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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59화 (859/1,826)

§ 나는 될놈이다 859화

서로 손을 잡고 원하는 걸 챙기는 제안이라니.

태현이 언제 저런 제안을 하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뒤지거나 내 말을 듣거나 선택해라!

같은 제안만 하던 놈!

판온 2 처음부터 저런 제안을 했다면 쑤닝도 행복했고 태현도 행복했을 것이다.

쑤닝도 이 지경까지 안 갔겠지!

부들부들!

옛 기억이 떠올라 부들부들 떠는 쑤닝을 보고 태현이 의아해했다.

“너 감기 걸렸냐?”

“안 걸렸다!”

까드득!

“흠. 표정 보니 협상이 정말 싫은 것 같은데 뭐 그렇게까지 싸우고 싶으면….”

“아니다!”

“길마님께서는 원래 좀 가끔 제정신이 나가신다!”

“진정해라, 김태현!”

랭커들은 호다닥 놀라 태현을 말리려 들었다.

여기서 싸우면 손해를 볼 사람들은 그들밖에 없었다.

남은 길드원들은 대부분 박살 났으니 이제 태현과 직접 맞부딪혀야 하는 건 그들이었던 것이다.

길드원들의 원수를 갚아야 하지 않냐고?

그런 걸 신경 쓰면 랭커가 아니지!

랭커들은 평화를 좋아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너희 길마 아냐?”

“길마님이어도 가끔 정신 나갈 수 있지!”

“…닥쳐라. 이것들아.”

“길마님! 제정신이 돌아오셨군요!”

“믿고 있었습니다!”

“너희 되게 재밌게 노는구나?”

태현은 방금 일어난 일도 제대로 녹화했다.

아까 있었던 콩가루 싸움부터 시작해서 이것까지 묶어서 올리면 방송 시청률이 하늘을 찌르겠다!

물론 지금은 협상해야 하니 못 터뜨리고 나중에 터뜨려야겠지만….

태현이 그런 음흉한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쑤닝은 다시 입을 열었다.

“서로 손을 잡고 원하는 걸 챙기다니. 그게 정확히 무슨 소리냐?”

“넌 길드 동맹 유지를 위해 골드와 뭔가를 해냈다는 업적이 필요하잖아. 난 국왕으로서 외적을 영지에서 쫓아냈다는 업적이 필요하고.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거지.”

‘와. 저놈이 말하니까 진짜 설득력이 없게 들린다.’

‘평범하게 괜찮은 제안인데 왜 이렇게 믿기 힘들지?’

‘저 제안 뭐 세로로 읽으면 너희를 죽이겠다 이렇게 읽히는 거 아냐?’

길드 동맹 측 랭커들은 속으로 경악했다.

분명 멀쩡해 보이는 제안인데 김태현이 하니까 왜 이렇게 사악하고 수상하게 들리는 걸까?

태현은 계속해서 말했다.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 더 남쪽으로 가서 마르체티 백작령과 에르네스토 백작령을 털어라. 서로 양보하는 거지.”

마르체티 백작령은 지금 털리고 있는 아탈리 왕국 북서부 국경지대 바로 남쪽의 영지. 수도와 가까웠다.

에르네스토 백작령은 길드 동맹도 무서워서 안 건드리는 아탈리 왕국 동북부 국경지대의 <그 골짜기> 바로 남쪽의 영지였다.

수도에 가깝거나 골짜기에 가까워서 길드 동맹도 거기까지는 안 내려갔던 백작령!

그래서 거기 백작들도 ‘혹시 모르니까 도와달라고 해야지’ 하고 사신을 보냈다가 푸대접을 받고 ‘더러워서 도움 요청 안 한다!’ 하고 돌아간 상태였다.

당장 공격당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태현한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태현은 그들을 매우 아쉬운 상태로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어디 한번 약탈 당하면서도 버티나 보자!

“마, 마르체티 백작령과 에르네스토 백작령에 함정이 있는 거 아냐? 거기 가면 몸에 폭탄을 장착한 백작의 기사단이 대기하고 있다던가….”

“그런 거 없다. 확인해 보던가.”

“그쪽으로 내려가면 네가 이끄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덮친다거나….”

“…그 짓을 할 거면 지금 하는 게 낫지 않겠냐?”

그러게?

길드 동맹 랭커들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위치도 발각된 상황(생각해 보니 위치는 어떻게 발각된 건지 궁금했다), 그냥 덮치면 되지 굳이 협상을 할 이유가 없었다.

“수상하다! 그러면 너한테 무슨 이득이 있어서 이런 협상을 하는 거냐!”

‘아. 자식들 의심 더럽게 많네. 속고만 살았나?’

[카르바노그가 주로 아키서스의 화신이 속였다고…]

날카롭게 사실을 들이대는 카르바노그는 무시하고 태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

“너희들이 두렵기 때문이지.”

“!!”

“잘 생각해 봐라, 쑤닝. 원래 사자는 다른 사자와 싸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이길지도 모를뿐더러 이긴 쪽도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 너희 전력이 그만큼 위협적이니까 협상을 하자는 거다.”

김태현이….

우리를 인정해 주고 있어!

랭커들은 울컥 올라오는 걸 느꼈다.

길드 동맹에서 길드원 놈들은 배은망덕하게 ‘밥만 먹고 똥만 싸는 랭커 놈들’, ‘하는 건 튀는 것밖에 없는 양아치들’이라고 그들의 뒷말을 했다.

그런데 태현이 이렇게 말해주다니!

이 순간을 찍어서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이 정도 존재라는 것을!

“크, 크흠! 우리 랭커들이 무시무시하긴 하지.”

쑤닝도 감격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닌 척해도 목소리에는 물기가 촉촉했다.

[카르바노그가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합니다.]

너희가 정말 사람이냐!?

토끼도 저것보단 똑똑하겠다!

“거기 두 백작은 나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으니까 가서 뭘 하든 마음대로 해라.”

“그렇군… 그 대가로 이제까지 약탈한 건 모두 내놓으라는 건가….”

쑤닝은 고민된다는 듯이 말했다.

“응?”

태현은 당황했다.

그런 소리는 하지도 않았는데?

물론 아까 협상 전에 세게 지르기 위해 그런 말을 하긴 했다.

말을 하면서도 태현은 그게 통할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 먹은 걸 그대로 돌려놓는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물며 길드 동맹처럼 욕심 많은 곳이라면 더더욱.

“아니 난 딱히….”

“크윽. 김태현 놈. 저런 제안을 하다니….”

“하지만 길마님. 저 정도는 하지 않으면 김태현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탐욕스럽기는 판온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놈이잖습니까.”

“맞습니다. 김태현을 물러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입니다.”

랭커들은 쑤닝을 설득했다.

여기서 태현과 싸우지 않고 물러나게 만든다면 랭커들에게 가장 좋았다.

싸우지 않아서 좋았고, 그들의 이름으로 김태현이 물러났다고 말하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골드 손해는 참아줄 수 있다!

“게다가 마르체티 백작령과 에르네스토 백작령이 있잖습니까!”

“맞습니다!”

“크으윽… 크으으… 빌어먹을…!”

쑤닝은 고민된다는 듯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받아들여야 하느냐 마느냐!

그리고 그 광경을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쳐다보았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내놓는다니.

‘미친놈들….’

저러니까 길드 꼴이 개판이지!

“좋아! 받아들이겠다! 김태현.”

“그래….”

“표정이 왜 그렇지?”

“아냐. 아무것도.”

* * *

“아니. 너희는 호위 데리고 들어가면서 김태현은 혼자 들어가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케인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천막 근처에 있던 길드 동맹 간부가 단호하게 말했다.

“넌 절대 안 돼!”

“어째서?!”

“들어가서 자폭할 셈이겠지! 랭커들을 전부 한 번에 보내려고!”

“…아니 뭔 미친…!”

케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짓을 해?

“접근하지 마라!”

“나, 나한테 다가오지 마!”

“…….”

케인은 스스로의 이미지가 상당히 이상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랭커와 간부들!

그러는 사이 천막 안에서는 협상이 끝났다.

“협상 끝났다! 길마님께서 김태현을 물러나게 만드셨다!”

“길마님 만세! 길드 동맹 만세!”

간부들이 외치자 길드원들은 그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

지 않았다.

“뭐? 진짜?”

“정말로? 속은 거 아니래? 속은 것 같지 않아도 다시 한번 확인해 보라고 해봐!”

불신의 길드원들!

아무리 생각해도 쑤닝이 태현을 물러나게 만들었다는 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쑤닝이 혈압이 오르는 걸 참고 앞으로 나왔다.

“잘 들어라! 김태현은 우리 랭커들과 맞붙는 게 서로에게 손해라고 판단했다.”

“?”

“???”

랭커들에게 일방적으로 손해가 아니라?

아까 랭커들 여럿이 있는 길드 동맹 쪽에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든 게 누구였지?

“그래서 서로 싸움을 멈추고 타협한 것이다. 김태현은 우리를 물러나게 만들었다는 결과를 얻고, 우리는 새로 약탈해도 될 영지를 얻었다!”

“오….”

“꽤 괜찮게 들리는데? 진짜 어떻게 얻어낸 거지?”

“김태현한테 뇌물 준 거 아냐?”

“아니, 김태현이 뇌물을 받을 리가… 그 뇌물을 뺏고 또 협박하면 모를까….”

길드원들의 수군거림이 심해지자 간부들이 나섰다.

“길마님 만세!”

“길마님 만세! 만세! 만만세!”

짝짝짝짝짝-

군중심리는 무서웠다.

한 명이 만세를 외치자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일단 믿을 수 없는 결과여도 저 결과를 갖고 온 건 대단한 성과였으니까!

“자, 그러면 약탈한 물건들은 여기다 두고 간다!”

“?”

“네?”

길드원들은 당황했다. 뭐라고요?

“아니… 약탈한 걸 다시 놓고 가야 해? 왜? 어째서?”

“어쩐지 조건이 좋다 했더니….”

“뭐하는 거야? 이게? 이렇게 고생해서….”

“그래도 목숨 건졌으니까 다행 아닌가? 솔직히 김태현하고 싸우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나은 거 같은데.”

길드원들은 반으로 나뉘었다.

김태현하고 싸울 바에는 그냥 놓고 간다 vs 그래도 어떻게 얻은 건데 그냥 놓고 가냐!

그러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쑤닝과 랭커들이 한쪽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자식들! 빨리 놓고 비키지 못해? 이 목걸이 수상한데 약탈한 거 아냐?!”

“아, 아닙니다! 이거 원래 제 목걸이…!”

“김태현이 트집이라도 잡으려면 어떡하려고 말이야! 빨리빨리 내놔!”

누가 보면 태현 파티 쪽 수금업자라고 착각할 정도의 적극성!

쑤닝과 랭커들은 빠르게 수레를 채워 태현 쪽으로 밀어버렸다.

길드원들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골드와 보물들을 내놓았다.

“태현 님. 어떻게 저걸 내놓게 한 거예요?”

“…그러게 말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회수!

그 장면을 쳐다본 아스비안 제국 귀족 전사대가 태현에게 말을 걸어왔다.

“폐하. 저들을 속여서 보물들을 안전하게 뜯어낸 솜씨, 탄복했습니다.”

“내가 좀 대단하지. 왕관도 저렇게 찾을 생각이야.”

“과연…! 혹시 저 보물은 원래 주인인 귀족에게 돌려주실 겁니까?”

“…….”

태현은 순간 망설였다.

원래 저런 질문에는 ‘하하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말해야 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은 좀 달랐다.

태현이 귀족 전사대한테 꼭 잘 보여야 할 상황도 아니었고, 저 보물들을 그냥 넘길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귀족들이 보관할 능력이 없어 보이니까 내가 관리할 생각이다.”

“역시 폐하!”

“능력이 없는 자들은 보물을 가질 자격도 없습니다!”

[아스비안 제국 귀족 전사대가 당신의 결정에 감동합니다!]

[평판이 크게 오릅니다!]

[친밀도가…]

“…?”

[???]

태현과 카르바노그 모두 당황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저들!

* * *

“젠장… 지들은 고생도 별로 안 했으면서….”

“야. 다 들린다. 조심해.”

길드원들은 투덜거리면서 보물들을 수레 위로 올렸다.

고생은 그들이 다 했는데 랭커들이 내놓으라고 난리 치는 게 정말 짜증 났다.

툭-

“너 뭐하는 거야?”

“쉿. 조용히 해.”

길드원 중 몇 명이 보물들을 반납하지 않고 몰래 빼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양 많아서 몇 개 빼돌려도 몰라. 얼마나 돌려줘야 하는지 쟤네들이 어떻게 알겠어? 쑤닝이 겁이 많고 멍청해서 다 돌려주라고 닦달한 거라니까.”

“그래도 김태현인데….”

“맞아. 김태현 상대로….”

“…김태현이 아니라 김태현 할아버지라도 이건 모른다고! 조용히 하고 챙겨!”

“알겠어, 알겠어! 목소리 줄여. 근데 이건 뭐야?”

“김태현 동상이잖아. 국왕 동상이라 그런지 잘 만들어졌더라. 비싸게 팔릴 거야. 봐. 은이잖아.”

정확히 말하자면 동상이 아닌 은상이었다.

물론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재료를 아끼려고 은을 도금했지만, 길드원들이 그것까지 알아낼 수준은 아니었다.

그냥 국왕 동상인 데다가 은인 거 보니까 비싸겠다 싶어서 챙긴 것!

“김태현 동상 중에 비싸 보이는 거 많더라. 청동이어도 크기랑 가격 생각하면 손해 안 볼걸.”

“하긴… 국왕 동상을 싸구려로 만들지는 않았겠지. 좋아. 나도 챙겨야지!”

길드원들은 손을 모아 김태현 동상을 차곡차곡 숨겼다.

그걸 알아챈 최상윤이 태현에게 말했다.

“쟤네들이 약탈물 빼돌리는데?”

“뭐? 감히 뭘?”

태현은 발끈했다. 감히 약속을 어기다니!

푼돈이라도 용서하지 않겠다!

“네 동상.”

“…그건 그냥 가져가라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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