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89화
“좋아! 끌고 간다!”
태현은 단칼에 결정을 내리고 방향을 틀었다.
말 나온 김에 폭탄 하나 더 던져주는 건 덤!
랄그갈은 정말 열이 받았지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야, 그런데 저렇게 공격할 수 있는 거였으면 너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었냐?”
앨콧은 크로포드를 보며 물었다.
지금 태현이 랄그갈을 견제하는 방식은 크로포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화염 마법을 날린 다음 시간 차를 두고 폭발!
크로포드 수준이면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미친놈아. 저게 저렇게 보여서 쉬운 거지 타이밍 맞춰서 터뜨리는 게 쉬워 보이냐!”
마법사 아니라고 헛소리하는 앨콧의 모습에 크로포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김태현이 장난감 집어 던지듯이 쉭쉭 던져서 ‘어? 사실 쉬운 거 아닌가?’처럼 보였지만 절대로 쉬운 게 아니었다.
너무 일찍 터뜨리면 데미지가 안 들어가고, 그렇다고 늦게 터뜨리면 랄그갈이 완전히 삼킨 후 소화시켜버려 폭발 자체가 불가능했다.
미쳐 날뛰는 랄그갈을 상대하면서 터뜨릴 타이밍까지 잡아야 하는 것!
눈과 뇌가 2배씩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김태현 저놈은 진짜 겁이 없나?’
랄그갈이 세상을 다 먹어치우겠다는 듯이 우걱대며 태현을 쫓아오고 있는데 무슨 애완동물 훈련시키는 것처럼 태평했다.
“랄그갈! 뭐하냐! 뛰어!”
-크아아아!
“너 왜 이렇게 느려! 그러니까 못 쫓아오지! 달려!”
[카르바노그가 그만 도발하라고 말립니다!]
* * *
허기의 던전 근처에는 플레이어들이 싹 사라져 있었다.
태현이 오기 전에 이미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나선 것이다.
“여러분! 보스 몬스터 옵니다! 대피하세요!”
“아니! 돗자리 깔고 구경하란 게 아니라 대피하라고!”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위험하니까 대피하십쇼! 거기! 팝콘 팔지 마!”
우리도 지금 못 파는데 어디서 장사를!
덕분에 태현은 수월하게 새로 만들어진 <아키서스 허기의 던전>으로 랄그갈을 끌고 올 수 있었다.
멈칫-
랄그갈은 멈칫했다.
아무리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랄그갈이어도 아키서스의 기운은 분노조절을 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저 던전… 무언가 찜찜하다!
[카르바노그가 랄그갈이 제정신을 차린 것 같다고 말합니다!]
‘걱정 마라.’
최고급 화술 스킬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쓰겠는가!
원래 설득보다는 남들을 도발하는 게 태현 성격에도 더 잘 맞았다.
“들어라, 랄그갈!”
태현은 두꺼운 종이 뭉치를 꺼내더니 외쳤다.
[그건 또 언제 준비했냐고…]
“지능이 0.1 케인보다 낮은 랄그갈에게 고한다….”
그리고 10분 후.
[<악마 공작 아다드는 아키서스의 노예였고 갈그랄은 멍청해서 죽었다>는 시를 만들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음유시인들이 이 시를 읊고 다닐 확률이 올라갑니다.]
[랄그갈이 분노로 이성을 잃습니다!]
[화술 스킬이…]
-영원히 뱃속에 가둬주겠다…!!
태현은 허기의 던전 안으로, 랄그갈도 그 뒤를 쫓아 안으로 들어갔다.
두 괴물이 안으로 사라지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드디어 괴물이 안에 갇혔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태현을 괴물이라고 하는 건….”
“…랄그갈 이야기한 건데. 넌 누구 이야기 하고 있는 거냐, 케인?”
“…!!”
케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 * *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로 <진흙 쿠키>를 만듭니다!]
‘후. 여기를 다시 들어오게 될 줄이야.’
아스비안 제국에 있던 것과 비슷했지만 다른 구조!
아스비안 제국에 있던 허기의 던전은 초반에 잡아먹을 수 있는 몬스터라도 나왔지만….
<아키서스 허기의 던전>은 좀 더 매운맛이었다.
몬스터도 없다!
[카르바노그가 제작비 아끼느라 몬스터를 안 넣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묻습니다.]
‘아. 그런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길을 가다 보면 <아키서스의 권능으로 길이 뒤틀립니다>라는 메시지창과 함께 왔던 길이 사라지고 이상한 곳으로 이동했다.
안 그래도 배고파 죽겠는 미궁의 난이도를 더 올리는 사악함!
뒤에서 랄그갈이 당황스러워하는 게 보였다.
주변을 퍼먹기는 하는데 배는 안 차고, 먹을 건 안 보이고, 점점 느려지는 속도!
[랄그갈이 허기에 찹니다!]
[랄그갈의 속도가 느려집니다!]
[랄그갈이 느려집니다!]
“…잠깐만.”
앞으로 달려가던 태현은 휙 돌아선 다음 랄그갈한테 달려갔다.
저건… 샌드백이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잘 먹고 잘 자서 힘이 넘치는 태현은 순식간에 검을 뽑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아키서스 검법이 발동되고 치명타가 터지면서 랄그갈의 몸을 후려갈겼다.
-크어! 크어억! 크어… 크아아아!
[검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검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랄그갈이 데미지의 대부분을 흡수합니다.]
[랄그갈의 피부가 충격을 튕겨냅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와. 미친.’
두들겨 맞다 보면 알아서 공격을 튕겨내고 흡수하는 육체!
앨콧이나 크로포드, 귀족 전사대들도 랭커였는데 랄그갈을 손도 못 댄 이유가 있었다.
드래곤보다 더 짜증 난다!
거기에 랄그갈은 더 위협적인 무기를 갖고 있었다. 드래곤처럼 화려한 마법 폭격은 쓰지 못하지만….
후으으읍!
[랄그갈이 포식을…]
단순무식한 빨아들이기!
그냥 전부 다 삼켜버리는 단순한 스킬이었지만, 원래 저런 단순하고 강력한 스킬이 무서운 법이었다.
회피고 뭐고 다 무시하고 한 번에 끝내버리니 위협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현은 황급히 폭탄을 꺼내 닥치는 대로 터뜨렸다.
[회피에 성공…]
[회피에 성공…]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고 입안으로 들어간 폭탄도 터지자 랄그갈이 고통스러워하며 스킬을 멈췄다.
다시 거리를 벌리는 태현!
‘야. 저거 안 되겠다.’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아무리 딜을 넣어도 턱도 없는 데다가 한 번 잘못하면 훅 갈 수 있는 건 너무 위험했다.
저건 컨트롤이고 뭐고 통하지 않는 스킬!
‘그나마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건… 랄그갈을 폭탄으로 바꿔버리는 건데….’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단 폭탄으로 바꿀 수 있는가?
랄그갈이 가만히 있어준다면 모를까 지금도 가까이만 다가가면 잡아 삼키려고 발악을 하는데….
그리고 더 중요한 두 번째 문제.
‘터뜨리면….’
던전이 날아가지 않나?
던전뿐만 아니라 옆에 붙어 있는 수도까지 피해를 입을 것 같다!
‘…그냥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다음 가둬놓는 게 최선일 거 같군.’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예전 대악마 에슬라가 봉인된 것도 이래서였을까?
어떨 때는 잡는 것보다 봉인하는 게 나은 법이었다.
[랄그갈이 배가 고파 울부짖습니다!]
[랄그갈이 먹을 걸 찾아 헤맵니다.]
[랄그갈의 분노가 내려갑니다.]
서로 얼마나 헤맸을까.
태현이 땅과 벽을 파먹으면서 허기의 던전 어느 깊숙한 곳으로 끌고 오자, 랄그갈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멈췄다.
“야. 안 오냐?”
-…….
“흠….”
태현은 슬쩍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랄그갈이 입을 벌리고 삼키려고 했다.
“저럴 기운은 있군.”
움직이지 못해도 다가가면 삼키려고 드는 수준은 됐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만 간다.”
-…….
“거기서 있다가 생각 바뀌면 말하고.”
-…….
“내가 이래 보여도 요리에는 자신이 있는데….”
랄그갈은 대답이 없었다.
[설득에 실패합니다.]
나름 대악마의 자존심!
먹을 걸 준다고, 화술 스킬이 높다고 홀랑 넘어가진 않았다. 악마 구시온과는 차원이 다른 자존심이었다.
[카르바노그가 무리일 것 같다고 말합니다.]
‘아냐. 더 굶기면 될 거 같아.’
계속 굶긴 다음에 나중에 오면 설득이 되지 않을까?
[…….]
‘가기 전에 이건 하고 가야지.’
-저주 이동!
[아스비안 제국 황실의 저주가 이동됩니다!]
[랄그갈이 아스비안 제국 황실의 저주에 걸립니다!]
<아스비안 제국 황실의 저주>
아스비안 제국 황실의 힘으로, 전체적인 스탯을 크게 올려줍니다.
그러나 정해진 기한이 다 되면 저주가 시작됩니다. 저주는 몸을 좀먹고 위치를 주인에게 알려줄 것입니다.
황제 우이포아틀이 태현에게 건 저주.
내가 널 지켜보고 있으니, 허튼짓하지 말고 빨리 왕관 찾아서 돌아오라는 저주였다.
물론 태현은 왕관을 찾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멀쩡한 왕관을 부순 게 태현이었으니까.
‘만약 우이포아틀이 추격대를 보내면 여기에 갇히겠지?’
사악 그 자체!
우이포아틀이 태현을 죽이거나 잡아가려고 추적자들을 보내면, 이 던전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나게 될 것은 압도적인 던전과 그 안에 갇힌 배고픈 랄그갈!
굶어 죽거나 잡아먹히거나.
‘완벽해. 완벽해.’
태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던전 밖으로 향했다.
[포식의 악마 랄그갈을 던전 안에 가두는 데 성공합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대륙의 다른 교단들이 당신이 어떻게 악마를 가뒀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들에게 <허기의 던전>을 가르쳐주십시오!]
[레벨 업 하셨습니다!]
[……]
* * *
“랄그갈 안 나오겠지?”
“안 나오는 거 보니까 괜찮은 것 같은데?”
일행은 긴장된 얼굴로 던전을 쳐다보았다.
설마 랄그갈이 튀어나오진 않겠지?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
“진짜 악마 한 놈 때문에 무슨 고생이냐!”
“판온에서 가장 무서웠던 거 같아.”
거리를 벌려도 벌려도 쫓아오는 미친 악마!
마치 공포 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
“이제 한숨 좀 돌리고, 남은 보상 챙기러 가자고.”
에랑스 왕국에는 아직 중독된 귀족 NPC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국왕이 제정신이 아니면 가서 한 몫 더 뜯어낼 수도 있고!’
태현은 에랑스 왕국 국왕이 아직 해롱해롱한 상태이길 빌었다.
왕궁 창고를 통째로 줄지도 몰라!
“폐하.”
대기하고 있던 귀족 전사대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왜 그러지? 앗. 혹시 돌아가야 하나?”
태현은 이제 올 게 왔나 싶어 물었다. 하긴 잘 써먹긴 했다.
‘우이포아틀이 감시할 수도 있으니 슬슬 돌려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깝긴 하지만 태현은 귀족 전사대 없어도 전력이 충분했다.
새로 얻은 기사단!(원래 데리고 있었지만)
거기에 점점 강력해지는 아키서스 포병대까지!
“예? 아닙니다. 에랑스 국왕이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폐하께서 왕궁을 점령하시면….”
“…….”
언제나 한결같은 귀족 전사대!
머릿속에 반란밖에 없는 것 같았다.
“에랑스 왕국에는 폐하 같은 왕이 필요합니다!”
“맞습니다. 저런 독에나 중독되는 나약한 국왕은 필요가 없습니다!”
“너희들은 황제가 뭐라고 안 하냐?”
태현은 궁금해져서 물었다.
황제가 슬슬 ‘왕관은 어떻게 된 거냐! 일 좀 해라!’고 사람을 보낼 것 같은데, 귀족 전사대는 그런 반응이 전혀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분명 폐하를 믿고 계신 걸 겁니다!”
“고귀한 지배자끼리는 통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
[저거 욕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나도 욕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우이포아틀이랑 너랑 친하다는 말이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내가 그래도 우이포아틀보단 낫지!
“아무 말이 없다면야 뭐….”
태현은 떨떠름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 전사대는 쓰기 좋은 NPC였으니까.
‘근데 왜 말이 없지? 슬슬 사람 보낼 때가 된 것 같은데.’
어찌 되었든 이제 상관없었다.
보낸다면….
아키서스 허기의 던전으로 가게 될 테니까!
* * *
우이포아틀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탈리 왕국 국왕의 능력이 생각보다 부족하도다. 짐을 이렇게 기다리게 하다니!”
“실로 부족한 자입니다! 폐하의 은혜를 받을 가치도 없는 자였습니다.”
“네게 검을 주겠다. 가서 놈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확인해라! 만약 성과가 없다면 베어버려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