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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900화 (900/1,826)

§ 나는 될놈이다 900화

케인이 구출되고 나서 즉석 팬미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케인은 반쯤 혼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걸 본 태현은 작게 말했다.

“정신 차리게 뺨 때리면 안 되겠지?”

“카메라 너무 많아요.”

“사각을 만들면….”

“무리에요.”

“쯧.”

솔로몬 왕의 판결처럼 팬들이 공평하게 나눠 가질 뻔한 케인!

케인이야 정신이 혼미했지만 팬들은 매우 기뻐했다.

저것이 바로 목숨을 건 팬서비스!

다른 선수들은 ‘아, 지금 바쁘니까 사인은 나중에 해드릴게요’, ‘나중에 사인회 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하거나, 아니면 말도 없이 그냥 휙 지나가 버리는데….

케인은 완전히 반대였다.

팬서비스 화끈하기로는 소문난 남자!

소문을 들으면 자기 팬 아니어도 먼저 찾아가서 강제로 사인을 해주는 게 케인이었다.

-사인해드릴게요!

-아, 아니 전 김태현 팬인데….

-셔츠 위에 해드리겠습니다!

-잠, 잠깐 여기에다 하시면….

-감사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니 이런 미친…!

심지어 사인도 되게 못해!

개발새발이야!

-하하하! 괜찮습니다. 제 기쁨입니다!

오죽하면 ‘연쇄사인마’라는 별명이 붙을까!

또 이런 일화도 있었다.

-전 저번에 받았는데요.

-그래도 해드릴게요.

-사인이 세 개나 있는데….

-그래도… 해드리면….

눈가에 촉촉이 맺히는 이슬!

진짜 울 것 같자 팬은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해주세요!

-크헤헤. 진작 그러시지.

악당 웃음을 터뜨리며 사인해 주는 케인!

팬서비스에 목숨을 건 사람이 바로 케인이었다.

너무 목숨을 걸어서 가끔은 실수도 저질렀지만, 그래도 케인의 팬들은 매우 기뻐하고 좋아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가 팬서비스 안 하는 것보다는 팬서비스 좋은 게 백 배는 나은 법!

그래서 그런지 케인 앞에 선 팬들의 눈빛은 유난히 번쩍번쩍 빛나는 것 같았다.

“케인 선수! 여기 케인 선수를 모델로 만든 인형이에요!”

“헉. 감사합… 잠깐. 왜 폭탄을 껴안고 있지?”

‘나도 보고 좀 배워야겠군.’

태현은 케인을 보며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저런 팬서비스 정신은 배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형! 팬이에요!”

“그래. 여기까지 와줘서 정말 고맙다.”

태현은 남학생을 보며 케인처럼 씩 웃었다. 그러자 남학생이 공포에 질렸다.

“제, 제가 뭐 잘못했나요?”

“…아니야….”

태현은 웃음을 멈췄다. 그제야 남학생은 안도했다.

팬이 돌아가고 나서 태현은 이다비를 보며 물었다.

“내 웃음이 그렇게 무섭나?”

“아뇨? 멋있는데요?”

“그, 그래? 거기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멋있어요.”

“그래…?”

‘눈에 콩깍지가 꼈나….’

‘말했다가는 맞을 테니까 조용히 해야지.’

‘선배님… 눈치를 채십시오…!’

할 말은 많지만 전부 다 입을 다무는 일행들!

카메라는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 * *

“다들 고생 많았다. 이제 바로 숙소로 가서 퀘스트를….”

울먹울먹-

케인은 울먹이는 눈동자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왜 또? 왜?”

“나 약속 있어!”

“뭐? 네가??”

“진짜???”

“정말입니까?”

“…….”

케인은 울컥했다. 이 자식들 날 뭐로 보고 있었던 거지?

“나도 친구가 있고 인간관계가 있….”

“케인. 잘 생각해 봐. 혹시 갑자기 만나자고 한 친구면, 다단계일 수가 있어.”

“아니면 보증일 수도 있다. 너 요즘 잘나가니까 충분히 주의해야 해.”

“케인 씨는 사이비 종교도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사이비 종교에 속을 것 같냐! 날 대체 뭐로….”

말하던 케인은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아키서스 교단도….

“…한 번은 속았지만 두 번은 안 속아!”

“말이 바뀐 것 같은데?”

“무슨 약속인데? 너 진짜 주의 좀 해야 해. 미국에서도 그랬잖아.”

태현은 진지하게 말했다. 다른 일행과 달리 태현은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케인은 스스로 반성하게 됐다.

내가 대체 얼마나 믿음직스럽지 않으면….

“…가족 만나서 밥 먹고 예전 동창들 만나는 거거든?”

“아….”

“난 또 뭐라고.”

“휴. 믿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안도하는 일행!

“어차피 나도 부모님 잠깐 뵙고 와야 하니까.”

“저도 다녀와야겠습니다.”

태현 일행은 각자 흩어졌다. 이다비와 동생들만 혼자 남았다.

“…같이 갈래?”

이다비가 쓸쓸해 보여서 태현은 무심코 물었다. 이다비는 그 질문에 화들짝 놀랐다.

“네!? 무, 무슨 뜻인가요?”

“아니. 그냥 숙소로 가기 심심하면 같이 가자는 소리였는데.”

“괜, 괜찮아요. 안 심심해요! 숙소로 가서 잡템 정리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 그러면 조심해서 들어가.”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 다른 일행들을 뒤따라서 출발했다.

태현의 모습이 사라지자 동생들은 동시에 이다비의 양 옆구리를 세게 찔렀다.

“…!!!”

* * *

“흠,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 않나? 아주 조금 괜찮았다 정도? 별점으로 하면 5개 만점에 3개 반?”

“…….”

“…….”

태현과 정윤희가 뜨뜻미지근한 시선을 보내자 김태산은 결국 항복의 뜻으로 양손을 들었다.

“알겠다! 정말 잘했다! 됐냐!”

“태현이 경기 보면서 소리란 소리는 다 지른 사람이 무슨….”

정윤희가 흘겨보자 김태산은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거리에 그 정도는 안 들렸을 텐데….”

“원래는 안 들렸을 텐데도 들렸다잖아요.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으면….”

태현이 결승전을 돌 때, 앞의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여기 집주인은 뭐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소리를 질러?’, ‘아, 여기가 김태현 선수 집인데 경기 날만 되면 소리를 지른다더군’ 하면서 지나갈 정도였다.

동네방네 이미 소문이 끝난 상황!

“잘 지내셨죠?”

“나야 잘 지냈지. 어떤 미친 기자 놈이 이상한 기사 쓴 것만 아니면.”

“?”

“?”

“아, 아무것도 아니다.”

김태산은 허겁지겁 손을 내저었다. 웬 이상한 기사 제목을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흠흠.”

“?”

태현은 긴장했다. 어머니가 저럴 때는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하곤 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지?

김태산도 그걸 눈치챘는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너, 뭘 한 거냐?’

‘전 뭘 할 시간도 없었는데요. 아버지가 뭘 한 거 아닙니까?’

‘인마. 나도 게임만 했어!’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앗. 아버지가 어머니 두고 게임만 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누굴 폐인으로… 난 어디까지나 적절하게 시간을 분배해서 했다.’

“그래서 그 아가씨는 누구니?”

“네?”

“어?”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던데.”

“????”

“그 너랑 스캔 뜬 걔…?”

김태산은 뜨악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이놈 자식, 기사 떴을 때는 아니라고 그렇게 부정하더니 역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옛말이 틀린 게 아니었어!

“아니 뭔 헛소리에요? 이세연 안 만난 지가 얼만데. 그리고 걔랑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요?”

“게임에서는 만났을 거 아냐! 그게 그거지!”

“현실과 게임은 구분하셔야죠!”

“둘 다 조용히.”

“옙.”

“으, 응.”

“마틴 킴 선생님한테 이야기 들었단다. 네가 어떤 아가씨한테 선물하려고 옷을 맞춰줬다고.”

김태산은 그 말을 듣고 경악과 배신감으로 물든 얼굴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너…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그런 달콤쌉싸름한 연애를….”

태현과 아웅다웅하긴 했어도, 김태산은 태현과 자신 사이의 끈끈한 정을 믿었다.

연애를 하면 이 아버지한테 상담을 해오겠지!

그런데 몰래 숨기고 연애를 하다니.

이건 십 년짜리 삐짐이었다.

“걔는 그냥 팀 동료거든요?”

“뭐?! 설마 그 케인이라는 놈이냐?!”

김태산은 기겁했다. 설마 이세연 기사가 아니라….

“걔한테 왜 해줘요? 이다비 이야기에요.”

“아… 걔? 난 또 뭐라고.”

김태산은 안심했다. 이다비라면 예전에 얼굴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당신은 알고 있었어요?”

“그럼. 걔는 그런 사이 아니야.”

김태산은 웃으면서 말했다. 정윤희는 어이가 반쯤 가출하는 걸 느꼈다.

동고동락하는 팀 동료라면 더 사이가 깊어지면 깊어지지, 어떻게 그렇게 결과가 나오지?

“어떤… 아가씨죠?”

“착하고 성실한 앤데 태현이를 많이 도와주는 애지. 진짜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 걔가 훨씬 아까운 애야.”

“…??”

방금 말한 걸 어떻게 들어야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김태산이 저렇게 단호하게 말하니, 정말 팀 동료 사이라 그런 건가?

“생일이라 선물해 준 거예요. 워낙 도움받은 게 많아서.”

“아. 그런 거였군.”

“…….”

두 부자(父子)는 자기들끼리 알아서 납득하고 있었다. 물론 정윤희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걔는 지금 뭐하니?”

“집에 들어가서 쉬고 있을 걸요.”

“데리고 오지 그랬어. 밥이나 같이 먹게.”

“그러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해서요. 돌아갔는데 아직 안 먹었으면 차려주죠 뭐.”

“…?????”

정윤희는 슬슬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대체 뭔 대화를….

“차, 차려준다고 했는데… 그게 대체 무슨 소리니? 같은 숙소에서 지내지는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 네. 윗집에 살아요.”

“…?!?!?”

거의 같은 숙소잖아!

동고동락이 아니라 동거동락!

“윤희야!? 윤희야?!”

정윤희가 비틀거리자 김태산은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너 이놈시키!”

“제가 뭘 했다고…!?”

“가서 반성하고 있어!”

* * *

‘음.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태현은 반쯤 쫓겨나듯이 집을 나오고서 숙소로 향했다.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면 아버지한테서 설명을 듣겠지만….

‘잠깐. 이거 실수 아닌가?’

원래 김태산한테 해명을 맡겨서 잘 된 적이 없었다.

오해 부풀리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

‘아니… 아버지도 이다비 가정 사정 다 알고 계시니까 알아서 잘 말해주시겠지.’

어머니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았지만, 자세한 상황 설명을 들으면 분명 오해가 풀릴 것이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오해의 소지가 전혀 없으니까!

-케인: 살ㄹ ㅕ줘

“???”

-케인: 술ㄹ을ㄹ 너무 만ㅇ 먹어서 죽겟ㅇ어 태워줘

“…….”

[이 번호를 차단하겠습니까?]

차단하려다가 태현은 멈췄다.

‘후. 그래. 이 정도는 봐줘야지.’

케인도 열심히 했다.

대회 뛰고 뒤의 행사도 열심히 하고 돌아왔으니 친구들과 술 좀 먹을 수 있지!

-오냐. 데리러 가주마.

* * *

“제가 이 정도로 대단…!”

“흑흑… 캡슐 할부로 사서 방에 틀어박힐 때만 해도 얘가 어떻게 되나 했는데… 그뿐만이 아니다. 게임에서 사람 패고 다니는 걸로 돈 번다고 했을 때는 정말 속이 타들어 갔지….”

“아, 아니. 그런 과거는 좀 잊어주시고….”

왜 하필 그런 과거까지!

그런 과거는 잊읍시다!

케인은 필사적으로 분위기를 전환하려 애썼다. 그러나 부모님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감동할 뿐이었다.

‘괜히 일찍 왔다!’

한 1시간쯤 후에 왔으면 과거 일은 끝나고 칭찬만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하필 부모님이 눈물 흘리면서 과거 회상하는 시간에 와서…!

케인은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분명 대회 우승하고 왔는데 기분은 대회 예선 탈락한 기분!

“동, 동생아. 도와줘.”

“뭘 어떻게…?”

“넌 나보다 머리가 좋잖아! 뭐든지! 화제를 돌려봐!”

급기야 여동생한테 매달리는 케인!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들이 줄줄이 나오는 자리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김태현 선수는 같이 안 왔어?”

“아. 그, 그래! 부르려고 했는데!”

태현이 오면 화제가 분명히 바뀔 것이다!

“뭐? 그게 정말이니?”

“아이고, 그렇게 신세를 졌는데 감사 인사를….”

“아니…! 그런 거 좋아하는 친구 아니거든!? 부담될 테니까 절대 그러지 마!”

케인은 기겁해서 말리며 문자를 보냈다.

‘잠깐. 그냥 보내면 안 오겠지?’

김태현의 눈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눈치챈다면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 술 마셔서 데려다 달라는 척을 하는 거야!’

놀라운 기적이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케인이 태현을 속인 것!

케인의 동생, 김예리는 그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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