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93화
“체시자. 부활에 대해 정보가 더 있나? 위치나 시간 같은?”
“그건 없습니다. 하지만 꿈이 점점 더 생생해지는 걸 보니 부활이 머지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강력한 대마법사인 체시자인 만큼, 느부캇네살의 부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자 태현도 진지하게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체시자가 미쳐서 저러는 건 아닐 테고, 부활은 진짜 하는 건가? 아니, 내가 세계수 박아서 부활하는 건 아니지? 진짜 신경 쓰이네.’
[카르바노그가 위로해 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의 일치였지만, 찜찜한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악마들 때려잡고 다닌 게 그런 부활로 이어진다는 걸 어떻게 알겠는가.
‘맞아. 내 탓이 아니겠지.’
[느부캇네살은 끈질긴 놈이라 내버려 뒀어도 언젠간 부활했을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일단… 대비를 해보자고. 마탑의 다른 대마법사들은? 말 해봤나?”
체시자의 말을 들어보면, 느부캇네살은 초대형 보스였다.
레벨이 800, 900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강력한 적!
거기에 온갖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점이 매우 까다로웠다. 온갖 상황에 다 대처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태현 같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낮은 HP를 컨트롤과 스킬로 커버하는 타입이라 더 위험했다.
스킬 몇 방에 훅 갈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태현은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까지 쌓아 올린 신분과 지위, 인맥!
게다가 느부캇네살의 부활은 대륙의 다른 NPC들에게도 비상일 테니 최대한의 협조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번째가 마탑의 다른 학파 대마법사들!
끈끈한 마탑의 우정을 생각해 보면 분명 최대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제 말을 무시하던데요.”
“…왜?”
태현은 당황했다.
악마가 나타났을 때는 그렇게 힘을 합쳐서 잘 싸우던데!
[그건 시험 장소에 악마를 풀어놔서 어쩔 수 없이 힘을 합쳤던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해줍니다.]
안 싸우면 위험하니까 싸운 거지, 딱히 친해서 싸운 건 아니었다!
“놈들이 보는 눈이 없어서 아니겠습니까.”
“네가 설명을 개같이 해서가 아니라?”
태현은 매우 불신하는 눈동자로 체시자를 쳐다보았다.
이제 태현도 슬슬 마탑의 흑마법사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오만하고 싸가지 없는 놈들!
그렇게 생각해보니 체세도가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 굴러들어온 돌인 태현을 따라다니며 충성스럽게 돕지 않았던가.
그 체세도를 리치로 바꿔버린 게 태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체세도가 스스로 리치가 되긴 했지만….
‘으윽. 체세도가 그렇게 유일한 정상인인지 몰랐지.’
체세도가 그립다!
안 돌아오나?
“제가 설명을 개같이 하다니, 말씀이 심하십니다. 다른 마스터 놈들이 개같이 못 알아듣는 걸 저보고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상대 앞에서 그런 소리만 안 하면 인정해 준다.”
“하찮은 놈들 앞에서 하찮다는 말을 안 할 수가….”
“…….”
안 그래도 서로 사이가 안 좋은 학파들.
체세도 같이 말릴 사람도 없으니 체시자는 더욱 싸가지 없이 굴었고, 덕분에 다른 학파 대마법사들은 체시자의 말을 무시했다.
-네놈 말을 듣겠느니 우리 집 정원에서 기르는 개 말을 듣겠다.
-그렇게 흑마법이 위대한데 혼자 막으시죠?
-난 네놈이 아키서스한테 잡혀가길 빈다!
-그건 좀 심하지 않냐?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고 심한 저주를 퍼붓는 마탑의 마스터들!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가서 설득해야겠군.”
“저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폐하?”
“입을 닥치고 있도록.”
“…….”
* * *
“어디서 오셨습니까?”
“흑마법사 학파에서….”
쾅!
문이 바로 닫혔다.
“…온 게 아니라,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다!”
벌컥!
문이 다시 열렸다. 화염학파의 마법사 NPC가 안도하는 얼굴로 말했다.
“휴, 죄송합니다. 폐하. 흑마법사 학파에서 온 줄 알고….”
‘내가 흑마법사 학파의 후계자인 거 모르나?’
상식적으로 대륙의 영웅≠흑마법사 학파의 후계자인 것!
‘일단 들어가야 하니까 조용히 해야지.’
“김태현.”
“?”
기다리고 있다가 태현과 합류한 크로포드가 말을 걸었다.
“화염학파면 내가 말하는 게 낫지 않나?”
‘아. 그러게.’
“…너 지금 설마 잊고 있었던 거 아니지?”
크로포드는 경악했다.
랄그갈 관련 퀘스트가 끝나고 나서도 같이 다니길래 ‘흠 나나 앨콧의 도움이 필요한 건가?’ 싶어서 같이 다니고 있었는데….
이 자식 설마 그냥 잊고 있었던 거 아냐?
“아니지. 다 마탑 퀘스트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야. 너만 한 마법사가 어디 있냐?”
“선, 선배님….”
정수혁이 슬픈 눈동자로 태현을 쳐다봤다.
저도 마법사인데요!
“넌… 아키서스 마법사라서 좀….”
“크흑!”
슬프지만 반박할 수가 없다!
정수혁도 정석 루트를 밟은 마법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자. 크로포드. 들어가서 빨리 대마법사 불러와.”
“그게 무슨 동네 강아지 부르듯 부른다고 불러지는 줄 아냐!”
크로포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외쳤다.
각 학파의 대마법사들은 원래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고위 NPC였다.
공적치 포인트를 쌓고 퀘스트를 깨고 깨야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는 것!
자기 집 안방처럼 들어가는 태현이 이상한 것이었다.
“앗. 김, 김태현?!”
엘프 화염술사, 바허가 깜짝 놀라 태현을 쳐다보았다.
저번에 태현이 마탑 퀘스트를 깨려고 왔을 때, 아버지인 바하와 함께 태현과 퀘스트를 깼던 플레이어였다.
지금도 입을 열면 그 일을 자랑하는 바허!
남들은 평생 살면서 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일을 경험했으니 자랑하는 것도 당연했다. 친구들도 그 이야기만 하면 부러워서 입을 다물지 못했으니까.
오죽하면 그 뒤에 마탑에서 뛰는 플레이어들이 ‘님 못 보던 얼굴인데 혹시 김태현 아니에요? 비밀 지킬 테니까 말해봐요’ 하며 말을 걸고 다니는 일까지 있었다.
태현이 변장에 능숙하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으니, ‘혹시 저 사람 김태현 아냐?’ 하는 식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로 끝났다. 가끔 거기서 ‘연기하지 마! 당신 김태현인 거 아니까!’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 그 화염술사였나? 아버지하고 같이 파티하던.”
“기, 기억해 주셨군요!”
“그래. 아버지는 지금 다른 퀘스트 하고 계시나?”
“아. 아버지는 다른 친구 생기셔서 요즘 등산 다니세요.”
“등… 산?”
“판온 내에서 등산 동호회가 있더라고요.”
뒤에서 듣고 있던 케인이 질색했다. 세상에 무슨 저런 동호회가 있어?
‘우리 팀은 저런 거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휴일에는 그냥 숙소에서 늘어져 있는 게 보통!
다른 친구들이 회사에서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들으면 들을수록 태현에 대한 충성심이 생겼다.
구박 좀 받으면 어떠냐! 복리후생이 이렇게 완벽한데!
바허는 잔뜩 기대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번에는 무슨 퀘스트를 하러 오신 겁니까!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아. 지금 마스터를 만나야 하는데….”
“크, 크로포드 님?!”
“…너 설마 지금 날 알아본 거냐?”
크로포드는 어이가 5m 정도 거리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기분을 맛봤다.
다른 놈이면 이해를 해도 화염학파 파는 마법사가 나를 지금 알아봤다고!?
심지어 김태현은 대충 변장한 상태고 나는 평소 장비 그대론데?!
그게 말이 돼!?
“죄, 죄송… 태현 님이 워낙 인상 깊어서….”
“풋!”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안 들어도 앨콧의 웃음소리였다.
“그럴… 수 있지… 빠드득….”
크로포드는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여기서 추한 모습을 보이면 앨콧과 별 차이가 없었다.
“크로포드 못 알아볼 수 있지 뭐.”
태현은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는 듯이 말했다.
‘넌 알아봤으니까 그렇겠지 이 자식아!’가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크로포드는 참았다.
품위! 품위를 지켜야 한다!
“어쨌든 크로포드는 마스터 만나러 가고….”
“아니,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니까!”
“뭐야. 못 해?”
“할 수는 있지!”
공적치 포인트를 쓰거나 만날 수 있는 이용권 아이템을 사용하면 마스터를 만날 수 있었다.
크로포드는 여기서 퀘스트를 깨면서 쌓아 놓은 게 꽤 많았던 것이다.
“그러면 하면 되잖아.”
“…….”
왠지 모르게 속은 기분이 든다!
크로포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공적치 포인트를 사용했다.
“저는 뭐 도와드릴 거 없습니까?”
“흠. 마스터 말고… 아. 플레이어들 모아서 선동… 아니, 설득하려는데 도와줄래?”
“예! 목숨을 걸고 선동하겠습니다!”
“설득! 설득이라고!”
* * *
“모두. 새 전설 퀘스트가 있다.”
“????”
“그거 얼마 전에 깨진 거 아닌가?”
“김태현이 깬 걸로 알고 있는데… 뭔 소리지?”
“내 친구는 김태현이 깼다고 울더라.”
“아, 그 <검은 바위단>의 친구?”
“응. 되게 서럽게 울더라고. 그렇게 울 정도인가? 보상은 충분히 나왔을 텐데.”
“그러게. 신기하네.”
“물어보니까 보상 때문이 아니라고 하던데….”
“하여간 고렙 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웅성거리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태현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랄그갈 퀘스트는 잊어도 좋다! 그것과는 상관이 없으니까. 이건 새로운 전설 퀘스트다!”
“…!!!!”
새로운 전설 퀘스트라는 말에 플레이어들의 귀가 쫑긋했다.
일단 퀘스트라는 말을 들으면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게 플레이어!
“그쪽이 누군… 김태현!! 김태현이다!!!”
“허어어억!”
“꺄아아아아악! 김태현! 김태현이야!”
‘저건 좀 무서운데.’
사람 죽일 것처럼 외치는 격렬한 반응은 태현도 움찔하게 만들었다.
저러다가 공격해오는 건 아니겠지?
‘지금이다. 바허. 플레이어들을 선동… 아니, 설득하는 거다.’
태현이 바허에게 바라는 역할은 단순했다.
같은 화염학파 마법사 플레이어가 퀘스트가 좋다고 말하면서 참가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도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어? 나도 한 번 해볼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쉬울지도?’ 같은 반응을 만들어내는 게 바허의 역할!
그러나 태현 주변의 사람들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났다.
“커허어어억… 김태현… 김태현이라니…! 김태현이라니!!”
바허는 미친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실감 나게 연기를 해댔다. 주변에서 김태현을 외치던 사람들이 ‘이 미친놈은 뭐야?’ 하면서 거리를 벌릴 정도로.
“김태현! 김태현의 퀘스트라니…!”
“이, 이 사람 괜찮은 거 맞아?”
“심장마비 온 거 같은데?”
“아, 아닙니다. 전 멀쩡합….”
“일단 데리고 나가서 쉬게 하자!”
“아, 아니 괜찮다니까!”
끌려 나가는 바허!
태현은 그걸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이 전설 퀘스트에 참가할 사람이 있나 묻고 싶어서….”
척척척!
만장일치!
화염학파의 방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전원 손을 들었다. 1초도 고민하지 않는 신속함이었다.
‘선동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네.’
[설득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해줍니다.]
‘아차.’
그랬다. 바람잡이를 풀어서 설득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었다.
태현 정도쯤 되면 ‘여러분! 제가 오늘 게임을 접고 싶어서 장비를 다 부숴버리고 로그아웃하려고 하는데 같이 하실 분 있습니까!’ 해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그것이 명성과 인기의 힘!
‘괜한 일을 할 필요가 없었군.’
그러자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퀘스트창이 떴다.
<최초의 리치, 느부캇네살의 부활-대륙 퀘스트>
불길한 징조가 연속되고, 사악한 존재가 계속 대륙을 넘보자 흑마법사 마스터 체시자는 느부캇네살의 부활을 예견합니다!
모든 이들의 죽음을 원하는 느부캇네살이 부활하면 대륙은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느부캇네살의 부활에 대비해 힘을 모으십시오!
보상: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