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898화 (898/1,826)

§ 나는 될놈이다 898화

태현이 탐욕스럽고 사악하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건 확실히 헛소문이었다.

저렇게 대륙을 지키기 위해서 온몸을 다하는 영웅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저 영웅을 질투하는 사악한 이들이 퍼뜨린 헛소문일 테지!’

시종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확실히 국왕 폐하의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다고.

* * *

“가서 사정 말하고 성기사부터 사제까지 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건 전부 빌려 나와.”

“내가 왜 그래야 하냐!”

“이다비. 내가 패면 죽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패줄래?”

“네!”

이다비는 망설이지 않고 돈자루를 꺼내 휘두르기 시작했다. 찰진 소리와 함께 4왕자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억! 컥! 헉!”

“태, 태현 님!”

“왜? 마음이 아파서 못 때리겠어?”

태현은 다른 사람을 시켜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이다비는 고개를 저었다.

“스탯이 너무 잘 오르는데요?”

“!”

레벨은 낮아도 왕족이란 것 때문에 추가 보너스가 들어가는 4왕자!

태현은 매우 부러워졌다.

‘젠장! 나도 하고 싶다!’

“알, 알겠다! 하면 되잖아! 하면!”

4왕자는 끙끙대며 외쳤다. 물론 태현과 이다비는 못 들은 척했다.

“지수야. 너도 와서 스탯 좀 올리자. 수혁이도.”

“네!”

“예!”

케인은 슬쩍 물었다.

“나도….”

“넌 데미지 높아서 안 돼 인마.”

케인은 시무룩해져서 물러났다.

“아니 한다니까? 한다고 이 자식아! 내 말 안 들리냐!”

4왕자는 그렇게 당하고서도 아직 태현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 못하고 있었다. 이것도 재능이었다.

처맞는 재능!

“저 자식 재능이 있네.”

“맞아. 악마들과 비슷한 재능이 있어.”

일행들은 수군거렸다.

한참이 지나고 더 이상 패도 스탯이 오르지 않을 때가 되자, 태현은 그제야 공격을 멈췄다.

“이제 할 생각이 들었나?”

“아까부터 한다고… 말 했는데….”

[설득에 성공했습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4왕자가 매우 겁을 먹습니다. 공포 상태가 풀리기 전까지 도망치지 않습니다.]

[……]

“자. 어서 들어가라.”

태현은 4왕자를 밀었다. 4왕자는 타이란 교단의 신전으로 들어갔다.

“근데 김태현. 저기서 4왕자가 자기 신분으로 성기사 빌려서 우리 잡으려고 하면 어떡하냐?”

“튀어야지 뭐.”

“…진, 진짜로?”

“농담이야. 공적치 포인트나 퀘스트 한 거 있어서 조금 귀찮아질 뿐이지 크게 문제는 안 될 거야.”

쌓아놓은 공적치 포인트가 워낙 어마어마해서, 4왕자 뺨을 때렸어도 어떻게든 수습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까워서 그렇지!

‘만약 내 공적치 포인트를 그딴 걸로 날려 버린다면 네놈을 아키서스 형에 처해주마.’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태현의 공포, 명성, 악명 3종 스탯에 압도당하고 화술 스킬에 압도당한 4왕자는 얌전히 하란 일을 해냈다.

“빌… 빌려 나왔다.”

[타이란 교단에서 느부캇네살의 위협을 듣고 성기사단을 꾸립니다!]

[타이란 교단에서 <느부캇네살의 부활>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

[……]

시작이 좋다!

태현은 의외로 깔끔한 시작에 만족했다. 타이란 교단에서 ‘아키서스랑은 안 놀아!’이러면 어쩔까 싶어서 걱정했던 것이다.

“아키서스 교단은 믿기 힘들지만, 김태현 국왕 폐하는 일단 대륙의 영웅은 영웅. 느부캇네살의 부활을 막으려는 것은 확실하겠지요.”

성기사들과 사제들은 그렇게 말하며 나왔다.

이제까지 온갖 악마들을 쓰러뜨려 온 보람이 있다!

아키서스 교단에 불만은 많아도 일단 태현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어주는 것이다.

물론 저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태현이 느부캇네살을 일단 부활시키고 잡으려는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좋아. 이대로 돌면서 교단 성기사단과 사제단, 귀족 기사단만 가지고 나오면….”

태현은 손가락을 접으며 계획을 짰다.

에랑스 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은 귀족들의 기사단이었다. 레벨이 400, 500을 넘어가는 기사들의 돌격은 플레이어들이 따라갈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넓은 평원에 기사단을 배치하고 성기사단과 사제들을 준비시켜 놨다가 합공하면….

아무리 느부캇네살이라 해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물론 이 계획이 성공하려면 일단 귀족들의 기사단을 빌려내야 했다.

“아니, 그건 무리지.”

4왕자는 듣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지?”

“귀족들이 미쳤다고 기사단을 빌려주겠어.”

“왕족이 말하는데?”

“말해도 안 빌려주지. 오히려 자기들끼리 손잡고 반발할걸?”

‘에랑스 왕국이나 아탈리 왕국이나 비슷비슷하군.’

왕이 명령을 내린다고 ‘예! 따르겠습니다!’ 하는 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었다.

영지가 있고 세력이 있는 귀족이면 ‘잠깐 생각 좀 해보고….’란 반응부터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 건은 정말 남는 게 없었다.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느부캇네살을 막기 위해 기사단을 보내는 일 아닌가.

성기사단 같은 이들이 아니면 참석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귀족 기사단은 포기하고 교단만… 넌 근데 친한 귀족도 없냐?”

태현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은빛 검 기사단> 같은 기사단은 태현한테 알아서 와서 따르겠다고 무릎을 꿇었었다.

물론 이 기사단은 악마나 언데드만 찾아다니면서 박살 내고 다니는 기사단이다 보니 저런 게 가능한 거긴 했다.

그렇지만 4왕자도 친한 귀족이나 기사단장이 있다면, 이번 일에 도와주러 와줄 수도 있지 않은가.

4왕자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나는… 딱히 친한 놈이 없어서….”

“야. 잘못 뽑은 것 같은데 왕자 다른 놈으로 데리고 오면 안 되냐?”

뒤에서 케인이 수군거렸다. 그 말에 4왕자가 발끈했다.

“어디서 천한 게!”

“뭐… 뭐? 내가 아무리 <아키서스의 노예>지만 너한테 그런 소리 들을 이유는 없다고!”

“뭐? 노예? 노예가 감히?!”

“…둘 다 추하니까 그만하고. 다음 교단으로 가자고.”

* * *

<아키서스 허기의 던전에 숨겨진 비밀–파이토스 교단 퀘스트>

대륙에 있는 모든 교단들은 어떻게 하면 강한 악마들을 쓰러뜨릴 수 있는지 고민해 왔다.

그런 와중에 들려온 아키서스 교단의 던전은 모든 교단의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강력한 대악마를 봉인할 수 있는 던전은 교단에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

모든 교단은 그 비밀을 알아내고 싶어할 것이다.

비밀을 지켜내거나, 아니면 순수한 선의로 다른 교단에게 비밀을 알려라.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의 몫이다.

보상: ?, ???, ????

‘응?’

태현은 당황했다.

아키서스 허기의 던전이 그렇게 대단한 던전인가?

아니, 물론 랄그갈이 지금 거기 갇혀 있으니 대단한 던전이긴 한데….

다른 교단도 비슷한 거 하나씩은 있을 줄 알았다.

[카르바노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타박합니다.]

세상 어디 교단에 그런 던전이 있겠어!

“크흠, 크흠….”

“?”

태현이 신전 앞에 도착하자 헛기침을 하며 고위 사제들이 우르르 나왔다.

“폐하… 음… 그러니까….”

상대하기 싫지만 말은 걸어야 할 때의 복잡한 표정!

파이토스 교단의 사제들은 표정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

‘아키서스 교단에 비하면 한참 밑이군.’

아키서스 교단 사제들은 다들 표정 관리 잘하는데!

[그건 좋은 게 아니라고…]

한참을 자기들끼리 우물쭈물하고 있던 파이토스 교단 고위 사제들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외쳤다.

“폐하!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파이토스 교단이 선택한 건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태현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태현이 아탈리 왕국에서 파이토스 교단을 밀어내버리고 아키서스 교단을 박아놨으니, 서로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모르는 척!

그러지 않으면 대화가 진행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지간히도 던전이 탐나나 보군.’

태현이 했던 짓들을 모두 없었던 척하고 ‘와! 대륙의 영웅! 위대한 폐하 들어오시지요!’이러는 사제들을 보니 뭔가 짠했다.

[카르바노그가 파이토스 교단을 동정해줄 필요 없다고 합니다. 교단도 있고 신전도 많고 아키서스 교단보다 풍족하게 잘나간다고 합니다.]

‘…사실로 때리는 건 그만둬….’

카르바노그의 입으로 들으니 괜스레 서글퍼졌다.

태현이 아무리 아키서스 교단을 밀어주고 키워줘도 따라갈 수 없는 근본적인 격차!

한때 망해서 무(無)에서 시작한 교단이 따라갈 수가 없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자금, 기사 숫자, 사제 숫자, 건물 숫자 등등….

아키서스 교단이 앞서는 게 있다면 현재 대륙에서 날리는 명성과, 사악한 계략 정도였다.

[?]

‘왜?’

뭔가 이상한 게 있는데?

카르바노그는 의문을 품었지만 태현은 모르는 척 파이토스 교단 사제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들이 원하는 게….”

“폐하! 저희 교단에 먼저 들려주시지 그랬습니까!”

“??”

대화를 막 시작하려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외침!

파이토스 교단 신전 옆에 있는 다른 교단들에서 나온 사제들이었다.

태현과 비교적 덜 맞은, 아니 비교적 사이가 좋은 교단들!

그런 만큼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파이토스 교단에 뭐하러 들어가십니까. 사이도 안 좋으신데.”

“자자. 저희 포드세 교단에 먼저 들리시죠. 포드세 님도 좋아하실 겁니다.”

잽싸게 태현의 왼쪽 팔과 오른쪽 팔을 각각 붙잡는 데 성공한 사제들!

파이토스 교단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이런 상도덕도 없는 새끼들!

“지금 뭐하는 것이냐! 대화하는 게 보이지 않느냐!”

“대화를 막 하려고 했지 시작한 건 아닌 것 같으니….”

“험험. 먼저 대화하고 보내드리리다.”

먼저 던전 뜯어내면 볼일 없다!

각 교단의 사제들은 노골적인 의사를 드러내며 그렇게 말해댔다.

“이놈이!?”

“어딜 잡아! 해보자는 거냐!”

멱살잡이!

품위 있는 고위 사제들의 고품격 싸움!

성기사들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칼 들고 싸웠을 테니까.

다행히 사제들이라 그런지 멱살을 잡고 몇 가닥 있지도 않은 머리칼을 잡으려고 허우적댔다.

신나게 구경하던 태현은 아차 싶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잠깐!”

“?”

“???”

“지금부터 악마 봉인 던전 경매를 시작한다!”

“…????”

“고, 고위 사제단 1년 대여!”

가장 눈치 빠르고 민첩한 사제 한 명이 손을 들고 외쳤다. 그 말에 다른 사제들이 경악했다.

이, 이 비겁한 놈이!

“교단 상급 보물 창고에서 무작위 보물 하나를 가지고 갈 수 있는 특권을….”

“성기사단장의 비전 스킬을….”

뒤에 있던 태현 일행의 입이 떡 벌어졌다.

교단 플레이어라면 몇 년을 일궈야 얻어낼 수 있는 보상이 쏟아지고 있다!

[대륙의 교단끼리 경쟁을 붙였습니다!]

[이는 예전부터 이어져 온 교단의 전통입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사라진 전통을 부활시킨 것으로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교단의 전통이 부활한 것으로 인해 아키서스의 권능 스킬들의 레벨이 오릅니다.]

[<신성 권능> 스킬의 레벨이 오릅니다.]

[……]

이런 전통이 있었나?

“파… 파이토스 교단 상급 건물을 지어드릴….”

“그게 먹히기나 하겠습니까!”

“맞아! 아키서스 교단도 자기 건물이 있는데 뭐하러 파이토스 교단 건물이 필요하겠나!”

다른 교단 사제들이 일제히 파이토스 교단을 비웃었다.

서로 경쟁하고 있다 보니 평소의 우정 따위는 잊어버리고 바로 견제에 들어간 것이다.

교단 상급 건물은 분명 강력한 건물이고 어마어마한 선물이긴 했지만, 태현에게 그게 필요하겠는가?

태현은 아키서스 교단의 교황인데?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바로 이걸….”

“괜찮군.”

“?!”

“폐, 폐하?! 그 건물을 어디다 쓰시려고요?!”

“어디다 쓰냐니….”

<파이토스의 일격>을 영구 해제하는 데에 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