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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63화 (863/1,826)

§ 나는 될놈이다 863화

이렇게 모여 있으면 각자 다른 꿍꿍이를 가질 법도 했는데, 여기 모인 플레이어들은 순수했다.

군중심리!

플레이어들은 마치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압제자, 폭군, 사악한 백작의 목을 따자!”

“저 무능하고 악독한 백작을 봐라! 저놈 때문에 영지 경제가 엉망이다! 저놈이 세금을 그렇게 올렸다더라!”

“볼로네 백작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내가 어제 깐 상자 쪽박난 것도 볼로네 백작 때문이라더라!”

점점 더 뜨거워지는 분위기!

뜨거워지다 못해 활활 타오를 것 같은 분위기였다.

볼로네 백작이 성격이 좀 더럽고 재수가 없고 오만하긴 했어도 지금 플레이어들이 외치는 일들을 하진 않았다.

“이… 이 천한 것들이 감히…!”

당연히 볼로네 백작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성벽 위에서 말하는 것만 들으면 무슨 천하의 대악당!

사디크 교단의 뒤를 잇는 대륙의 악당이었다.

쿵- 쿵-

성벽 위에 깃발이 올라갔다.

아키서스 교단의 깃발!

<아키서스 십자군>에 즉석 가입한 플레이어들이 올린 깃발이었다.

백작령에 있는 플레이어 2/3이 넘게 참가한 어마어마한 가입률!

아키서스 교단을 안 믿던 사람들도 참가할(갈락파드 몰래)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었다.

볼로네 백작은 깃발을 보고 다시 분통을 터뜨렸다.

“저놈의 깃발! 저놈의 천박한 교단이 나타나고 나서 왕국 꼴이 엉망이야! 저 근본 없는 천박한 교단 때문에!”

“백, 백작님. 아무리 그래도 신을 모욕하는 건….”

“크윽….”

다른 기사들이 백작을 말리려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신을 모욕하는 건 무서웠던 것이다.

판온에서 신을 모욕하고 다니는 건 정말 겁이 없고 잃을 게 없는 플레이어거나, 악마거나, 아니면 아키서스 관련자!

“김태현 국왕은 뭘 하고 있단 말이야! 자기가 교황이면 저놈들을 관리해야지!”

“국왕 폐하도 저 천박한 놈들이 저렇게 미쳐 날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맞습니다. 저렇게 미쳐 날뛰는데 그걸 어떻게 막겠습니까?”

백작과 달리 기사들은 태현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놈의 명성과 업적!

아탈리 왕국의 해적, 사디크 교단, 살라비안 교단, 악마까지 다 쓸고 다녔는데 기사들이 태현을 존경하지 않을 리 없었다.

높은 악명?

에이, 그건 적들이 퍼뜨린 헛소문일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자기가 와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맞는 말씀이십니다!”

백작이 씩씩거리자 기사들은 비위를 맞춰줬다. 여기 있는 건 백작이지 태현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설마 국왕이 저 성문 뒤에 숨어서 함정을 설치하고 있을 거라고는!

“아마 여기로 오겠지? 함정으로 한 번에 보내야겠다.”

“근데 여기서 터뜨리면 성벽이 무너지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아. 하긴. 네가 폭탄을 한두 번 터뜨리는 것도 아닌데 다 계산을 했겠….”

“무너뜨리려고 하는 건데?”

“…….”

“…….”

“왜 그렇게 쳐다봐?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닌데.”

“그, 그거야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성벽을 무너뜨리는 일을 한 번도 못 해봤지만, 태현 일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앗. 태현 님!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요!”

냄새를 맡은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달려왔다.

태현과 같이 성문을 날려 버릴 기회라니!

폭탄의 거장과 같이 폭발 함정을 만드는 건 정말 꿈에 그리던 기회였다.

우르르-

“작작 와!”

태현은 기겁해서 외쳤다.

성벽 위에 있던 기계공학 대장장이까지 ‘태현 님! 오오 지금 갑니다!’ 하면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정말 쓸데없는 열정!

“자! 잘 들어라. 계획은 간단하다. 백작은 기사를 보내 성문을 정면으로 뚫고 바로 자기 성을 되찾으려고 할 거다.”

볼로네 백작은 자부심이 많고 거만한 귀족이었다.

그한테는 지금 상황 자체가 수치!

그런 귀족이 여기서 플레이어들과 싸우면서 비겁하게 우회하거나 꼼수를 쓸 리 없었다.

정면으로 뚫고 들어가 플레이어들은 두들겨 패서 내쫓은 다음 성을 점령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꼼수를 쓰기에는 인원도 적은 편이고.’

기사들을 빌리고 용병을 고용했어도 역시 숫자가 적었다.

백작령에 우글거리는 아키서스 십자군에 비하면 소수!

저렇게 인원이 차이가 나면 나눠서 기습하기도 힘들었다.

볼로네 백작은 정확히 태현의 예측대로 움직였다.

“내 자랑스러운 기사들이여! 저 간악한 도둑놈들의 무리를 보아라!”

성문 앞 언덕 위에 일렬로 늘어선 기사들.

숫자는 백 명도 되지 않았지만 담담히 말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은 플레이어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군중심리와 광기 때문에 방금까지 잊고 있었던 사실!

귀족 기사 NPC는 한 명 한 명이 보스 몬스터에 필적하는 강자!

꿀꺽-

“야. 괜찮을까? 내 공격은 갑옷 뚫지도 못할 것 같은데.”

“흠집도 안 날 것 같다야….”

각종 축복 버프를 받고, 중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한 채 말을 타고 돌진하는 기사는 움직이는 요새였다.

스킬을 뿜어대며 지나가는 길을 파괴하는 이동요새!

“걱정 마라! 우리에게는 아키서스가 있으니!”

갈락파드는 성벽 위를 돌아다니며 플레이어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줬다.

딱히 근거는 없었지만 플레이어들은 갈락파드의 자신만만한 기세에 홀딱 넘어간 상태!

“과연!”

“기사한테 쫄지 말자!”

“그런데 기사를 어떻게 잡는다는 거지?”

그 대답은 곧 밑에서 들려왔다.

“함정 설치 끝났다!”

“모두 아래로 내려와서 대기해! 기사 놈들이 태현 님의 함정에 빠지면 그때 전원이 달려드는 거야!”

“야! 내 이름은 그만 말하라니까!”

* * *

볼로네 백작의 전술은 기사들을 정면 돌격시킨 뒤 성문을 박살 내고, 플레이어들을 쓸어버리는 심플한 정공법이었다.

뻔한 방법이었지만 원래 정공법의 강함은 알고서도 막기 힘들다는 것에 있었다.

기사를 막지 못한다면 저 공격을 어떻게 막겠는가?

그래서 태현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기사들을 플레이어로 못 막으면 다른 걸로 막으면 되지!

기사들이 성문을 지나는 순간 그 주변을 날려 버린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각종 저주와 마법을 닥치는 대로 난사한다.

기사들이 버티더라도 최소한 발은 묶일 터.

그때 여기 몰린 플레이어들이 전부 덤벼들어서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면 됐다.

‘용병들은 별 수 못 쓸 테고, 기사들 사로잡으면 몸값에… 볼로네 백작도 꼬리를 내리겠지.’

믿고 있던 기사들도 다 사로잡히면 볼로네 백작도 얌전하게 태현 앞에 고개를 박으리라.

완벽한 계획!

그렇게 태현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성문 앞 언덕에서는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를 따르라!”

“백작님! 위험하실 수도 있습니다!”

“흥! 저런 천한 놈들의 공격이 나에게 맞을 것 같으냐! 나를 따르라! 돌격! 도둑놈들에게 죽음을!”

“어… 어…??”

태현 일행은 당황했다.

왜 볼로네 백작이 앞에서 달려오지?

“야! 백작은 그냥 뒤에 있을 거라며! 어떻게 해?!”

케인은 당황해서 태현을 불렀다.

볼로네 백작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살려서 협상을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영주 귀족 NPC가 죽으면 일이 커졌다.

아무리 사고였다고 해도 다른 귀족들이 ‘음 어쩔 수 없는 사고였군’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

-국왕이 땅을 뺏으려고 귀족을 함정에 빠뜨려 죽이고 다닌다!

…라고 소문이 퍼질 수도 있는 것이다.

태현은 자기 명령을 거절하고 멋대로 노는 영주들을 통제하고 싶은 거였지, 반란을 상대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는 태현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저 백작 놈은 왜 가장 맨 앞에서 달려오는 거야?’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귀족이면 귀족답게 뒤에서 지휘를 해야지!

“말려봐!”

“어떻게 말리라고… 볼로네 백작! 성문에는 함정이 있다! 오지 마라! 돌아가라!”

그러나 볼로네 백작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천박한 놈들이 또 속임수를 쓰는구나!

“봐라! 저놈들이 두려워서 속임수를 쓰는구나! 이 백작령의 정당한 주인인 내가 성문을 뚫었다! 에잇!”

콰직!

볼로네 백작이 검을 한 번 휘두르자 두꺼운 성문이 박살 났다.

마치 안에서 미리 박살 내놓은 것 같은 빠르기!

그러나 볼로네 백작은 그런 것도 모르고 더욱 기세가 올랐다!

“자! 날 따라와라!”

“백작님! 위험합니다! 저희가….”

“흥!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이 갑옷과 목걸이가 나를 보호한다! 하찮은 놈들의 공격은 나를 절대….”

볼로네 백작은 성문을 부수고 안으로 말을 달렸다.

딱-

“?”

무언가 작동되는 소리!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폭발과 함께 태현 일행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망했다!

* * *

“아니야. 모두 침착해! 볼로네 백작은 기본 레벨이 있는 데다가 자신만만했어. 분명 강력한 장비를 갖고 있을 거다. 그러니까 이 폭발에도 버틸 수 있을지도 몰라.”

“오….”

“확실히…!”

태현의 말에 일행은 솔깃했다.

그러나 그건 태현의 스킬을 잊고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최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폭탄을 사용할 때 최적의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폭탄에 섞인 장애물이 추가적인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적들에게 추가 데미지를 줍니다!]

[파편이 치명타를 입힙니다!]

[……]

[……]

수십 개가 넘게 뜨는 기계공학 관련 추가 보너스 메시지창!

“…….”

[……]

태현과 카르바노그는 침묵했다. 그래도 태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아니, 그래도 정말 좋은 장비를 갖고 있으면 버틸 수 있….”

[레벨 업 하셨습니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

[칭호: 볼로네 백작령의 해방자를 얻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백작의 폭정에 시달린 볼로네 백작령의 NPC들이 당신에게 매우 감사할 것입니다!]

[아탈리 왕국의 귀족들이 이 사실을 알면 매우 분노할 것입니다.]

[왕국의 반란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볼로네 백작위를 회수했습니다.]

[볼로네 백작위를 수여 가능합니다.]

[볼로네 백작령 통치 가능…]

“…….”

이제 더 이상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었다. 태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내전 안 하고 정리 좀 잘 하나 했더니!

“어쩔 수 없다.”

“?”

“…떠넘기자!”

“?!?!?”

누구한테!?

* * *

“후. 다 잘 풀려가다가 괜히 백작이 꼬여서….”

태현은 투덜거렸다. 볼로네 공성전은 다시 생각해도 아쉬웠다.

백작만 뒤에 있었으면 기사들 생포한 다음 날로 먹었을 텐데.

백작이 돌격한 덕분에 뒷일을 고민해야 했다.

‘케인 놈은 이 와중에 신나서 관광하러 다니고….’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니 필사적으로 돌아다니는 케인이었다.

어제 보니 양팔 양다리에 기념품을 주렁주렁 달고 오더라!

정말 같은 일행이라고 아는 척하기 싫은 패션 센스!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김태현 선수?”

에이전트, 빈센트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태현이 그를 부를 이유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부탁할 게 있는 건가?’

계약도 하지 않은 태현이 그한테 부탁하는 건 어떻게 보면 들어줄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빈센트는 달려왔다.

왜냐하면….

김태현은 평범한 선수가 아니었으니까!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수는 일반 선수와는 다른 논리가 적용됐다.

일반 선수는 에이전트에게 돈을 내고 에이전트의 서비스를 받지만,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수는 에이전트가 돈을 주고서라도 자기 고객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세계에서 손꼽는다는 명성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옷은 받으셨습니까?”

“옷? 어. 그걸 어떻게 알고 계시죠?”

“하하. 그 디자이너를 소개시켜준 사람이 접니다.”

“?? …뭐 곧 완성된다는 연락을 받긴 했는데….”

태현은 의아해했다. 빈센트가 어떻게 어머니한테 디자이너를 소개해 줬다는 거지?

“본론으로 돌아가서, 무슨 일로 부르신 겁니까? 제가 해드릴 일이라도?”

“아. 빈센트 씨와 계약하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예?”

빈센트는 눈을 깜박였다.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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