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81화
크로포드가 그러고 있는 사이 앨콧은 기세를 탔다.
기세를 탄 랭커만큼 무서운 존재도 또 없었다.
보통 크기의 2배쯤 되는 중량급 악마, 그것도 마계 마력의 버프를 받은 악마였지만 앨콧은 아랑곳하지 않고 갖고 놀았다.
찍고 후리고 스킬 써서 시야 뺏고 동작 멈추게 한 다음 치명타를 넣고….
지금 난 빛나고 있어!
앨콧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보고 있냐! 다들!’
“쟤 왜 이렇게 딜이 부족하냐? 김태현이면 벌써 잡았을 것 같은데.”
“쉿. 김태현이랑 비교하지 마. 또 상처받는다고.”
케인의 질문에 크로포드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대며 말했다.
물론 눈에 안 찰 수도 있겠지만 지금 앨콧은 최선을 다해 콤보를 넣고 있는 중이었다.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자!
“그렇군. 따뜻하게 쳐다봐야지.”
“그래. 따뜻하게 응원하자고.”
“파이팅! 앨콧! 파이팅! 잘한다!”
“앨콧 너무 멋져! 와!”
‘다 들렸어 개XX들아….’
앨콧은 시무룩해졌다.
그렇게 딜 차이가 나나?
아무리 그래도 지금 콤보면 김태현이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
“!!”
-…행운의 일격! 치명타 폭발!
태현은 앞에 있는 악마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눕히고 있었다.
마력 가득한 물 안에서 싸우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공해서 균형을 무너뜨린 다음 스킬 넣고 반응하기 전에 연타.
그러던 도중에 다른 악마가 접근하면 간단하게 카운터를 넣고 다시 스킬을 반복.
화려한 스킬 효과 같은 건 하나도 없이 조용하고 심심한 싸움이었지만 매우 치명적이고 강렬했다.
마치 ‘이게 품격이다’라고 전신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다들 감탄하는 동안 태현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으음. 생각보다 너무 많은데.’
처음 들어가 보는 던전은 결국 겪어보면서 알아야 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예상을 벗어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예상을 벗어난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바로 실력!
‘랄그갈이 생각보다 악마를 너무 많이 풀어놨어. 계속 싸우기 좋은 곳도 아니고.’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통로 너머에 악마의 기운이 바글거린다고 말해줍니다.]
신의 예지가 나타내고 있는 길이라 돌아갈 수도 없었다.
‘통로 위, 아래, 옆에서 쏟아져 나오고. 물이 가득 차오른 상태라 뚫고 갈 수도 없고.’
던전 지형도 최악.
랭커들이라 몬스터의 레벨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더 강한 놈이 없을 것 같진 않았다.
게다가 랄그갈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태.
앨콧이나 케인은 좋다고 악마를 패고 있었지만 태현은 슬슬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빠르게 랄그갈이 머무는 곳으로 치고 들어가서 해독제 찾아서 가지고 나오고 싶은데. 아. 물 터뜨린 거 진짜 누구냐?’
태현은 혀를 찼다.
이 물난리만 아니었어도 뚫고 가거나 피하고 가거나 통로를 뚫어서 길을 만들었을 텐데!
물이 가득 차 있다 보니 뭘 할 수가 없었다. <신의 예지> 스킬이 길을 안 보여주는 걸 보니 서투른 짓을 했다가든 대참사가 날 게 분명했다.
결국 남은 방법은 정공법밖에 없었다.
몬스터들을 최대한 빠르게 쓸어버리고 돌진하는 법.
그러려면 역시 광역기가 필수적인데….
태현은 새삼 스스로의 스킬이 매우 극단적이라는 걸 느꼈다.
있는 광역기 스킬들도 다 상황과 조건을 많이 따지는 스킬들!
‘폭탄은 잘못 터뜨리면 다 같이 무너져서 갇힐 수도 있고….’
“크로포드. 쓸 만한 광역기 없냐? 속도가 너무 느린데.”
“광역기야 많은데 지금 내 마법 데미지가 너무 줄어서….”
크로포드는 곤란한 듯이 말했다.
크로포드는 화염 마법 전문!
당연히 이런 물속에서 싸우는 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랭커라고 다른 마법들로 데미지를 꽤 뽑아내고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걸 들은 앨콧이 무심코 말했다.
“쟤 쓸모가 없네.”
“…뭐 인마?”
“아니. 그게… 하하. 본심이….”
“이 자식이….”
크로포드는 앨콧을 노려보았다. 아까부터 삽질하고 있는 놈 기죽지 말라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는데!
‘네놈의 추태는 꼭 제보해 주마!’
“음… MP 아끼려고 했는데 언령도 써야겠군.”
“언령 마법?! 그걸 네가 어떻게 쓰냐?!”
크로포드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언령 마법.
다른 마법에 비해 MP는 많이 들지만, 그 다양성과 편리함만 보면 따라올 마법이 없는 마법이었다.
이론상 어지간한 마법은 모두 가능!
“다 방법이 있지. 아. <공포의 화신>도 써야겠군.”
공포의 화신!
태현이 공포 스탯을 1만 넘기고 얻은 스킬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공포의 화신>으로 변하는 스킬.
아직까지 써본 적은 없었지만, 스킬 얻는 난이도가 난이도인 만큼 효과가 약하지는 않으리라.
‘악마들이 겁에 질려서 도망만 쳐도 남는 장사지.’
[지금도 똑같지 않냐고 카르바노그가 의문을 표합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도망을 친다는 차이점이 있지 않을까?’
-공포의 화신!
[10초 동안 공포의 화신으로 변합니다!]
‘엥? 달랑 10초?’
[화술 관련 스킬들의 쿨타임이 모두 초기화됩니다!]
[화술 관련 스킬들의 MP가 0으로 변합니다!]
[공포 스탯이 일시적으로 크게 증가합니다!]
예상대로.
공포 스탯이 일시적으로 크게 증가했다.
[악마들이 지옥 마력의 힘으로 도망치지 않습니다!]
[악마들이…]
[……]
그러나 크게 효과가 없었다.
버프를 받고 있는 몬스터들은 겁에 질려도 도망치지 않고 싸우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아… 아키서스 놈이 와도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하지만 나보다는 저놈을 먼저 공격하는 게 좋을 것이다!
-랄그갈 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아키서스가 우리를 죽이기 전에!
그보다 태현은 다른 메시지창에 주목했다.
‘화술 스킬들 쿨타임하고 MP가 0으로?’
다른 분야의 스킬들이었다면 개사기 중의 개사기였겠지만, 화술 스킬이라는 게 매우 미묘했다.
화술 스킬은 애초에….
MP 소모랄 게 거의 없었으니까!
‘내가 MP 쓸 만한 화술 스킬 뭐 있지? 위압, 의심암귀, 스킬 크게 외치기, 혼신의 협박, 가짜 스킬 이름 외치기….’
[카르바노그가 참 다양하게도 익혔다고 감탄합니다.]
‘…언령. 잠깐. 난 언령 스킬을 화술로 익혔잖아.’
태현은 깨달았다.
언령 마법 뚫은 마법사들은 마법 스킬을 올려서 언령을 뚫었지만, 태현은 화술 스킬로 뚫었다!
[!]
그러니까 지금….
10초 동안 무제한으로 마법 난사가 가능하다 이건가?
태현의 머리가 미친듯이 회전하고, 입은 동시에 열려서 스킬을 외쳤다.
-아키서스의 축복!
[아키서스의 축복이…]
파티원 전체에게 건 아키서스의 축복.
10초 동안 파티원들을 보호해 주기에는 충분했다.
“너 뭐하려는…?”
-신성한 아키서스의 번개! 신성한 아키서스의 번개! 신성한 아키서스의 번개! 신성한 아키서스의….
태현은 랩을 하듯이 미친 듯이 빠르게 외쳤다.
전사의 컨트롤은 동체시력과 반응속도라면, 마법사, 그것도 언령 마법을 쓰는 마법사의 컨트롤은 말하는 속도!
얼마나 빠르게 말할 수 있느냐에 따라 마법이 얼마나 나가는지 결정된다!
언령 마법의 효과는 키워드에 따라 정해졌다.
<신성한>, <아키서스의>, <번개>라면….
콰지지지지지직!
[신성한 마력이 지옥 마력이 담긴 물을 불태웁니다!]
[지옥 마력이 담긴 물로 인해 마법의 힘이 더욱더 증폭됩니다!]
[지옥 마력이 담긴 물로 인해 마법의 범위가 더욱더 넓어집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이 아키서스의 힘을 사용합니다! 아키서스의 힘이 번개에 깃듭니다!]
[아키서스의 번개가 겹쳐져서 더욱더 강해집니다! 던전의 마력을 찢어발깁니다!]
[랄그갈이 이 기운을 눈치챕니다!]
[던전의 마력이 불타오릅니다!]
[악마들이…]
[악마들이…]
“미… 미친….”
“이게 뭔….”
일행들은 경악했다.
눈을 의심케 하는 광역 마법!
앞의 통로부터 저 뒤의 어두컴컴한 길까지 전부 다 푸르고 번쩍이는 번개가 채우고 있었다.
바닥을 치고 벽을 친 번개는 물속을 지지며 사방으로 계속 퍼져나갔다.
그러다가 자기들끼리 뭉치면 더욱더 강렬하게 퍼져나갔다.
번개 폭풍!
아까 기후를 다루는 마법사 랭커가 비바람을 불러왔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번개 폭풍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였다.
아무것도 살아나갈 수 없을 정도!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파직! 파직!
“와, 진짜. 미친 위력인데?”
“그러게. 김태현이 안 맞게 버프 걸어줘서 정말 다행이다.”
케인과 앨콧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저 마법 다 끝나기 전까지 버프 지속되는 거 맞지?”
아키서스의 축복 덕분에 모든 번개가 다 회피가 뜨고 있긴 한데, 생각해 보니 좀 무서웠다.
저거….
언제 끝나지?
“걱정 마라. 김태현인데 당연히 예상하고 걸었겠지.”
“그, 그렇지?”
“…마법들이 저렇게 뭉쳐서 위력이 더 증폭되는 것도, 그래서 지속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예측해서 건 거 맞아?”
크로포드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김태현이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전문 마법사는 아니었을 텐데….
에이… 그래도 김태현이니까…!
그러나 태현은 시선을 피했다.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야! 왜 말이 없어!”
태현은 시선을 피했다.
그거까지 예측하진 못했던 것!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한 번에 2업!
이 통로와 연결되어 있는 악마란 악마들은 모조리 다 번개로 태워버리고, 랄그갈이 만든 마계의 결계도 찢어버린 결과!
[칭호: 지하통로의 학살자를…]
[마법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에랑스 왕국 마탑에서 당신을 다시 부를 수 있습니다.]
[랄그갈이 아키서스의 존재를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랄그갈이 경악합니다!]
“으아아악! 죽는다! 죽는다!!”
“살아남아야 해!”
파직! 파직….
“…끝, 끝난 건가?”
“불길한 소리 하지 마 이 자식아! 그런 소리 하면 다시 터진다고!”
번개가 끝나자 앨콧과 케인은 서로 얼싸안았다. 정말로 무서웠던 것이다.
태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휴… 맞다. 크로포드. 아까 예측해서 걸었냐고 했지? 물론이지.”
“…뻥치지 마 이 자식아!”
아무리 생각해도 예측한 표정이 아니었던 것!
점점 김태현이 그들을 데리고 온 이유가 ‘죽어도 안 아쉬운 놈들이라’로 확신이 가고 있었다.
“속도 올린다! 랄그갈 오기 전에 다 털고 나가자!”
“와아아아!”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는 확실했다. 일행은 기세 좋게 외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 * *
-아… 아… 아키서스!
한참을 에하스와 제하스를 몰아붙이며 죽이려던 랄그갈은 갑자기 멈추며 비명을 질러댔다.
-내 집을! 내 집을!
“뭐, 뭐야?”
“이때야! 공격 컥!”
상대가 방심했다고 생각했지만 랄그갈은 그런 방심 같은 걸 하지 않았다.
그대로 제하스를 다시 후려쳐 날려 버렸다.
방어막째로 날려 버리는 무시무시한 힘!
그러는 사이 이세연은 손에 턱을 괴고 고민하고 있었다.
‘쟤를 잡을까 말까….’
랄그갈한테 죽게 내버려 둘까, 아니면 이세연이 직접 등 뒤를 쏴서 끝내줄까.
둘 다 좋은 방법이라 고민이 됐다.
-용서하지 않으리라…! 아키서스!
랄그갈은 귀가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더니, 다시 바닥을 내리쳐 구멍을 만들고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너덜너덜해진 에하스는 헉헉 숨을 들이쉬며 눈을 깜박였다.
“살… 살았다!”
“아직 아닌데?”
말과 함께 이세연의 공격이 날아 들어왔다. 에하스는 비명을 지르며 굴러 피했다.
“잘 피하네! 계속 피해 봐!”
“비, 비겁하게! 랭커가 이래도 되는 거야?”
“응? 곧 죽을 사람이라 안 들리는데? 안 들리는데?”
“아오… 저 김태현 같은 게!”
에하스는 이세연을 흔들어서 틈을 만들기 위해 외쳤다.
그러나 이세연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싸늘해질 뿐이었다.
“…넌 오늘 진짜 뒤졌어.”
에하스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잘못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