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894화 (894/1,826)

§ 나는 될놈이다 894화

“참가! 참가!!”

“참가합니다!”

1초도 걸리지 않고 참가를 외치는 플레이어들!

태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며 말했다.

“이 좋은 퀘스트를 받아서 기쁜가?”

“예!”

“이 좋은 퀘스트를 남들에게도 나눠주고 싶겠지?”

“아니오!”

“?”

태현은 당황했다. 아니 왜?

“저희만 하고 꿀 빨고 싶어요!”

당당함 그 자체!

마법사들의 모습에 케인은 감탄했다. 저런 솔직한 놈들을 봤나.

“…너희들만 하기 무리니까 다른 플레이어들한테도 말해줘라.”

“흑흑. 저희만 하고 싶은데….”

마법사들은 아쉬워했다. 그래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진 않았다.

솔직히 전설 퀘스트를 이 인원만으로 깬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게 느껴지긴 했던 것!

원래 이런 건 사람 숫자로 무식하게 밀어붙여야 답이 나왔다.

“그리고 마탑 NPC들도 끌어들이자.”

“예? 그러면 좋겠지만 어떻게 끌어들입니까?”

“쉽지. 가서 말하면 돼.”

“???”

* * *

‘윽. 쉽지 않군.’

크로포드는 얼굴을 찌푸렸다. 눈앞에는 마탑 화염학파의 마스터인 대마법사 플레밍이 앉아 있었다.

“크로포드. 요즘 자네 활약을 들었네. 잘하고 있더군.”

“감, 감사합니다.”

크로포드는 일단 고개를 숙였다.

플레밍은 크로포드가 초보 때부터 신세를 진 마탑의 최고위 NPC였다.

갑 중의 갑!

아직도 크로포드는 플레밍한테 퀘스트나 스킬, 아이템을 받을 게 많았다. 당연히 태도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스승이나 자기가 속한 단체 대장을 맡고 있는 NPC는 매우 조심해야 했다.

말 한마디에 친밀도가 깎이고 일이 꼬이는 것이다.

태현처럼 스킬 믿고 편하게 말하는 사람이 이상한 것!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일로 날 만나자고 한 건가? 나는 바쁘네만….”

“크흠. 크흠. 그러니까 그게….”

[현재 왕국 마탑 공적치 포인트는 17,832입니다.]

[공적치 포인트를 넘어서는 부탁은 할 수 없습니다.]

[현재 플레밍과의 친밀도는 약간 좋음 상태입니다. 플레밍은 당신을 뛰어난 화염 마법사로 보고 있습니다.]

‘아오. 젠장. 그렇게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아직도 약간 좋음이야? 꽤 좋음으로 어떻게 올리지?’

플레밍은 꽤 깐깐한 노인이라 올리는 게 쉽지가 않았다.

“그게, 음, 흑마법 학파 쪽에서 도는 소문을 들어보니….”

[친밀도가 하락합니다.]

‘아니 XX!’

말만 꺼냈는데 내려가는 친밀도!

저 친밀도를 올리기 위해 <불의 상급 정령 포획>과 <화염도마뱀의 간 수집>을 얼마나 깼던가!

“흑마법 학파의 소문을 듣다니. 자네 같은 인재가 실망이로군.”

“아, 아닙니다. 믿은 게 아니라! 믿은 게 아니라!”

크로포드는 입술이 말라오는 걸 느꼈다. 이렇게 반응하는데 어떻게 설득을 한단 말인가?

-…참가하라!

“?”

-참가하라! 참가하라!

“???”

“이게 무슨 소린가?”

문밖에서 들리는 희미한 함성! 플레밍은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열어보게.”

시종이 문을 열자 소리가 확실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화염학파 마법사들은 느부캇네살 부활 저지에 참가하라! 참가하라!

-우리도 왕국의 일원이다! 일원이다!

-대륙의 위험을 지켜야 한다! 지켜야 한다!

“…….”

“…….”

스태프를 흔들면서 항의하는 마법사 플레이어들!

넓은 광장을 꽉 채울 정도였다.

‘아니, 이 인원을 어떻게 데리고 온 거야?’

크로포드는 깜짝 놀랐다. 아까 힐끗 봤을 때는 저 정도가 아니었는데….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저 인원을 어떻게 모았느냐가 아니었다.

저렇게 모은 인원으로 뭘 하는 거야 대체!?

“스태프에 불을 붙이세요. 좀 더 위협적으로 보이게.”

“앗. 네.”

“이 빨간 띠를 두르세요. 좀 더 효과적이고 강렬해 보이죠.”

“감사합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마법사 플레이어들을 도왔다.

마탑에서 배우라는 마법은 안 배우고 감히 자기한테 따지는 저 건방진 모습에, 플레밍은 뒷목을 잡으며 외쳤다.

“건방진 놈들! 화염의 비술을 공부해도 모자랄 시간에 감히 어디서 헛소문을 듣고 온 것이냐!”

“우우! 플레밍은 물러가라! 플레밍은 물러가라!”

“물러갈 때 마법서도 내놓고 가라!”

원래라면 마스터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플레이어들이었지만, 그들은 겁이 없었다.

왜냐하면….

태현이 뒤에 있었으니까!

“여봐라! 저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어라!”

플레밍은 분노해서 휘하 마법사에게 명령했다. 마법사 플레이어들과 플레밍은 수준이 달랐다.

화염 파도 한 방이면 저들도 뜨거운 맛을 보고 반성하겠지!

“멈춰라, 플레밍! 어떻게 그럴 수가! 화염학파의 마스터란 자가 마법사들을 공격하려고 하다니!”

태현은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다. 플레밍은 당황해서 멈칫했다.

“폐, 폐하?”

저번에 체시자가 불러와서 다 같이 악마 소환하는 걸 구경했을 때는 비교적 만만했지만, 지금은 대륙의 영웅이었다.

함부로 대할 수는 없는 법!

그랬다가는 왕족들한테 ‘야. 넌 왕족도 만만하게 보이나 보다? 와~ 마스터 대단하네~ 우리가 꿇고 다녀야겠네~~’ 같은 반응이 날아올 것이다.

아무리 마탑의 마스터여도 왕족들은 자기들과 같은 신분을 더 높게 쳐줬다.

왕인 태현과 마스터가 시비 붙으면 태현을 편들어줄 이들!

“이 뜨거운 열정이 안 보이나!”

실제로 뜨거웠다. 다들 극적인 효과를 내려고 스태프에 불을 붙이고 있었으니까.

“이 영웅들의 열정을 막을 생각인가! 아! 너무 슬프다!”

“아, 아니. 흑마법사들의 헛소문을….”

“민심이 천심인데! 마스터란 자가 이런 것도 모르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우우우-

마법사들은 신이 나서 야유했다.

“마스터면 다냐!”

“맨날 잡템만 모아오라고 시키고! 얼굴은 보여주지도 않고!”

“솔직히 당신한테 쌓인 거 많다 이거야!”

평소 쌓인 원한까지!

크로포드야 플레밍과 직접 대면할 정도의 위치지만,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대면도 못 한 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이었다.

얼굴도 못 보고 공적치 포인트 조금 쌓겠다고 잡퀘를 해온 원한!

플레밍은 당황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크로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하는 거 이해한다.’

-뭐하냐. 크로포드?

-?

-말리는 척해야지. 뭐하고 있어. 진짜 플레밍 공격해?

태현의 귓속말에 크로포드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렇구나!

“잠깐! 플레밍 님은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으로 하신 말이시다. 절대로 퀘스트를 방해할 생각은 아니시란 말이다!”

[플레밍의 친밀도가 조금 오릅니다.]

‘아. 이 와중에 조금 오르네.’

크로포드는 불평했다. 이렇게 나서주는데 조금 오르냐?

“플레밍 님의 본뜻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나서야지, 참가하지 않을 생각은 아니셨다.”

“아니, 잠깐만. 그렇게 말하면 내가 참가한다는 뜻으로 들리잖나.”

“아니라고?”

태현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플레밍은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그게… 후, 폐하께서 보증을 해주신다면… 믿을 만하겠지요….”

플레밍은 결국 포기했다.

[설득이 성공했습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

[마탑의 화염학파 마법사들이 이번 퀘스트에 참가합니다!]

[마탑의 화염 마법사들은 흑마법사들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만약 흑마법사들과 계속해서 문제가 일어날 경우 퀘스트를 이탈할 수 있습니다.]

“와아아아아!”

“플레밍! 플레밍! 플레밍!”

‘휴. 다행이군.’

[플레밍의 친밀도가 조금 오릅니다.]

크로포드는 메시지창에 안도했다.

공적치 포인트만 헛되이 썼다고 투덜대고 있었는데 태현이 이렇게 보상을 해준 것이다.

‘녀석. 안 그래 보여도 챙겨주는 게 있다니까. 하긴, 그러지 않으면 앨콧 같은 놈이 계속 따라다니진 않겠지.’

앨콧이 들으면 ‘뭔 개소리야 미친놈아! 난 따라다니는 거 아냐!’ 하고 항의할 소리!

“폐하. 실례지만 혹시 사디크의 권능을 가지고 계시는지?”

“아, 아닌데. 잘못 본 거 아닌가?”

일단 부정부터 하고 보는 태현!

“폐하에게서 비범한 불꽃의 기운이 느껴지십니다. 아주 강렬한….”

“사디크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사디크 교단 같은 악신 교단은 당연히 싫어합니다만, 사디크의 권능은 강력한 불꽃의 권능입니다. 독도 약으로 쓰듯이 사악한 힘도 잘 다루면 자신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법입니다.”

[사디크의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디크 교단의 적통을 잇고 있습니다!]

[화염학파의 마스터, 플레밍이 당신에게 호감을 갖습니다!]

[사디크 관련 퀘스트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원래 갖고 있던 국왕 작위에, 명성. 거기에 사디크 관련 특성까지.

플레밍은 태현에게 매우 친근하게 굴었다. 그 모습을 본 크로포드는 다시 생각을 바꿨다.

‘저, 저 얄미운 놈!’

남은 몇 년 걸려서 쌓은 걸 한 번에…!

“혹시 플레밍, 사디크를 믿을 생각은 없나?”

“사디크는 좀… 이 늙은 나이에 악신 교단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비웃을 겁니다. 폐하.”

“아니야. 좋은 방법이 있어.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하면 돼.”

“???”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는데 이게 아키서스 교단에 사디크 신앙이 있거든. 일단 이름만 아키서스 교단에 써놓고….”

“…!!”

명의 사기!

플레밍은 듣도 보도 못한 참신한 신앙에 경악했다.

* * *

태현은 마탑을 돌면서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였다.

전격학파로 가자 마법사 NPC들이 나와서 말릴 정도였다.

“폐하! 참가할 테니 마법사 수련생들을 끌고 시위하시는 건 멈춰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후.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겁먹은 마법사 NPC들.

방금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태현은 여기 오기 전 얼음학파에도 들렸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음학파에서 있었던 일은 화염학파보다 훨씬 과격했다.

크로포드가 사이에서 도와주지도 않으니 태현도 좀 더 과격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애들아! 마스터 나올 때까지 문짝에 얼음 날려라!

-그, 그래도 됩니까 진짜?

-걱정 마라! 내가 책임진다! 문을 얼음으로 막아버려!

-다가오지 마십시오! 다가오면 제압하겠습니다!

-어? 너 지금 나 치려는 거냐? 내가 누군지 알고? 왕을 치려고 하네! 그것도 너희 국왕 구해준 지 얼마 안 되는 왕을!

-…크흑,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폐하! 체통을 지키십시오!

-아, 그딴 건 모르겠고!

태현은 가장 앞에 서서 배 째라고 들이댔다.

얼음학파의 마법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

진짜 치사하고 더러워서 때릴 수가 없다!

* * *

“김태현이 마탑에서 퀘스트를 모집한다고?”

“예. 그것도 전설이라고.”

“오….”

“아니, 그놈은 뭔 전설 퀘스트 수집가야? 깬 지 얼마나 됐다고 다음 전설 퀘스트를 해?”

마탑의 소문은 미다스 길드에 바로 들어갔다.

애초에 마법사 랭커들이 주축이 된 길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전설 퀘스트라니.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가 없는 정보!

“안 그래도 국왕 퀘스트 뺏겨서 짜증 나는데… 얄밉네요. 마법사 놈들은 뭘 좋다고 얘 도와주는 거야? 마법사라면 우리 도와야지.”

길드원들은 툴툴댔다.

태현의 인기가 드높은 걸 질투하는 거였다.

“그러면 방해해 볼까?”

“방해요? 지금 김태현 쪽 대장장이들 설득하러 간 거 아니었어요? 괜히 싸움을 만들 필요는….”

“정확히 말하자면 방해가 아니라 경쟁이지. 김태현도 우리가 하고 있는 퀘스트에 참가했잖아. 우리도 김태현이 하고 있는 퀘스트에 참가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아아…!”

확실히 이건 방해가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방해긴 했지만, 남이 하는 퀘스트에 늦게 참가했다고 화내는 사람은 소수였다.

아예 대놓고 남이 하는 걸 방해하는 게 아니라, 자기도 퀘스트를 하겠다는데 무슨 권리로 화를 내겠는가?

“게다가 우리가 끼면 마법사 플레이어들도 흔들릴걸.”

“그… 그런가?”

“…그때는 동의를 해줘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