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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82화 (882/1,826)

§ 나는 될놈이다 882화

“너는 내가 진짜 게임 접게….”

이세연이 살벌하게 말하는 사이 제하스가 달려왔다.

“잠깐! 이세연! 우리가 잘못했다!”

“그래. 잘못을 인정하고 죽겠다는 거지?”

“아, 아니! 제발! 이성을 되찾고 이야기하자! 내 동생이 좀 싸가지 없게 말한 건 인정해!”

“좀?”

“많, 많이?”

제하스는 말하면서도 억울했다.

그의 동생, 에하스가 그렇게 싸가지 없게 말했단 말인가?

솔직히 이세연이 김태현 놓쳤을 때 옆에서 ‘세계 최고 네크로맨서라고 뻐기더니 김태현 하나 못 잡고’라고 말하긴 했다.

그렇지만 그게 이렇게 도시를 뒤집으면서 파티원들을 쓸어버릴 정도의 말이었나?

물론 랭커들 중 성격 더럽고 다혈질인 랭커들은 저것보다 더 심했지만, 이세연은 그런 성격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에하스도 그렇게 말한 거고

“많이 싸가지 없게 말했으면 죽어야지? 세계 최고 네크로맨서라고 뻐겨서 미안하네. 김태현은 못 잡아도 너희 잡는 건 보여줄 수 있는데.”

그러나 둘은 몰랐다.

이세연도 기분 나쁠 때가 있다는 것을!

하필 그럴 때 이세연의 속을 긁고 튀었으니 이 사단이 나는 것이다.

“이세연! 제발! 제발 용서해 줘라!”

제하스는 손발이 닳도록 빌었다.

억울하고 더럽고 치사하고 열이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랭커쯤 되면 한 번 죽어서 얻는 페널티가 너무 컸던 것이다.

안 죽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이 정도는 싸게 먹히는 셈이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도 없고….’

랄그갈은 갑자기 지하로 다시 사라져 버렸지만 주변 도시는 초토화 된 상태.

숨을 곳도 없고 피할 곳도 없고, 이세연이 그걸 두고 볼 정도로 멍청한 플레이어도 아니었다.

곳곳에 소환수를 배치시켜놓고 혹시 마법이라도 쓰면 카운터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철저 그 자체!

이세연이 강하다는 말만 들었지 이렇게 실제로 부딪혀보자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세계 1위의 벽!

스킬 분배와 시전, 조합과 컨트롤, 수 읽기, 전략 짜기 모두 다 압도!

그들 둘도 나름 마법사 랭커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자부심이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용서 못 해줄 것도 없지.”

“!”

이세연의 말에 제하스는 눈을 반짝였다.

“무릎 꿇고 머리 박아.”

“…진, 진짜로?”

“싫으면 죽어.”

제하스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가 에하스한테 말했다.

“꿇자!”

“진심으로!?”

“그럼 죽자고?”

“…크으으읏! 진짜 성격 더러운 여자야!”

“야. 들려! 속으로 말해!”

다 된 밥에 코 빠뜨릴까 봐 제하스는 에하스를 재촉했다.

쿵-

제하스와 에하스는 무릎 꿇고 이마를 땅에 붙였다.

굴욕 그 자체!

“그래. 이 정도로 용서해 줄게.”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줄이 돌아오고 보니 너무 크게 저질렀다 싶은 것!

저 두 랭커 남매가 짜증이 나도 그렇지, 김태현한테 쌓인 화를 다른 곳에 풀 필요는 없었다.

“언니. 감히 언니를 모욕한 사람을 그냥 보내줄 수는 없어요.”

“쟤네 아이템이라도 받아? 내가 필요한 거 없을 것 같은데.”

울컥!

제하스와 에하스는 속으로 울컥했다. 이세연의 저 말은 ‘너희들이 아이템 갖고 있어봤자 얼마나 좋겠니’라는 뜻 아닌가.

“아뇨. 좀 부려먹죠. 그래도 쓸모는 있을 텐데. <고대 네크로맨서의 계약서> 있잖아요.”

“아. 그거?”

<고대 네크로맨서의 계약서>.

판온에 있는 계약서 아이템 중 하나였다.

계약을 하고 지키지 않으면 페널티를 받는 계약서 아이템은 많았지만, 이 <고대 네크로맨서의 계약서>의 페널티는 매우 지독했다.

“일주일?”

“30일은 해야죠. 언니. 일주일이면 너무 쉬울 텐데. 계약서 값도 안 나와요.”

“나 쟤네 일주일이나 데리고 싶지 않은데.”

“그러면 2주일?”

“2주일로 하자.”

“…….”

“…….”

에하스와 제하스는 매우 불길함을 느꼈다. 대체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거야?

* * *

[<랄그갈의 오염된 성소>를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

지하 통로를 통과하자, 거대한 신전이 나왔다.

지하에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신전!

그 신전은 거대한 유리관과 정체불명의 시체들, 온갖 독액들의 웅덩이로 어수선했다.

흡사 미친 마법사의 실험실 같은 모습!

게다가 위에서 내려온 물로 더 오염까지 됐으니….

[오염된 독기가…]

-제단 정화의 화염!

크로포드는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단순한 화염 마법이 아닌, 독이나 기타 오염을 제거하는 강력한 화염 마법이었다.

‘휴. 물이 좀 빠져서 다행이군.’

아까 물이 꽉 차 있던 통로와 달리 여기 성소는 물이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화염 마법을 쓸 수 있다!

“아. 확실히 정화하는 게 좋겠군.”

태현은 크로포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계속 [회피에 성공했습니다]로 독기를 피하고 있었지만 다른 파티원들은 아니었다.

“기다려봐. 내가 다 정화해 줄….”

-사디크의 화염!

화르륵!

“…….”

[오염을 제거했습니다. 신성이 오릅니다.]

[오염을 제거했습니다. 신성이…]

“…테니까….”

“아. 미안. 바빠서 나도 도왔어.”

“그, 그래.”

크로포드는 충격을 받았다.

물론 태현의 <사디크의 화염> 관련 권능은 크로포드의 화염 마법과 비교하면 매우 쓰기 불편하고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불벼락, 화염 폭풍 등 다양한 광역기와 연쇄 화염 화살 같은 단일기를 다양하게 갖고 있는 크로포드는 말 그대로 화염 마법의 전문가!

그에 비해 태현이 할 수 있는 건 불 지르고 ‘녀석 잘 타는구나!’ 하고 지켜보는 것 정도!

화염을 컨트롤하거나 화염 화살 정도는 가능했지만 그것보다 더 고급 테크닉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 가지 앞서는 게 있다면 바로 신성력!

사디크는 나름 신이었다. 신성력에서 밀릴 리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크로포드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비틀거렸다.

화염 마법에서도 지다니!

‘말… 말도 안….’

그러는 사이 태현은 성소 안을 확인했다. 랄그갈이 돌아오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털고 튀어야 했던 것이다.

이 넓은 성소에서 어떻게 필요한 것을 챙길 수 있을 것인가?

“뭘 확인해야 해?”

“악마들이 확인해야 하나?”

“저, 저희들도 랄그갈이 무엇을 했는지는 잘 모르는데….”

악마들도 당황하고, 앨콧과 케인도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허둥댔다.

그러자 태현은 간단하게 결론을 냈다.

“다 털면 그 중에 무조건 있겠지.”

“!!”

“이럴 때를 대비해서 얘를 데려왔다.”

태현이는 토왕이를 꺼냈다. 오염된 물 속을 헤엄치는 동안 계속 안에 있어서 잔뜩 짜증이 난 토왕이는 성질을 냈다.

-카릉!

“하하. 그래그래. 어서 먹고 싶다고?”

-카르릉!

[아니라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

“녀석. 그렇게 배가 고프다니. 미안하구나.”

“쟤 배가 고픈 거 같지는 않은데?”

“그보다 웬 토끼?”

앨콧과 크로포드는 당황한 눈빛으로 토왕이를 쳐다보았다.

“이 토끼가 무슨 토끼인지 중요하지 않아! 모두 움직여! 잡히는 건 무조건 다 쑤셔넣고 본다! 악마들! 뭐하나! 폭탄 목걸이를 작동시켜야 하나!”

“아닙니다!”

악마들은 후다닥 움직였다. 뭔지도 모르지만 일단 성소에 있는 아이템들을 닥치는 대로 한 아름 챙겨 달려오기 시작했다.

-카르르르륵!

토왕이는 비명을 질렀다. 악마들이 닥치는 대로 아이템을 퍼부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썩은 살점>!”

“좋아! <사악한 힘이 담긴 거대한 유리관>이다!”

-카릉!

“뭐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아키서스님?”

“좋다고 더 달라고 하는군.”

“그렇군요!”

“더 힘을 내겠습니다!”

악마들은 토왕이가 좋아하자 보람을 느꼈다. 사방에서 온갖 오염 아이템들을 갖고 와서 토왕이에게 집어 던졌다.

‘그나저나 여기는 뭐하는 곳이지?’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의 성소 같다고 말합니다.]

“!!!!”

태현은 눈을 크게 떴다. 아키서스의 성소라고!?

아키서스 교단은 한 번 폭삭 망한 적이 있어서 성소가 숨겨진 곳이나잊혀진 장소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랄그갈이 점령한 곳이 아키서스의 성소라니.

‘아니. 그럴듯해.’

랄그갈은 갈그랄의 주인, 아다드의 부하.

그리고 아다드는 태현에게 확실히 원한이 있을 만한 악마였다.

[꼭 아다드뿐만 아니라 악마라면 기본적으로 아키서스한테 원한이 있을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지적…]

‘시끄럽고.’

그런 악마라면 아키서스의 성소를 점령하는 것도 말이 된다!

아키서스에 대한 복수도 하고, 자기 음모도 꾸미고.

[덤으로 아키서스의 힘도 빌렸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키서스의 힘을?’

확실히 그럴듯했다.

에랑스 왕국 마탑 마법사들도 치료법을 찾지 못할 정도의 사악한 역병을 불러온 독.

그 독을 만드는 데에는 보통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랄그갈이 아다드의 부관격인 대단한 악마였지만, 그래도 무에서 유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

‘이 자식!’

태현은 분노했다. 그러자 카르바노그가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신의 힘을 더러운 악마 따위가 악용하는 건 분한 일이지만 아키서스의 힘이 있다면 분명 이 일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그런 맹독을 먼저 훔쳐가다니!’

만약 아키서스의 힘으로 그런 독을 만들 수 있었다면 아탈리 왕국 귀족 관리는 몇 배는 쉬웠을 텐데!

왕궁으로 귀족들을 전부 부른다→식사를 대접한다→설득 완료!

‘후… 분하군. 이런 걸 뺏기다니….’

[……]

* * *

‘이거군.’

구석 한가운데에 서있는 거대한 토템.

그 위에는 악마의 피가 흠뻑 뿌려져 있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악마의 뼈로 만든 못이 박혀 있었고, 그 위에는 또….

이 토템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절실히 느껴졌다. 이렇게 집요하게 막아놓을 건 하나밖에 없었다. 태현은 못을 빼고 악마의 피를 태우기 시작했다.

정화 작업!

[정체불명의 토템에 담긴 오염이 줄어듭니다!]

[정체불명의 토템에 담긴 오염이…]

[신성이 오릅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악마의 피로 가려진 토템의 표면이 드러나면서 밝은 빛을 뿜기 시작했다.

[아키서스의 토템을 발견했습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힘이 더욱 더 커져나갑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권위로 <성전> 퀘스트를 발동 가능합니다! <성전> 퀘스트는 한 번 발동하면 권위가 회복될 때까지 다시 발동할 수 없습니다!]

[권능, <아키서스의 오염된 토템>을 얻었습니다.]

“?”

[?]

태현과 카르바노그 모두 당황했다.

성전 퀘스트가 뭔지 파악하기도 전에, 권능 스킬이 이상한 게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다.

<오염된>?

‘이거 뭔가 꼬인 거 같은데….’

[오염시킨 게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끄응….’

태현은 혀를 찼다.

‘어차피 더 고민할 시간도 없긴 해.’

지금 뒤에서는 악마들과 남은 일행들이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어수선했던 신전 안이 마치 이삿짐센터를 부른 것처럼 깔끔!

악마들은 괜히 악마들이 아니었다. 랄그갈이 바닥에 던져놓은 아이템들도 귀신같이 챙겨서 토왕이한테 넣었다.

‘여기서 더 머뭇거린다고 스킬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빠져나가야겠다.’

태현의 장점.

그건 맺고 끊는 게 빠르다는 점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었다면 자기 직업 퀘스트에 얽매여 여기 던전을 계속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찾고 뒤지다 보면 뭔가 더 나올지도 몰라!’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태현은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짐 싸라! 튄다!”

먹었으면 튀어야 한다.

만약 여기 안에 해독제가 없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 운이 나쁜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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