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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92화 (892/1,826)

§ 나는 될놈이다 892화

약간 맛이 가 있고, 무슨 말을 들어도 자기한테 유리하게 해석하는 점이 갈락파드와 매우 비슷했다.

그걸 깨닫자 태현은 흑마법사 NPC 어깨 위에 올렸던 손을 슬쩍 치웠다.

그리고 세 걸음 후진!

“왜 그러십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야.”

세 걸음 후진하자 흑마법사 NPC는 그대로 따라왔다.

“그런데 네 이름이 뭐냐?”

“제 이름은 갈락파….”

“헉!”

“…든입니다.”

더럽게 불길하다!

태현은 갈락파든의 이름에 경악했다. 어떻게 이렇게 불길한 이름이?

“어쨌든, 흑마법사를 하려는 모험가들이 줄었나?”

“원래 좋은 걸 알아보는 사람은 적은 법 아니겠습니까. 저기 하찮은 쓰레기들을 보십쇼.”

갈락파든은 주변에 있던 모든 마법사 플레이어들을 도발하는 재주가 있었다.

화술 스킬이 중급은 넘는 거 같다!

플레이어들은 ‘마탑이 아니었으면 넌 뒤졌어’하는 눈빛으로 갈락파든을 쳐다보고 있었다.

같은 말도 참 재수 없게 해요!

“그건 알겠는데 왜, 언제부터 줄었냐고.”

“흠… 그러고 보니 예전에 <리치 지원 퀘스트> 때부터 모험가 놈들이 도망을 쳤던 것 같습니다.”

“…리치 지원 퀘스트?”

이름만 들어도 매우 심상치 않은 퀘스트!

대체 그게 뭔 퀘스트니?

“예. 하찮은 흑마법사를 리치로 만들어주는 위대한 배려였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태현은 떨떠름하게 말했다.

“부작용은 없고?”

“부작용은 딱히 없습니다만.”

“그래?”

부작용이 없다면 도전해 볼 만하지 않나?

리치가 신성력이나 HP, 방어력에 약점을 가지지만, 그 약점을 제외하면 사기적으로 강력한 종족이었다.

막대한 마력량, 어마어마한 MP 회복 속도, 사기적인 마법 스킬 시전 속도, 리치만이 쓸 수 있는 전용 마법 등.

마법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하는 존재!

리치를 시켜준다면 마법사들이 안 모일 리 없었다.

“부작용이 없을 리가 없을 텐데.”

“으음… 실패하면 리치가 안 되긴 합니다만, 이건 부작용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잠깐. 리치가 안 되면 뭐가 되는데? 원래대로 돌아오나?”

“하하. 폐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리치가 되려면 육신을 버려야 하는데 어떻게 원래대로 돌아옵니까.”

“그러면?”

“그냥 시체가 되는 거죠 뭐.”

“…….”

미친놈아! 그게 부작용이잖아!

실패하면 죽는다는데 퍽이나 많이 하겠다!

게다가 성공 확률이 높지도 않을 텐데….

‘분명 예전에는 이런 곳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카르바노그가 당신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게 왜 나 때문이야?’

[체세도가 리치가 된 것 때문에…]

‘…….’

태현은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체세도 한 명 리치 됐다고 흑마법사 학파가 이렇게 맛이 간다는 게 말이 되나?

* * *

말이 됐다.

“체세도 님이요? 훌륭하신 분이었죠. 아, 그분이 신진 흑마법사들을 가르쳤습니다.”

“체세도 님께서 흑마법사가 되겠다고 온 모험가들을 관리하셨죠.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리치가 될 수 있는 영광을 얻으셨을 겁니다.”

“지금은 누가 관리하냐고요? 글쎄요. 누가 관리하지?”

“알아서 관리되는 거 아닌가?”

흑마법사들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지나갔다.

태현은 경악했다.

한 명 빠진다고 이렇게 될 수가 있구나!

[아키서스 교단에서 태현이 빠지는 걸 상상해 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이해가 확 되는군.’

체세도를 리치로 만든 탓에 완전 개판이 된 흑마법사 학파!

흑마법을 배우겠다고 온 플레이어들은 학을 떼고 탈출했다.

-여기서 배우느니 그냥 다른 마탑 찾아가는 게 낫겠다!

-요즘 에랑스 왕국 흑마법사 학파에서 배우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냥 밖에 있는 흑마법사 NPC 찾아다니면서 배우는 게 빨라요. 위치 알려진 흑마법사 마스터들한테 가세요.

-아직도 흑마법을 하십니까? 흑마법에서 갈아타기 가장 좋은 학파들 추천!

‘뭐, 어쩔 수 없지.’

흑마법사 학파가 매우 불친절하게 변했어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와서 뭘 어떡해!

태현은 당당하게 체시자를 만나러 갔다.

덜컥-

“이제 폐하라고 불러야겠군요.”

체시자는 태현을 보자 공손하게 예의를 올렸다. 예전에는 귀족이고 뭐고 거만하게 굴던 체시자였지만, 그때와 지금의 태현은 위상 자체가 달랐다.

게다가 왕족은 귀족과는 차원이 다른 법!

“하하. 체시자. 내가 그대한테 많은 것을 배웠고 매우 친한 사이인데 그렇게 예의를 차릴 거 있나.”

이 맛에 작위를 얻는구나!

괴팍하고 오만하게 굴던 체시자가 고개를 먼저 숙이자 속이 다 시원했다.

“말을 편하게….”

“해도 됩니까?”

“…하지는 말고 계속 공손하게 굴게.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편하게 굴어도 좋아.”

“…….”

그게 뭔 개소리야!

[체시자의 친밀도가 아주 조금 하락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불렀나?”

“예. 폐하. 마탑, 아니, 이 왕국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일 때문에 불렀습니다.”

“?”

무슨 말이 이렇게 거창해?

태현은 갑자기 불길해졌다. 보통 이런 말로 시작하면 상당히 귀찮은 퀘스트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당신한테 떠넘길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확실히 그래.’

명성이 하도 높아지고 신분까지 높아지자 부작용이 있었다.

NPC들이 대륙 퀘스트나 전설 퀘스트가 나오면 ‘하하 영웅님이 하셔야죠~’ 하고 부른다는 것!

“뭔데?”

“폐하. 위대한 마법사는 징조를 읽고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미래 예지 마법!

플레이어 중에서는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었지만 가끔 나오는 대마법사 NPC 중에서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자체로는 화려해 보이지 않았지만 매우 강력한 스킬이었다.

엄청나게 어려운 퀘스트도 단숨에 해결하거나 길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이다.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 스킬, <신의 예지>를 태현이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화려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신의 예지>는 아키서스의 화신 스킬 중 가장 사기적인 스킬 중 하나!

“미래를 볼 수 있지. 그래서?”

“최근 저는 징조를 보고 느꼈습니다. 대악마가 오래된 봉인에서 풀려나고….”

“…음.”

태현은 움찔했다.

설마 네가 말하는 그 대악마가 내가 풀어준 그 대악마는 아니겠지?

“악마 공작들이 자꾸 나타나고.”

‘이건 나 때문이 아니지.’

[카르바노그가 기억을 되살려보라고 합니다. 당장 마탑에서 악마 공작을 소환한 건…]

그거 말고도 대륙에 내려온 악마 중 태현한테 원한을 품은 악마가 꽤 됐다.

간접적 원인은 확실!

“사디크 같은 사악한 신의 화신이 나타나고.”

“크, 크흠.”

“저 먼 대륙에서는 사악한 황제가 깨어나고….”

“아. 그건 이세연이라고 아주 사악한 흑마법사 때문이야.”

다행이다! 이건 나 때문이 아니야!

“마계와 연결된 세계수가 대륙에 자라나고, 거기서 악마들이 쏟아져 내리고….”

“…….”

이건 확실히 태현 때문!

태현은 그냥 조용히 들었다. 이렇게 많자 반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모든 징조들을 보고 무엇을 느끼신 게 있습니까, 폐하?”

“글, 글쎄.”

내가 한 짓이 참 많구나?

앞으로는 좀 자제해야겠다?

“이것은 종말의 징조입니다!”

“종… 종말? 그건 좀 오바 아닌가?”

“아닙니다. 저희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최초의 리치, 느부캇네살에 관한 전설이 내려옵니다.”

느부캇네살!

흑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전설처럼 취급되는, 고대 제국의 흑마법사이자 최초의 리치였다.

고대 제국의 마법사들은 지금 마법사들보다 훨씬 더 포악하고 오만한 이들이었다.

드래곤을 때려잡고 신의 화신들과 맞상대를 했을 정도로.

그런 고대 제국의 마법사들도 학을 뗀 자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느부캇네살이었다.

인성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분은 모든 흑마법사들의 귀감이었습니다. 다른 마법사들의 질투만 아니었어도….”

“…….”

물론 체시자는 그런 점까지 포함해서 존경하고 있었다.

악명은 흑마법사의 훈장!

어쨌든 느부캇네살은 수많은 고대 제국 마법사들의 원한을 샀고, 결국에 합공을 당해 쓰러졌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느부캇네살은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용들이 대륙을 떠나고, 신들이 대륙을 떠나고, 악마들이 대륙으로 돌아오는 그때, 내가 반드시 돌아와 모든 이들을 죽음으로 지배하리라!

설명을 끝낸 체시자는 쾅하고 발을 구르며 외쳤다.

“아시겠습니까, 폐하? 이것이 바로 징조입니다!”

“그냥 죽기 직전에 발악하면서 저주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그렇게 위대한 흑마법사가 죽을 리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느부캇네살이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맞이할 준비를 하자는 건가?”

말을 하던 태현은 의외로 좋은 생각이라는 걸 느꼈다.

느부캇네살이 그렇게 대단한 마법사라면, 친해져서 나쁠 게 없었다.

만약 도움이라도 얻는다면 아스비안 제국의 황제와도 맞붙을 수 있을지 몰랐다.

‘괜찮은데?’

아스비안 제국의 황제가 드래곤도 때려잡던 고대의 괴물이라지만, 느부캇네살도 만만찮은 고대의 괴물이었다.

[카르바노그가 질색하며 느부캇네살의 힘을 빌리는 건 관두자고 합니다.]

‘왜?’

[힘을 빌려줄 상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아주 싸가지 없는 새끼라고…]

‘뭐, 이제까지 만난 애들은 다 싸가지 없었잖아.’

그래도 그런 애들은 다 강제로 힘을 빌려줬었다!

[카르바노그가 반박할 말이 없어 당황합니다.]

그러는 사이 체시자가 대답했다.

“맞이할 준비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의 뜻인데. 느부캇네살이 오면 모시려는 것 아닌가?”

체시자는 느부캇네살을 매우 존경하는 것 같았다.

흑마법사의 대선배 아닌가!

‘체시자가 친한 척하면 나도 좀 끼어야겠군.’

태현도 흑마법사 학파의 후계자니, 친한 척을 할 수 있으리라. 남들보다는 훨씬 유리한 조건!

“예? 아닙니다. 느부캇네살이 부활하면 무조건 다시 무덤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

태현은 당황했다.

아니, 존경한다며?

“존경한다며?”

“존경은 존경이고, 느부캇네살이 오면 이 마탑을 손에 넣으려고 할 겁니다.”

“…대선배인데 그것도 못 넘겨주나?”

태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체시자를 쳐다보았다. 체시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그래. 당당해서 좋다. 그거 말고 다른 문제는 없나?”

태현은 속으로 체시자를 버리고 느부캇네살에게 붙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이 차이가 나면 느부캇네살 편에 드는 게 좋지 않나?

“다른 문제라면… 아.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뭔데?”

“느부캇네살은 모든 이를 죽음으로 지배하려고 했던 마법사. 부활하면 대륙의 모든 이들을 죽이고 언데드로 바꿔버리려고 할 겁니다.”

“미친놈아!”

그게 훨씬 더 큰 문제잖아!

네가 자리 뺏기는 걸 신경 쓸 때냐?!

그러나 체시자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예?! 제 마스터 지위가 훨씬 더 중요한 거 아닙니까?”

당당한 쓰레기!

괜히 흑마법사들의 마스터가 아니었다.

‘후. 붙고 싶었는데 붙을 수 없게 됐군.’

보아하니 느부캇네살은 타협이고 뭐고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다른 마법사들한테 두들겨 맞았겠지.

대륙의 모든 생명체를 언데드로 바꿔서 지배하겠다는 참신한 아이디어!

합공을 당할 만했다.

‘그래도 좀 죽었다 깨어났는데 타협 가능한 성격으로 바뀌진 않으려나?’

[절대 그럴 일 없다고 카르바노그가 단언합니다.]

‘에휴.’

태현은 욕심을 포기했다. 느부캇네살과 손을 잡고 아스비안 제국이나 노려볼까 했었는데…

‘아니. 느부캇네살이 아스비안 제국에서 부활할 수도 있지 않나?’

자존심 강한 두 고대 개자식들의 대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건 좀 기대가 과한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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