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69화
“폐하. 그런데….”
“아. 안 한다니까! 마르체티 백작을 사로잡은 다음 기사들과 안에 있는 용병들을 협박해 항복하게 만든 다음 백작령의 보물들을 털고 백작을 처형하는 일은….”
“…그, 그렇게까지 자세히는 말 안 했습니다만.”
당황하는 귀족 전사대!
마치 머릿속으로 백번 정도는 연습한 것 같은 구체적인 시나리오!
[귀족 전사대의 친밀도가 크게 오릅니다!]
[귀족 전사대의 평판이 크게 오릅니다!]
[이 보고를 들으면 황제 우이포아틀이 매우 만족해할 것입니다.]
[……]
“그게 아니라, 마르체티 백작이 나온다면 저 악마를 닥치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죽이라고?”
태현은 ‘너희 너무한 거 아냐?’라는 표정으로 귀족 전사대를 쳐다보았다.
물론 귀족 전사대도 지지 않았다. 그들은 ‘폐하가 더 너무한 거 아닙니까?’라는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아니 그냥 조용히 만들라는 소리였습니다만….”
[귀족 전사대의 친밀도가 크게…]
[……]
[카르바노그가 <귀족 전사대>가 귀족들인지 깡패들인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폭군 짓만 하면 착착 오르는 친밀도와 평판!
어떻게 보면 태현과 궁합이 잘 맞긴 했다.
우이포아틀을 속이고 있는 게 있으니 언젠가 틀어질 사이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아, 그래. 조용히 시켜야겠군.”
마르체티 백작이 찾아왔는데 뒤에서 악마가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 대화할 수는 없었다.
-이봐.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다.
-닥쳐라! 이 패배한 쓰레기 같으니!
-감히 마계에서 날 만나면 고개도 못 들 놈이?
구시온은 분노해서 주케넨을 노려보았다.
기껏 조언을 해줬더니!
‘하긴. 어차피 내버려 둬도 며칠이면 꺾이겠지.’
악마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종족.
잡혀서 몇 대 맞고 피 좀 뽑힌다고 꺾이진 않았다.
아키서스 맛 좀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악마는 굴복하지 않는다. 다만 아키서스당할 뿐.
‘생각해 보니 그게 더 이득이겠군.’
구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케넨이 더 발악하면→주케넨이 더 에너지를 뽑히고→그동안 구시온은 편안!
-크아아악…! 크아악! 이 드워프 놈들아! 이걸 당장 멈춰라! 내 주인이신 에다오르 님께서 마계에서 곧 돌아오실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다!
-멍청하긴. 마계가 아니라 저 밑바닥이겠지!
-아니다! 헛소리하지 마라!
-네 주인은 아키서스한테 맞고 찌그러졌어! 그것도 모르냐!
-아니다! 크아아악!
“저놈 왜 이렇게 기운이 좋아?”
“흠. 3단계로도 안 되겠군. 4단계로 올려!”
“아니! 그건 조금!”
“저놈은 튼튼해서 4단계도 될 거 같아.”
드워프들은 수군거리며 장치를 더 올렸다.
* * *
“폐하.”
“백작.”
“목을 땁시다!”
“…너희는 좀 저리 가 있어라.”
태현은 귀족 전사대에게 손을 흔들었다. 저러다가 마르체티 백작한테 들리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그래!
어쨌든 태현과 마르체티 백작은 성 앞에서 마주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지.”
‘아. 진짜 잡을까?’
태현도 사람이다 보니, 귀족 전사대가 자꾸 꼬드기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될 거 같다!
백작령 백성들의 인심?
마르체티 백작이 길드 동맹 막겠다고 싹 치우고 태워버렸을 때부터 이미 바닥인 상태였다.
태현이 먹으면 바로 충성충성충성 나올 정도의 민심 상태!
백작의 기사나 용병?
지금 백작은 말 하나 타고 태현 가까이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뒤에 호위기사 몇 명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정신 차리라고 합니다. 그 짓 하면 진짜 폭군 되는 거라고 말합니다.]
‘난 사실 폭군 아니었을까?’
[찰싹찰싹!]
카르바노그가 필사적으로 태현을 말렸다.
신이 보기에도 이건 좀 아니다!
대화하러 나온 귀족을 냉큼 잡아서 영지 뜯어내는 순간, 다른 귀족들은 태현을 ‘와 무슨 저런 놈이 있냐’ 하면서 경악할 것이다.
볼로네 백작 암살한 것도 지금 덮으려고 애쓰고 있는데 이건 정말 수습 불가능!
“폐하. 저는 한 가지 깨달았습니다.”
“뭘? 나와 싸워야 한다는 걸?”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자격이 있으신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십니다!”
“어?”
“제가 무례하게 굴었는데도 악마를 막기 위해 손수 군대를 이끌고 달려와 주신 폐하! 폐하야말로 진정한 국왕이십니다!”
“아니 음….”
방금까지 목을 딸까 생각하고 있던 입장에서는 살짝 양심에 찔리는 발언!
“제 충성 맹세를 받아주십시오!”
[마르체티 백작이 충성을 맹세합니다!]
[앞으로 마르체티 백작령에서 세금이 들어옵니다.]
[유사시에 마르체티 백작령에서 군대를 동원할 수 있습니다.]
[마르체티 백작의 기사단을 빌릴 수 있습니다.]
[현재 마르체티 백작령의 경제 상태가 낮습니다.]
[현재 마르체티 백작령의 주민 상태가 낮…]
[현재 마르체티 백작령의 치안…]
[문화도…]
[그냥 다 낮습니다.]
‘…….’
[카르바노그가 그냥 몰래 암살하자고 말합니다.]
영지 상태를 본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미친놈이…!
무슨 동탁도 아니고 영지를 이딴 식으로 경영을 했단 말인가?
진짜 군사력 하나 빼고는 나머지가 다 최하급 상태!
태현이 아무것도 없는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를 받았을 때도 저것보단 상태가 나았었다.
기사들이랑 용병한테만 돈을 몰아주고 나머지는 다 관심을 끄고 있던 게 분명!
그러니까 길드 동맹이 왔다고 영지를 싹 비워버리는 미친 전술을 내놨겠지!
“마르체티 백작… 그… 영주민들은 어떻게 관리하나?”
“예?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세금 내는 놈들 아닙니까?”
“뭐 농업을 발전시킨다거나 상업을 발전시킨다거나….”
“그건 천한 놈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일 아닙니까?”
“아니, 그런 걸 안 하면 세금을 걷기가 힘드니까….”
“세금은 올리면 알아서 나오던데요?”
“…….”
태현은 불길해졌다.
이놈 이거 폭탄 아닐까?
옆에서 듣고 있던 귀족 전사대들이 감탄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귀족이군.”
“암살하자고 한 게 후회될 정도야.”
“맞아. 아탈리 왕국에도 기개 있는 귀족이 있군!”
“…그래. 어쨌든 충성 맹세는 고맙다. 아. 길드 동맹… 아니, 악마와 결탁한 사악하고 역겹고 비열하고 더러운 볼로네 백작의 암살자들은 어떻게 됐나?”
“일부가 포위망을 뚫고 탈출해서 추적 중입니다.”
“오… 뚫었어?”
태현은 놀라웠다.
하긴 랭커들이 그렇게 많았으니 다들 힘을 모으면 탈출로 정도는 뚫었겠지!
‘다른 영지도 털라고 제안해 볼까?’
[카르바노그가 길드 동맹이 미친놈들이 아닌 이상에야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호된 꼴을 당했는데도 아탈리 왕국에서 더 미적거리면 그건 정말 미친놈이었다.
‘아냐. 미련이 남아서 받아줄 수도 있어.’
-저기 쑤닝.
[현재 귓속말이 차단된…]
아주 예전에 차단한 상태!
‘흠. 앨콧한테 물어봐야지.’
태현은 바로 앨콧한테 연락했다.
지금 길드 동맹 상황이 어때?
그러자 앨콧은 아주 친절하게 장문으로 정리된 글을 보내주었다.
-마르체티 백작령에서 탈출한 다음 간신히 오스턴 왕국으로 귀환.
-의외로 네 욕은 없음.
‘뭐? 말도 안 되는데?’
[카르바노그도 당황합니다.]
지금쯤 태현의 조상까지 욕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나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일은 딱히 태현 때문이 아니었으니까!
마르체티 백작이 미친 짓을 해서 휘둘렸고, 마르체티 백작이 대기를 하고 있어서 함정에 빠졌고, 웬 주케넨이란 악마 NPC 때문에 피해가 더 커졌다.
여기에 딱히 태현이 한 짓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마르체티 백작이 영지 싹 비운 건 내가 한 짓이 아니긴 했지.’
나머지는 다 내가 했지만!
덕분에 그렇게 두들겨 맞고 왔는데도 길드 동맹의 분위기는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운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김태현한테 속지 않았으니 그걸 위안 삼자!
-소정의 성과는 거두었다! 골드 챙긴 게 있으니 당장 수습은 될 거다!
그래도 털리기 전까지 챙겨놓은 것들이 있어서 당장 길드가 분해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길드 동맹 정도의 덩치가 되면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유지비가 어마어마하게 나갔던 것이다.
어떻게든 한숨 돌릴 수 있다!
서쪽은 쪼개져 나가고 안은 내분이 터져나간 와중에 어떻게든 수습을 했다 싶었다. 체면도 세웠고.
랭커들은 탈출 도중에 ‘와 그래도 랭커가 뭘 좀 하네’ 같은 시선을 받았고, 쑤닝도 ‘쑤닝도 뭘 좀 하네’ 같은 시선을 받았던 것이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길드원들의 신뢰가 아주 조금 회복!
-근데 뭔 놈의 김태현 동상이 이렇게 많아?
-영지에 너무 많더라고요. 비싸 보여서 안 챙길 수가 없었어요.
-재수 없는데 그냥 버리면 안 되나?
-이게 얼마짜린데… 그리고 솔직히 김태현 동상 좀 비싸게 팔릴 거 같아요. 묵혀두죠?
-하긴, 김태현 관련 아이템들 경매장에서 은근히 비싸더라. 세상에 이상한 놈들 많아.
-김태현이 만든 은화살이라고 따로 파는 거 봤냐?
-난 김태현이 만든 폭탄이라고 따따블로 파는 놈도 봤다.
-그러면 좀 더 묵혀두고 팔아보자고. 프리미엄이 붙을 수도 있겠네.
태현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 동상의 가격도 올라갈 거라고 생각한 길드 동맹!
-창고에 넣어두자고. 어휴. 더럽게 무겁네. 뭐가 든 거야?
* * *
“마르체티 백작. 일단… 세금을 못 낸다고 영주민들을 쫓아내면 안 되네.”
“예!? 어째서 말입니까?!”
정말 깜짝 놀라는 마르체티 백작!
“…그야 영주민들이 사라지면 다음에는 적게나마 낼 사람이 없어지니까 그렇지.”
“그, 그런…! 그냥 알아서 생기는 거 아닙니까?”
‘이 새끼 이거 오크 아냐?’
태현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오크들이나 할 생각을 귀족이 하고 있어!
김태산은 가끔 집에서 한탄을 했다.
-오크들이 정말… 너무 멍청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해! 이 자식들 일부러 날 멕이는 거 같다! 어떻게 천막 세 개를 지으라고 했는데 그 숫자를 못 세서 재료 다 떨어질 때까지 짓냐!
오크들의 장점은 튼튼한 육체 능력과 빠른 번식 속도.
단점은… 머리와 성격!
숫자를 세고 글자를 읽을 수 있으면 오크 중에서 매우 영리한 오크에 속했다. 그 정도 오크면 족장 친위대에 들어가거나 주술사로 키워졌다.
덕분에 김태산은 우르크 대족장이 됐는데도 매우 단순하게 지역을 관리하고 있었다.
-여기. 너희. 구역. OK?
-취익. 이해했다. 대족장.
-나오면. 안 돼. 다른 놈들 치면. 안 돼.
-췩. 몰래 하면?
-…나오면 너희 전부 죽는다. OK?
-취이익….
족장들끼리 알아서 관리하게 두고 풀어두는 형태!
아니, 생각해 보니 족장들도 자기 밑의 오크들이 배고프면 밥을 줬고 헐벗으면 장비를 줬다.
즉 마르체티 백작은 오크 이하!
태현은 골치가 아팠다.
버리자니 이렇게 충성 맹세를 해온 귀족 영주 NPC를 버리는 건 너무 아까웠고, 데리고 있자니 좀 많이 걱정이 됐다.
적보다 무서운 건 무능한 아군!
‘어차피 버리기도 힘들긴 한데….’
마르체티 백작이 숙이고 들어왔는데, 암살이라도 하면 너무 위험했다.
게다가 이제 떠넘길 놈들도 오스턴 왕국으로 튀었으니까!
결국 답은 하나였다.
마르체티 백작을 참다운 백작으로 만드는 것!
[카르바노그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후. 카르바노그.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반례가 있지.’
[…?]
‘케인을 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