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79화
세계 최고의 네크로맨서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미다스 길드원들은 그걸 체감했다.
같은 마법사인데도 시전 속도와 그 위력이 차원이 달랐다.
이세연은 언데드를 소환하면서 컨트롤하고 남는 사이에 저주 마법과 직접 공격을 하는데도 그들의 공격을 합친 것보다 뛰어난 위력이 나왔다.
괴물 그 자체!
“내가 안 그래도 참고 있는데 아주… 어디 한번 해보자!”
이세연은 빠득빠득 이를 갈며 언데드들을 불러냈다.
악명이 쌓이든 말든, 도시 출입 금지를 당하든 말든 오늘 한 번 피를 봐야겠다!
-콜 언데드 드래곤 나이트! 콜 본 드래곤!
콰드드득!
“이, 이세연! 진짜 미친 거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질투심에 도발을 하긴 했지만, 이세연과 이렇게 전면전을 할 생각은 없었던 랭커 제하스가 당황해서 외쳤다.
도시를 뒤엎을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세연은 차갑게 대꾸했다.
“내 뒷감당을 왜 곧 뒤질 놈들이 하는 거지? 그냥 뒤져!”
“…!”
말과 함께 공세가 시작되었다.
거리 벽, 거리 아래, 건물 위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향에서 들어오는 입체적 공격!
길드원들은 당황해서 등을 맞대고 방어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세연…! 네가 뭐라도 된 거 같아? 어디 한번 해보자!”
그리고 크로포드가 분노조절장애라고 말한 에하스가 나섰다.
<자연을 다루는 대마법사> 직업을 가진 에하스!
[에하스가 대규모 기후 변화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거대한 폭풍우가 몰려옵니다!]
[도시에 물이 차오릅니다!]
랭커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사건이 생긴다는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서로 성격 더러운 놈들이 모이다 보니 싸우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도시 전체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싸우다니!
보통 랭커들은 자제를 하게 마련인데, 둘 다 열이 받으니 끝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도, 도망쳐!”
“이게 뭐야!”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플레이어들은 우르르 도시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구경도 구경인데 이러다가 훅 가겠다!
남은 플레이어들은 고렙 이상이거나 목숨을 걸어서라도 구경하려는 플레이어들!
콰르르르-
거리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물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이동 속도에…]
[번개 속성 마법이…]
[물 속성 마법이…]
“흥! 어디 한번 언데드 갖고 또 으스대봐!”
에하스는 그렇게 말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언데드 군세가 거대한 물에 밀려 나갔다.
이세연은 대꾸도 하지 않고 마법을 난사했다.
에하스를 상대로 시야 저주를 걸고 마법 시전 속도 저하 저주와 MP 드레인 저주를 건다. 동시에 발밑에서 언데드를 소환한 다음 잡히는 순간 언데드 폭발을 사용한다.
“꺄아악!”
에하스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그걸 본 제하스가 길드원들을 데리고 합세했다.
“1:1로는 안 돼! 다들 공격해!”
PVP의 경험치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같은 랭커라고 해도 이세연의 경험치는 압도적이었다.
마법사들끼리의 싸움은 수싸움의 성격이 강했는데, 이 수싸움에서 이세연은 몇 수나 앞서가는 것이다.
에하스의 수법은 모두 다 예상하고 카운터!
“<용솟음치는…>”
“<물의 폭파>.”
“<번개여 오라>!”
“<피뢰침 골렘 소환>. <골렘 폭발>.”
“저희도 돕겠습니다!”
“필요 없으니까 구경이나 해.”
이세연은 파티원들이 참가하는 걸 손으로 제지했다.
저딴 놈들 상대로 다 나서는 건 자존심 문제!
그리고 자기가 터뜨렸는데 괜히 다 악명 먹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 참을 거 그랬나.’
김태현 때문에 괜히!
* * *
“잠깐. 악마. 아까 랄그갈은 도시 지하에 머문다고 했나?”
“예. 정확한 위치는 저도 잘 모르지만 지하에서 명령을….”
“이렇게 비가 내리면 랄그갈이 곤란하지 않나?”
태현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렇게 대규모 폭풍우가 치고 도시에 물이 차오를 정도면 지하는 더 심할 것이다.
“…그, 그러게요?”
생각해 보니 맞는 말!
어떤 공격이나 습격보다도 랄그갈을 효과적으로 괴롭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래도 랄그갈 님 정도이시면 이 정도 물은 참고 버티실 겁니다. 참을성이 굉장하시니까요.”
“오… 그래?”
* * *
“지지 않아! 이세연! 난 지지 않는다고!”
“쟤는 왜 나를 상대로 청춘 드라마를 찍는 거야?”
이세연은 혀를 차더니 지팡이를 휘둘렀다. 상대도 랭커고 미다스 길드의 마법사들이 도와주다 보니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다.
짜증 나진 이세연은 강하게 들어갔다.
-대규모 마법 폭주!
[이세연이 마법 폭주를 사용했습니다!]
[대규모 기후 변화 마법이 폭주합니다!]
[폭풍우가 미친 듯이 심해집니다!]
[물이 더 빠르게 차오릅니다!]
“???!”
“미, 미쳤어?!”
에하스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서 마법을 폭주시킨다니!
도시가 완전히 물에 잠길 것이다!
“상관없어. 네가 시작한 짓이라 악명은 네가 더 많이 받을 테니까.”
“…!!”
에하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가 김태현이니?
“어쨌든 폭주시켰으니 더 이상 그걸로 잔수작을 부리진 못하겠지? 이제 진짜 죽어!”
에하스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날씨 변화 마법을 사용하고 그걸로 버프를 얻어서였다.
이세연이 폭주시켜서 통제권을 잃어버린 지금,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
* * *
[물이 가슴까지 차오릅니다!]
“…진짜 랄그갈이 버틸 수 있나?”
태현 일행은 고지대로 이동하면서 말했다.
원래 지하로 내려가서 랄그갈의 해독제를 훔쳐볼까 했는데, 지금 지하로 내려가면 수장되게 생겼다!
“랄, 랄그갈 님은 대단하신 분이라….”
“대단하고 뭐고 자기 은신처가 박살 나게 생겼는데?”
“버티실 겁니다! 이 계획이 얼마나 대단한 계획인데….”
콰콰콰콰콰콰콰쾅!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시의 중앙 광장이 부서지며 거대한 포효가 도시를 채우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나를!!!
“…뭐 버틴다고?”
“…….”
악마는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탐욕스러운 포식자 악마 랄그갈이 지하 미궁 은신처에서 뛰쳐나옵니다!]
[공포 상태에…]
[면역입니다. 피해를 받지 않습니다.]
[탐욕스러운 포식자 악마 랄그갈은 매우 분노하고 허기진 상태입니다. 주의하십시오!]
“어. 생각했던 거랑 좀 다르게 생겼다?”
태현은 저 멀리 광장에서 모습을 드러낸 랄그갈을 보고 당황했다.
갈그랄처럼 근육질의 거인형 악마 전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포동포동하게 생긴, 거대한 상인 같았다.
“의외로 만만한 거 아닌가?”
“확실히….”
일행도 수군거렸다.
저거 지금 달려가면 잡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랄그갈이 <지옥의 흡입>을 사용합니다.]
랄그갈의 입이 쫙 벌어지더니 주변에 있는 모든 걸 삼키기 시작했다. 목구멍 안에 이글거리는 지옥의 마력이 건물조각부터 플레이어까지 닥치는 대로 삼켜버린 것이다.
콰드득! 콰득!
[랄그갈이 <분노의 포식>을 사용합니다.]
-으아아! 나는 아직 배고프다!
와드득! 와득!
스킬 두 방만에 중앙 광장이 초토화!
“…아까 만만하다고 한 놈 누구냐?”
“…….”
랄그갈은 갈그랄과 타입만 다를 뿐 충분히 괴물이었다.
* * *
“도시 밑에 악마가 있었다고!? 이거 혹시 퀘스트와 관련이 있는 건가?!”
에하스와 미다스 길드원들은 상황도 잊고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안 줄 수가 없는 랄그갈의 등장!
혹시 저 악마가 이번 에랑스 국왕 퀘스트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그리고 그 방심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눈앞에 있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이세연!
“잘 가.”
“!!!!”
-언데드 대폭발!
콰콰콰콰콰쾅!
이세연은 접근시킨 언데드들을 폭발시키고 그 위로 마법까지 퍼부었다.
“이세연…! 우리 길드와 원수가 되겠다, 이건가!”
“길드 동맹일 때부터 너희 겁낸 적 없거든?”
“우린 다르다!”
“더 약하고 더 만만한 거? 됐고 계속 덤비기나 해.”
제하스는 이를 갈았다. 방금 공격으로 파티 절반이 박살 난 것 같았다. 이대로 싸우는 건 미친 짓이었다. 아까 전력으로 싸웠을 때도 밀렸는데….
“동생아! 튀자!”
“하, 하지만 저 짜증 나는 여자가!”
“지금은 물러서야 해!”
“내가 보내준다고 한 적 없는데.”
이세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냥 빨리 죽어 좀. 너희 잡고 김태현도 잡으러 갈 거니까.”
“크으윽… 어디 한번 해보자!”
도망칠 길이 없다는 걸 깨달은 제하스와 에하스는 끝까지 싸울 준비를 했다.
불리하더라도 랭커끼리의 싸움은 절대적인 게 없었다.
언제라도 뒤집을 수 있다!
“와라, 이세연! 난 절대….”
쾅!
말과 함께 제하스는 저 멀리 날아갔다.
중앙 광장을 초토화시킨 랄그갈이 이쪽으로 찾아온 것이다.
“…….”
“…….”
에하스와 이세연 모두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랄그갈을 쳐다보았다.
부담스러운 보스 몬스터!
눈앞의 적!
-감히 내 영역을 누가 물로 더럽혔느냐?
“쟤요.”
이세연은 망설이지 않고 에하스를 가리켰다. 그러자 랄그갈도 망설이지 않고 에하스에게 덤벼들었다.
콰아아아앙!
“이세여어어어언! 너 진짜아아아아아!”
에하스는 방어 마법만 닥치는 대로 걸면서 비명을 질렀다.
이세연처럼 즉답을 했어야 했는데!
-너 죽는다! 너 먹는다!
“이세연! 같이 잡자! 같이 잡자고!”
“어디서 개가 짖네.”
“넌 진짜 쓰레기야!!”
이세연은 에하스를 빤히 쳐다보며 생각했다.
김태현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남의 손을 빌려서 얄미운 놈을 처리하니까 매우 기분이 편안했다.
‘이래서 사람이 그렇게….’
여기에 중독되면 사람이 망가질 거 같다!
-너 먹는다! 너 죽는다!
“크으으읏…!”
“언니. 그런데 저 악마 어떻게 할 거예요?”
“글쎄. 레이드할 준비도 안 됐는데 쟤가 미끼 역할 하는 사이에 물러설까?”
* * *
“생각해 보니 지금 랄그갈의 던전으로 들어가면 날로 먹는 거 아닌가?”
태현은 문득 깨달았다.
랄그갈이 돌아오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면 해독제나 관련된 걸 다 챙길 수 있는 거 아냐?
“아, 아니 저렇게 물이 찼는데….”
“숨 참으면 되지 뭐.”
“아니 그게 참는다고 참아지… 게다가 안에 몬스터와 함정들도 많을 텐데….”
악마들은 매우 불길함을 느꼈다.
케인도 매우 불길함을 느꼈다.
앨콧도 마찬가지!
탁탁탁!
태현은 재빨리 희생양을 골라내서 밀어낸 다음 말했다.
“가자! 랄그갈 오기 전에 털어야 한다!”
역시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빈집털이가 낫지!
위에서 랄그갈이 무슨 난리를 치든 그건 상관없었다.
[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동 속도가…]
[숨을…]
-수중 호흡!
일행은 수중 호흡 마법을 쓰거나 스크롤을 썼다. 물 안에서 숨을 쉬려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체불명의 지하통로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물이 가득 차 던전의 상태가 평소와 다를 수 있습니다.]
-앨콧, 크로포드, 케인. 너희들은 파티의 최정예다. 그래서 너희를 데리고 온 거지.
‘아무리 봐도 버려도 되는 놈들만 데리고 온 기분인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앨콧과 크로포드는 몰래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현이 데리고 온 기준이 수상쩍었던 것!
던전에서 죽어도 안 아쉬울 놈들만 데리고 온 기분이었다.
앞의 악마들을 보라!
폭탄 목걸이를 차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케인은 생각했다.
‘음. 만약의 경우에는 자폭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포기하면 편해!
앨콧과 크로포드와는 확연히 다른 마음가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