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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75화 (875/1,826)

§ 나는 될놈이다 875화

예전이었다면 앨콧의 분노에 케인은 겁을 먹었을 것이다.

하늘 같은 랭커 아닌가.

게다가 앨콧은 랭커 중에서도 명성 높은 암살자 랭커!

그렇지만 케인은 예전의 케인이 아니었다.

“저, 저거 봐. 태도가 아주 불량해!”

“너 이런 거 하고 싶었구나?”

최상윤은 케인을 보며 말했다.

말하는 걸 보니까 한두 번 연습한 솜씨가 아니었다.

분명 콧대 높은 유명 파티가 새 파티원들 심사보고 면접하는 걸 보면서 ‘헉 나도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을 거야!

앨콧이 케인한테 말려서 헛소리나 하고 있자 크로포드가 나섰다.

“김태현. 앨콧이 널 암살하려고 온 건 아니야. 오해하지 마라.”

“물론이지. 그런 오해는 하지도 않아.”

“하긴. 그런 오해는 하면 이상한 거지. 쟤를 보면 절대 그런 오해를 할 수가 없으니까.”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하는 태현과 크로포드!

“?”

앨콧은 옆에서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 자식들이 뭔가… 뭔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기분 나쁘다!

“우리는 정말 퀘스트를 깨려고 온 거야. 에랑스 왕국 국왕 퀘스트 깨고 있는 중이었거든. 여기 백작이 국왕과 같은 병에 걸렸다는 정보를 얻어서 온 거고.”

“흠. 흠.”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는 척했다. 사실 방금 악마들한테 다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상대방이 열심히 말하는데 ‘미안 1분 전에 들었어’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야. 너희들도 흥미 있는 척해야지.”

“앗. 그렇군요. 그런 이야기가!”

“와! 너무 흥미진진한걸!”

일행들의 반응에 용기를 얻은 크로포드가 말했다.

“김태현! 같이 힘을 합쳐서 퀘스트를 깨는 게 어떠냐? 백작의 성안으로 들어오긴 했어도 바로 상황을 파악하려면 너희들도 힘들 거다. 여기 앨콧은 에랑스 왕국 남작이고, 퀘스트 관해서 각종 정보들을 수집한 상태지. 이 영지에 어떤 놈들이 악마고 일레니 백작이 뭐에 중독당한 건지 힘을 합치면 알아낼 수 있… 근데 쟤네는 누구냐?”

크로포드는 말하던 도중 뒤에 줄줄이 묶인 악마들을 발견하고 가리켰다.

왠지 모르게 신경쓰인다!

악마들은 시선을 피했다. 구시온이 대신 대답해 줬다.

“일레니 백작령에 침입한 악마들이다.”

“어… 어? 아, 아니. 벌써?”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 잡았어?

크로포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말을 더듬었다. 이게 말이 되나?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얘가 다 불었지.”

구시온이 주케넨을 가리키며 말하자 주케넨이 시선을 피했다. 다른 악마들은 주케넨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전부?”

“응. 전부.”

“…….”

“…….”

크로포드와 앨콧은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서로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말이 없어졌다.

앨콧은 재빨리 고개를 땅에 닿을 정도로 숙이더니 외쳤다.

“제발 한 번만 받아주십쇼!!!”

‘이, 이 자식…! 자존심을 버렸어!’

* * *

“뭐. 받아주지.”

“!”

의외로 태현은 선선히 수락해 줬다. 앨콧은 충격을 받았다.

“진, 진짜?”

“그래.”

“진짜로 진짜?”

“그렇다니까.”

“진짜로 진….”

“한 번만 더 물어보면 아키서스 해버린다.”

“…….”

그게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물었다가는 정말 아키서스당할 것 같은 불안함!

앨콧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자식 왜 이렇게 친절하지?’

파티에 들어오려면 네 콩팥을 골드로 바꿔 와라!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야. 왜 받아주는 거야?”

“앨콧은 좀 밀어줘야지.”

길드 동맹에서 가장 위치가 높은 두 첩자 중 하나, 앨콧!

다른 하나는 길드 동맹에서 첩자로 왔다가 너무 출세해서 태현 쪽으로 갈아탄 장샨이었다.

앨콧이 이제까지 토해낸 정보만 생각해도 이렇게 밀어준 값이 아깝지 않았던 것!

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앨콧 쟤는 볼 때마다 애가 추해지는 거 같아.”

‘너도 만만치 않아….’

최상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케인 팬들은 케인 실제 모습을 보면 혼란에 빠질 것이다.

세계 최고 탱커, 케인!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탱커, 케인!

어떤 위기가 닥쳐도 흔들리지 않고 바위처럼 팀을 지탱하는….

‘…는 헛소리지.’

케인처럼 촐싹대고 가벼운 탱커는 본 적이 드물 정도!

* * *

촤르륵!

앨콧과 크로포드는 수집한 책들과 두루마리를 쫙 깔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왕이 걸린 병으로 추측되는, 일명 <흑색병>이라고 불리는 병은 여러 소문이 있는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악마 짓이다!

아니다! 네크로맨서 짓이다!

그것도 아니다! 비밀 사교도 짓이다!

드래곤 짓 아닐까?

등등!

그러나 일행은 모두 답을 알고 있었다.

악마가 한 짓!

“소문에 나오는 곳들을 전부 가서 확인해보면 이걸 퍼뜨린 악마를 찾을 수 있을….”

“…저기, 위치 압니다만.”

“만나는 방법도 아는데요.”

묶여 있던 악마들은 뒤에서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들이 말하기로 했는데 저 두 인간 놈은 뭐라는 거지?

앨콧은 민망해서 외쳤다.

“닥쳐! 그렇게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하니까 대륙이 이 모양이잖아! 너희 악마 말은 믿지 않아!”

“아니 위치 알아내려고 잡았으면서…!”

“안 믿을 거면 풀어나 주던가!”

악마들은 항의했다.

태현은 무시하고 크로포드와 이야기를 나눴다.

“상당히 많이 모았군.”

“정보 사이트에서 구매하고 아는 길드한테 부탁하고 남은 건 발로 뛰었지.”

크로포드나 앨콧은 괜히 랭커가 아니었다. 어지간히 솔플만 하는 랭커가 아니면, 보통 인맥이 꽤 있는 편이었다.

‘둘은 퀘스트 나오자마자 뛰어들었고, 둘 다 랭커니 이 정도면 선두권 아닌가?’

국왕 퀘스트를 깨기 위해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나선 상황.

그렇지만 이 둘 정도면 꽤 선두권일 것 같았다.

‘어라? 그러면 지금 달리면 퀘스트 바로 깰 수 있는 거 아냐?’

태현은 깨달았다.

원래 악마만 잡아가려고 온 거였지, 에랑스 국왕 퀘스트는 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었다.

너무 많은 플레이어들이 참가하고 있었고, 태현 일행은 늦게 뛰어든 편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할 만한데?’

크로포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크로포드도 태현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우리 정도면 솔직히 선두권 아닐까 싶은데… 게다가 저기 악마들이 제대로 정보를 토해내기만 한다면 더 빨리 할 수 있을 거야.”

“저희는 진실만을 말합니다!”

“저희는 살면서 거짓을 말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아키서스 당할까 봐 급히 소리 지르는 악마들!

“…쟤네한테 대체 뭘 한 거지?”

크로포드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악마면 끝까지 버티거나 어떻게든 속이려 드는 게 보통인데….

저기 악마들은 마치 양처럼 온순했다.

“하하. 내가 착한 악마를 만난 거겠지. 어쨌든 다 좋은 거 아닌가? 바로 달리면 되는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어.”

“?”

“견제가 들어올 거란 말이지. 에랑스 왕국은 사람 눈이 너무 많아.”

“변장을 해도?”

“변장을 해도. 일단 뭔가 좀 눈에 띈다 싶으면 바로 글이 올라간다고.”

태현이 이제까지 대형 퀘스트를 깰 때는 보통 도시에서 먼 외진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퀘스트는 에랑스 왕국, 그것도 수도나 도시 한복판을 오가야 하는 퀘스트!

변장을 해도 ‘어? 못 보던 파티가 나타났네? 뭐지? 퀘스트 있나?’ 하고 글을 올리는 게 에랑스 왕국이었다.

그만큼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물론 그런 글들은 우리만 올라오는 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많이 올라오니까 바로 견제가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주의는 해야 해.”

“어떤 식으로?”

“…그게 문제야. 이건 뭐 대처할 방법이 없단 말이지. 몇 명씩 나눠 다니는 거 말고는….”

일단 숫자 많은 파티가 나타나는 순간 시선을 끌었다.

혼자 다니는 게 아닌 이상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의 시선!

“흠… 파워 워리어를 써야겠군.”

“?”

태현은 이다비한테 부탁했다. 이다비는 바로 명령을 내렸다.

-파워 워리어! 집합!

* * *

“근데 일레니 백작을 깨울 수 있는 건가?”

떠나기 전에 태현 일행은 일레니 백작의 침실로 향했다.

받을 거 다 받았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일레니 백작을 치료해 주고 마지막 보상까지 받을 생각이었다.

문제는 치료할 수 있느냐!

“국왕도 치료 못 했잖아.”

“그렇긴 하죠….”

“방법 없어?”

“힉. 저희도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악마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괜히 태현과 눈 마주쳤다가 험한 꼴이라도 당할까 봐 두려워해서였다.

“이게 그… 저희는 연금술은 잘 몰라서….”

“저희 전문 분야는 마법….”

“제 전문 분야는 검술….”

변명하는 악마들!

태현은 고개를 저었다.

덜컥-

문이 열리자 지독한 흑색 기운이 안에서 뿜어져 나왔다.

[지독하게 오염된 흑색의 기운이 나옵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

“윽.”

다른 일행들은 감히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만큼 지독했던 것이다.

태현 혼자 안으로 들어갔다.

[오염된 기운이 강해집니다!]

[아키서스의 권능이…]

[신성 스탯이 오릅니다!]

[지혜 스탯이 오릅니다!]

‘오?’

그냥 방 안에서 버티기만 했는데도 스탯이 오르다니!

이런 소소한 보상이 있어서 판온을 하는 맛이 났다. 태현은 씩 웃으며 들어갔다.

“으어어… 으어어어….”

“와. 이건 좀.”

태현은 질색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백작은 완전히 흑색으로 변해 벌벌 떨고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이거 옮는 거 아니냐면서 걱정합니다.]

‘걱정 마라. 설령 옮더라도 난 멀쩡하니까.’

대륙에 역병 폭탄 돌 때도 혼자서만 멀쩡했던 태현!

이쯤이면 대륙이 멸망해도 혼자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존력이었다.

“저주 이동 스킬은 못 쓰나?”

[저주가 아닙니다. 실패합니다.]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흠. <아키서스의 기도>와 <아키서스의 축복>을 같이 써볼까?”

파아아앗!

백작의 얼굴이 조금 편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걸린 병이 사라지진 않았다.

[신성 스탯이…]

[스킬 레벨이…]

[……]

“오….”

이 백작, 스킬 경험치를 너무 잘 주는데?

태현은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에 카르바노그는 불안함을 느꼈다.

[환자 상대로 뭘 하려고…!]

“좋아! 이번에는 사디크의 화염으로 간다!”

[?!]

“끄아아아….”

“이런. 화염은 무리였나?”

사디크의 화염이 닿자 백작은 괴로워하며 신음했다.

흑색병도 사라지긴 했지만 이러다가 몸도 같이 사라질 판!

-살라비안의 폭주!

[살라비안의 힘을 빌려 생명력을 폭주시킵니다! 일정 시간 동안…]

갖고 있는 권능이란 권능은 다 써보는 태현!

“허억, 허억… 무슨 일이….”

“앗. 통하잖아?”

오히려 놀라는 태현!

살라비안의 권능을 쓰자 백작은 정신이 든 것처럼 눈을 번쩍 떴다.

“당신은… 누구인가…?”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다. 당신을 구해주러 왔다.”

“그런…! 고맙소! 방금 꿈에 어떤 악마가 나타나서 나를 불로 지졌는데….”

“…….”

태현은 시선을 피했다.

“정말 나쁜 악마 놈들이군! 내가 다 잡아서 해치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고, 고맙소.”

백작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이 힘만 있으면 이 지독한 병에도 버틸 수 있을 것 같구려….”

“어. 그거 시간 지나면 풀리는데.”

“…끄어어어어!”

제한 시간이 풀리자 백작은 다시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태현은 재빨리 다시 스킬을 걸었다.

“백작! 죽지 말게!”

“고, 고맙소…!”

“그렇지만 정말 죽을 거면 보상은 주고 죽게!”

“…….”

[화술 스킬이 성공합니다!]

[일레니 백작이 삶의 의욕을 불태웁니다!]

[병의 속도가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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