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64화
물론 꿈이 아니었다.
“혹, 혹시… 뉴욕 라이온즈 쪽에 들어갈 생각을 하신 겁니까?!”
빈센트가 전했던 제안.
미국의 명문 게임단인 뉴욕 라이온즈가 했던 대형 제안인, 팀 KL을 통째로 매수하겠다는 제안!
던전 대회 우승 전에 1억 달러라는 액수가 나왔으니, 거기서 더 오른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나 빈센트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태현의 성격상 느낌이 왔던 것이다. 팀원들을 버리고 뉴욕 라이온즈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라고.
“아. 그건 아니고요.”
“역시… 혹시 다른 곳은?”
“다른 곳의 제안도 비슷합니다. 애초에 구체적인 제안을 한 곳도 거절했는데 구체적인 제안을 안 한 곳은 이야기할 것도 없지요. 제가 빈센트 씨를 부른 건 에이전트 계약을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
태현은 빈센트가 놀라서 할 말을 잃은 사이 말을 계속했다.
“원래 저희 팀에서는 제가 스폰서나 광고 따오는 걸 책임지고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게 한계가 있더군요.”
당연한 소리였다.
다른 전문 게임단이었다면 아예 따로 담당 부서가 있었을 것!
아마추어들끼리 모여서 만든 게임단이야 코치도 감독도 데스크도 없었다지만, 태현의 팀은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한 팀이었다.
이런 팀이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
당장 이번 대회에서 4강권에 든 팀들은 다 든든한 조직을 갖고 있었다.
‘사람인가?’
빈센트는 다른 의미로 경악했다.
그렇다면 태현은 팀원들을 이끌고 그 대회를 뛰면서, 동시에 밖으로는 스폰서를 만나고 광고를 따왔다는 뜻이 됐다.
사람이 몸이 열 개도 아니고….
“그래서 전문가한테 맡기려고 이렇게 불렀습니다. 저희 애들도 이제 슬슬 계약 관해서 전문적으로 관리가 필요할 것 같고.”
에이전트는 게임단과 선수의 계약만을 조절하지 않았다.
사실상 선수의 게임 외적 모든 것을 담당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
광고 관리, 스케줄 관리, 세금 관리, 재산 관리 등 에이전트의 역할은 상상을 초월했다.
태현은 직감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를 기준으로 태현 팀의 선수들 위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유명 랭커 김태현이 이끄는 소규모 아마추어 팀’에서 ‘대회에서 우승한 확실한 강팀’으로 변한 것이다.
당장 해외 기업 몇 군데에서도 슬슬 광고나 후원 제안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
이전처럼 태현이 다 맡아서 처리할 수는 없다!
계약의 옥석을 가리고 좋은 걸 추천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태현은 빈센트를 믿었다. 계약도 하지 않은 선수들을 위해 계속 찾아와서 노력하는 꾸준함은 아무나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빈센트는 감동했다.
그가 태현에게 보여준 진심이 통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태현이 이렇게 말해줄 리 없었다.
“…이런 걸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태현 선수! 팀 KL의 선수들이 만족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빈센트는 손을 내밀었다. 태현은 그 손을 맞잡았다.
* * *
이 업계는 넓고도 좁았다.
빈센트가 팀 KL과 계약했다는 소문은 다른 에이전트들에게도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팀 KL? 에이전트 안 두는 줄 알았는데 생각이 있었군!”
모든 선수들이 에이전트를 두는 게 아니었다. E스포츠 쪽에서는 에이전트 없는 선수들이 더 많았다.
다른 업계처럼 에이전트가 필수적인 업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몇몇 스타 선수들만 계약한 정도!
그렇기에 태현이 에이전트를 두지 않는 것도 그렇게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게 밝혀진 지금. 다른 에이전트들은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제이미도 그중 하나였다.
‘빈센트 놈보다는 내가 낫지.’
빈센트는 능력이 없는 에이전트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제이미는 빈센트가 어설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고로 계약이란 골수까지 빼먹어야 하는 법!
선수의 이미지를 챙기거나, 게임단과 선수 서로 좋은 계약이라거나, 그런 건 필요 없었다.
중요한 건 오로지 돈!
게임단을 흔들고 협박하고 어르고 약점을 쥐어서 더 많은 돈을 뜯어내는 게 에이전트가 할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불법과 합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도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제이미 코퍼레이션에 선수들이 몰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김태현 선수가 이 호텔에 머물고 있지요?”
“고객의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하하. 다 알고 왔으니 모르는 척 안 해도 됩니다. 이 명함을 전해주면 알아서 할 겁니다.”
제이미는 태현 팀이 묵는 호텔 로비로 찾아가 명함을 건넸다.
김태현도 내 이름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아차리리라!
제이미의 명성은 이미 드높아서, 야구나 축구 쪽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김태현도 분명히 제이미의 이름을 알 것이다.
‘에이전트의 이름은 어떤 선수를 다루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김태현을 잡으면 E스포츠 쪽에서는 확실해진다!’
현재 최고 선수를 고객으로 둔다면, 앞으로 열릴 E스포츠 시장에서 제이미 코퍼레이션은 확실한 1등이 되리라.
…근데 연락이 왜 안 오지?
‘직원이 안 줬나?’
제이미는 다시 호텔로 찾아갔다. 그리고 무작정 기다렸다.
귀찮은 일이지만 이 정도는 제이미가 해본 일 중 쉬운 편에 속했다.
“김태현 선수! 김태현 선수!”
“?”
마침 태현이 나오는 게 보였다. 제이미는 재빨리 태현에게 다가갔다.
“제 명함 받았겠죠? 제 이름을 알 겁니다. 제가 바로….”
“뉘신지?”
“…어. 명함을….”
“아, 그거? 버렸는데요. 누군지도 모르는 명함을 받았는데 제가 연락해야 합니까?”
“제이미 코퍼레이션… 그러니까….”
그가 이렇게 푸대접받은 게 얼마 만인가!
제이미는 너무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태현은 직원들을 불렀다.
“이 사람 좀 이상한데 쫓아내 주시죠.”
“예.”
“앗, 잠깐만! 잠깐만! 김태현 선수!”
* * *
“크윽…!”
제이미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갓 사업을 시작한 이후 이런 굴욕은 오랜만이었다.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사기꾼 취급을 받다니!
‘김태현은 빈센트와 계약을 바꿀 생각이 없나보군.’
보아하니 제이미가 어떤 에이전트인지 모르니 저런 태도를 취하는 게 분명했다.
빈센트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선수를 아주 잘 구워삶은 게 분명!
스포츠 쪽에는 이런 일들이 흔했다. 워낙 자기 일만 하다 보니 다른 것은 잘 모르는 선수들이 많았던 것이다.
제이미는 전략을 바꿨다.
일단 다른 선수들부터!
“케인 선수. 안녕하십니까.”
“헉.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케인은 당황했다. 게임 밖에 있을 때 케인을 알아보는 건 정말 소수의 사람들뿐이었다.
“제가 케인 선수의 팬인데 알아보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 팬들 제 얼굴 잘 모르던데… 크흑….”
“?”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쨌든 사인해드릴까요?”
“아니 사인은 괜ㅊ….”
샤샤샥-
케인은 듣지도 않고 펜을 꺼내 제이미의 옷 위에 사인을 해버렸다.
제이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게 얼마짜리 옷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팬을 만나 신난 케인은 사인을 해버렸다.
요즘 팬들을 만나 사인해 주는 데에 재미를 들린 케인!
가히 연쇄사인마라고 해도 가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사인도 더럽게 못하잖아?!’
예쁘기나 하면 의미나 있지…
케인은 악필 중 악필이었다.
“감… 감사합니다.”
제이미는 표정을 유지했다.
프로 중의 프로!
선수들 중 온갖 행패를 부리는 선수들도 잘 구슬려 온 제이미였다. 케인 정도면 행패 축에도 끼지 못했다.
“케인 선수.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안 돼요.”
“???”
“김태현이 하지 말랬거든요.”
“…?????”
혹시 김태현이 네 부모님이니?
제이미는 어이가 없었다. 케인 정도 되는 선수가 무슨…
“아니, 케인 선수. 김태현 선수가 팀의 리더고 게임단 소유주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행동 하나하나를 다 명령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케인 선수도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스스로 할 수 있는 법이죠.”
“그렇죠?”
“예! 당연한 겁니다.”
“근데 안 돼요. 혼납니다.”
“…….”
“아. 이건 어디 가서 말하지 마세요. 쪽팔리니까.”
케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자기도 쪽팔린 건 아는 모양이었다.
태현은 미국에 온 뒤 팀 관리를 간단하게 했다.
-케인. 넌 밖에 나가서 특정 사람과 3분 이상 대화하지 마라. 어디 가자고 하면 거절해. 따로 이야기하자고 하면 거절해. 하여간 뭐든 간에 이야기 길어질 거 같으면 거절해!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뭐 알아서 잘하겠지.
-…….
케인만 특별 취급!
아무리 생각해도 사고 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게 케인이었던 것이다.
“케인 선수. 지금 상황에 불만이 있으시면 저와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생각해 보니 좋은 상황 같았다.
제이미는 이게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동양에는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있었지?’
태현은 못 빼가도 케인을 빼간다면?
케인 정도면 명문 게임단에서도 원하는 선수였다.
헌신적이고, 열심히 하고, 팀의 승리를 위해 몸을 바칠 수 있는 탱커!
게다가 케인을 시작으로 태현이나 다른 선수들도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김태현 선수의 게임단이 좋은 게임단이라는 건 알지만 세상에 게임단이 꼭 거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프로 선수라면 게임단을 이적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잖습니까.”
“아. 게임단 관련 이야기하러 오신 거였어요?”
케인은 물었다. 제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제이미 코퍼레이션의 사장 제이미….”
“제 팬이 아니라?”
“아니 팬이기도 한….”
제이미는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다. 케인이 매우 상처받고 배신당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 살려!! 이 사람이 저한테 사기 치려고 해요!!”
“?!?!?!?”
제이미는 기겁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반응!
“뭐야? 무슨 일이야?”
사람들이 몰려들자 제이미는 당황해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팀 KL과 엮이면서 정말 다양하게 수난을 겪는 제이미!
* * *
“제이미라는 사람 아십니까?”
“아. 대단한 에이전트죠.”
“표정은 별로 안 좋아 보이시는데요.”
“그… 사람이 좀 너무 지독해서 안 좋은 소문이 있을 때가 있거든요. 돈밖에 모른다, 이용가치가 떨어진 선수는 냉정하게 자른다… 근데 제이미는 왜 물어보신 겁니까?”
“아. 호텔에 찾아왔는데 잡상인인 줄 알고 내쫓았죠.”
“?!?!?!”
“뭐 그런 사람이라니 잘됐네요. 어쨌든 정리해 봅시다. 일단 광고 들어오는 건 다 담당하시게 될 텐데, 전부 거절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직접 다 출연할 수는 없으니 판온 영상 활용한 광고 위주로 받아주세요. 당연히 기업 이미지 생각해서 받으시는 거 잊지 말아주시고요. 직접 출연의 경우 그쪽에서 사람 보내고, 2시간 미만으로 끝낼 수 있는 경우에만 고민해 보겠습니다. 광고 말고 그 외 방송은 정말 필요한 게 아니면 나갈 일 없을 겁니다. 인터뷰 같은 경우도 대회 때 하는 거면 충분합니다.”
빈센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처음 계약한 선수가 이렇게 확실하게 정리해놓은 경우는 드물었다.
“김태현 선수, 절 고용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무슨 소리.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관리해야 하는데요. 특히 케인 좀 감시… 아니, 관리해 주세요.”
제일 불안한 놈!
어디 가서 사기나 당하지 않을지 걱정이었다. 유명해졌겠다, 돈도 많겠다, 케인은 사기꾼들이 가장 원하는 타깃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