 말해주지 말아야지.’

살아 움직이는 폭탄 이야기는 안 해서 다행이었다. 그것까지 했다면 4왕자가 울면서 도망쳤을 것이다.

“난… 난 못 간다! 왕족은 전장에 직접 안 나간단 말이다!”

4왕자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자 케인은 당황했다.

‘야, 이거 어떡하지?’

4왕자가 고집을 부린다→태현이 와서 얘 왜 이러냐 묻는다→4왕자가 케인을 지목한다→케인 죽음!

‘안 돼!’

어떻게든 설득해야 한다!

케인은 머리를 굴려가며 설득에 나섰다.

“나도 있고, 저기 기사들도 있고, 아키서스 포병대도 있고, 다 널 지켜주는데 뭐가 무섭냐! 내가 널 지켜줄게! 내가 이래 봬도 랭커라고!”

“네… 네가?”

분명 케인의 업적만 들으면 실력 있는 뛰어난 전사였는데, 이상하게 믿음이 잘 가지 않았다.

본능적인 불신!

[4왕자의 예리한 본능으로 화술 스킬에 페널티를…]

[아키서스의 노예로 보너스를…]

[……]

[……]

그러나 본능보다 다른 조건들이 앞섰다. 4왕자는 지금 너무 겁에 질렸던 것이다.

“좋, 좋다. 널 내 호위기사로 삼아주지!”

[4왕자가 칭호: 에랑스 왕족 호위기사를 선사합니다.]

[직업 <에랑스 왕족 호위기사>로 전직할 수 있습니다.]

‘어?’

[현재 <아키서스의 노예>입니다. 노예는 멋대로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습니다.]

‘…….’

케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물론 지금 직업에 매우 익숙해진 상태고 쌓은 게 많아서 바꿀 생각은 없긴 했지만…!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왜 이렇게 기분 나쁘게 말하는 거야!

[칭호: 에랑스 왕족 호위기사를 받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에랑스 왕국 내에서 귀족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기사 작위를 얻었습니다!]

[기사 작위를 가졌으므로 에랑스 왕궁에서 주기적으로 골드를 받습니다.]

[기사 작위로 인해 에랑스 왕궁의 3단계 창고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와…!’

이래서 사람들이 귀족, 귀족 하고 싶어 하는구나!

영지 있는 백작, 남작도 아닌 그 밑의 기사 작위만 받았는데도 왕국에서 할 수 있는 혜택이 어마어마했다.

이른바 왕국의 VIP 회원 같은 것이다.

‘아니, 근데 김태현은 백작 됐을 때도, 국왕 됐을 때도 별 혜택 못 받고 골드 모으느라 고생만 하던데… 뭐지?’

잘나가는 에랑스 왕국과 콩가루인 아탈리 왕국의 차이!

‘…이거 나 혼자 받은 거 말하면 맞는 거 아냐?’

다른 일행들한테 ‘넌 양심도 없냐 혼자 먹고!’, ‘일은 김태현이 다 하고 기사 작위는 저놈이 받네 와’ 같은 소리가 들어올 것 같았다.

“아키서스의 노예! 그대를 내 호위기사로 삼아줄 테니 내게 충성을 바쳐라! 네 이름은 무엇이냐!”

“케… 케인.”

“케인? 내 이름도 캐인인데!”

“뭐? 진짜?”

태현이 옆에 있었다면 ‘케인이랑 이름이 비슷하다니 매우 불길한 징조다!’라고 두려워했을 테지만, 불행히도 태현은 앞에서 일행을 이끌고 움직이고 있었다.

4왕자와 케인은 서로 기뻐하며 악수했다.

“우리가 비록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자!”

“어? 그건 좀….”

“…….”

케인은 시무룩해졌다. 모처럼 기뻐서 외쳤는데….

그러자 4왕자가 당황해서 말했다.

“아, 알겠다. 하면 되잖아!”

[에랑스 왕국 4왕자와 명예로운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

[……]

[……]

“그러면 케인. 내 호위기사이자 친구로 내 부탁을 들어주겠나?”

“뭔데?”

“이 일행에서 날 빼내다오!”

“어? 그건 좀….”

이번에는 4왕자가 시무룩해졌다.

“…내 호위기사잖아.”

“아, 아니 근데 그 이전에 나는 노예라고.”

자기 직업을 이렇게 핑계로 쓰게 댈 줄이야!

케인은 말하면서 슬퍼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캐인. 잘 생각해 봐. 이건 기회야.”

“뭔 기회?”

“난 원래 별거 아니었지만 이 아키서스 교단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졌다고.”

아키서스 교단에 다니고 나의 성공 시대 시작됐다!

케인은 4왕자를 설득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태현이 이 모습을 봤다면 ‘정말 사람이 달라질 수가 있구나!’ 하고 감동했을 모습!

“만약 네가 여기서? 어? 기사단 이끌고 어? 당당하게 언데드 쓸어버리고 공을 세우면, 다른 위의 왕자들이 어떻겠어?”

“…!”

4왕자는 케인의 말에 솔깃했다. 확실히….

유명한 교단들의 성기사들과 함께 싸운 명예로운 왕자!

다른 이복형제들이 수도 안에서 나태하게 놀고 있는 동안, 전장에서 공을 세우며 돌아온 왕자!

이 얼마나 멋진가!

귀족 기사들도 그를 달리 볼 것이다. 원래 왕족들 중에서 전장에 나가는 인물은 드물지 않은가.

“…해, 해보겠다!”

“그래! 그래야 캐인이지! 같이 해보는 거야!”

“내, 내 옆에서 제대로 지켜줘야 한다.”

“물론이지!”

그때 앞에서 태현이 케인을 불렀다.

“케인. 잠깐만 와봐.”

“어!”

그리고 케인은 슉 가버렸다. 혼자 남은 4왕자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옆에서 지켜준다며 이 새끼야!?

* * *

“4왕자랑 뭔 이야기를 그렇게 나눴냐?”

“친해졌는데?”

“그래?”

태현은 의아해했다. 케인은 화술 스킬이 높지도 않고 명성도 높지 않고, 왕족들과 친해지기 힘들었다.

그런데 친해지다니?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만 신기하군.’

[카르바노그가 뭔가 불길하다고 합니다.]

‘녀석. 뭘 이런 걸 가지고. 너무 다 걱정할 필욘 없어.’

태현은 웃으면서 카르바노그를 달랬다.

방금 걸로 뭐가 불안하다고!

“4왕자는 뭐 불평 안 하디?”

“처음에는 불평했는데, 내가 이번 원정을 성공하면 왕족들 중에서 엄청 명성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니까 아주 좋아하더라고.”

“오…?”

태현은 놀랐다.

케인이 설득을 할 줄 알아?

[카르바노그가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하면 죽을 때가 됐…]

‘너 갑자기 왜 그렇게 부정적이 된 거야?’

느부캇네살을 상대해야 해서 그런지, 카르바노그도 많이 불안해진 것 같았다.

“잘됐네. 아무래도 4왕자는 데리고 다니는 게 편하거든.”

[현재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휘에 페널티를 받습니다.]

최고급 전술 스킬로도 전부 다 지휘를 못 할 정도의 규모!

그만큼 각 교단 성기사단 전력이 강력했고, 그 외 전력도 어마어마하단 뜻이었다.

태현은 심지어 <핏빛 군도>로 편지를 보내 뱀파이어 군대도 동원할 생각이었다.

‘얘네는 이세연 쪽에 놔야지.’

성기사단이랑 붙여놓으면 성기사단이 뒷목 잡을 수 있었다.

동원 가능한 NPC 단체는 총동원하고, 거기에 이세연이 끌고 올 대량의 마법사 군단.

아무리 태현이 플레이어들 중 손꼽히는 전술 스킬을 갖고 있어도 다 지휘하는 건 무리였다.

어느 정도는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그리고 난 교단들하고 기본적으로 사이가 안 좋으니까….’

태현이 직접 명령하는 것보단, 4왕자를 데리고 가서 4왕자를 시키는 게 더 잘 먹힐 것이다.

에랑스 왕국에 신전 없는 교단은 없었으니 왕자 말은 잘 들어주겠지!

“그럼 4왕자랑 친해졌다니 너한테 4왕자를 맡기고 싶은데 괜찮겠어?”

“물론이지! 맡겨만 줘!”

“그래.”

[카르바노그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기본 준비는 끝났다.

이제 아스비안 제국으로 출항할 뿐!

‘아 맞다. 교단한테 배도 내놓으라고 해야지.’

태현은 이번 일에 아탈리 왕국 함선을 이용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 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해야지!

* * *

“아. 이 나무들은 자라도 자라도 끝이 없네.”

“그래도 마법사들 있어서 좀 편하네요.”

“이왕 온 김에 더 있지그래?”

오크 아저씨들은 마법사들의 화력에 신이 나서 말을 걸었다. 물론 미다스 길드원들은 못 들은 척했다.

빨리 일퀘 다 깨고 가야지!

“힘드실 텐데 이거 좀 드시고 하세요.”

“괴식요리야?”

“…아니, 과일이요….”

젊은 길드원들은 질색했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괴식 요리는 싫어!

“아니, 괴식 요리를 먹어야 기운이….”

“여기 과일 드세요!”

후다닥 던지고 물러서는 길드원들!

아저씨들은 아쉽다는 얼굴로 과일을 받았다.

“귤이네?”

“귤이 아니라 오렌지지.”

“오렌지를 먹은지 얼마나 오랜지….”

“…….”

“…….”

미다스 길드원들은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쥐었다.

한 대 때리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 해!

그때 길드원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풉!”

“???”

“…폴레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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