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902화
마법사나 사제는 이른바 인기 직업이었다.
인기 직업이란 건, 파티원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직업!
도적이나 전사들이 ‘흑흑 받아만 주십쇼 힐 안 주셔도 됩니다. 붕대 감겠습니다’라고 할 때, 마법사나 사제는 매우 거만한 자세로 파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상식이 지금 우르크 지역에서 뒤집히고 있었다.
“뭐야. 저 사람들. 마법사인가 봐. 킥킥.”
“심지어 오크도 아니야!”
“엄마. 저 사람들 왜 저래?”
“쉿. 엄마가 다른 사람들 놀리는 거 아니랬지? 저 사람들은 단지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이란다.”
“…….”
“…….”
미다스 길드원들은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걸 느꼈다.
정신 줄 붙잡아야 한다!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알고 온 모양이다. 우르크는 생각보다 더 이상한 곳이었군.”
“한 0.5 잘츠 왕국 정도 되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음… 아무래도 그냥 갈 수는 없겠지. 플레이어들을 설득해 보자.”
“저 새끼… 아니, 저 사람들을요?”
본심이 튀어나왔지만 다들 못 들은 척했다.
나름 고고한 마법사로서 대접받고 살아온 그들이었다.
오크들에게 무시당하다니, 자존심이 몇 배로 상했던 것이다.
“NPC들이나 용병들 찾는 것보단 나을 것 같군.”
그래도 길드원들을 이끄는 파티장 역할을 맡은 랭커, 폴레는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폴레의 결정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폴레의 결정이라면 믿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하게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이 폴레!
냉기학파 전문으로 랭커를 찍은 마법사다운 성격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폴레 님의 말이라면….”
“그래. 파티에 들어오고 싶지 않더라도 골드를 넉넉히 주면 들어올 거다.”
폴레의 말은 사실이었다.
<파티에 들어오면 골드가 공짜!>라는 광고를 달고 돌아다니자, 오크 플레이어들이 반신반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티원 구하려고 골드까지 뿌리다니… 사기 아냐? 우리를 미끼로 쓰려고 하거나….”
“우리를 어떻게 하려고!”
“헉! 무섭다!”
험상궂은 오크들이 옆에서 그렇게 떠들자 마법사들은 속으로 울컥했다.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라!
“그래도 먹고 튀면 되니까.”
“맞아. 맞아.”
“위험하다 싶으면 같이 도망가자.”
“…….”
대놓고 당당하게 말하는 오크 플레이어들의 모습에 길드원들은 어이가 없었다.
오크 종족을 고르면 지능도 오크에 맞춰지나?
“어… 어쨌든 들어온다 이거죠?”
“네. 네.”
“골드 먼저 주세요.”
“우리 미끼로 쓰지 않겠다는 계약서하고, 힐 제대로 주겠다는 계약서도….”
“!?”
뭐 이리 꼼꼼해?!
심지어 계약서 아이템이라니. 일반 플레이어들이 들고 다닐 만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이거 어디서 났습니까?”
“뭐요? 왜요. 안 줄 거예요.”
“달라는 게 아니라 궁금해서….”
“<최강지존무쌍> 길드 가입하면 줘요.”
“…?!?!?”
이런 아이템을 뿌린다고!?
길드원들이 놀라자 오크들은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쯧쯧. 그러니까 우르크 지역에서 시작했어야….”
“이것이 길드 가입 선물이란 겁니다.”
“오크 아니면 힘들겠지만 그래도 가입한다고 하면 받아줄 걸요.”
“아니 우린 길드가 이미 있….”
“힘내요. 오크가 아니라서 힘들겠지만. 인간 종족도 나름 괜찮지. 오크보단 못하지만.”
“파이팅! 사람이 뭐 잘못 선택할 수도 있지!”
“…….”
미다스 길드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상식이 파괴되는 것 같아!
보통 판온에서 가장 인기 좋은 종족은 인간이고, 그 다음이 엘프나 드워프.
오크쯤 되면 ‘나는 특이한 플레이를 좋아해요!’ 하는 사람만 고르는 종족이었다.
근데 여기는….
그래도 미다스 길드원들은 어떻게 어떻게 오크 플레이어들을 모아, 파티 규칙을 정하고, 진형을 갖췄다.
탱커도 있고 딜러도 있으니 이제 리치를 잡으러 갈 시간!
“근데 우리 뭐 잡으러 갑니까? 설마 쉐도우 와이번은 아니죠?”
“자이언트 스톤웜도 좀….”
오크 주제에 몸 엄청 사리는 플레이어들이 짜증 났지만, 마법사들은 참고 말했다.
“걱정 마라. 다 왔으니까.”
“?”
“이 요새다.”
“어….”
“잠깐. 저 요새… 어?”
오크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칙칙하고 어두운 산 위에 자리 잡은 칠흑의 요새.
저 요새… 어디서 들어봤는데….
어디였지?
-환희의 보호! 마법 왕관의 보호! 마력 충전의 가호, 화염 뱀의 보호….
미다스 길드는 마법사들의 길드.
단순히 공격 마법뿐만 아니라, 버프, 지원 마법을 익힌 마법사들도 있었다.
버프나 지원 마법을 전문으로 익힌 마법사들은 사제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오오!”
“의외로 쓸 만한데?! 오크만큼은 아니지만!”
“…돌진이나 해!”
오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산비탈을 기어 올라갔다. 복장은 제각각이지만 버프까지 받아 이동 속도는 재빨랐다.
“그래도 쓸 만은 하네.”
“흥. 오크 놈들. 넘어지기나 해라.”
길드원들은 쌓인 게 많았는지 뒤에서 중얼거렸다.
“조용히 해라. 지원 들어가야 하니까.”
“예.”
요새 앞까지 도착하자, 요새에서도 반응이 튀어나왔다. 벽 위에서 스켈레톤 병사들이 고개를 들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크들이 왜 우리를 공격하느냐!
“어… 골드를 받아서?”
-…쏴라! 지원을 요청해라!
파파파팍!
스켈레톤 궁수들이 닥치는 대로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명중률이나 데미지는 떨어졌지만 숫자로 보충했다.
오크들은 방패를 들어 올리더니 끈기 있게 다가갔다.
“부숴!”
쉬이이익-
집단 마법!
마법사들 여럿이서 마법을 같이 쓰는 것으로 위력을 몇 배로 올리는 마법이었다.
하얀 빛이 번쩍하고 날더니 레이저처럼 쏘아져나가 요새 문을 후려갈겼다.
콰직!
한 번에 요새 문을 뚫었다. 마법사들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가!”
“오케이!”
오크들은 신이 나서 열린 문 사이로 뛰쳐 들어갔다. 그리고….
사라졌다.
“????”
“뭐야!?”
요새 문 앞에 깊게 설치된 구덩이 함정!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요새 문 앞에 저렇게 깊은 구덩이 함정을 파놓는단 말인가.
문으로 출입 안 해!?
“뭐 이런 어이가 없는….”
-침입자 놈들. 간덩이가 부었구나. 내가 누군지 아느냐!
“리치 주제에 어디서 그 입을 놀리느냐! 느부캇네살의 부활을 막기 위해 너를 토벌하겠다!”
-뭔 소리를… 마탑의 체세도, 너희 같은 핏덩이들의 협박에는 결코 굴하지 않는다. 어디 한번 올 테면 와봐라!
체세도가 모습을 드러내자 마법사들은 긴장했다. 일단 리치쯤 되면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위협적인 존재였다.
체세도가 손가락을 들어 그들을 가리켰다.
마법사들은 더 긴장했다.
무슨 마법이지?
“…?”
“…뭐야? 왜 안 나와?”
“시작한 건가?”
“언데드 소환인가? 공격해야 하나?”
“마법 방해 걸어봐.”
“안 걸리는데요?”
웅성거리는 마법사들.
그러나 그 결과는 곧 나타났다.
“감히 어떤 싸가지 없는 놈들이 우리 리치 괴롭히냐!!”
“!!!!”
체세도의 지원 요청을 들은 최강지존무쌍 길드원이 도착한 것이다.
* * *
미다스 길드원들은 기겁했다.
뒤를 돌아보자 언덕 밑을 오크들이 꽉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많이 몰려왔단 말인가.
정말 무시무시한 숫자!
꿀꺽-
절로 침이 삼켜졌다. 아무리 마법사들이 광역기 특화라 해도, 이 인원들이 전부 덤벼들면 위험했다.
“너 뭐하는 놈이야?”
가장 앞에 서있던, <최강지존무쌍>의 간부 아저씨가 으르렁대며 말했다.
왠지 모르게 미다스 길드원은 주눅이 들었다.
레벨이나 장비 차이 때문이 아닌, 그냥 본능적으로 기가 죽은 것!
“그… 리치 토벌하러 왔는데요.”
“누구 마음대로 리치를 토벌해?! 너 길드 동맹에서 나왔냐?”
“헉. 아닙니다! 저흰 미다스 길드에요!”
“미다스? 뭐하는 길드지?”
“…….”
굴욕의 연속!
당황했지만 길드원들은 최선을 다해 설명에 나섰다.
“그, 요즘 엄청나게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주 아주 강한 길드입니다.”
“오스턴 왕국 서쪽을 점령하고 길드 동맹을 제압한….”
“지금 투자하시면 연 10% 상당의….”
“협력 길드도 받고 있….”
길드원들의 설명을 들은 간부 아저씨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뒤의 친구들에게 물었다.
“야. 그거지?”
“그거네.”
사기꾼들!
딱 말하는 게 사기꾼이야!
그러나 다행히 <최강지존무쌍> 길드에는 젊은 사람들도 많았다.
“아저씨들. 저거 진짜 미다스 길드라고 있어요.”
“뭐? 진짜? 난 이름부터 꼭 다단계라고 생각했는데!”
“…….”
“…….”
길드 이름이 어쩌다가….
“그런데 저놈들이 왜 여기 온 건데?”
“이번에 <느부캇네살의 부활>이라고 전설 퀘스트 있잖아요. 그거 막으려고 온 거 아닐까요? 아무래도 리치라면 느부캇네살 부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아니, 그러니까 지금 저놈들이 무죄 추정의 원칙도 무시하고 우리 리치를 와서 괴롭혔다 이건가?”
“…그렇게 되겠죠?”
무죄 추정의 원칙이 판온에서도 쓰이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일단은 그렇지 않을까?
확인을 끝낸 간부는 노려봤다.
“저 리치는 느부캇네살인가 뭔가 하는 놈과는 상관없는, 우리 길드에서 키우는 리치다.”
“…죄송합니다!”
미다스 길드 마법사들은 일단 사과를 했다.
우기는 것도 우길 수 있을 때 하는 거지, 지금 사방에 오크들이 ‘뭐야? 무슨 일이야? 싸움인가?’ 하고 몰려드는 상황에서 그런 짓을 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게다가 잘못 안 게 확실해진 지금. 그냥 사과를 하고 넘어가는 게 나았다.
“요새를 공격한 건 저희가 보상하겠습니다.”
“어떻게?”
“수리비를….”
떠드는 사이 요새 문 앞 함정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도 꺼내줘!”
“수리비 갖고 끝내겠다고?”
“더 보상을 해드리겠습니다. 얼마를 원하시는지….”
“흥. 골드면 다 되는 줄 아나본데, 그건 착각이다!”
“?”
“???”
간부의 말에 다른 길드원들이 당황했다.
아니, 평소에 하던 말이랑 다르시잖아요!
맨날 돈으로 해결하던 게 우리 길드 아니었나?
미다스 길드원들의 파티장, 폴레가 나서서 물었다.
“그러면 뭘 원하십니까?”
“너희들이 직접 도와라! 직접 이 주변에서 일퀘 깨면서 반성하도록!”
“혹시 거절하면….”
“뭐?”
“…하겠습니다.”
근처 일퀘 깨는 걸로 넘어가는 거라면 싸게 먹히는 셈이었다. 폴레는 일단 받아들였다.
* * *
“저기… 난 빠지면 안 되나? 응?”
졸지에 아키서스 포병대 사이에서 사이좋게 걸어가게 된 에랑스 왕국 4왕자!
4왕자는 어떻게든 일행에서 빠지고 싶어 이런저런 수작을 써봤다.
-배, 배가….
-이런! 왕자. 배가 아프다니 배를 갈라서 치료해 줘야겠군!
-…머리가 아픈….
-머리도 갈라주랴?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태현한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4왕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무언가 좀 만만해 보이고 호구 같은 인물이 보였다.
이 일행 중 가장 만만한 호구 같은 인물!
“이보게.”
“??”
[화술 스킬이 낮습니다.]
[아키서스 교단에서 높은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아키서스의 노예입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상대가 현재 매우 겁먹은 상태입니다. 추가 보너스를…]
[명성이 높습니다. …]
[4왕자의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
케인은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알아서 4왕자가 친밀도를 높게 느껴주다니.
뭐지? 공짜 선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