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66화
길드 동맹은 놀랐다.
주케넨도 놀랐다.
대체 어떻게 들킨 거지!?
주케넨은 당연히 알 수가 없었다. 길드 동맹 쪽에 있던 첩자가 정보를 쏙쏙 보고하고 있다는 것을.
첩자→이다비→태현→마르체티 백작령에 있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마르체티 백작의 병사→마르체티 백작!
마르체티 백작에게 이런 식으로 정보가 들어간 것이다.
* * *
“마르체티 백작님! 성 지하에 있는 비밀통로로 악마들이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런 게 어디 있단 말이냐?”
[화술 스킬이 낮습니다.]
[명성이 낮습니다.]
[칭호가 없습…]
[마르체티 백작이 당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 틀릴 경우 제 목을 자르셔도 좋습니다!”
“뭐라?”
[당신의 목을 걸었습니다! 만약 악마들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정말로 처형당할 수 있습니다!]
스킬이 부족하고 명성 스탯이 부족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 입장에서 자기 말을 믿게 하려면 목을 걸어야 했다.
“야, 미쳤냐?!”
“목은 오바야! 진짜 친다니까?”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를 보고 비웃었다.
“또 또 나대는 애 나오네.”
“귀족 NPC 만만하게 보고 눈에 들려고 하는 놈이 있다니까.”
판온 한 지 얼마 안 되는 플레이어들 중에서는 자기 위치를 잘 모르고 귀족 NPC에게 친한 척을 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물론 그 결과는 호된 응징!
귀족 NPC는 명성이나 칭호 같은 자격이 없는 플레이어를 혹독하게 대했다.
영주 얼굴 한 번 보려면 연계 퀘스트를 몇십 번 깨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길드원은 자신 있었다.
설마 김태현이 말해준 사실이 틀릴 리가 있겠나!
“좋다! 틀리면 네 목을 베겠다!”
마르체티 백작은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귀족 NPC들의 기본 인성!
그 인성을 생각해 봤을 때 정말 틀리면 목이 날아갈 것이다.
보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다들 멍청한 길드원을 비웃….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지하에 비밀통로가 정말로 있었습니다!”
“뭐라?!”
깜짝 놀라는 마르체티 백작!
그도 모르는 비밀통로가 정말로 있었다니! 게다가 거기로 악마가 들어오다니!
“당장 기사들을 불러라! 비밀통로를 지켜야 한다! 설마 이렇게 비열하게 기습하다니! 도적 떼라고 해도 정도가 있지!”
마르체티 백작은 분노해서 기사들을 불렀다.
잔뜩 중무장하고 사제들에게 버프까지 받은 기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비밀통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할 곳 없는 성의 좁은 지하실+사방에서 달려드는 기사, 용병, 플레이어들!
태현도 ‘와 저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을 정도의 고난이도 던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르체티 백작이 당신의 충언에 감동합니다!]
“하찮은 놈 주제에 제법이구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최민수라고 합니다!”
“너를 내 시종으로 명하겠다!”
[<마르체티 백작의 시종> 자리를 받았습니다!]
[거절할 경우 마르체티 백작이 매우 분노할 수 있습니다!]
시종.
태현이나 랭커였다면 ‘아니 내가 이 레벨에 시종 자리 받고 기뻐해야 해?’ 하면서 거절했겠지만, 최민수는 그런 쟁쟁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좌우명이 ‘가늘고 길게 가자’인 파워 워리어의 잡초 같은 플레이어!
최민수는 자기가 직접 퀘스트를 깨는 것보다 태현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나오는 콩고물만 주워도 대만족이었다.
보라!
예전에는 아무도 안 보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만 와서 응원해 주던 개인 방송도 이제는 어엿한 인기 방송의 목록에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ㅋㅋㅋㅋ 시종 ㅋㅋㅋㅋㅋ
-잘 어울리는데?
응원해 주는 시청자들!
최민수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최민수가 좋은 퀘스트를 멋지게 깨는 데에 별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최민수가 얼마나 망가지고 웃기느냐!
그리고 가끔씩 푸는, 태현과 친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급 정보들 정도!
[<마르체티 백작의 시종> 자리를 받았습니다.]
[명성이 아주 조금 오릅니다!]
[마르체티 백작령에서 권한이…]
[평판이…]
[기사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아이고! 너무 감사합니다!”
최민수는 넙죽 엎드리며 받았다. 양손은 벌써 삭삭 잘 비벼지고 있었다.
“날 따라다니면서 날 모셔라!”
“네!”
최민수는 신이 나서 백작의 뒤를 쫓았다. 이렇게 쫓아다니게 해주다니!
다른 길드원들은 벌써 부러워하고 있었다.
“내가 말할걸…!”
“크윽! 부럽다!”
“근데 백작 성격 더럽다던데….”
“성격 더러우면 어떠냐! 골드만 떨어지면 그만이지!”
* * *
“너희 때문이다!!”
주케넨은 사납게 일갈했다.
길드 동맹 때문인지는 잘 몰랐지만, 주케넨은 악마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상대 탓부터 하고 보는 게 악마!
그걸 모르는 길드 동맹은 당황했다.
통로 앞에는 기사들이 우글거리고, 그 뒤에서는 ‘지원하러 간다! 버텨라!’ 하면서 더 몰려드는 소리가 들리고….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주케넨이 저렇게 나오자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다! 우리는 철저히….”
“너희 같은 놈들과 손을 잡은 게 실수였다! 젠장! 나 같은 위대한 악마가 이런 실수를….”
“악마? 잠깐. 뭔 악마?”
“네놈 때문에 걸린 거 아냐?”
길드 동맹 플레이어들도 성깔만 놓고 보면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플레이어들!
태현 앞에서는 순한 양 같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사자 같았다.
“네가 끌고 다니는 놈들이 수상해!”
“맞아! 어디서 수상쩍은 웃음을… 게다가 밖에서 악마라고 소리치잖아! 너희가 들킨 게 분명해!”
길드원들은 바로 무기를 뽑아 들고 주케넨과 부하들을 위협했다.
안 그래도 초조하고 짜증 나는데 잘됐다!
그러나 그건 실수였다.
주케넨이 악마여도 지금은 잘 달래서 써먹었어야 하는 순간!
태현이었다면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다! 같이 싸우자!’ 하면서 화살받이로 써먹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악마인 주케넨에게 저런 식으로 위협을 가하자 주케넨은 바로 마음을 먹었다.
길드 동맹을 미끼로 버리고 도망치기로!
“흥! 감히 하찮은 것들이!”
주케넨은 재빨리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좁은 지하 통로 곳곳에 문양이 새기며 중하급 악마들이 빠르게 튀어나왔다.
길드 동맹의 정예에게는 이빨도 안 먹힐 수준!
촤아악!
실제로 길드원들은 칼 한 번, 스킬 한 번으로 정리해나갔다. 한 번 무기가 휘둘러질 때마다 악마 몇 마리가 쓸려 나갔다.
“이게 다냐?”
“이리 와, 이 자식아!”
길드원들은 매우 열 받은 얼굴로 주케넨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주케넨은 멍청해서 중하급 악마를 소환한 게 아니었다.
괜히 에다오르의 부하 중 손꼽히는 부하가 아니었던 것!
주케넨에게 필요한 건 바로 잠깐의 시간이었다. 길드원들이 악마들을 쓸어버리며 소모하는 잠깐의 시간!
“흥. 멍청한 놈들!”
-지옥 마력 폭발!
콰콰콰콰쾅!
주케넨이 사악한 마법을 사용하자, 근처에 있는 악마와 악마 시체들이 부풀더니 폭발하기 시작했다.
좁은 부엌을 날려 버리는 강력한 폭발!
주케넨은 킬킬대며 웃었다.
“멍청한 놈들 같으니! 감히 나 주케넨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주케넨은 그렇게 말하고 지하 통로로 다시 뛰어들려고 했다.
“이 개자식이….”
“허어억!”
주케넨은 기겁했다.
이 폭발을 정통으로 맞고서도 길드 동맹 길드원들 대부분이 멀쩡했던 것이다.
좀 다치고 장비에 흠집이 나긴 했지만, 저 정도면 거의 멀쩡한 수준!
‘대체?!’
“네가 김태현인 줄 아냐? 어디서 개수작을… 이리 와! 죽여 버린다!”
김태현에게 하도 많이 당한 터라, 길드원들은 기본적으로 폭발 데미지를 줄여주는 옵션이 달린 장비들을 차고 다녔다.
물론 태현의 숨 막히는 폭발 데미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주케넨의 기습을 버텨내기에는 충분했다.
“막아라! 내 부하들아!”
진짜로 당황한 주케넨은 네크로맨서들과 추종자들을 앞에 세우고 통로로 달려갔다.
길드원들은 이를 갈면서 잡아 죽이려고 했다.
넌 반드시 죽인다!
그러나 그럴 때가 아니었다.
벽이 박살 난 덕분에 지하의 사방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악마 숭배자다! 잡아라!”
“악마와 결탁한 사특한 무리다!”
“볼로네 백작의 피를 받아내야 한다!”
“???”
“뭔 백작?”
“아니 거기 문 무너져서 뒤진 놈? 그건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때문이잖아?!”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볼로네 백작이 죽었다는 사실은 영상을 봐서 알고 있었지만, 그건 아무리 봐도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때문이었다.
그렇게 폭탄으로 날려 버리는 놈들이 또 누가 있겠는가!
“감… 감히 백작님을 모욕해! 저 뻔뻔한 놈들을 죽여라!”
[마르체티 백작 기사단이 <정의의 분노>를 사용했습니다!]
[마르체티 백작 기사단이 <악을 멸하는 칼날>을 사용했습니다!]
[마르체니 백작…]
[……]
[……]
“!!!”
“버프 그만 써 미친놈들아!”
길드 동맹 랭커들은 경악했다. 랭커이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안 그래도 하나하나가 강한 기사 NPC인데, 버프를 덕지덕지 받은 상태에다가, 길드 동맹은 불리한 상황에서 기습을 받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
기사단과 싸우려면 유리한 입장에서 싸워야지 절대 이런 상황에서는 싸울 수 없었다.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서 한 단어가 떠올랐다.
떼죽음!
“도망쳐야 해!”
“통로로 달리자! 통로 좁아서 길 막으면 못 쫓아올 거야!”
콰르릉!
뭔 소리?
길드 동맹은 바로 알아차렸다. 먼저 들어간 주케넨이 엿 먹으라고 통로를 무너뜨린 것이다.
“?!”
“아 저 미친 악마 새끼가 진짜!!”
“진짜 잡히면 죽여 버린다!!”
왜 저런 놈과 손을 잡았을까!
길드 동맹은 그제야 후회했다. 아무리 길이 없고 답이 없어도 저런 놈과 손을 잡는 게 아니었는데…!
“길을 뚫는다!”
“날 따라와라!”
“?!”
길드원들은 놀랐다. 랭커들이 솔선수범해서 나선 것이다. 게다가 자기 뒤를 따라오라고 하다니.
저런 놈들이 아닌데?
“내 뒤만 따라와! 내가 뚫는다. 간다!”
“아냐! 내 뒤를 따라와!”
그러나 랭커들의 생각을 안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도망칠 곳이 없고 뚫고 가야 한다면 최대한 많이 데리고 가는 놈이 유리했다.
만약의 상황에 미끼로 쓰고 튈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길드원들은 평소에 못 보던 랭커들의 모습에 살짝 감동을 받았다.
“따라간다! 가자!”
“길드 동맹! 가자!”
바닥까지 떨어졌던 우정이 아주 조금 부활한 느낌이었다.
* * *
볼로네 백작령을 일단 내버려 두고, 태현은 부하들을 잔뜩 이끌고 마르체티 백작령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미안하다 길드 동맹!
이렇게 된 이상 너희를 잡아야겠다!
길드 동맹은 배신이라며 펄펄 뛰며 계약을 맺은 영상을 공개하겠지만, 태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거 신경 쓸 사람이었으면 판온 1에서 안 그랬지!
그보다는 다른 귀족들한테 오해를 사지 않는 게 중요했다.
[오해가 아니라 사실…]
‘시꺼.’
아키서스 포병대와 기사단, 전사대까지 이끌고 온 태현의 전력은 무시무시했다.
그걸 아는 귀족 전사대들이 옆에서 속삭였다.
“폐하. 이 병력으로 건방진 마르체티 백작을 공격하는 겁니다. 폐하의 위엄을 보여주십시오.”
자기 일 아니라고 일단 지르고 보라는 귀족 전사대!
과연 아스비안 제국 출신다웠다.
“태현 님! 지금 싸움 붙은 거 같아요!”
“서둘러야겠다!”
길드 동맹이 벌써 통로를 통과해 지하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들은 태현은 서둘렀다.
이러다가 도착하기 전에 끝나버리겠다!
“통로 입구가 저기였지? 가자!”
태현은 비밀 통로 입구에서 길드 동맹이 달려오는 걸 싹 잡을 생각이었다.
길드 동맹이 바보가 아닌 이상 들어갔던 비밀 통로로 다시 나올 테니까.
파아앗!
아니나 다를까 입구에서 일행이 튀어나왔다.
“봐라. 나왔지?”
“?”
“…길드 동맹이 아닌 것 같은데?”
입구에서 튀어나온 건 주케넨이었다.
-…?
<아키서스의 포병대> 우리 안에 갇혀있던 악마, 구시온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놈 악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