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62화
다음 마을에서도….
[마을에 사람이 없습니다!]
[상인에게서 구매를 할 수 없습니다.]
[대장장이한테서…]
[……]
[……]
마찬가지였다.
나름 잔뼈가 굵은 길드원들이었지만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네크로맨서나 리치가 습격한 거 아닙니까?”
“악마가 나타났거나… 무슨 퀘스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멀쩡한 마을에 NPC만 싹 사라지다니.
리치가 나타나서 주민들을 다 잡아갔거나, 아니면 다른 대형 퀘스트의 냄새가 났다.
길드원들은 고민했다.
약탈하러 왔는데 퀘스트를 해야 하나?
상황과 장소가 안 어울리긴 하지만, 판온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으로 퀘스트에 목마른 사람들이었다.
원수와 결투하러 가더라도 퀘스트를 만나면 일단 고민하고 본다!
희귀한 퀘스트면 퀘스트일수록 더더욱 끌리게 마련.
“정보 없었던 거 보니까 우리가 가장 먼저 발견한 퀘스트 아닐까요?”
“게시판에 이런 퀘스트 있단 말은 딱히 들어본 적 없던 것 같은데. 정말 우리가 처음…?!”
생각지도 못한 횡재에 길드원들은 수군거렸다.
살다 보니 이런 행운도 있구나!
“모두 진정해라. 지금 약탈해서 골드를 충당해야 하는 마당에 무슨 오래 걸리는 퀘스트란 말이냐!”
쑤닝은 엄하게 말했지만 입가가 꿈틀거리는 건 숨길 수 없었다.
솔직히 퀘스트가 기대되는 건 사실!
여기 올 때만 해도 걱정이 좀 있었는데 행운이 따라주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골드에 집중해야지.’
쑤닝은 여기 온 목적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길드의 자금을 충당해야 한다!
“퀘스트는 단서가 더 나오면 생각하도록 하고 일단 이동한다!”
“예!”
* * *
마르체티 백작령이 이렇게 된 건 리치 때문이 아니었다.
태현 때문도 아니었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 때문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 영지의 주인이니 내 명령을 들어라!”
바로 마르체티 백작 때문이었다.
볼로네 백작이나 보나조 백작과 달리 마르체티 백작은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마르체티 백작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준비했다.
안 그럴 경우 정말 국왕한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굴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용병대를 고용하고 기사단을 움직여 경계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마을에 있는 놈들은 전부 재산을 가지고 성벽 안으로 이동해라!
-아이고, 백작님! 제 밭이며 소가 다 저기 있는데!
-지금 가면 농사가 망합니다요!
-그런 걸 내가 왜 신경 써줘야 한단 말이냐! 도적놈들한테 내 재산을 뺏길 순 없다. 전부 다 성벽으로 들어와라!
성벽 밖 마을에 있는 NPC들을 전부 다 성벽 안으로 옮겨버리는 폭거!
태현이 들었어도 ‘아니 뭐 저런 미친놈이 있냐!?’ 하고 당황할 짓이었다.
한 해 농사 망치니 영지의 경지 스탯도 내려가고 치안 스탯도 내려가고 불만 스탯은 올라가고….
도적놈들한테 한 푼 뜯기기 싫다고 아예 불을 질러버리는 수준!
-빈대를 잡기 위해서는 초가삼간을 태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나 마르체티 백작이 명하노니 모든 주민들은 성벽 안으로 이동해라!
그 결과 길드 동맹을 맞이하는 건 텅텅 빈 마을이었다.
기사들과 용병들은 정말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마을의 재산들을 깡그리 옮겨버렸다.
남은 게 하나 있긴 했다.
“…김태현 동상은 왜 여기 있냐?”
“…그러게 말입니다.”
-이 국왕의 동상도 챙기고 갈까요?
-백작님께서 재수 없는 국왕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실 것 같냐! 두고 와라!
백작이 싫어하는 바람에 남은 태현 동상!
길드 동맹은 일단 그거라도 챙겼다.
인건비도 안 나올 것 같았지만…!
“챙겨. 챙겨.”
“지나가는 놈들도 안 보이고…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닙니까?”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된 길드 동맹 파티들은 서로 연락하며 혼란스러워했다.
지나가는 플레이어도 없고 상인도 안 보이는 상황!
물론 이것도 마르체티 백작 때문이었다.
-돌아다니다 잡히는 상인 놈은 처형이다! 처형!!
* * *
악마 주케넨은 반쯤 혼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는 완전히 볼로네 백작령을 장악하고 있었다.
지하 수로에서는 악마 숭배자들이 마법진을 그리면서 대기하고 있었고, 영지의 귀족들과 부자들이 주케넨의 말에 홀려 간도 쓸개도 빼주고 있었다.
설령 성기사단이 와도 이렇게 촘촘하게 얽힌 그물을 풀어내진 못할 것이라고 주케넨은 자신했다.
그의 주인 에다오르도 한때 총독으로 위장했었지만 그의 위장은 그보다 한 수 위라고 자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웬 미친 군중 떼가 우르르 몰려들더니 닥치는 대로 불을 지르고 악마 탐지 마법을 걸고 다녔다.
원래라면 지위 때문에 들키지 않을 귀족들도 닥치는 대로 발각!
귀족들이 지위를 써서 ‘물러나지 못할까!’ 하면 군중들은 ‘악마다! 태워라!’ 하면서 끌고 나갔다.
주케넨은 기겁해서 지하 통로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싸우고 뭐고 그럴 정신이 없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볼로네… 볼로네 백작령은… 어떻게 됐느냐? 남은 놈들은?!”
“전, 전부 다 잡혀서….”
주케넨을 따라 나온 악마 숭배자들과 흑마법사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보나조 백작령! 그래! 보나조 백작령이 남아 있다!”
보나조 백작령에서도 나름 악마를 퍼뜨린 주케넨이었다.
볼로네 백작령이 날아간 건 어이없어도 보나조 백작령이라면…!
“거기도….”
“미친놈들이 들이닥쳐서….”
* * *
그랬다.
볼로네 백작령에 들이닥친 성난 플레이어들이 보나조 백작령이라고 안 들이닥칠 린 없었다.
보나조 백작도 볼로네 백작과 비슷하게 쫓겨난 상태!
차이점이 있다면 보나조 백작은 겁이 더 많다는 점이었다.
성난 플레이어들이 성 앞을 점령하자 보나조 백작은 재빨리 협상에 나섰다.
-나는 악마와 결탁하지 않았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웅성웅성-
-정말일까?
-일단 불에 태워보는 게 좋지 않을까? 안 타면 악마겠지.
-아… 아니! 진정해라.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무엇을 원하느냐!
-악마 퇴치! 악마 퇴치!
-모든 악마에게 죽음을!
-아키서스 십자군에 가입해라!
-경비대장이 수상하다! 경비대장을 쫓아내라! 우리가 맡겠다!
-알겠다! 알겠다! 다 들어주마!
보나조 백작은 양손을 들고 플레이어들을 달랬다. 기사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주군. 저런 말을 다 들어줄 필요가….
-시끄럽다! 저렇게 숫자가 많은 게 보이지 않단 말이냐! 좋아. 이제 다 들어줬으니 끝난 건가?
물론 아니었다.
태현이 ‘모두 악마를 잡자!’ 했을 때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가까운 볼로네 백작령으로 달려갔다.
그렇다면 보나조 백작령으로 간 건 누구인가?
정답은 바로….
-아직 안 끝났다!
-서기관 자리도 줬으면 좋겠다! 아니다! 재무관 자리도!
-선술집 주인 자리도!
파워 워리어 길드!
남들이 다 볼로네 백작령으로 가자,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남들이 안 가는 곳에 가야 많이 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보나조 백작령으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되었다.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호구… 아니, 착한 백작 보나조 백작!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신이 나서 닥치는 대로 외쳐댔다.
외치는 대로 감투 자리가 툭툭 떨어지니 나중에는 <성문 4 경비병>이나 <마굿간 3 청소지기> 같은 감투 자리도 내놓으라고 할 정도였다.
볼로네 백작령은 지금 백작과 기사단 vs 아키서스 십자군과 플레이어들로 폭풍전야였지만, 보나조 백작령은 평화로웠다.
파워 워리어 길드에게 거의 점령당했다는 것만 빼고!
-길마님! 저희 여기 거의 다 점령했어요! 백작이 우리 말 다 들어줘요!
-??????
이다비는 길드원들의 연락에 당황했다.
뭔 일이 있었던 거야!?
* * *
볼로네 백작령은 싸움 나기 일보 직전, 보나조 백작령은 완전 점령….
주케넨과 네크로맨서, 악마 숭배자들은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악마면 모를까 주케넨은 싸움에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아탈리 왕국은 ‘그’ 아키서스의 화신이 있는 나라 아닌가!
솔직히 정면으로 싸우고 싶진 않았다. 뒤에서 부하들을 보내 싸우고 싶었다.
“걱정하지 마라. 새 도시를 찾는다. 내 힘으로 도시를 다시 타락시켜주마!”
“믿습니다, 주케넨 님!”
“오오오!”
네크로맨서들과 숭배자들은 이미 주케넨의 능력을 봤기 때문에 도망치지 않고 뒤를 따랐다.
주케넨의 목적지는 마르체티 백작령!
거기 가서 새로운 악의 씨앗을 퍼뜨릴 생각이었다.
“…?”
“저기 모험가들이….”
그러던 도중 마주친 모험가 파티!
길드 동맹 파티 중 하나인, 그것도 쑤닝이 직접 이끄는 핵심 파티였다.
* * *
‘이거 큰일이다!’
상황을 파악한 쑤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상황이 얼마나 고약한 상황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친 백작 놈 같으니! 뭐하는 짓이냐!’
골드 좀 뜯기기 싫다고 마을 NPC들을 싹 데리고 옮기다니!
말도 안 되는 규모의 횡포에 말도 안 나왔다.
처음에는 김태현이 속임수를 쓴 것 아닌가? 싶었다.
-길마님. 김태현이….
-맞습니다. 명령을 내린 거 아닐까요?
-그게 말이 되냐! 김태현이 무슨 신이라도 되냐!
김태현이 아무리 국왕이라도 백작한테 ‘야 네 영지 다 싹 치우고 도적놈들 가져갈 거 없게 만들어라’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성 안으로 들어가서 안에서 흔들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위험해. 성 안에 기사들 숫자가 장난 아니더라.”
마르체티 백작은 다른 백작들이 당하는 걸 보고 교훈을 얻은 상태였다.
기사들을 전부 한 자리에 불러 모으고, 용병들도 잔뜩 고용했다.
후한 대우에 플레이어들도 퀘스트를 받고 들어갈 정도!
그만한 인원들이 철통처럼 영지를 지키고 있으니 안에 들어가서 기습 같은 건 어림도 없었다.
길드 동맹도 이번에는 나름 소수로 골라 왔기에 숫자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파티들이 전부 모여서 기습을 해도 재수 없으면 제압당할 수도 있다!
‘애초에 그런 짓을 하라고 해도 이 자식들이 말을 들을지가 문제지.’
랭커들이야 원래 이기적이었고 남은 길드원들은 안 그래도 불만이 많아져 쑤닝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있었다.
길마로서 자기 권위도 신경 써야 하는 입장에서 쑤닝은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길마님. 저기….”
“뭐냐? 엇…!”
쑤닝도 주케넨을 발견했다.
“털자!”
“털어야 한다!”
“제발 많이 갖고 있어라!”
“아니, 근데 가난해 보이는데….”
랭커 중 한 명이 바로 주케넨과 네크로맨서들의 견적을 냈다. 딱 봐도 허름한 옷차림이 별로 비싸 보이지 않았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하고 다니던 위장 덕분!
주케넨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이 모험가들의 정체는?
‘이놈들이 국경에 나타난 약탈자 놈들이구나!’
주케넨은 불끈 쥐었다. 역시 그에게는 행운이 따르고 있었다.
‘이놈들을 이용해서 마르체티 백작령 안에 침입해 혼란을 만들겠다. 그사이 나는 다시 내 부하들을 만드는 거다!’
“살려주십시오! 마르체티 백작의 성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드릴 테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
길드원들은 깜짝 놀랐다. 방금 이놈이 뭐라고 한 거지?
“그게 뭐냐! 말해봐라!”
이게 무슨 굴러들어온 떡이냐!
길드원들은 침착해지기 위해 애썼다.
* * *
“볼로네 백작 왔군.”
“숫자가 엄청 늘었어요.”
“뭐, 기사단만으로 돌격하진 않겠지. 용병들도 고용하고 다른 귀족들한테 기사들도 빌렸겠지.”
볼로네 백작 쪽 기세는 흉흉했다.
분노 그 자체!
하긴 그 분노가 이해가 가긴 했다. ‘어’ 하는 사이 영지를 뺏겨버렸으니….
“그런데 아무리 봐도 우리가 유리해 보이는데.”
케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 주변에 빽빽하게 모인 플레이어들!
정말 어마어마하게 모인 숫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