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57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볼로네 백작가 사신은 기겁해서 외쳤다.
“폐하! 폐하! 설마 저렇게 비겁한 자를 먼저 도와주실 겁니까?!”
“아까는 야비한 사람이 아니라며? 됐고, 도움 먼저 받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뛰어가라. 더 가까우니까 빨리 가면 늦지 않겠네.”
“…!”
호다닥!
볼로네 백작가 사신은 뭐라고 대답할 시간도 없이 몸을 돌렸다. 정말 급했던 것이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분할 통치> 스킬을 얻습니다.]
[<폭군의 이름으로> 스킬을 얻습니다.]
[<숙청의 공포> 스킬을 얻습니다.]
[왕국의 치안 상태가 올라갑니다.]
[왕국의 민심 상태가 올라갑니다.]
[왕국의 발전도가 올라갑니다.]
[귀족들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귀족들의 공포심이…]
[……]
쭉쭉 올라가는 왕의 권위!
태현이 처음 왕관을 썼을 때에는 ‘김태현? 그건 뭐하는 촌놈이야?’ 하던 귀족들이 지금은 팍팍 긴장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후. 길드 동맹 덕분에 왕국 내부 정리는 철저하게 되겠군.’
태현은 한시름 놓았다.
다른 왕국과 달리 아탈리 왕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국왕과 지방 귀족들이 따로 노는 콩가루 왕국!
운이 좋아서 아직까지 큰일이 없었던 거지, 재수 없었으면 반란으로 왕국이 몇 조각으로 쪼개질 수도 있었다.
‘북부와 중앙 영주들만 다 잡아놓으면 남부 쪽은 쉽게 못 까불겠지.’
태현은 계획을 팍팍 진행해나갔다.
‘길드 동맹 놈들은 흩어져서 놀고 있고… 그래. 뭐 계속 놀아라.’
* * *
놀랍게도 두 백작은 비슷하게 도착했다.
[볼로네 백작이 도착했습니다!]
[보나조 백작이 도착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
“하하. 두 백작을 보니 좋군. 내가 국왕 자리에 오른 지가 꽤 된 것 같은데, 충성 맹세 안 하다가 이렇게 달려오다니.”
“폐하! 오해입니다! 저는 언제라도 충성 맹세를 하러 가고 싶었습니다만 영지의 사정이 좋지 않아…!”
“페하, 보나조 백작의 영지는 질 좋은 밀밭이 있어 언제나 풍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영지는 이번 해에도 흉년이 들어서… 크흑!”
“이, 이러긴가, 볼로네 백작?”
“사신한테 다 이야기 들었다. 이 뱀 같은 놈아! 같이 손을 잡아놓고 배신해?”
“아… 아니. 그건 우리가 상황이 좋지 않아서… 악마까지 나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악마는 네 영지에서만 나오느냐! 나도 나오고 있다!”
“하하. 너희들이 다투는 걸 보니 내가 기분이 좋지만 할 일이 많으니 나중에 너희들끼리 싸우도록 해라.”
“…….”
“…….”
“밀린 세금은 갖고 왔겠지?”
“예… 예!”
“물론입니다!”
이 상황에서 ‘세금 따윈 못 낸다 폭군 놈아!’라고 말할 정도로 머리가 없는 귀족들은 없었다.
지금은 대가리를 땅에 박아야 할 때!
촤르르륵-
[골드를…]
[……]
[영지의 경제력이 올라갑니다!]
[왕국의 경제력이…]
[……]
이것이 세금인가!
길드 동맹이 왜 그렇게 세금에 환장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몇십만 골드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세금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몇 년 치 세금을 내기 위해 두 귀족들의 보물창고를 탈탈 긁어모은 것이었지만….
“두 백작은 내게 충성을 맹세하겠는가?”
“…예!”
“물론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랑하고 존중하며….”
“…?”
“아. 이건 아니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돈이 없을 때나 돈이 있을 때나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는가?”
“예!”
“기사단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폐, 폐하. 충성을 맹세할 테니 좀… 굳이 불필요한 말씀은….”
태현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끄는 것 같자 두 백작들은 초조하게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하는데 진짜 더럽게 시간 끈다!
“흠. 내 말을 존중해 줄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존중합니다!”
“다만 요즘 연설을 짧게 하는 게 유행이라!”
“그래. 알겠네. 마지막으로 넘어가지. 이 모든 충성을 위해 아키서스 교단에 헌신하고 아키서스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겠나?”
“예!”
“어…?”
보나조 백작은 무심코 대답했고, 볼로네 백작은 보나조 백작보다 똑똑했기에 멈칫했다.
방금 뭐라고?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건 단순히 ‘충성충성충성’을 한다는 게 아니었다.
어길 경우 귀족으로서의 명예가 엄청나게 하락하고, 다른 귀족들도 그를 귀족 취급을 하지 않고….
하여간 대륙의 다른 왕국에 가서 귀족 취급 받으려면 명예를 건 맹세는 지켜야 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이 맹세를 어긴다고 바로 목숨이 위험해지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한다는 건?
맹세 어기는 순간 신의 저주 들어온다!
“흠. 볼로네 백작은 보나조 백작보다 덜 충성스럽군. 보나조 백작 영지부터 가야겠는걸?”
“아… 아닙니다! 맹세합니다! 맹세합니다!”
‘빌어먹을 보나조 백작!’
원래 아키서스 교단 안 믿는 두 백작이었기에 굳이 맹세할 필요가 없었는데, 보나조 백작이 먼저 맹세한 덕분에 끌려 들어가게 된 것이다.
왜 시간을 끄나 했더니 이런 치졸한 수작을!
[두 백작이 아키서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합니다!]
[맹세를 어길 경우 아키서스 맹세의 저주를 받습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아탈리 왕국에서 아키서스 교단의 힘이 더욱더 커집니다.]
[아키서스 관련 NPC들의…]
“좋아! 보나조 백작의 영지를 구하러 가볼까?”
“폐… 폐하! 어찌하여 보나조 백작을 먼저?”
“그야 보나조 백작 사신이 먼저 뛰어갔으니까. 앞으로 억울하면 친구를 먼저 버리라고.”
“…….”
볼로네 백작은 보나조 백작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보나조 백작은 변명하려고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변명이 되겠는가.
무리였다.
* * *
“…그런데 왜 우리 이 인원만으로 움직이냐?”
케인은 당황해서 물었다.
태현이 데리고 온 전력은 어마어마했다.
말 그대로 영지 하나를 밀어버릴 수 있는 전력!
그런데 태현은 달랑 <아스비안 제국 전사대>만 이끌고 몰래 움직이고 있었다.
“그야 다 데리고 가면 들킬 테니까. 어디 가는지 중계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태현도 움직임 하나하나가 방송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원래 기습을 중요시하는 태현에게 있어 이런 건 절대 원하지 않는 방향!
플레이어들을 따로 떼놓을 수도 있었지만 태현은 그러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으니까.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야지.’
지금 아키서스 포병대와 기사단, 거인 부족들이 둘러싸고 있는 태현 일행 쪽에는 가짜 일행들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태현은 분신을 만들어서 남겨놓았으니 나머지 일행들은 얼굴이 안 보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현이 국경 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상황!
‘불리해도 상관없다.’
포병대, 거인 부족, 기사단 등 전력을 다 쓰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언제부터 태현이 유리하게 싸웠었다고.
중요한 건 태현이 원하는 상황에서, 원하는 곳에서 싸우는 것!
게다가 첩자들이 실시간으로 쑤닝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아스비안 제국 귀족 전사대>야?”
“빼도 가장 티가 덜 나고, 내 병력 아니라서 막 쓸 수 있으니까.”
아키서스 포병대야 이제 너무 유명해졌고, 거인족들은 사라지면 너무 눈에 띄었다.
그에 비해 아스비안 제국 귀족 전사대는 기사단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사라져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병력이 아니기에 아깝지가 않다!
“폐하.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가장 믿을 만해서 데리고 왔다고 했지.”
“후후후….”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태현이 와서 귀족들을 휘어잡는 모습에, <아스비안 제국 귀족 전사대>의 충성도는 꽤 올라간 상태였다.
마치 황제 같은 모습!
“지금 잡으러 가는 그놈이 폐하의 성물을 훔쳐간 바로 그놈입니까?”
“어?”
태현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물었다. 그리고 바로 깨달았다.
아, 그런 설정이 있었지?
<잊혀진 망자의 왕관>을 찾고 있는 우이포아틀.
그걸 갖고 있는 태현은 과감하게 왕관을 쪼개서 조각을 던져준 다음 ‘허억! 오스턴 왕가 놈들이 이런 짓을!’라고 말한 상태였다.
‘잊고 있었네.’
하도 이곳저곳에 사기 치고 다닌 게 많아서 헷갈리는 수준!
“그랬지.”
“지금도 갖고 있을 것 같습니까?”
“아냐. 아마 자기 왕궁에 갖고 있을 거야.”
“크윽. 비겁한 놈 같으니.”
“잡아서 왕궁까지 점령해야 합니다.”
“하하. 너희들이 그러고 싶다면 내가 말릴 수가 없구나. 황제폐하께 잘 말해서 병력을 보내달라고 해보렴.”
물론 말을 하면서도 태현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아스비안 제국은 너무 멀었던 것이다.
태현이 지금 대놓고 사기를 치는 것도 그래서였다.
만약 들키더라도 다시는 그쪽으로 안 가면 되니까!
“찾았다. 저기 있군.”
“와. 저 수레 봐. 미친놈들. 얼마나 챙긴 거야?”
“어? 저 동상 뭐지? 저거… 저거 네 동상 아냐?”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네 동상 맞는 것 같은데?”
케인은 눈치 없게 수레를 가리키며 계속 물었다. 아무리 봐도 김태현 동상 같았다.
“수도나 골짜기 말고도 동상이 있었나?”
가장 유명한 태현 동상은 골짜기에 있는 대형 동상이었다.
골렘들과 같이 서 있는 위엄 쩌는 동상!
그러나 골짜기에 있는 대형 태현 동상 말고도, 중형이나 소형으로 만들어진 동상들이 꽤 있었다.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의 만행!
-김태현 님(폭탄) 동상 만들었는데 영지에는 이미 있어서 효과가 덜하네?
-이런. 그렇다면 없는 곳에 가서 설치하자.
-그럴까? 하긴 국왕 폐하니까 다른 영지에 설치해도 별 상관없겠지.
-터지진 않겠지?
-에이. 무슨 일이 있으려고. 괜찮아. 괜찮아. 터지는 것도 다 경험이야.
자기네들 영지 아니라고 막 갖다 놓는 대장장이들!
귀족 영주들이 알게 되면 목에 현상금을 걸었을 사악함이었다.
물론 이미 걸고 있었지만!
‘수레가 꽤 많군.’
태현은 바로 견적을 냈다.
길드 동맹도 바보가 아니니 영지를 털고 나서 자기네들 땅으로 아이템을 옮겼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많이 있다니.
얼마나 많이 털었으면!
젠장! 저렇게 부유한 줄 알았으면 그냥 내가 복면 쓰고 영지 터는 건데!
[?????]
‘아차. 본심이.’
[…….]
‘왜 그래? 엎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지!’
길드 동맹들의 습격으로 귀족들이 도와달라고 하는 거나, 태현의 습격으로 귀족들이 도와달라고 하는 거나.
별로 큰 차이 없었다.
“폐하. 저 사악하고 건방지고 더럽고 추잡하고….”
10초 후.
“…역겨운 도적 놈들을 지금 바로 쓸어버리실 겁니까?”
“그래. 너희들 실력을 보겠다. 가자!”
[<아스비안 제국 귀족 전사대>가 당신의 말에 의욕을 냅니다!]
[<폭군의 지휘>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아스비안 제국 귀족 전사대>가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폭군에게 지휘를 받는 것으로 인해 <아스비안 제국 귀족 전사대>가 매우 기뻐합니다!]
“수레를 노려라! 수레를 노려!”
“길드원은 죽이고 수레를 뺏는다!”
“모두 움직이지 마! 움직이는 놈부터 베겠다!”
“우리는 정의의 산적단이다!”
“?”
“????!”
안심하고 움직이던 길드 동맹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기겁했다.
도적 플레이어들의 척후도 뚫고 나타난 기습!
“아니 지금 산적은 우리 아냐?”
“어떤 미친 산적 놈이 산적을 털어? 밟아 버… 김, 김태현이다! 김태현이다!!!”
“으아아악! 으아아아악!”
가장 앞에 있던 길드 동맹 길드원은 비명을 지르더니, 친구를 붙잡고 넘어뜨렸다.
“?!”
그리고 돌아서서 도망쳤다. 넘어진 길드원은 깨달았다.
‘저 개자식! <김태현을 만났을 때 살아남는 방법>을 읽었구나!’
자기보다 먼저 넘어뜨리다니!
친구의 배신보다 한발 늦었다는 분함이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