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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56화 (856/1,826)

§ 나는 될놈이다 856화

이다비는 진지한 눈빛으로 태현을 보며 말했다. 그 눈빛에 태현은 순간 감동을 받았다.

태현은 자기가 즐겁기 위해서 게임을 하는 사람이었다. 거기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었다.

그렇지만 이다비는 태현이 이제까지 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게임이 아닌 그 이상….

“무슨 소리야? 행운은 김태현이 제일 높은데.”

“케인아… 제발 낄 때 끼자니까…!”

최상윤은 눈치 없이 끼어드는 케인을 보며 얼굴을 붙잡았다. 유지수와 정수혁도 질린 눈으로 케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넌 눈치도 없냐!

“왜?? 아니, 김태현이 행운이 더 높잖아!”

“닥쳐, 좀.”

“다무세요, 좀.”

케인은 제압당하고 입에 진짜로 재갈이 물려졌다. 억울하다고 눈빛으로 호소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읍읍읍! 읍읍읍읍!”

“아. 근데 진짜 에다오르가 상대면 좋겠다.”

“에이, 그건 좀 너무 심했다.”

“맞아요. 에다오르가 또 나오겠어요?”

“너무 양심 없는 생각 같습니다. 선배님.”

화기애애하게 떠들며 앞장서서 움직이는 태현 일행!

그 뒤에는….

아키서스 포병대, 새로 합류한 거인 부족들, 에랑스 왕국 제4기사단, 아스비안 제국 귀족 전사대, 수도 악마 근위대, 수도에 있다가 태현의 등장을 보고 달려온 고렙 플레이어들….

실로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심지어 이 전력은 다 모인 것도 아니었다. 지금 곳곳에서 길드 동맹 파티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플레이어들도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전력이라니!

태현은 아직도 ‘길드 동맹은 랭커 수십 명을 데리고 있어! 전력이 부족해!’라고 생각하며 전력을 모으고 있었지만, 사실 이제 태현이 동원 가능한 전력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한 푼 두 푼 모으고 남의 기사단 한 명 두 명 뺏다 보니 어느새 풍족하게 만들어진 전력!

에랑스 왕국 제4기사단이나 아스비안 제국 귀족 전사대는 돌려줘야 할 전력이긴 했지만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디부터 털 건가요?”

“글쎄. 한 번 돌면서 생각해 보자.”

태현은 거대한 전력을 이끌고 느긋하게 북쪽 국경지대로 올라갔다.

뒤에서 따라가고 있는 플레이어들한테는 의아한 속도!

“좀 더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길드 동맹 놈들이 보고 도망치면 어떡하지?”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눈치채기도 쉬운 법.

지금 태현을 따라오는 플레이어들 중에서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만 해도 백 명이 넘을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확신이 있었다.

길드 동맹은 그냥 바로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고.

‘원래 세상일이란 게 그렇게 쉽게 풀리는 게 아니지.’

길드 동맹은 레드존 길드처럼 허접한 듣보잡들이 모여 만든 길드가 아니었다.

“왜 귀가 간지럽지?”

“어휴. 더러운 놈.”

길드 동맹은 판온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길드.

그런 길드는 아무리 궁해서 약탈을 하더라도 그냥 약탈을 하면 안 됐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뭔가 보여줘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골드가 좀 들어오더라도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쑤닝도 그걸 알고 있으리라!

‘쑤닝. 그래도 뭔가 하는 시늉은 하고 튀어야 하지 않겠어? 물론 그러고 싶지는 않겠지만.’

* * *

태현의 예상대로 쑤닝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태현이 수도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은 바로 길드 동맹 전원의 귀로 들어왔다.

-김태현이 출발했다!

-종말이 다가온다!

-하늘이 무너진다!!

누가 보면 무슨 세상의 종말을 맞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길드 동맹은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길드원들은 당장에 쑤닝에게 돌아가자고 성화였지만, 쑤닝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젠장… 보는 눈이 너무 많아!’

길드 동맹은 단순히 게임 안에서만 굴러가는 길드가 아니었다.

게임 밖에서도 각종 후원과 투자를 받는 사업체였다.

이런 게 가능했던 건 길드 동맹의 압도적인 위치 때문!

욕을 먹더라도, 문제가 생겨도, 길드 동맹처럼 강한 길드는 없었다.

쑤닝은 새삼 태현이 얼마나 교활하고 지능적인 놈인지 느꼈다.

이미지를 정말 제대로 만든 것이다.

태현이 길드 동맹 상대로 도망치거나 치고 빠지면?

모두가 이해해 줬다. 길드 동맹은 거대했고 태현은 소수로 싸웠으니까.

그렇지만 그 반대는?

그건 불가능했다. 이미지와 맞지 않았으니까. 대번에 길드 동맹은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태현은 아쉬운 게 없었지만 쑤닝은 아쉬운 게 너무 많았다. 뭘 하려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도망칠 수는 없다!

“쑤닝. 왜 그래?”

“…그냥 도망칠 수는 없어. 안 그래도 분위기 안 좋은데 도망만 치면 뒷말이 나온다. 뭐라도 해야 해.”

랭커 곤잘레즈는 쑤닝의 말뜻을 이해했다.

“확실히… 그러면 이러면 어떠냐?”

“?”

“지금 김태현 쪽은 완전히 중계하고 있잖아.”

수백 명이 넘게 방송하고 있는 상황!

덕분에 길드 동맹은 두려워하면서도 패닉에 빠지지는 않았다.

아니, 패닉에 반쯤 빠진 거 같긴 하지만….

“이제까지와 달리 우리가 놈들을 꿰고 있다는 거지. 김태현이 우리 상대로 했던 걸 그대로 써먹는 거야. 피하면서 치고 빠지기.”

“그럴 수가 없다니까! 길드 동맹이 김태현을 상대로 피하는 모습을 그렇게 대놓고 공개적으로 보여주면…!”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그랬다가는 정말 낙인이 찍힐 것이다.

“아니지. 언론 플레이를 잘하면 되잖아.”

“?”

“김태현을 피했다고 하지 말고, 김태현을 상대로 그놈을 농락했다고 하면 되지! 그것도 그놈이 한 방법으로. 말이야 갖다 붙이면 되는 거 아니냐?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법이라고!”

“…!”

그랬다.

태현을 피하면서 주변을 터는 건 얼핏 보면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 같았지만, 잘 포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태현이 이제까지 한 전술을 그대로 돌려주는 복수!

물론 비웃는 놈들이야 나오겠지만 그 정도 여론은 충분히 누를 수 있었다.

‘좋은 생각이다!’

“아주 좋은 방법이다. 곤잘레즈!”

“그렇지? 그러면 지금부터 각 파티에 방송하는 놈들 모두 다 방송 끄게 하고, 나머지 위치는 철저하게 비밀로 하도록 하자고. 김태현 놈들 위치는 방송으로 계속 파악할 수 있으니까!”

“곤잘레즈…! 너한테 감탄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쑤닝은 감동했다.

곤잘레즈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다니!

평소에는 몰랐는데 과연 위기가 닥치자 사람 능력이 나왔다.

쑤닝의 칭찬에 곤잘레즈는 뿌듯해….

하지 않았다.

‘…김태현 한 거 그대로 따라하는 건데….’

뭔가 칭찬을 들어도 떨떠름한 기분!

태현이 하던 걸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기에 매우 민망했다.

“모두들 지금부터 방송을 중지한다!”

“개인 방송 꺼라! 방송하다 걸리는 놈이 있으면 엄격하게 처벌하겠다!”

간부들과 랭커들은 살벌하게 외치고 다녔다.

개인 방송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방송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죽어가는데도 ‘시청자분들! 이거 보고 계십니까! 저 죽습니다!’ 하고 방송을 하는 게 방송인!

이렇게 엄하게 말하지 않으면,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개인 방송을 하려고 드는 놈이 나올 수도 있었다.

모든 개인 방송 플레이어들의 꿈!

아무도 방송하지 않고 있는 퀘스트를 독점 방송하는 것!

그래도 길드원들은 이번에는 말을 잘 들었다. 간부들의 경고도 무서웠지만 태현이 그만큼 무서웠기도 했던 것이다.

“도적 플레이어들은 전방, 후방에 서서 주변에 보이는 모든 플레이어들을 잡아내라! 염탐하는 놈이 없도록 탐지 마법도 건다!”

철저하게 정보를 숨기고 이동하려는 길드 동맹 파티들!

매우 전략적인 선택이었고, 실제로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안에 첩자만 없으면!

드넓은 판온 대륙에서 스무 명, 서른 명으로 이뤄진 파티 찾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파티가 있다면 예외였다.

첩자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정보를 보내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안 해본 사람들은 착각하기 쉬웠지만 원래 첩자질도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제때에 맞춰서 보고해야 하는 것!

특히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몰래 보고를 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실력이 필요했다.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낼 여유가 없으니 귓속말만으로 위치를 정확히 말해야 했던 것이다.

‘위치를 특정할 만한 게 필요한데… 커다란 나무나 산 같은 거….’

‘하필이면 강이 없군. 저 바위가 좋아 보이는데… 아니, 왜 저기 있는 거야? 좀 비키지.’

어디 있는지 설명하기 좋은 건 역시 커다란 나무나 바위, 개울이나 샘 같은 것들.

그런 곳에 슬쩍 자리 잡고 귓속말로 설명하려고 하는데 자꾸 다른 길드원과 부딪혔다.

“???”

“???”

‘이 자식 뭐야?’

‘왜 자꾸 이렇게 부딪히지?’

설명하기 좋은 장소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첩자끼리 부딪히는 현상 발생!

‘헉, 설마… 이 자식, 날 의심하는 건가?!’

‘이, 이 사람… 나를 의심하는 건가?!’

첩자들은 더욱 조심하며 귓속말을 보냈다.

그러는 와중에 쿨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 앨콧. 왜 귓속말을… 도와주러 오고 싶다고? 아니. 영주 일이 바쁠 텐데? 됐어. 네가 길드에 얼마나 헌신하는지 나는 안다. 어디냐고? 아니, 올 필요 없다니까. 허 참. 그래. 어디로 오면 되냐면은….”

쑤닝은 갑자기 날아온 앨콧의 귓속말에 성실하게 대답해 줬다.

오스턴 왕국 서쪽 지역 영주들이 다 이탈하는 동안, 에랑스 왕국의 꿀땅을 갖고 있으면서도 길드 동맹에 남은 앨콧이었다.

길드 동맹에서 위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앨콧을 질투하거나 싫어하는 랭커들도 앨콧의 충성심 하나만큼은 인정할 정도!

-앨콧 그 자식, 솔직히 이번 사태 때 나갈 줄 알았는데 끝까지 있더라. 보기보다 의리가 있어.

-김태현하고 수상한 소문이 있다던데 역시 거짓말이었어.

-김태현한테 그렇게 당한 게 앨콧인데 김태현하고 손을 잡을 리가 있나! 그거 김태현이 낸 소문 아닐까 싶은데.

-확실히 그럴듯해.

* * *

“여기서 정지.”

“아, 아니. 폐하. 저희 주인님의 영지를 구하러 가야 하지 않으십니까?”

태현이 영지를 그냥 지나쳐 국경에 있는 넓은 강 앞에 정지하자, 귀족의 사신들은 매우 당황했다.

영지로 가서 도적 떼 놈들을 찾아도 모자랄 시간에 왜 이런 곳에 오지?

“하하. 너희들은 아직 계략이 부족하구나. 잘 생각해 봐라. 잔뜩 약탈한 놈들이 어디로 돌아가겠냐. 다 여기로 올 거 아니냐.”

“앗. 과연….”

“…그런데 폐하. 그러는 사이 영지는 약탈당하는 거 아닙니까?”

“뭐 내 영지도 아닌데….”

“폐하?!”

“음? 아니, 원래 희생은 좀 감수해야지. 리더는 묵직해야지 가볍게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하면 안 되네.”

“…….”

“…….”

사신들의 얼굴이 검게 죽어갔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그보다 백작들에게 여기로 나오라고 하도록.”

“예?!?! 그건 왜 그러십니까?!”

“밀린 세금 들고서 충성 맹세 바쳐야지.”

“폐, 폐하! 아직 도적 떼가 안 사라졌는데 지금 그러실 때가… 영지에 악마 놈들도 날뛴단 말입니다!”

“그건 너희 사정이고. 난 충성 맹세하고 세금을 받아야겠는데.”

“지금 주인님께서 자리를 비우시면…!”

“부하들이 더 힘내서 잘하겠지. 백작들이 무슨 대단한 일 하는 것처럼 말하지 말게. 그냥 발목이나 잡고 있겠지. 아. 그리고… 구해줘야 할 영지는 두 곳인데 내 몸은 하나니까 먼저 찾아온 백작의 영지로 갈 수밖에 없겠군.”

“…!!!!”

사신들은 경악했다.

뭐 이런 사악한 놈이 있나!

“폐하! 설마 제 주인님과 보나조 백작가를 갈라놓으시려는 거면 잘못 생각하신 겁니다! 보나조 백작가에서 온 사신은 그렇게 야비한 사람이 아닙니다!”

볼로네 백작가 사신은 발끈해서 항의했다.

“그래? 그러면 저기에서 뛰어가는 건 누구지?”

“?!”

볼로네 백작가 사신은 깨달았다.

아까까지 옆에 있던 사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저, 저…!”

보나조 백작가에서 온 사신은 미친 듯이 말을 몰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만큼 절박한 보나조 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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