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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76화 (876/1,826)

§ 나는 될놈이다 876화

“나,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일부러…!”

“무슨 소리야? 보상을 내놓으라고.”

“크으윽… 정말 고맙소….”

“설마 보상 안 내놓으려고 이러는 건 아니지?”

“그대만을 믿고 있겠소… 여기 내 인장 반지가 있으니….”

털썩-

그 말을 마치고 백작은 다시 쓰러졌다.

[살라비안의 폭주가 더 이상 효과가 없습니다!]

[오염이 백작을 삼킵니다!]

[백작이 의식을 잃습니다!]

[백작의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백작이 당신에게 인장 반지를 넘깁니다. 임시 영주 권한을 얻습니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태현이 명성이 높고 화술 스킬이 높아도 그렇지 임시 영주 자리를 덜컥 주다니!

‘잠깐. 이거 한 재산 챙기고 나갈 수 있는 건가?’

[…….]

‘영지에서 악마들 쓸어버렸는데 정당한 대가지.’

카르바노그의 시선을 무시하며 태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영지에 있는 악마들을 일망타진했으니 보수를 받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

[임시 영주 권한으로는 영지의 창고를 열 수 없습니다.]

[임시 영주 권한으로는 영지의 금고를…]

[……]

[……]

“…….”

태현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뜯어내기 실패!

결국 얻은 건 영지의 세금을 조정하거나 영지의 병사를 빌리거나 영지 감옥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처벌하거나 영지에 있는 퀘스트들을 조절하거나 NPC들을 부려먹을 수 있는 것 정도밖에 없었다.

‘흠. 생각해 보니 은근히 많네.’

보물만 못 빼가지, 임시 영주로도 나머지는 다 할 수 있었다.

“근데 뭘 해야 좋을까?”

“헉! 나 좋은 생각 있어.”

케인이 손을 들고 말하자 모두 움찔했다.

“그, 그래. 말해봐.”

“맞아. 말해봐.”

‘대충 좋다고 하고 넘겨야지.’

‘또 헛소리를 하겠지.’

불신 그 자체!

일행이 그렇게 의심하는 것도 모르고 케인은 순수하게 말했다.

“이 기회를 틈타 아탈리 왕국처럼 영지의 중요 자리를 모두 장악하는 거야!”

“!”

태현은 놀랐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케인도 태현과 오래 같이 다니자 이런 그럴듯한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

[카르바노그도 놀랍니다!]

“의외로 괜찮은 생각인데?”

“그러게요? 정말 의외로….”

“의외로 멀쩡한데?”

“…야. 다 들리거든?”

케인의 말은 무시하고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전략!

판온에서 골드를 벌기 가장 좋은 방법은 영주가 되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좋은 방법은 영주 밑의 감투를 쓰는 것이었다.

월급도 받아가면서 쏠쏠하게 돈을 챙길 수 있는 자리!

‘마구간지기나 경비병 같은 자리가 뭐가 돈이 돼?’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

마구간지기는 마구간에 있는 희귀한 탈것이나 좋은 탈것을 먼저 빌려주는 식으로 돈벌이가 됐고, 경비병도 악명이 높아서 도시에 못 들어오는 플레이어나 NPC를 몰래 들여 보내주면서 돈을 벌 수 있었다.

요컨대 머리만 굴리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게 이런 자리!

마구간지기나 경비병도 이런데 더 권한이 높은 자리면 말할 것도 없었다.

임시 영주 자리로도 이런 임명은 충분히 가능했고, 거기에 더 좋은 것은 악마들이 싹 잡혔다는 점이었다.

악마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들이 텅텅 빈 상태!

“좋아! 이다비! 파워 워리어 애들 불러!”

“네!”

마침 집합도 시켰겠다, ‘선착순으로 감투 증정!’ 하는 순간 영지를 향한 미친 레이스가 시작될 것이다.

“…근데 우리 언제 출발해?”

앨콧과 크로포드가 우두커니 서서 물었다.

한시라도 빨리 퀘스트를 깨야 하는 지금 저게 무슨 여유란 말인가.

저게 바로 최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일까?

‘아니…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안일한 거 아닌가?’

크로포드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전설 퀘스트 누가 먼저 먹냐 싸움인데 저런 사소한 이득에 집착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안일해!

“태현 님. 문제가 있어요.”

“뭐지?”

“이 영지가 에랑스 왕국에서도 너무 작은 영지라 플레이어들이 잘 안 오는 영지거든요.”

“이런…!”

일레니 백작의 영지는 인기가 없는 영지였던 것!

사람들이 적게 오면 당연히 감투로 뭔가 할 것도 줄어들었다.

“세금 줄이지 뭐.”

태현은 간단하게 결론을 세웠다.

플레이어들을 모으는 가장 쉬운 방법!

-파격 세일!

-영주님이 미쳤어요!

영지에서 걷는 세금을 0% 수준으로 내려 버리고 각종 지원을 퍼주면 플레이어들은 몰려들게 되어 있었다.

사냥터나 던전이 부족해도 에랑스 왕국 안의 영지들은 서로 비교적 가까운 편이니, 다른 곳에서 사냥하고 와서 이 영지에서 아이템을 처리할 수도 있었다.

“아, 아니. 위험하지 않습니까?”

“너무 위험한….”

듣고 있던 악마들이 당황해서 말리려고 들었다. 영지에서 일하다 보니 영지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금이 0%가 되면 수입은 뭘로 얻어?

“보상 못 받으니 이런 거라도 해야지. 바짝 벌어서 바짝 가야겠어.”

그러나 태현은 악마들의 말을 무시했다.

왜냐하면….

영지 운영비는 자기 돈으로 나가는 게 아니니까!

“좋아! 다 됐다!”

30분도 안 되어서 일레니 영지 작업을 끝낸 태현은 드디어 떠날 준비를 마쳤다.

앨콧과 크로포드는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야 가는구나!

* * *

“무슨 일이 있나?”

“뭔가 좀 이상한데….”

플레이어들은 수군거렸다.

요즘 도시에서 못 보던 파티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고 있었다.

게다가 차고 있는 장비도 심상치 않았다. 딱 봐도 고렙 이상의 정예 파티!

거기에 나누는 대화도 의미심장했다.

“크큭… 레벨이 너무 높아서 괴롭군….”

“후 내 레벨이 요즘 이걸 바라보고 있다고.”

파티원 중 한 명이 손가락 두 개를 피며 말했다.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경악했다.

‘200?!’

레벨 200!

최상위권 랭커들은 넘겼지만, 아직 200에 도착하지 못한 랭커들도 많았다.

즉 저 파티는 적어도 상위권 랭커들로 구성된 파티라는 것!

‘정말 고수구나!’

‘대단하다!’

손가락 두 개면 200밖에 없었다. 설마 20이나 2는 아닐 테니까.

“저… 혹시 무슨 일로….”

“비밀이다.”

플레이어들의 질문에 파티는 대답하지 않고 쉭 떠나버렸다.

그러나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에랑스 왕국 국왕 퀘스트에 뭔가 있나 보다!

-진행이 됐나 보다!

-그렇지 않으면 멀리 있어야 할 랭커들 파티가 이렇게 나타날 이유가 없다!

일이 이렇게 되자 관심이 없던 플레이어들도 랭커만 보이면 가서 붙잡고 물었다.

“혹시 에랑스 국왕 퀘스트 깨고 계세요?!”

“퀘스트 깨고 있는 거 압니다! 같이 깨요!”

“정보 공유 좀!”

“혼자 먹지 말자!!”

한 걸음만 가도 수십 명이 달려오는 상황!

별생각 없이 도시에 왔다가 플레이어들을 만난 랭커들은 당황했다.

“아니, 퀘스트 때문에 온 거 아니라니까요.”

“우우! 거짓말!”

“공유하자! 공유하자!”

* * *

“…김태현이 수상해.”

-?

-???

-언니.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아. 이건 좀 아닌 듯.

-이세연 왜 저래?

이세연의 말에 유성 게임단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단체로 황당해했다.

대체 방금 상황 어느 부분이 태현이 수상하단 말인가.

-아무리 김태현한테 졌어도 그렇지!

-맞아, 맞아!

꽉!

이세연은 주먹을 쥐었다.

방송을 판온 1에서 태현과 1:1하고 난 이후에 바로 했어야…!

“언, 언니. 시청자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저기 이거 홍보방송인데….”

“시끄러워.”

“넵.”

홍보방송인데 시청자들은 신경 쓰지 말라는 쿨함!

그러나 김현아의 말에도 이세연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랭커 파티들.

게다가 그 파티들은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정보를 줄줄 흘리고 다녔다.

덕분에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홀린 것처럼 그 뒤를 쫓아다니고, 랭커들도 솔깃해서 ‘진짜 뭔가 있나?’ 하고 쫓아다니고, 정말 퀘스트 깨고 있던 랭커들도 거기에 휩쓸려서 방해받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짓을 할 사람은 김태현 같아!

“언니. 그런데 다른 사람도 있지 않나요? 이런 퀘스트 방해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김현아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세연을 철석같이 믿는 그녀였지만 이번에는 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해할 사람이 너무 많은 것!

하위권 랭커들이 방해하는 걸 수도 있었고, 대형 길드들이 방해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요즘 안 그래도 오스턴 왕국 서쪽에 새로 대형 길드들이 연합해서 쭉쭉 성장하고 있다던데….

“알겠어. 현아야. 그럴 수도 있겠네.”

“그렇죠?”

“그래. 그래.”

이세연은 그렇게 말했다. 김현아는 깨달았다.

‘내 말 전혀 안 듣고 계시잖아?!’

눈빛은 이미 김태현을 범인으로 100% 확정한 눈빛!

* * *

“헉. 길드 연합이잖아.”

“…? 길드 동맹?”

“아니. 길드 연합. 그, 길드 동맹에서 쪼개져 나온 애들.”

“아아. 걔네.”

앨콧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앨콧은 길드 동맹의 간판급 랭커.

길드 동맹에서 ‘쑤닝 엿 먹어라!’ 하고 나온 대형 길드들과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흠. 불리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나가나 보네?”

태현의 질문에 앨콧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동맹이 하락세라면 길드 연합은 상승세였다.

“영지야 훨씬 더 적지만 원래 길드란 게 그렇잖아. 잘나가는 곳은 길드원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뭔가 안 풀리는 곳은 있던 길드원들도 나가고… 딱 그 꼴이지.”

규모는 좀 밀릴지 몰라도 길드 연합은 화제에서 훨씬 앞섰다.

길드 동맹에서 나왔다는 이슈, 새로 시작한다는 기대감, 길드 동맹과는 다르다는 광고까지.

플레이어들이 솔깃해할 수밖에 없었다.

‘저쪽도 랭커인가? 랭커가 한가하게 도시 안을 그냥 돌아다닐 이유는 없을 거고, 퀘스트겠군.’

태현은 빠르게 상대의 견적을 냈다. 확실히 크로포드가 말한 것처럼 한두 명이 뛰어든 게 아니었다.

늦으면 뺏길 수도 있다!

“악마들. 빨리 안내해라.”

태현은 데리고 온 악마들을 재촉했다. 악마들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십시오!”

붙잡힌 악마들이 안내한 곳은 귀족 NPC들이 지내는 귀족 거리였다.

플레이어들 중 명성이 높거나 공적치 포인트가 높은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거리!

그래서 그런지 숫자가 적고 플레이어 하나하나가 눈에 띄었다.

“빨리 지나가야겠는데.”

“그러게. 괜히 시선 끌겠어.”

태현은 일행과 함께 앞으로 달렸다. 파워 워리어 파티가 곳곳에서 시선을 끌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괜히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

“뭐야? 저쪽으로 왜 들어가?”

태현 일행을 보며 당황하는 길드 연합 파티!

기껏 위치를 찾아서 들어가려고 하는데 웬 처음 보는 파티가 안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 더 있어!”

심지어 한 파티 더!

“저것들 누구야?”

“검은 바위단이다!”

“젠장… 양보하라고 해! 우리가 먼저야!”

길드 연합에서 나온 파티는 검은 바위단과 안면이 있었다. 재빨리 접촉해서 협상하려고 했다.

“우리가 먼저 왔어! 양보 좀 해줘!”

“미쳤냐? 먼저 오기는 뭘 먼저 와?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거 안 보여?”

물론 검은 바위단이 머리에 칼을 맞지 않은 이상 저 말을 들어줄 리 없었다.

“그래. 좋게 말해서는 못 알아듣겠지. 비켜. 뒤지기 싫으면.”

“하. 길드 동맹에서 갈라져 나온 새끼들답게 하는 짓이 똑같구나!”

“이 자식들이….”

길드 연합은 길드 동맹 못지않게 자부심과 오만함이 넘치는 길드.

검은 바위단은 소수정예로 누구한테 굽히는 걸 싫어하는 길드였다.

순식간에 싸울 기세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리고 뒤에서 그런 대화가 오가는 걸 들은 태현은 생각했다.

‘서로 알아서 잘 견제해 주잖아?’

이런 쉬운 놈들을 봤나!

더 부추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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