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97화
“잠깐. 부활을 시키면 어디서?”
이세연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부활 장소도 매우 중요했다.
일단 그 장소는 느부캇네살의 독기와 사기(邪氣)에 오염될 것이고, 고위 언데드 군대가 대량으로 소환될 테니 그 주변도 위험했다.
어디에서 소환하든 간에 그쪽 NPC는 절대로 반대할 게 분명!
‘앗. 혹시 우르크 지역인가?’
지금 김태산과 오크들이 엄청나게 숫자를 불려 나가고 있는 우르크 지역.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십만 오크 대군을 동원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거기라면 땅도 넓고 피해도 적고 도움도 받기 쉬우리라.
“아스비안 제국.”
“…….”
이세연은 경악했다.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장소!
“야! 너 내가 아스비안 제국에서 얼마나….”
아스비안 제국을 부활시킨 것도 이세연이었고, 거기서 기반을 닦고 있는 것도 이세연이었다.
다른 대형 길드들이 중앙 대륙에서 치고받으며 경쟁하는 동안 이세연은 새 길을 찾아냈던 것이다.
근데 그걸 훼방을 놔?!
“아냐. 잘 들어봐. 이세연.”
“듣기 싫어!”
[화술 스킬이 안 통한다면서 카르바노그가 놀랍니다.]
‘카르바노그. 저건 다른 모험가라서 안 통해….’
사람이잖아!
태현은 진지하게 설득을 시작했다. 이건 이세연도 분명 이익이었다.
“잘 들어봐. 이세연. 일단 중앙 대륙 어디든 간에 소환하는 순간 거기 왕국이랑은 철천지원수가 된다고.”
“그거야 알지.”
미리 말하면 무조건 반대할 것이고, 강행하는 순간 무조건 반대 현상금이 최대로 걸리리라!
“중앙 대륙 왕국들하고 사이가 안 좋으면 퀘스트 하는데 너무 불편해. 역시 다른 땅이 낫다고.”
“아스비안은 안 불편해? 응?”
“거긴 중앙 대륙 왕국들처럼 철저한 곳이 아니잖아. 사막도 엄청나게 넓고 황제 말 안 듣는 부족들도 많고 말이야. 게다가 귀족들이 다 언데드라서 언데드 오염 퍼져도 별 타격도 없고. 무엇보다….”
“?”
“우이포아틀하고 느부캇네살이 붙으면 좋지 않을까?”
“!!”
이거구나!
이세연은 태현이 뭘 원하는지 깨달았다.
둘을 맞붙여서 공멸시키는 것!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왔다.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해내다니. 정말….
“우이포아틀이 사라지면 아스비안 제국에서 누가 좋겠어. 네가 좋지 않겠어?”
지금 이세연은 아스비안 제국에서 매우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이포아틀이 사라지면…?
“말은 맞는 말인데….”
이세연은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이론은 완벽한데, 이게 제대로 되려면….
“만약 실패하면?”
“하하. 우리 둘이 같이 하는데 왜 실패하겠어?”
“실패하면 대책이 없다는 거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대책이 있긴 있었다.
도망!
아스비안 제국은 멀고 머니, 중앙 대륙으로 호다닥 도망치면 한동안 쫓아오지 못하리라.
물론 결국에는 쫓아오겠지만….
그러나 태현은 당당했다.
“그렇다면 넌 다른 계획이 있어?”
“윽.”
아픈 곳을 찔린 이세연은 멈칫했다.
확실히 느부캇네살을 부활시킬 만한 네크로맨서 단체들을 찾아다니면서 조지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하나만 놓쳐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부활!
“미리 막는 건 한계가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영웅들은 원래 그렇게 막아왔다고 말합니다.]
카르바노그는 태현을 설득하려 애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리 네크로맨서들을 조지는 게 정석적인 방법!
대륙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들은 모두 다 그렇게 막아오지 않았던가.
힘들고 실패할 수 있어도!
그러나 태현과 이세연은 과격할 때는 정말 과격해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쪼잔한 방법은 쓰지 않는다!
막을 거면 제대로 막는다!
“좋아. 그렇게 하자!”
“그럴 줄 알았어!”
태현과 이세연은 손을 잡았다.
계획 결정!
* * *
“이세연이 김태현과 손을 잡았답니다!”
“뭐?!”
게시판이란 게시판은 다 김태현과 이세연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 미다스 길드에서도 모를 리 없었다.
“이름값 차이가 너무 심한데….”
“이건 반칙이지!”
랭커들이 불평할 정도의 이름값!
미다스 길드의 랭커들도 자기 나라에서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랭커들이었다.
그러나 태현이나 이세연과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심했다.
그들의 이름이 부족한 게 아닌, 둘이 너무 사기적이었던 것!
“진정해라. 이미 이렇게 된 걸 어떻게 하겠나. 우리는 우리대로 퀘스트를 진행한다.”
랭커들은 불평을 멈추고 수습에 들어갔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불평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럴 바에는 빠르게 움직이는 게 나았다.
“지금 모인 마법사들을 나눠서 움직인다! 느부캇네살의 부활에 관한 정보는 모조리 모아라! 경매장에서도 느부캇네살 관련 아이템은 전부 사모아라. 분명 느부캇네살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집단이 있을 것이다. 그놈들을 먼저 찾아서 막아버린다!”
미다스 길드는 매우 멀쩡하고 정상적인 생각을 했다.
느부캇네살이 부활한다고?
그러면 부활시키려는 강력한 악의 세력이 있겠네?
그 악의 세력만 막으면 부활 못 하겠군!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태현과 이세연이 너무 막 나가고 있었을 뿐!
* * *
“가능한 지원이란 지원은 모조리 챙겨야 해. 특히 교단들.”
리치 상대할 때 성기사와 사제 없이 싸우는 건 자살행위였다.
무조건 최대한 많이 데리고 가야 했다.
문제는….
“네가 가서 설득해.”
“난 네크로맨서거든? 네가 가야지!”
교단 관련 직업이면서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세연은 태현을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보다는 태현이 교단과 사이가 좋을 것이다.
“끙… 나도 사이가 별로….”
태현이 사이가 좋은 교단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데메르 교단하고는 좀 친했다. 사실 데메르 교단은 모든 교단하고 친했다.
판온에서 가장 친절한 교단!
그쯤 되어야 아키서스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음. 국왕 이름 빌리는 게 낫겠다.”
태현의 이름보다는 에랑스 국왕의 이름을 파는 게 나을 것!
원래라면 대륙의 위기가 닥쳤으니 어지간하면 협력을 해줄 테지만, 태현은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사이가 별로였던 것!
“폐하께서는 아직….”
“직접 뵙고 말할 테니 비켜라!”
이번에도 가로막는 경비병은 있었다. 태현은 그냥 밀어버렸다.
저번에야 급하지 않았다지만 이번에는 급하다!
“아니 들어오면….”
“어. 어. 너 지금 왕족한테 창 겨누냐?”
“…….”
[화술 스킬이…]
[협박이…]
“크흑!”
경비병은 감히 창을 들지 못했다. 치사하고 더러워서 진짜…!
“후. 왕궁 경비병이 왕족한테 창 겨눈다고 소리 지를 뻔했잖아. 앞으로는 조심해라.”
“예….”
[에랑스 왕궁 경비병들 사이에서 당신의 악명이…]
태현은 수월하게 정문을 돌파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하게 장식된 복도를 따라 쭉쭉 걸어가자 저번에 본 얼굴이 계단을 내려왔다.
국왕을 모시던 시종장이었다.
“이제야 오셨습니까? 왜 이렇게 늦게 오신 겁니까, 폐하?”
“?”
태현은 의아해했다.
“불렀었나?”
“예. 폐하께서 부르셔서 시종을 시켰는데….”
“??”
경비병들이 국왕 상태 안 좋다고 오는 걸 막지 않았나?
[음모의 냄새가 난다고 카르바노그가 코를 킁킁댑니다.]
“누가 막던데?”
“예? 감히 폐하의 명령을 누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대쪽에서 잘 차려입은 왕자가 나타났다.
“뭐야, 왕궁에 어떤….”
“…….”
“…….”
180도 회전!
왕자는 태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얼어붙더니 돌아서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저놈 뭡니까?”
“왕, 왕자 전하십니다!”
“몇 왕자?”
“4왕자….”
[칭호: 왕족 살해자를 갖고 있습니다.]
[에랑스 왕국 4왕자를 공격할 때 추가 보너스를…]
‘안 할 거거든.’
쓸데없이 친절한 메시지창!
오스턴 왕국에서 했던 일들 때문에 <왕족 살해자> 칭호까지 갖고 있는 태현이었다.
거기에 명성, 악명, 공포 스탯을 어마어마하게 쌓아올린 상태.
4왕자가 보자마자 겁에 질려서 도망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저놈이 설마 길막한 건가?”
“크흠, 크흠. 그… 오해가 있으셨….”
“맞군.”
태현은 말이 끝나자마자 달려 나갔다.
너 이 새끼!
너 때문에 내가 기사단하고 보물하고 명성만 받고 끝났잖아!
물론 그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카르바노그가 오늘 <왕자 살해자> 칭호도 받자고 합니다.]
“힉, 히이익!”
4왕자는 레벨이 100도 안 되는 허접한 NPC였다. 태현은 곧바로 4왕자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이, 이거 놓지 못해!? 여기가 어디라고!”
“시종장. 눈 돌려라. 눈 안 돌리면 이 왕궁에서 아키서스가 뭔지 느끼게 해주마.”
“힉.”
시종장도 귀족이고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사람이었지만, 태현의 협박은 차원이 달랐다.
수많은 보스 몬스터들을 다 썰어버리고 이 자리에 온 사람이 하는 협박!
병사들은 멀고 태현은 가까웠다.
“너 이놈. 내 1,728만 골드를 방해해?”
“그, 그게 뭔 소리야?”
묘하게 구체적인 액수!
이미 태현은 머릿속으로 가상의 견적까지 다 만들어놨던 것이다.
[화술 스킬이…]
[공포…]
[악명…]
[4왕자가 완전히 겁에 질립니다!]
“그래!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폐하가 너만 예뻐해서….”
“꼬우면 독을 네가 풀어줬어야지! 어! 네가 안 해놓고 왜 내 보상을 방해하냐!”
태현은 4왕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칭호로 인해 추가…]
“컥.”
4왕자는 충격을 받고 바닥에서 굴렀다. 그걸 본 태현은 깜짝 놀랐다.
설마 죽냐?!
다행히 죽지 않았다. 차고 있는 장비들이 워낙 좋아서 데미지를 흡수해 준 모양이었다.
‘후. 진짜 왕자 살해자 받을 뻔했군.’
상대 레벨이 낮다 보니 이런 것도 주의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왕자를 죽이면 뒷감당이 안 됐다.
‘왕자를 죽이면 시종장도 죽이고 여기 있는 사람 다 죽여서 증거인멸을 해야 하나?’
[카르바노그가 정신 차리라고 합니다.]
다행히 왕자는 멀쩡했다. 태현은 멱살을 잡고 물었다.
“내 골드 어쩔 거냐?”
“내, 내가 대신 줄….”
“네가? 네가 돈이 좀 많아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많아?”
“최,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 다른 형들도 시켰….”
“뭘 시켜?”
“널 막으라고….”
“…….”
태현은 시종장을 쳐다보았다. 매우 민망해진 시종장은 시선을 피했다.
왕궁에서 이런 일도 모르고 있었던 것도 부끄러웠고, 다른 왕국 사람에게 이런 추태를 보이는 것도 부끄러웠던 것이다.
“후. 그래. 네가 뭔 죄겠니.”
“그렇지? 나는 잘못이 없….”
퍽!
“이 자식이 예의상 해줬으면 예의상 잘못을 빌어야지 눈치가 없네.”
“컥… 그걸 내가 어떻게 알….”
“따라와라. 네 골드도 그렇고 널 쓸 곳이 많다.”
태현은 계획을 변경했다. 4왕자를 시켜서 지원을 뜯고 다니기로.
이런 놈이라도 얼굴과 명성은 쓸 만하겠지!
“어… 폐하. 폐하께서 만나시길 원하시는….”
“대륙의 위험이 있어서 나중에 만나도록 하지.”
태현은 슬쩍 발을 뺐다.
방금 4왕자를 왕궁 구석에 붙잡고 팼는데 국왕을 만나서 좋을 게 없었다.
만났다가는 위험해!
이미 다른 왕자들이 모함을 끝냈을지도 몰랐다.
‘설마 왕자들이 이런 일을 할 줄은 몰랐는데….’
왕자들 입장에서는 태현이 질투 날 만도 했다.
‘쯧. 예측했어야 했는데.’
[사람인 이상 그걸 어떻게 예측하냐고 카르바노그가…]
‘아냐. 열심히 하면 돼.’
[…….]
보상을 미리 최대한 챙겨둔 게 다행이었다. 이제 한동안 국왕 만나는 건 피하면서 왕자들을 몰래 조지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눈앞의 4왕자를 써서 지원부터 뜯어내자!
“폐하! 잠시만…!”
“안 돼! 한시가 급하단 말이다!”
태현은 시종장의 부름을 무시하고 4왕자를 낀 채 호다닥 달려나갔다.
그 모습에 시종장은 감탄했다.
‘과연 대륙의 영웅이시다!’
이런 어마어마한 기회를 내버려 두고 대륙의 위기를 막으러 달려 나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