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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71화 (871/1,826)

§ 나는 될놈이다 871화

그런데 자세히 보니 구시온은 우리 안에 갇혀 있었다.

더 자세히 보니 옆의 우리에도 한 마리가 더….

사루온이 공포에 질려 물었다.

“화… 화신.”

“응?”

“나, 나도 잡혀가는 건가?”

드디어 때가 왔구나!

아키서스와 같이 일하니까 언젠가 이런 날이 오는구나!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아, 아닌가?”

“아닙니까. 이런. 아쉬워라.”

드워프들은 입맛을 다시면서 사루온을 쳐다보았다. 쟤도 꽤나 괜찮은 대장장이 같아 보이는데!

“얘네들은 나한테 적대했다가 잡힌 악마들이지.”

-난 적대한 적 없다!!

구시온은 매우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언제 널 적대했어!

태현은 무시하고 말했다.

“내가 사루온 너처럼 열심히 일하는 악마를 왜 잡아가겠어. 물론 네가 우르크 대족장 퀘스트 때 제대로 일도 못하긴 했지만….”

“아니 그건 내 잘못이 아니잖나!”

에슬라의 피를 마시고 오염되었던 오크 대족장!

태현은 에슬라의 직속 부하인 사루온을 데리고 가서 대족장을 뺏어오려고 했었다.

상대 네크로맨서가 악마의 피로 조종한다면 태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사루온은 실력이 부족했다.

뺏어오는 건 실력이 안 돼서 실패했고, 악마답게 ‘내가 못 가지면 너도 못 가진다!’라는 마인드로 폭주시켜버린 것이다.

덕분에 계획은 꼬이고 난장판이 됐었지만….

사루온은 억울했다. 그거까지는 자기 잘못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 못하는 게 죄지. 인마. 어쨌든 그거 말고는 잘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사실 사루온은 태현 영지 NPC 중 손에 꼽히게 유능한 NPC였다.

<악마의 대장간>을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대장장이들을 키워내고 영지 스탯을 올려주고 각종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온 것!

태현이 사루온의 주인인 에슬라를 봉인에서 풀어준 인연으로 구해서 이렇게 된 거지,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는 인재였다.

‘교단 NPC보다 악마가 더 뛰어나다는 게 좀 슬픈데….’

잘 생각해 보니 일단 아키서스 교단 NPC만 아니면 다 유능한 느낌이었다.

사루온부터 시작해서 태현이 잡은 천사인 요하스나 사띠끄. 외부에서 데리고 온 거인 전사들이나 기사단….

얘네들은 다 유능하잖아!

왠지 나중에 아키서스의 천사가 나타나더라도, 아키서스의 천사는 무능할 것 같았다.

“어쨌든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네 도움이 필요해서다.”

“…?”

“<에다오르의 머스킷>을 만들 건데, 아무래도 네가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악마 관련 물건이라면 확실히 내가 자신이 있지.”

[악마 대장장이, 사루온이 돕습니다! 제작 속도에 보너스가 붙습니다.]

[내구도에…]

[……]

“그런데 에다오르의 머스킷이라고?”

“그래. 이름만 듣고 얕보지 말라고. 성능은 의외로 좋….”

“…내가 왜 에다오르를 얕보겠나?”

사루온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태현한테 몇 대 맞긴 했어도 에다오르는 여전히 마계의 한 층을 지배하고 있는 위대한 악마였다.

같은 악마 입장에서 사루온은 결코 에다오르를 얕볼 수 없었던 것!

“어? 아니, 에다오르 걔 맨날 나올 때마다 맞고 쫓겨났잖아.”

“…그렇긴 하지.”

우리 뒤에서 울음소리가 났다. 사루온은 의아해했다. 방금 악마가 울었던 거 같은데?

“물론 에다오르가 최근 대륙에 나올 때마다 네게 당하고 당해서 쫓겨나긴 했지만….”

-으흐흐흑!

“…?”

“무시해.”

“그래. 쫓겨나긴 했지만, 그건….”

“그건?”

“네가 아키서스의 화신이라 그런 거지….”

“…….”

“…….”

자리에 있던 모두가 납득!

“그건 에다오르 잘못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좀 한심하긴 하지만….”

-감히…!

“뭐야 자꾸?”

사루온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에다오르 부하 악마라나 봐.”

“아. 그래서…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또 에다오르 쪽 악마를 잡아 오다니.”

사루온은 주케넨을 동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케넨을 또 잡아 오다니.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좀 다른 악마들을 잡아도 될 텐데!

“얘가 내 영지에 나타난 거거든?”

“뭐?! 에다오르 부하가 아키서스의 영지에 나타났다고!?”

사루온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외쳤다.

세상에 그런 멍청한 악마가 있나!

주케넨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떠드는 건 여기까지만 하고, 시작하자고.”

“그러도록 하지. 오. 이 장치 대단하군. 악마의 힘을 뽑아내는 장치인가?”

“뭘 좀 아는데? 악마?”

<아키서스 포병대> 소속 드워프들과 사루온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눴다.

서로 통하는 게 많은 이들!

“여기에 성수 파이프를 달아놓으면 혹시라도 악마가 반항하거나 도망가려고 할 때 바로 제압할 수 있지.”

“그런 방법이…! 악마답다!”

“하하. 칭찬 고맙군.”

[사루온이 <아키서스 포병대>의 악마 포박 우리를 강화시킵니다.]

[<아키서스 포병대> 드워프들의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늘어납니다.]

[사격이 더욱더…]

“악마들한테 사료를 줄 때에는 마석보다는 철광석을 섞어서 양을 늘리는 게 좋다. 맛은 좀 없어지더라도 마력량은 늘어나지.”

“과연!”

-그… 그만둬…!

구시온은 사루온을 말리려고 했지만 사루온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구시온의 아버지가 무섭긴 했지만, 그 악마는 저 멀리 마계에 있었고 자기 옆에는 아키서스가 있었으니까!

* * *

[에다오르의 머스킷이…]

[에다오르의 머스킷이…]

[……]

[……]

땅땅땅땅땅!

무시무시한 망치 소리가 들렸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도 총동원되어서 태현과 사루온을 도울 정도였다.

엄청나게 빠른 작업 속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망치를 두드리고 금속을 펴고 모양을 잡고 완성시키는 동작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저게 사람인가?

태현은 오랜만에 판온 1 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절대 한두 번 해서는 이런 각이 나오지 않았다.

“태현 님. 이거 영상에 올려도 되나요?”

“응. 상관없어.”

“태현아. 너 하고 있는 동안 근처에 몬스터 좀 처치하고 오려는데 괜찮지?”

“하고 와.”

“크흠. 나도 잠깐….”

“케인. 개수작 부리지 말고 스킬 레벨 올려라. 너 이따가 스킬 레벨 확인해서 내려가 있으면 넌 아키서스 형이야.”

“?!?!”

일행들 사이에 끼어 슬쩍 놀려던 케인은 움찔했다.

어떻게 알았지?!

지금 계속 망치와 작업대만 보고 있어서 모를 줄 알았는데…!

[대장간이 과열되었습니다!]

[한동안 대장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런.”

“걱정 마라! 방법이 있으니까.”

사루온은 자신만만하게 악마 우리로 향했다. 그리고 구시온 앞에 있는 장치를 붙잡았다.

-잠, 잠깐! 나는 아니다! 나는 아니야!

“헛소리하지 마라. 구시온. 악마 공작의 아들답게 당당하게 굴어라.”

-진짜 아니라니까! 화신한테 물어봐라! 나는 2주일 동안 휴식을 받았단 말이다!

구시온은 울먹이면서 말했다.

정말로 억울했던 것이다.

“그게 정말인가?”

“아. 그랬지. 옆에 있는 주케넨한테서 뽑아.”

“알겠다.”

사루온은 바로 주케넨에게 향했다. 주케넨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우우우우웅!

[악마의 에너지가 주입되었습니다!]

[악마의 대장간이 다시 가동됩니다!]

“악마의 에너지는 이렇게 쓸 수도 있지!”

“과연…!”

태현은 감탄했다.

“물론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건물을 제작할 때 악마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악마의 에너지를 써서 기간을 줄일 수도 있다.”

좋은 걸 배우고 가는 태현!

‘앞으로 좀 괜찮은 악마가 있으면 죽이지 말고 잡아야겠군.’

* * *

-타협… 타협하자.

“?”

에다오르의 머스킷을 산더미처럼 만들고 나자, 우리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케넨의 목소리였다.

그걸 들은 구시온은 한심하다는 듯이 비웃었다.

-멍청한 놈 같으니. 이제야 그런 반응이 나오나?

나는 예전에 타협하자고 했다!

주케넨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꾹 참았다. 지금 구시온을 욕해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타협하자고?”

-그래!

“구시온도 그런 소리를 하긴 했지. 물론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말을 듣지 않아 내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

-…….

“너를 잡는 공을 세우면서 날 기쁘게 했다. 너도 그렇게 해라.”

한마디로 다른 악마 잡힐 때까지 얌전히 닥치고 에너지 빨리라는 뜻!

주케넨은 필사적으로 우리 창살을 치며 외쳤다.

-아키서스의 화신! 내 말을 들어봐라! 네가 관심 있을 만한 이야기가 있다!

-건방진 놈! 어디서 감히! 화신이여, 이런 건방진 놈의 말을 들어줄 필요는 없다!

구시온은 혹시라도 주케넨 대신 자신이 다시 뽑힐까 봐 필사적으로 방해했다.

주케넨은 태현이 그냥 떠날까 봐 다시 외쳤다.

-화신님! 제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이런 비겁한 놈! 이런 비겁한 놈을 믿을 필요는….

“아. 둘 다 시끄러워. 조용히 해.”

태현은 주케넨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주케넨. 혹시 몰라서 말하는 건데, 나를 풀어주면 내가 후하게 보답하겠다, 나를 풀어주면 내가 마계에 있는 물건을 갖다 주겠다, 이딴 소리는 하지도 마라. 이미 옆에 있는 놈이 한 적 있는 소리니까.”

-…….

외상 사절!

태현의 원칙이었다.

악마를 뭘 믿고 외상으로 풀어준단 말인가. 풀려나고 싶으면 그에 걸맞은 걸 갖고 와라!

-풀… 풀어달라는 게 아니라 힘을 뽑아가는 걸 좀 멈춰달라는 겁니다.

“흠. 그래서 뭘 줄 수 있는데?”

꿀꺽-

주케넨은 침을 삼켰다.

사실 원래 태현이 오면 혓바닥을 놀리며 사기를 칠 생각이었다.

인간은 탐욕스러운 종족!

아무리 아닌 척해도 그 탐욕을 자극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는 종족이었다.

‘내가 엄청난 보물이 숨겨진 곳을 안다’나 ‘마계에 네가 가지면 대륙을 지배할 수 있는 검이 있다’ 같은 말로 속이려고 했었는데….

태현이 원천차단한 것이다.

“너 설마 아무것도 없는데 나 부른 건 아니지?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멍청하진 않겠지.”

-아니다. 저놈은 에다오르 부하 주제에 아키서스의 땅으로 온 놈이다.

“하긴 그것도 그래.”

태현과 구시온이 떠드는 사이 주케넨은 필사적으로 두뇌를 풀가동하고 있었다.

‘젠장! 가진 게 없는데 어떡하란 거야!’

태현이 맨몸으로 우리에 가둬 놓고 지금 당장 내놓으라고 하니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순간 주케넨의 눈에 구시온이 들어왔다.

구시온은 어떻게 위기를 벗어났는가?

주케넨을 팔아서 벗어났다.

그렇다면?

‘다른 악마를 팔아넘기자!’

구시온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많이 팔아넘기면 풀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케넨은 입을 열었다.

-다른 악마들을 바치겠습니다!

-!

구시온은 경악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이!

동족을 팔아넘긴다는 것 때문에 경악한 것은 아니었다. 악마들끼리는 그런 것 없었다.

‘감히 내 방법을 훔쳐?’

자신의 방법을 뺏긴 것에 대한 불쾌감!

“으음… 아니. 그거 다 일이잖아. 솔직히 할 시간이 있을까 싶은데.”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악마를 찾아 먼 여정을 떠나야 하나?

그 시간에 권능 퀘스트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닙니다! 가까이 있습니다! 에랑스 왕국입니다! 저와 같이 세계수를 타고 온 놈들 중 에랑스 왕국으로 향한 놈들이 있습니다. 그놈들이 어디로 간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케넨은 다다다다 떠들어댔다.

그랬다.

세계수에서 내려올 때 같이 내려온 악마들!

그들은 주케넨을 아탈리 왕국으로 간다고 비웃었던 악마들이었다. 설마 그 비웃음이 이렇게 돌아올 거라고는 악마들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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